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변호사 80% 이상 찬성"…'제2의 신당역 사건' 막을 조건부 석방제 도입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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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가언 기자
입력 2023-05-01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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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신당역 스토킹 살인 사건'이 발생한 후 사건 발생 현장인 신당역 여자 화장실 앞에 피해자를 추모하는 공간이 마련됐다.[사진=남가언 기자]


지난해 9월 '신당역 스토킹 살인 사건'이 발생해 온 사회를 충격에 빠뜨렸다. 특히 당시 피해자가 어렵사리 용기를 내 가해자를 고소했지만 법원이 가해자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를 기각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왜 구속하지 않아 범죄를 예방하지 못했느냐"며 논란이 일었다. 

신당역 사건을 기점으로 현행 구속제도의 한계에 대한 지적이 쏟아지자 국회는 새 대안으로 떠오른 '조건부 석방제' 조항을 포함한 스토킹범죄처벌법 개정안을 잇따라 발의했다. 법조계에서도 조건부 석방제 도입을 찬성하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현행 구속제도, 구속·불구속 '일도양단식'"···국회, '조건부 석방제' 관련 개정안 발의

1일 법조계에 따르면 법원이 신당역 사건 이후 '구속제도 개선 방안'을 주제로 학술대회를 열고 전문가 의견을 듣는 등 조건부 석방제 도입을 적극 검토 중이다. 2021년 법원이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법원 내부 응답자 중 81.8%, 변호사 응답자 중 94.4%, 학계 응답자 중 86.7%가 조건부 석방제 도입 필요성에 대해 긍정한다고 답했는데 신당역 사건 이후 법원이 제도 도입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는 분위기다.

현행법은 '주거가 일정하지 않거나 도주와 증거 인멸 우려가 있을 때'를 구속 요건으로 삼는다. 신당역 사건은 고소 당시 가해자 주거가 일정했고 혐의도 순순히 인정했다. 법원으로서는 구속과 불구속이라는 선택지 중 하나만 택해야 했기 때문에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구속과 불구속이라는 일도양단식 결정에서 벗어나 피의자에게 방어권을 보장하면서도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국회에서는 조응천·박주민·권인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조건부 석방제 도입을 위한 형사소송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조건부 석방제는 범죄 혐의가 일정 수준 소명되지만 구속수사 필요성까지 인정되지 않을 때에는 전자장치부착 내지는 피해자 접근금지 등 조건을 붙여서 석방할 수 있는 제도다.  

미국, 독일, 프랑스 등 해외에서는 이미 조건부 석방제를 운영하고 있다. 미국은 '조건부 구속' 규정에 따라 피의자나 피고인을 개인 서약서 또는 무담보 출석 합의를 조건으로 재판 전에 석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피해자를 위협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될 때에는 이보다 피의자나 피고인의 기본권을 더 제한하는 조건을 붙일 수 있다. 

독일은 '구속영장 집행유예'를 규정해 피고인이 불구속 상태로 재판에 임할 수 있도록 하고 있고, 프랑스도 형사소송법에 조건부 구속과 관련된 사법통제 조건을 다양하게 정하고 있다.
 
"무죄추정 원칙·불구속 수사 원칙에 부합"···법조계, 환영 목소리

법안 발의 이후 법조계에서는 "조건부 석방제는 기존 양자택일 형태인 구속영장재판에 대해 보완성을 발휘하게 될 것"이라며 기대감을 내비쳤다. 조건부 석방 제도가 도입되면 피의자는 석방된 신분으로 효율적으로 변호인의 조력을 받아 방어권을 행사할 수 있고, 형사소송법상 무죄추정 원칙과 불구속 수사 원칙에도 부합한다는 취지다.

법조계는 또 조건부 석방제가 구속 이후 석방제도의 낮은 실효성도 보완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현재 구속에 대한 사후적 석방제도로는 △구속적부심 △보석 △구속취소 △구속영장 집행정지 등이 있지만 구속된 피의자나 피고인이 이를 통해 석방되기는 어려운 편이다. 법원으로서는 구속된 피의자를 이후 석방했을 때 국민들이 사법부에 대해 가지게 되는 불신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김정환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한국 형사소송법의 근간을 형성하는 무죄추정 원칙과 불구속수사 원칙을 실현하기 위해 조건부 석방제를 시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이를 도입한다면 형사정책적 관점이나 실체적 관점에서 구속 사유로 생각하는 범죄의 중대성, 재범의 위험성, 피해자에 대한 가해 우려 등 요소를 능동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검찰 등 일각에서는 "범죄 피해자 보호에 역행할 수 있고, 조건부 석방제는 영장재판 담당 판사의 재량권을 확대해 구속 기준이 자의적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에 대해 김유정 서울중앙지법 판사는 "구속영장 발부 또는 기각이라는 일도양단식 결정만 가능한 제도는 오히려 구속사유의 추상성을 더 강화시킬 수 있다"며 "중간적 형태의 조건부 석방이 가능한 제도의 선택지가 있을 때 석방 조건의 종류와 내용을 구체적으로 정해 놓고 명문화한다면 최종 결정에 편차가 줄어들 수 있다"고 반박했다.

이어 "조건부로 석방된 피의자가 조건을 이행하지 않거나 위반했을 때에는 법원이 검사의 청구 또는 직권으로 조건부 석방 결정을 취소하고 피의자를 구금하도록 결정할 수 있도록 한다면 '범죄 피해자 보호'라는 가치도 지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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