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노동자의 '희망'없는 어제와 오늘 ..."이 그림 덕에 가족들에게 부끄럽지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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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윤서 인턴 기자
입력 2023-01-26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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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상에서 내가 만난 사람들' 전시회에서 만난 이두수 작가

[북촌전시실]


우리 전통 음식과 기념품 가게들이 즐비하게 늘어서있는 서울 종로구 소격동을 걷다보니 길목 끝자락에 정독도서관이 보였다. 삼청동 언덕으로 올라가기전 오른쪽으로 살짝 발길을 돌려 백보 정도 걸으니 북촌전시실이 보였다. 아담한 크기의 전시실이지만 북촌한옥마을로 향하는 대로의 한복판에 위치해서 인지 지나가던 외국인 관광객들도 가끔 걸음을 멈추며 안쪽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이 곳 전시실에는 지난 20일 부터 건설현장의 일용직 노동자로 일하고 있는 이두수 작가의 특별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일상에서 내가 만난 사람들'이라는 주제로 오는 30일까지 열리는 이번 개인전에서 작가는 건설 현장으로  출퇴근 하면서 마주하는 노동자들의 모습을 독특한 화풍으로 담아냈다. 청소 노동자, 공사장 노동자, 식당 종업원 등의 모습은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익숙한 일상이다. 하지만 이들의 모습을 화폭으로 보는 것은 특별한 경험으로 다가온다.  

 

[그림 '정리정돈']


이두수 작가를 전시회장에서 만났다. 그는 아주경제에 지난 해 부터 '이두수의 절차탁마'라는 문패의 브랜드 칼럼을 매달 기고하고 있다. 이 작가가 필자에게 가장 자신있게 소개한 그림은 '정리정돈'이다. "이 작품을 조금만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면, 그 안에서 성리학과 유학, 그리고 불교의 이치를 볼 수 있어요."

이러한 노동자들의 모습을 그리게 된 계기에 대해 묻자 그는 "노동자들은 대체로 자신의 일을 자랑스러워하지 않지요. 그 분들께 희망을 주고 싶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라며 운을 떼었다.

 

[이두수 작가의 모습]


50대 중반의 이 작가는 강원도 홍천군의 한 시골 마을에서 성장했다. "서울에서 대학생활을 하면서 사회변혁을 꿈꾸게 되었어요. 사회적 격변기 그 중심에 있다보니 내 힘으로 사회를 바꿀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한 후 일본 봉사단체에서 근무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그 때의 경험이 그림을 희망 전달의 매개체로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된 것 같기도 하네요. 2011년 동일본 대지진으로 큰 피해를 입은 한 마을의 아이들을 만난적이 있습니다. 삶의 터전을 모두 잃은 아이들이 폐타이어를 북으로 만들어 공연을 하는 것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었습니다. 작은 도전도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희망을 갖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 작가는 "대다수의 노동자들은 '희망'없는 어제와 같은 오늘을 살아갑니다."라며 노동자들이 이러한 삶의 자세를 갖게 된 근본적인 원인은 인문학적 경험의 부재라고 본다고 말했다. "이들은 자신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가 없어요. 그래서 낮은 자존감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거에요." 

이두수 작가는 그림을 이러한 굴레를 멈추게 하는 도구로 보았다. "제가 현장 노동자들이 식사하는 식당에 전시회를 여는 것을 보고 다들 처음에는 비웃더라고요. 그런데 전시된 그림들 속에 아름답게 그려진 자신의 일하는 모습을 보더니 관심을 갖는 분들이 하나 둘 생겼습니다. 그러니까 그 분들은 그렇게 객관적으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는 경험은 난생 처음이었던거죠. 나중에는 '이 그림 덕에 가족들에게 자신이 하는 일이 더 이상 부끄럽지 않다'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이두수 작가는 이것이 바로 인문학의 힘이라고 강조했다. "본인이 하는 일이 가치 있고 사회에 보탬이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하시니까, 자신감과 희망도 가지기 시작하시더라고요." 

"건설 노동 현장에서 이뤄지는 안전 교육 또한 같은 맥락이라고 봐요. '안전은 무엇인가?', '인간이 안전을 보장받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런 근본적인 질문에 대해 노동자들이 스스로 생각해 볼 수 있는 인문학적 경험이 필요합니다. 그런 경험이야말로 노동자들이 주체적으로 현장의 안전과 자기자신의 안전을 지킬 동기부여를 주는것이죠. 그 분들은 지금까지 그런 동기부여를 가질 기회와 경험이 없었을 뿐이에요." 

이두수 작가는 인문학적 경험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보통 이런 노동을 하시는 분들이 사회질서를 안 지키는 사람들이라고 많이들 생각하시잖아요. 그런데 이 분들은 그런 것에 대한 교육 자체를 받은 적이 없거든요. 이 분들께 자기 자신을 돌보고 주체적인 삶을 살수 있는 계기와 교육의 기회를 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전시회 현장 모습]


이 작가께 그림을 그리면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일화를 여쭤보았다. "공정 현장에서 만났던 어떤 노동자 한 분이 기억이 나요. 일반적으로 노동자들이 공정 일을 할 때 굉장히 예민하거든요. 그래서 공정 작업을 하다가 사소한 일로 서로 짜증을 내고 이게 싸움으로 번지는 경우가 많아요."

"하루는 제 옆에서 일하시는 노동자분께 저를 그림 그리는 사람이라고 소개했거든요. 그 분은 당연히 냉랭한 표정으로 관심 없어하셨습니다."

"제가 나중에 그 분 모습을 그려서 '제가 그린겁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면서 그림을 보여드렸어요. 정말 말도 걸기 어려울 정도로 시종일관 차가운 표정이었던 분이 '나를 이렇게 그려줬냐'며 그렇게 환하게 웃더라고요. 그렇게 환하게 웃으시면서 그림을 사고싶다고 하시던 그 분 모습은 제가 잊을 수 없는 얼굴 중 하나네요."

이두수 작가와의 인터뷰를 통해 한 가지 잊고 지냈던 사실이 문득 스쳤다. 세상에 웃을 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일반적인 전시회 그림들과는 사뭇 다른 이두수 작가의 그림을 뒤로하고 전시실을 나섰다. 북촌에 내리는 눈처럼 하얀 새해가 이제 막 시작됐다. 새해에는 희망을 전하는 사람들도 희망을 품게 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길 기대해본다. 


임윤서 인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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