[데스크 칼럼] 개원절류(開源節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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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경제부 부장
입력 2023-06-08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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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혔던 숨통이 조금씩 트이는 걸까. 지난해 4분기(-0.3%) 마이너스를 기록했던 경제성장률은 올 1분기(0.3%) 어렵게 반등에 성공했다. 1년 넘게 정부와 가계를 모두 힘들게 했던 소비자물가 상승률도 최근 들어 하락세가 완연하다. 1분기 내내 4~5%대를 오가다가 4월 3.7%, 5월 3.3%로 내리막에 접어들었다. 

물론 지난해 너무 오른 데 따른 기저효과로 해석되지만 물가에 얽매여 옴짝달싹 못하던 상황에서 벗어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지난 1월에만 125억 달러 적자를 내 수심이 깊었던 무역수지도 2월 53억 달러, 3월 46억 달러, 4월 26억 달러, 5월 21억 달러 등으로 적자 폭을 줄여 나가고 있다. 반도체와 대중 수출 부진이 여전하지만 연초 걱정했던 극단적인 시나리오가 현실화할 가능성은 낮아졌다.

이처럼 수치상 분명히 나아지고 있는데도 올 하반기 혹은 그 너머의 한국 경제 상황을 헤아려 보면 불안감이 쉬이 가시지 않는다. 불안의 근원에 대해 얼마 전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속 시원한 답을 내놨다. 

이 총재는 지난달 25일 금융통화위원회 회의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우리나라가 일본처럼 저성장 덫에 빠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 섞인 질문에 '이미 장기 저성장 구조에 와 있다'고 못을 박았다.

그는 노동·연금·교육 등 역대 정부가 앵무새처럼 되뇌었던 개혁 과제를 언급하며 모두가 바뀌어야 한다는 건 알지만 사회적 타협이 이뤄지지 않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일침을 가했다. 구조 개혁을 이뤄내지 못한 상태에서 돈을 풀거나 금리를 낮춰 경제를 살려 내라는 건 나라 망가지는 지름길이라고도 했다.

그렇다. 하반기 들어 물가가 더 떨어져도, 반도체 경기가 살아나도, 기대해 마지않았던 중국 리오프닝 효과가 폭발해도 한은이 전망한 경제성장률 1.4%를 겨우 달성하거나 소폭 높일 수 있을 뿐이다.

우리가 가진 힘을 제대로 발휘했을 때 닿을 수 있는 목표치를 뜻하는 잠재성장률은 2% 안팎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2030년 이후 0.8% 수준으로 떨어질 것이란 섬뜩한 분석을 내놨다. 다른 국내외 주요 기관의 예측도 비슷하거나 더 비관적이다.

중국 춘추전국시대 사상가인 순자(筍子)는 스스로 지은 '부국편(富國篇)'에서 나라가 부강해지려면 원천을 늘리고(開源) 흐름을 줄이라(節流)고 설파했다. 생산과 수입을 늘릴 원천을 적극 개발하고, 지출을 절제해야 한다는 뜻으로 개원절류(開源節流) 성어의 유래다. 

재정·통화 정책으로 경제적 난국을 타개하려 하면 나라가 망할 수 있다는 이 총재의 지적과 일부 맥이 닿아 있다. 국가채무가 1000조원을 넘어서고 세수 감소도 심각해지는 와중이라 재정 지출에 신중함을 더해야 하는 게 맞다. 

다만 순자는 '전답이 황폐해지고 백성이 허기져도 곳간만 가득 차 있다면 나라가 넘어질 수 있다'는 경고 또한 잊지 않았다. 방만한 재정 운용도 경계해야 하지만 맹목적인 건전 재정 추구 역시 능사는 아니다. 

'절류'에 앞선 게 '개원'이다. 심각한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생산인구 감소세를 어떻게든 막아 세워야 한다. 이민과 해외 노동자 활용에 대한 전향적인 접근도 필요하다. 노동 개혁은 근로 시간을 늘리는 대신 선진국 대비 뒤처진 생산성을 끌어올리는 방식이 돼야 한다. 노사정 간 타협은 외면할 수 없는 필요조건이다. 

관(官) 주도의 성장 전략은 수명이 다했음을 인정하고 산업 전 분야에 걸쳐 네거티브 규제를 도입해야 한다. 우리 기업은 정부보다 늘 명민했다. 

최근 만난 한 고위 경제 관료는 대중 수출이 이 정도로 부진할지 몰랐다며 중국을 자극한 게 일정 부분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고 자인했다. 정부의 경솔함과 조급함이 기업의 발목을 잡아선 곤란하다. 대외 전략의 방향성은 10년, 30년 후를 내다보고 수립해야 한다. 순자는 '백리의 나라로도 족히 독립할 수 있다'고 했다. 

해법을 다 아는데 한 발짝도 못 나아가는 걸 안타까워하는 이가 비단 이 총재뿐은 아닐 것이다. 
 

[이재호 경제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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