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글로벌 시대 '국제학교'를 말하다... "다양성이 조화를 이루는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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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훈 인턴 기자
입력 2023-05-15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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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남주 덜위치 서울영국학교 이사

[조남주 덜위치 칼리지 서울영국학교 이사/ 주한미상공회의소 여성위원장]




"아이들에게 학교란 자신의 가능성을 자유로이 펼칠 수 있어야하는 공간이예요. 피부색도, 머리색도, 눈동자의 색도 중요하지 않죠. 자신의 개성을 인정받고 다양성이 조화를 이루는 학교, 제가 만들고 싶은 학교는 그런 곳이예요."
 
고풍스런 붉은 벽돌 담장 안으로 소설 속 마법학교가 현대에 피어난듯한 풍경이 펼쳐진다. 서울 서초구 반포동 소재 '덜위치 칼리지 서울영국학교', 이 곳에서 조남주 마케팅 담당 이사를 만났다. 조 이사의 넉넉한 미소 너머로, 삼삼오오 모여 재잘대는 아이들이 눈에 띄었다. 전직 월스트리트 저널 기자로 미국상공회의소의 여성위원장을 맡고 있는 그녀는 어떻게 이곳의 명문 국제학교에서 아이들을 위해 봉사하기 시작한 것일까. 그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한국어를 못하는 아이
 
“너는 왜 한국말을 못해?”
 
조남주 이사의 기억 속에 이 한마디가 새겨져 있다. 외교관인 아버지를 따라 주로 해외에서 지내왔던 조 이사는 초등학교 3학년이 되던 해에 한국에 들어왔다. 겉으로 보았을 때 그녀는 다른 아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문제는 오랜 외국생활로 인해 한국의 언어와 문화가 그녀에게 익숙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어렸을 적 해외에서 지내다가 한국에 들어와서 일반학교를 다녔는데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아버지가 외교관이셨던 만큼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은 분명했는데도요. 다른 것보다도 한국어가 서툴렀으니까요. 너는 한국인인데 왜 한국말을 제대로 못하냐는 말도 들었죠."
 
조국에서 느끼는 어색함은 어린 그녀를 한껏 위축시켰다고 조 이사는 회상했다. 한국에서 적응의 어려움을 느끼던 그녀는 대사직을 맡게 된 아버지를 따라 다시 한 번 이주를 하게 되었다. 다음 국가는 칠레였다.
 
"칠레에선 국제학교를 다녔어요. 아이러니하게도, 그곳에서 저를 되찾을 수 있었죠. '다르다'는 사실이 그곳에선 문제가 되지 않았거든요."
 
조 이사는 어린시절부터 다양한 문화권을 오가던 ‘TCK(Third Culture Kid, 제 3문화권 아동)’로서, 매번 새로운 문화에 적응하고 떠나고를 반복해야만 했다. 그런 그녀가 다른 문화에 녹아들고 자연스레 가능성을 꽃피울 수 있게 해준 공간이 바로 국제학교였다. 현재 조 이사가 덜위치 국제학교의 이사로서 노력을 아끼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이들은 환경이 급격히 바뀌면 위축되곤 하거든요. 저도 그랬구요. 그렇기에 덜위치 칼리지에서 제가 맡은 역할의 중요성을 더욱 절감하죠. 국제학교가 활성화 돼 어린 시절의 저와 같은 입장의 아이들이 더 많은 선택지를 갖게 되었으면 해요."
 
자신처럼 낯선 문화에 적응하기 어려워하는 아이들을 위해 기꺼이 덜위치의 이사직을 맡았다. 그렇게 ‘한국어를 못하던 아이’가 자라 ‘한국어를 못하는 아이들’을 이끄는 스승이 된 것이었다.
 

국제학교, 글로벌 서울로
 
"새로운 문화에 아이들이 적응하도록 돕는 것 외에도 국제학교는 중요한 기능을 해요. 글로벌 교육 인프라로서 해외 상사나 외교관 등 가족 단위의 해외 이주 시 한국을 선택할 유인을 제공하는 것이죠."

세계는 이미 글로벌 시대에 도달했다. 과거 구호와도 같던 '글로벌'이라는 외침이 현실로 찾아온 것이다. 이와 관련해 지난 1월 오세훈 서울시장은 "서울을 글로벌 톱(TOP) 5 도시로 키우겠다"는 목표를 강조하며 관련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정책적 청사진을 제시한 바 있다. 그런 바탕에서 국제학교만의 역할이 있다고 조 이사는 설명한다.
 
"국제학교는 교육 문제로 한국에 정착하길 망설이는 해외 학부모들을 설득할 수 있어요. 가족 단위 해외 이주에서 흔히들 고민하는 게 ‘아이들을 교육시키기에 괜찮은 환경인가’거든요. 이 점만큼은 문화를 가리지 않아요."
 
다양한 문화권의 가족들이 한국을 찾고 정착한다. 그들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아이들의 교육이다.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라는 말이 있듯, 그곳이 아이를 키우기에 좋은 환경인지를 가늠해보는 것이다. 새로운 문화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서 글로벌 교육기관이 갖춰져야 한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이 땅에 있는 아이들, 혹은 이 땅에 찾아올 아이들 중 누군가는 전혀 다른 문화 환경에 쉽사리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할 수도 있어요. 그런 아이들에게 ‘국제학교’라는 선택지를 줄 수 있어야 하는 거죠.”
 
국제학교는 제3 문화권 아이들이 한국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고 적응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수 있다. 한국계 교포와 같이 국제화된 한국인들도 마찬가지. 글로벌 시대에 필수적인 교육 인프라인 셈이다.
 
"국제학교가 한국의 세계화에 이바지한다고 하면 조금 거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최소한 인식 제고에 긍정적인 기여를 한다고 생각해요. 한국을 소개하고 홍보하는 역할을 한다고 할까요? 덜위치를 거쳐간 아이들과 학부모들이 먼저 나서 한국을 주변에 알리기도 하죠."
 
한국에 정착한 제 3 문화권 아이들의 적응과 성장을 돕고 그 아이들이 다시 한국을 세계에 알리는 역할을 하는 선순환 구조에 대한 이야기다. 그처럼 글로벌 사회에 발맞춘 변화를 이끌어가기 위해 국제학교를 활성화 시킬 필요가 있다고 조 이사는 강조했다.
 
 

[덜위치 서울영국학교]



다르다는 것은 특별하다는 것
 
그렇다면 조 이사가 아이들의 교육에 있어 가장 중요시하는 가치는 무엇일까?
 
"아이들에게 알려줘야할 가치는 많죠. 다양성, 봉사정신, 친절함... 우리는 그 중에서도 다양성과 지속 가능성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국제학교는 기본적으로 다양한 국적과 피부색, 개성을 가진 아이들이 한데 어우러지는 환경이다. 이곳에서 ‘다르다’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같은 가치를 조 이사 역시 어린 시절 국제학교에서 자란 경험에서 배워왔다. 자신이 배운 것을 가꾸어 아이들에게 전해주는 것이다.
 
“다르다는 건 독특한(Unique) 특성이예요. 나쁜 게 아니라 특별한(Special) 거죠. 학교에서 그 사실을 많이 가르치려 노력하는 편이예요. 가령 저는 마케팅을 담당하는 사람으로서, 연사를 초청하거나 행사를 준비할 때 따로 제약을 두지 않고 있어요. 특정한 성별, 인종, 국적을 가리지 않는거죠. 아이들이 다양한 인물과 활동을 접하고 자연스럽게 ‘다양성’의 가치를 배울 수 있도록 말이예요.”
 
다양한 경험을 통해 풍부한 인식을 갖출 수 있도록 하는 것, 그것이 조 이사가 아이들의 교육에서 가장 신경을 쓰는 부분이다. 아이들에게 적절한 방향을 알려주면 풀이 자라고 꽃이 피듯 자연스레 성장해나간다고 믿기 때문이다.
 
“방향이 제시되면, 아이들은 주도적으로 학습해요. 스스로 위원회를 구성하거나 아이디어를 내기도 하죠. 예를 들어 덜위치에선 최근 ESG의 중요성을 배운 아이들이 위원회를 구성해 학교에 건의를 냈어요. 매주 월요일 마다 채식을 권장하는 캠페인을 벌이는 거죠. 환경을 위해 미세플라스틱인 ‘글리터(반짝이)’를 사용하지 않는 프로젝트도 함께 시작했어요. 어른들이 시킨 게 아니예요. 아이들에게 자유로운 환경을 제공하면, 어른들의 상상 이상으로 주도적인 창의력을 발휘하죠.”
 
아이들의 가능성을 북돋고 스스로 가치를 추구할 수 있도록 돕는 일. 그것이 조 이사가 생각하는 올바른 교육이다. 그녀는 지금 "다른 학교와의 교류를 위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덜위치 칼리지와 근접한 계성 초등학교와 교류회를 가질 예정이다. “덜위치 안에서 그치지 않고 다른 학교의 아이들과 소통하고 교류하며 긍정적인 가치가 퍼져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조 이사는 전했다.
 
 
학교, 그리고 사회

 
교육은 세계로 나아간다. 교실 안팎의 배움이 학생들을 통해 사회로 뻗어나가는 것이다. 올바른 교육이 올바른 사회를 만든다고 그녀는 믿는다.
그렇기에 사회의 과제는 결국 교육의 과제가 된다. 현재 한국은 환경, 인권, 글로벌 경쟁력 등 다양한 과제들을 마주하고 있다. 그 속에서 조 이사는 ‘올바른 방향 제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우리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해요. 어떤 가치를 추구해나갈지를 말이예요. 방향을 정하면 힘은 수월하게 뻗어나가니까요. 아이들이 스스로 가치를 추구하고 작은 사회를 만들어가는 것처럼 말이죠."
 
방향이 제시되자 아이들 스스로 캠페인을 벌이는 등 주요 가치 실현을 위해 노력했듯 사회 역시 올바른 방향이 제시된다면 그 바탕에서 기존의 구조들을 쇄신해 나갈 수 있다. 조 이사는 아이들에게 배운 지혜를 다시 사회에 전했다.
 
그녀는 최근 국내에 존재하는 고착화된 인식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기도 하다. 자신과 다른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배척하는 기조가 이 사회에 아직 잔류해있기 때문이다.
 
“여성, 사회적 약자, 소수자에 대한 차별적인 인식이 아직도 존재하고 있어요. 아이들을 교육하는 입장에서 가장 주의하는 부분이기도 해요. ‘다르다는 것은 특별하다는 것’이란 사실을 배운 아이들이 사회로 나가 ‘다른 것은 나쁘다’는 인식을 바꿔나가는데 일조했으면 하거든요.”
 
서로를 배려하고 있는 그대로 포용해주는 사회, 공감을 바탕으로 지속적인 안녕을 만들어갈 수 있는 사회. 교육철학에서부터 그녀의 바람은 자연스럽게 묻어나왔다.
 
“그 과정에서 중요한 건 말이 아니라 ‘스토리텔링’이라고 생각해요. 결국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 공허한 말이 아닌 뼈 있는 이야기니까요. 직접 만나서 경험하고, 자신과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고 대화하는 과정에서 진정한 배움이 펼쳐져요. 저는 최대한 많은 아이들에게 그 기회를 주고 싶어요. 나아가 이 사회의 어른들에게도 마찬가지로요.”
 

(김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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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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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이들 교육에 있어 ‘다양성과 지속 가능성’이라는 가치의 중요성에 공감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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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잘.. 읽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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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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