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재우의 프리즘] 파상공세 퍼붓는 중국.. 우리의 ''對中 외교원칙' 공식화할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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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재우 교수
입력 2023-06-0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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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재우 경희대 교수]



세계는 중국과 경제 관계 개선을 위한 전략 재구상에 바삐 돌아가고 있다. 여기에 미국까지 가세하면서 행보의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지난 4월 20일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의 존스홉킨스대학 연설을 필두로 27일 제이크 설리번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의 브루킹스연구소 대담회까지 미국의 대중국 경제 관계의 발전 방향에 관한 미국 백악관과 행정부 입장이 밝혀졌다. 그리고 지난 5월 25일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통상 장관회의를 앞두고 미·중 양국 상무장관 또한 회담을 했다. 이에 앞서 5월 12일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과 왕이 중국 국무위원은 오스트리아 빈에서 역시 8시간 넘는 마라톤 회담을 했다. 옐런 장관과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의 연설문 이외에 나머지 회담 내용에 대한 내용을 관련 당국이 밝히지 않으면서 궁금증을 자아냈다. 이런 가운데 우리는 미·중 경제 관계에 있을 변화를 ‘장님 코끼리 만지듯’ 추측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

회담 내용이 공개되지 않은 것은 이례적이다. 특히 미·중 경쟁관계가 격렬해지는 가운데 양국이 이와 같은 조치를 취한 것은 아무래도 민감한 사안들에 관한 논의가 많았고 아직 그 결과가 미성숙한 것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어 보인다. 그 이유를 두 가지 맥락에서 유추할 수 있겠다. 하나는 미국이 대선 정국에 진입하는 길목에 서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24일 론 디샌티스 미국 플로리다 주지사의 출마 선언으로 미국 대선 정국의 시작이 알려졌다.

또 하나는 따라서 대선을 의식한 중국의 ‘리오프닝’에 대한 미국 행정부의 새로운 입장 변화가 요구되는 시점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가령 미국 행정부도 글로벌 공급망에서 중국과의 ‘디커플링(탈동조화)’ 기조에서 ‘디리스킹’으로 전환할 필요성이 강조된 설리번의 브루킹스연구소 연설에서 이 같은 변화가 예고된 것이 그 방증이라 할 수 있겠다. 중국과의 경제 경쟁에서 미국의 위험 부담을 줄이면서 중국과의 경제 관계를 발전시키겠다는 전략으로의 전환은 미국 국익에서 중국 시장의 중요성을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을 방증하는 대목이라 할 수 있겠다.

미국은 그러면서도 중국의 불공정하고 불공평하고 부정한 경쟁 행위에 대해 묵과할 수 없다는 종전의 정책 기조에는 변함이 없음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특히 옐런 재무장관 연설에서는 이 점을 확실히 부각시켰다. 그러면서도 중국과의 경제 관계를 미국의 위험 완화 범위 내에서 발전시켜나가겠다는 미국 측 발언에서 미국의 대중국 경제정책 기조에 변화를 감지할 수 있다. 특히 미국이 채무불이행(‘디폴트’) 사태의 위험에서 탈출하기 위한 방편으로 국가부채 한도를 상향 조정하는 데 미국 의회가 합의하면서 일단 급한 불을 끈 상태다. 미국의 경기 회복을 위해서라도 ‘리오프닝’하는 중국 시장은 미국에 필수불가결한 요소로 부각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지난달 28일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의 공급망 부문에 관한 합의가 도출되었다. 공급망 위기에 회원국이 공동으로 대처하는 것이 핵심 내용이었다.

우리 정부의 행보도 뒤처지지는 않았다. 지난달 21일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지나 러몬도 미국 상무장관이 회담을 했다. 여기서 한·미 양측은 앞으로 연 1회 한·미 공급망·산업대화를 개최하는 데 합의했다. 그리고 지난달 28일 안덕근 통상교섭본부장이 왕원타오 중국 상무부장과 디트로이트에서 회담을 했다. 이 회담에 관한 한·중 양측 보도자료 발표 내용이 차이를 보였다. 중국 측은 “양측은 반도체 산업망과 공급망 영역에서 대화와 협력을 강화하는 데 동의했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이에 반해 우리 측은 “중국 측에 교역 원활화와 핵심 원자재·부품 수급 안정화를 위한 관심과 지원을 요청했다”는 점만 담았다. 중국이 ‘반도체 대화와 협력 강화’를 강조한 대목에서 우리는 중국의 절실함과 초조함을 다시 한번 감지할 수 있었다.

여기에 마이크론사(社)에 대한 중국 측 제재 결정에 미국 측의 우리 제품의 대체 공급 문제에서도 새로운 기류가 나타면서 중국의 조바심을 한층 더 부추기는 형국이 조성됐다. 우리 정부는 부인했지만 지난 4월 미국은 마이크론사의 공백을 한국의 반도체가 메우지 말 것을 경고한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최근 미국 의회는 한국이 마이크론의 빈자리를 채워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도 ‘필요시 한국 반도체 기업에 대한 미국의 수출 허가 예외 조치를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공개하기도 했다. 이런 미국의 입장 변화가 가능해진 사실은 옐런과 설리번의 연설, 그리고 IPEF 공급망 협정에서 그 이유를 유추할 수 있겠다. 이들은 모두 미국의 제조업 회복과 공급망에서 우방과의 협력을 강조한다. 특히 이들의 연설은 당당한 산업정책 추구, ‘동맹이 뒤처지게 두지 않을 것’이라며 동맹과의 협력을 역설했다. 이런 결과의 일환으로 한·미 양국 간 경제협력은 더욱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설리번의 연설에서도 나타났듯 미국은 앞으로 첨단 과학기술 이전의 장벽을 높이는 것과 관련해 "단지 군사적으로 우리에게 도전하려는 소수 국가와 소수의 기술에만 적용된다"고 발언하면서 그 대상에 중국이 포함된 점을 암시했다. 그러면서도 중국과의 경제 협력과 경제 관계의 필요성을 설명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는 그래서 미국이 중국과의 ‘디컬플링’에서 ‘디리스킹’ 입장으로 전환한 이유에 대해서도 부연했다.

연설문에서 그는 디리스킹을 “근본적으로 탄력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으로 공급망을 확보한다는 의미로 이를 구축하는 데 다른 국가에서 압박을 받지 않는” 것으로 설명했다. 즉, 특정 제품과 광물에 대한 미국과 동맹의 높은 중국 의존도를 낮추겠다는 뜻을 피력한 것이다. 이와 더불어 중국의 4차 산업 경쟁력을 견제하기 위한 조치 또한 소개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는 이를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대중국 경제정책의 모토라 할 수 있는 ‘작은 정원, 높은 펜스(small yard, high fence)’에 다시 비유했다. 즉 맞춤형 수출 규제를 지속해서 적용하겠다는 뜻이다. 그리고 수출 통제 대상의 기술 범위가 비록 넓지 않지만 강력한 규제 기준을 적용해 철저하게 첨단 과학기술이 중국으로 이전되는 것을 막겠다는 것이다.

미국의 이런 전략 변화에 중국은 민감할 수밖에 없다. 내년 11월 미국 대선이 끝나면 시진핑 3기도 반환점을 도는 시기에 접어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올해를 ‘리오프닝의 해’로 선언한 만큼 중국도 괄목할 만한 경제 성과를 내야 하는 정치적 부담의 압박을 느낄 터이다. 중국도 ‘디리스킹’이 필요한 만큼 우리와 같이 4차 산업 분야에서 선도적인 국가와의 협력이 절실한 것도 사실이다. 이런 정황은 여러 곳에서 일찍이 감지되었다 가장 비근한 예로 지난 4월 12일 시진핑 주석은 중국 광둥성 산업 시찰에서 한국 LG디스플레이 공장을 방문했다. 작금의 한·중 관계 상황에서 볼 때 이는 예상하지 못한 행보였다. 한국 기업, 한국 산업, 더 나아가 한국에 대한 그의 관심을 표명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 정부의 대만해협과 관련된 발언이 연속 공개되면서 중국의 우리에 대한 불만은 커져만 갔다. 중국의 불만과 경고 메시지는 여러 경로를 통해 우리에게 전달되고 있다. 5월 22일 류진쑹 중국 외교부 아주사 사장(아시아 담당 국장)의 방문에서도 중국 측의 경고가 전해졌다. 그리고 5월 26일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의 언론 방송 참여에서도 이와 유사한 수준의 불만이 제기되었다.

일부 국내 언론에 따르면 류 아주사 사장은 한·중 관계와 관련해 ‘4개의 불가’ 방침을 표명하면서 우리나라의 대만 문제와 한·미·일 공조 강화에 대해 극도에 달한 중국의 불만을 표명했다고 전해졌다. 소위 ‘4개의 불가’ 방침 내용은 '(대만 문제 등) 중국의 ‘핵심 이익’을 건드리면 한·중 협력 불가, 한국이 친미·친일 일변도 외교 정책으로 나아갈 경우 협력 불가, 현재와 같은 한·중 관계 긴장 지속 시 고위급 교류(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방한) 불가. 악화한 정세 아래 한국의 대북 주도권 행사 불가 등'으로 알려졌다.

싱하이밍 대사는 한국이 중국의 핵심 이익과 핵심 우려를 존중할 것을 주문했다. 그렇지 않으면 이미 좋지 않은 한·중 관계가 더 나빠질 수 있다는 것이 핵심 요지였다. 이런 중국의 경고성 메시지 배경에는 한·일 관계 개선과 한·미·일 공조 강화가 결정적으로 작용한 것이다. 이런 상황 변화에 중국이 불안하고 초조해지고 조바심을 느낄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더욱이 IPEF의 (중국에 대한) 공급망 협정이 체결되면서 이런 중국의 불안감을 더욱 자극했기 때문이다.

중국이 이렇게 우리에게 파상공세로 나오면서 우리에게는 또 하나의 기회가 왔다. 중국에 대한 우리의 외교원칙을 공식화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 할 수 있겠다. 중국이 자국의 핵심 이익과 핵심 우려를 존중할 것을 요구하면서 정치적 압박 공세를 격하게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우리 정부의 대응이 필요하다. 우리의 대응은 우리의 원칙을 존중할 것을 주문하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우선, 우리의 바다와 하늘에 대한 무단 진입 자제를 촉구하면서 우리의 주권과 영토주권이라 할 수 있는 우리의 핵심 이익을 존중하는 것을 제1의 원칙으로 내세워야 한다. 두 번째로 우리의 국가 체제와 정체성에 대한 존중 요구다. 세 번째로 우리가 선택하고 견지하는 가치와 이념에 대한 존중이다.

네 번째로 한반도를 포함한 동아시아 지역 평화와 안정 수호에 기여하는 것을 존중하는 것이다. 중국은 한·중 수교 공동선언을 근거로 우리에게 ‘하나의 중국’을 존중할 것을 요구한다. 우리 역시 공동선언에서 약속한 ‘한반도 정세 완화와 안정, 그리고 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에 기여할 것으로 확신한다’는 정신을 준수할 것을 요구해야 한다. 즉, 대만해협 지역을 포함한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에 중국의 책임과 의무를 상기시켜야 한다. 마지막으로 한반도의 평화 통일에 대한 우리의 원칙을 존중하는 것이다. 공동선언 5조는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는 한반도가 조기에 평화적으로 통일되는 것이 한민족의 염원임을 존중하고, 한반도가 한민족에 의해 평화적으로 통일되는 것을 지지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따라서 한반도의 평화 통일에 대한 중국의 기여와 지지를 다시금 요구하는 것을 원칙에 포함시킬 필요가 있다.


주재우 필자 주요 이력

▷베이징대 국제정치학 박사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중국연구센터장 ▷브루킹스연구소 방문연구원 ▷미국 조지아공과대학 Sam Nunn School of International Affairs Visiting Associate Profess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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