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 양극화] 엄격해지는 해외 ESG 규제···대책 미흡 국내 기업들 "수출길 끊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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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구변경 기자
입력 2023-05-10 0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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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獨, 기업에 환경·윤리 저해 요소 실사 의무 부여

  • 최종 유통까지 문제 관리해 수출 타격 막아야

  • 'RE100' 요구 목소리에 재생에너지 비용도 급증

  • 정부, 가격 안정 위한 생산시설 확충 서둘러야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이 재계의 화두를 넘어 실질적인 규제로 작용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올해 독일을 시작으로 내년 유럽 전역에 시행될 유럽연합(EU) 공급망 실사법에 대해 국내 기업들의 대응 및 준비가 미흡한 탓이다. 국내 기업이 공급망 내 환경문제나 인권침해 여부 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면 EU 수출길이 막힐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아울러 재생에너지 사용도 대기업에서는 문제로 꼽힌다. 특히 재생에너지 가격이 크게 오르고 있는 상황에서 그 사용을 규제하는 국가나 파트너 기업이 늘어나고 있어 비용이 급증할 수 있다는 우려다.

◆EU 공급망 실사 의무 부여···"ESG 못하면 수출길 끊어진다"

올해 초부터 독일은 공급망 실사법(Supply Chain Due Diligence Act)을 정식 발효해 기업에 대해 그들의 공급망에서 환경·인권·윤리를 저해하는 요소가 무엇인지 점검하도록 하는 실사 의무를 부여했다.

기업은 사내 실사 규정을 마련해 '원재료 확보→상품·서비스 제작→최종 유통'에 이르는 공급망을 점검해야 한다. 기업은 실사를 통해 본사와 자회사, 하청업체에서 발생하는 환경·인권·윤리적 문제를 파악하고, 그것을 완화하는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독일에 진출한 해외 기업은 물론 독일 기업의 공급망에 속한 모든 회사가 공급망 실사법의 적용을 받게 된다. 이들이 만약 법을 위반하면 800만 유로(약 110억원) 혹은 연매출(글로벌 기준)의 최대 2%를 벌금이 부과될 수 있다. 피해자가 있을 경우 해당 기업에 합당한 보상을 요구할 수도 있다.

독일뿐 아니라 EU 실사법 또한 대기업은 내년부터, 중견기업은 2026년부터 적용될 예정이다. 대상 기업은 역내 기업만 1만2800개, 역외까지 총 1만6800개로 공급망 전반에 걸쳐 국내 기업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실사법 도입 시 실사 의무가 있는 수출 기업은 행정업무와 비용이 늘고, 정보공개와 책임 범위가 넓어지면서 법적 소송 또한 늘어날 것으로 관측된다. 특히 반도체, 자동차, 철강업과 같이 원재료, 가공, 세척 등 제품 공정이 복잡하고, 여러 협력업체가 엮인 업종에서는 대응 준비가 더욱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같이 엄중한 규제가 발생했으나 국내 기업의 대응은 미흡한 것으로 파악된다. 대비를 서둘러야 한다는 문제 인식이 없지 않으나 정작 뚜렷한 대응책을 펼쳐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 2월 국내기업 300개사를 대상으로 '2023년 ESG 주요 현안과 정책과제' 조사를 통해 올해 가장 큰 ESG현안을 묻는 질문에 전체의 40.3%가 'EU의 공급망 ESG 실사 대응'이라고 응답했다.

동시에 공급망 실사법에 대한 기업들의 대응수준은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단기적인 대응수준을 묻는 질문에 원청기업은 48.2%, 협력업체는 47%가 '별다른 대응 조치 없다'고 답했다.

장기적인 대응계획으로는 △ESG경영 진단 평가 컨설팅(22%) △ESG 임직원 교육(22%) △ESG경영 위한 체계 구축(20.7%) △국내외 ESG 관련 인증취득(4.3%) △ESG 외부 전문가 영입(3.7%) 등 구체적이지 않은 대응안이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대한상의가 지난해 7월 국내 수출 기업 300개사를 대상으로 ESG 실사 대응 현황을 조사한 결과, 52.2%가 'ESG 경영이 미흡해 향후 EU 등 외국의 원청 기업과 맺은 계약이나 수주가 파기될 가능성이 높다'고 답변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이같이 ESG 경영을 하기가 어려운 원인에 대해서는 기업의 58.3%가 '비용부담'을, 53%가 '내부 전문인력 부족'을 꼽았다. △경영진 관심 부족(16.3%) △현업부서의 관심 및 협조 부족(11%) △실천 인센티브 부족(9%) 등이 뒤를 이었다.

특히 최근 해외 사업장이 있는 수출 기업들의 경우 고민은 더욱 깊다. 아프리카, 서남아시아, 동남아시아 등 개발도상국에서는 현지 인권 및 환경 수준과 실사법에서 요구하는 수준 간 괴리감이 커 관리가 어렵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업종별 해외 공급망 이니셔티브 가입과 전사 차원의 리스크 관리가 필요하다고 조언하고 있다. 비슷한 고민을 공유하는 업종별로 공급망 이니셔티브에 가입해 정보를 공유하고 공동 대응할 필요가 있다는 진단이다. 아울러 전사적 차원에서 협력 업체를 대상으로 ESG 수준을 확인하고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조언이 나온다.

국내기업 ESG 관련 업무 관계자는 "공급망 실사법 등 ESG 관련 규제가 수출 장벽으로 탈바꿈할 가능성이 높아 리스크 관리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며 "단순히 생산뿐 아니라 원재료 확보와 최종 유통 등 비즈니스를 하는 모든 과정에서 인권과 환경 문제에 대한 관리가 중요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재생에너지 사용 요구 점증···'금값'된 재생에너지 추가 공급 필요

전력 사용이 많은 반도체·디스플레이·철강 대기업에서는 글로벌 전반적인 재생에너지 사용 문제에 큰 영향을 받고 있다. 특히 대기업들 사이에서는 RE100 추진에 대해서 고객사의 요구가 크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RE100은 기업의 사용전력 100%를 2050년까지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로 사용하겠다고 선언하는 자발적 캠페인이다. 현재 애플·구글·BMW 등 글로벌 기업이 참여하고 있으며, 국내에서도 삼성전자를 포함해 다수 대기업이 동참했다.

다만 재생에너지 가격이 기존 에너지 가격보다 높아 비용이 더 많이 소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재생에너지 공급 수단 중 하나인 REC(신재생에너지 공급 인증서) 가격은 2년간 2배 이상 상승했다. 지난달 월평균 1REC(1000Kwh) 가격은 7만2129원으로 집계됐다. 2021년 4월 3만3842원 대비 113.13% 급등했다.

향후 글로벌 파트너들이 RE100 등 재생에너지 사용을 더욱 압박할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더 많은 기업이 재생에너지를 찾게 돼 가격이 더 올라갈 수밖에 없다. 결국 국내 대부분 기업이 큰 비용 부담을 떠안게 되는 구조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내 재생에너지 발전량을 획기적으로 제고시켜야 하나 쉽지 않은 상황이다. 실제 한국은 국토에 산간지형이 많고 인구 밀도가 높아 태양광 발전 등을 대규로모 진행하기에 불리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국내 바다는 평균 풍속이 초속 7m 수준이며 풍향(風向)도 일정하지 못한 것으로 파악된다. 이는 해상풍력단지가 대규모로 건설되고 있는 유럽 북해 평균 풍속이 초속 11m에 달하고 풍향이 일정한 것과 차이가 난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2021년 기준 7.2%였다. 독일(46.7%), 영국(44.9%)이나 일본(21.6%), 미국(20.7%)보다 한참 낮은 수준으로 파악된다.

효율이 부족한 태양광·해상풍력 단지도 쉽게 늘리기가 어렵다. 이 같은 재생에너지 생산시설 대부분이 기피 시설이라 근처 주민의 반대를 불러일으키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산업권에서는 재생에너지 생산이 장기적으로 국가의 직접적 경쟁력이 된다고 강조하고 있으나 정치적으로 어려움이 적지 않다.

재계 관계자는 "재생에너지 가격 안정을 위해 발전량을 늘리는 것이 필수적"이라며 "정부가 국민들에게 재생에너지 확보가 곧 국가의 존립이 걸린 사안임을 알리고 설득해나가면서 생산시설 설립을 흔들림 없이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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