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회창·박지원·안희정에 송영길까지…정치인들, 검찰 자진출석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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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한지 기자
입력 2023-05-02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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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영길 "정치적 기획수사...나를 구속시켜달라"

  • 검찰 안팎..."부정여론 의식" "공범과 입장 통일"

더불어민주당 '2021년 전당대회 돈 봉투 의혹'과 관련해 금품 살포의 최종 수혜자로 지목된 송영길 전 대표가 2일 오전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2021년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 돈 봉투 의혹'과 관련해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가 검찰에 자진 출석해 "주위 사람을 괴롭히지 말고 자신을 구속하고 소환해 달라"고 말했다. 검찰은 절차대로 진행하겠다는 기존 방침대로 송 전 대표를 돌려보냈다. 소환 조사가 무산될 것을 충분히 인지할 수 있었는데도 송 전 대표가 자진 출두를 강행한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검찰 안팎에서는 소환 조사를 앞두고 공공연히 본인 입장을 밝힘으로써 송 전 대표가 주변인들과 입장을 통일시킬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송영길 자진 출두했지만 조사 거부···檢 "절차대로 진행"
서울중앙지검은 이날 오후 9시 59분께 자진 출두한 송 전 대표 측 출석을 거부했다. 검찰 관계자는 "피조사자가 일방적으로 '출석하겠다'고 발표하는 것은 다른 일반 국민들에게 동일하게 적용돼야 할 형사 절차와 맞지 않는다"며 "수사팀 일정에 따라 조사는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출석을 거부당한 송 전 대표는 취재진에게 검찰이 먼지털기식 수사로 주변 사람들을 인격살인하고 있다는 취지의 주장을 폈다. 송 전 대표는 "주위 사람을 괴롭히지 말고 저 송영길을 구속해 달라"며 "검찰은 먼지털기식 별건 수사를 하고 주변 사람을 괴롭히고 인격살인하고 있다"고 강도 높게 발언했다.

이어 "범죄행위가 있다면 당연히 수사를 받아야 한다"면서도 "그러나 증거에 기초한 수사를 해야 하는데 사람들을 마구잡이로 불러서 별건으로 수사하고 윽박질러서 진술을 강요하는 전근대적 수사는 해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나아가 송 전 대표는 이 사건 수사가 '정치적 기획수사'라고 주장했다. 송 전 대표는 "이 사건은 당연히 공안부에 배당돼 수사를 해야 한다. 그런데 장관이 직접 하명수사를 하는 등 정치적 기획수사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모든 책임을 지겠다. 주변 사람을 괴롭히지 말고 송영길을 구속해 달라"고 재차 당부했다.
 
부정 여론 잠재우나···"공범들과 입 맞출 가능성"
검찰이 소환 요구를 하지 않았는데 자진 출두한 정치인은 비단 송 전 대표뿐만이 아니다.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는 2003년 불법 대선자금 의혹과 관련해 핵심 측근들이 구속되자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다"며 검찰에 자진 출석해 조사를 받았다. 박지원 전 민주통합당 원내대표(현 민주당 고문)는 2012년 저축은행 비리 사건과 관련해 검찰에 기습 출두했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도 2018년 '비서 성폭행' 의혹이 불거지자 잠적 나흘 만에 검찰에 스스로 나와 조사를 받았다.
 
안 전 지사 사건 수사팀 관계자는 본지와 통화에서 "당시 안 전 지사가 왜 그러는지 도대체 이해할 수 없었다"며 "주변인 조사와 증거 확보를 한 다음에 핵심 피의자를 출석시키는 게 통상적인 수사 패턴이다. 법조인은 경직된 사고를 하는 반면 정치인은 정치적인 수를 쓰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검찰 안팎에서는 정치인들이 검찰에 자진 출두하는 배경을 크게 두 가지로 분석한다. 하나는 소위 '여론전'이다. 무죄 추정 원칙이 지켜져야 하지만 공인인 정치인은 피의사실이 언론을 통해 다수 보도된다. 선제적으로 검찰에 출석해 부정적 여론이 확산하는 것을 하루빨리 잠재우기 위한 조치라는 것이다. 이날 송 전 대표도 6쪽짜리 입장문에서 '정치적 기획수사'라는 단어를 거듭 사용했다. 서초동의 A변호사는 "정치권에서 돈 봉투 의혹을 어젠다로 정치적 공세를 펴는 상황에서 자진 출두로 내년 총선에 미치는 파장을 최소화하려는 전략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주변 사람들이 차례로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정치인 신분을 활용해 공공연히 입장 발표를 함으로써 공범 등과 입을 맞출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검사 출신인 김종민 변호사는 "수사 준비 중에 제일 중요한 것이 압수물을 분석한 뒤 무엇을 질문할 것인지 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준비도 안 된 상태에서 조사해 달라고 하면 조사할 수 있겠냐"고 했다. 그러면서 "오히려 수사에 도전하는 행위로 해석될 수 있다"며 "공범들에 대해 일종의 시그널을 주는 것일 수도 있다. '나는 이렇게 얘기할 거야'라는 식으로 일종의 방향을 제시하는 행위가 될 수 있다. 이것도 일종의 증거 인멸"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2부(부장검사 김영철)는 전날 송 전 대표 캠프에서 근무했던 지역본부장과 상황실장 등 3명의 주거지를 압수수색하는 등 강제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검찰은 압수수색 영장에 송 전 대표를 돈 봉투 살포 혐의의 공범으로 적시했다. 검찰은 증거 확보와 공여자 등에 대한 조사를 마무리한 뒤 자금을 수수한 의원들을 특정하고 송 전 대표의 지시·개입 여부를 최종 확인하는 등 수사망을 좁혀가겠다는 구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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