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살만의 '사우디 퍼스트'…감산 결정 배후엔 네옴시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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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주혜 기자
입력 2023-04-05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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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가프로젝트 천문학적 비용 위해선 고유가 필수

  • '비전 2030에 집중'…외교 다각화 노력

 


"유가가 배럴당 50달러 아래로 떨어질 수 있으며, 이 경우 그의 막대한 지출 계획이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경제 분석에 빈 살만 왕세자가 깜짝 놀랐다고 사우디 관리들은 입을 모았다." (월스트리트저널) 

석유수출국기구 플러스(OPEC+)의 깜짝 감산 결정은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사우디) 왕세자의 '사우디 퍼스트' 행보를 드러내는 단적인 사례다. 폐쇄된 국가 사우디를 관광과 엔터테인먼트 허브로 탈바꿈하고 글로벌 기업을 대거 유치하기 위해서라면, 미국의 반대를 무릅쓰고서라도 고유가 전략을 강력히 고수할 것이란 전망이다. 
 
기가프로젝트 천문학적 비용 위해선 고유가 필수 
OPEC+가 지난 2일(현지시간) 내달부터 연말까지 하루 116만 배럴(bpd:1일당 배럴) 규모의 자발적인 추가 감산에 나서기로 하자 글로벌 유가가 급등했다. 이는 지난해 10월 OPEC+회의에서 결정된 하루 200만 bpd 감산과는 별도로 진행된다. 그 중 사우디가 절반에 달하는 50만 bpd를 줄이기로 하며 감산에 앞장섰다. 세계 원유 거래량의 약 60%를 생산하는 OPEC+ 내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가 국제 유가에 미치는 영향은 어마어마하다.
 
이번 감산은 사우디가 자국의 이익, 특히 고유가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겠다는 강력한 신호를 보낸 것으로 풀이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번 감산 결정과 관련해 “빈 살만 왕세자가 자신의 왕국을 첨단으로 개조하는 데 필요한 자금을 지원하기 위해 미국을 제쳐두고 민족주의적 에너지 정책을 밀어붙였다”고 전했다.
 
'실권자' 빈 살만 왕세자는 국익을 최우선으로 둔 ‘사우디 퍼스트’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강대국 간 치열한 경쟁으로 안보 불확실성이 커지는 가운데 미국을 자국보다 우선했던 기존 입장을 서서히 폐기하는 모습이다. 
 
WSJ는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빈 살만 왕세자가 지난해 말 측근들에게 더 이상 미국을 기쁘게 하는 데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특히 빈 살만 왕세자는 사우디가 미국에 무언가를 주면, 미국은 그에 따른 대가를 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무조건적인 친미 행보를 고수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사우디 정부 관리들은 대규모 개발 프로젝트 비용을 위해서는 고유가를 방어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사우디가 이른바 ‘기가프로젝트’에 박차를 가하는 데 필요한 자금을 순조롭게 지원하려면 고유가가 필수라는 것이다. 해당 프로젝트에는 대규모 수상 호텔 등이 들어서는 벨기에 면적 크기의 홍해 리조트, 뉴욕시보다 33배나 큰 사막에 건설되는 5000억 달러(약 657조3000억원) 규모의 하이테크 도시 네옴시티 등이 포함된다.
 
지난 2015년 부친인 살만 빈 압둘아지즈 국왕이 왕위에 오른 뒤 빈 살만 왕세자는 아랍에미리트(UAE)와 카타르 등이 글로벌 영향력 확대를 위해 펼친 경제 모델을 들여다봤다. 그리고 석유 의존도에서 탈피하고 경제를 다각화하기 위해 관광 및 엔터테인먼트 등의 산업 부흥을 모색하는 비전 2030을 수립했다.

지난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에 도달하자 사우디는 프로젝트 추진에 속도를 냈다. 2014년부터 시작된 유가 급락으로 8년 연속 재정 적자를 기록한 사우디는 지난해 유가 상승에 힘입어 280억 달러에 달하는 재정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문제는 기가프로젝트가 해외 투자 유치에는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는 점이다. 운용 자산 6500억 달러 규모의 사우디 정부 산하 국부펀드(Public Investment Fund:PIF)에서 프로젝트 자금이 주로 조달되는 만큼, 사우디의 부담은 상당하다고 할 수 있다. 
 
사우디 경제 고문들은 기가프로젝트들에 막대한 자금을 지원하기 위해서는 향후 5년간 고유가가 지속돼야 한다고 경고했다. 지난 10월 감산 발표 전 사우디 정부 관료들은 정부 재정을 위해서는 유가(브렌트유 기준)가 배럴당 90~100달러를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을 펼쳤다.
 
약 4500억 달러의 외환보유고와 함께 세계 제2위의 석유 매장량을 자랑하는 사우디의 재정이 고갈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러나 빈 살만 왕세자는 압둘아지즈 빈 살만 에너지부 장관(왕자)의 조언에 충격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압둘아지즈 장관은 유가가 배럴 당 50달러 아래로 떨어질 수 있으며, 이렇게 될 경우 사우디의 막대한 지출 계획이 위태로워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고 WSJ는 전했다.
 
미국이 작년 내내 방출한 비축유를 이른 시일 내 보충하지 않겠다는 발언도 이번 감산 결정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전해진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는 전했다. 또한 미국의 셰일붐이 다시 일어날 가능성이 작은 점도 시장 점유율 축소에 대한 사우디의 우려를 덜었다.
 
'비전 2030에 집중'…외교 다각화 노력  
한때 미국의 안보 파트너였던 사우디는 미국을 비롯한 서방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를 경제적으로 옥죄자 1년 넘게 미국과 에너지 정책을 두고 반목하고 있다.

미국은 러시아 유가상한제 등 강력한 경제 제재를 통해 석유 및 가스 생산국인 러시아의 돈줄을 막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사우디를 포함한 OPEC+가 유가를 끌어올리는 행보를 유지하며 미국의 목표를 좌절시키고 있다.
 
사우디가 미국에 대한 전적인 의존도에서 벗어나 외교 관계를 다각화하는 데는 안보 문제도 있다고 로이터는 분석했다.
 
사우디는 지난 2019년 이란의 지원을 받을 것으로 추정되는 후티 반군이 미사일과 무인기(드론)로 아람코의 원유 탈황·정제 시설을 공격하자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당시 사우디의 일일 원유 생산량이 절반 가까이 떨어지는 등 석유 생산에 차질을 빚었고, 미국이 사우디의 안보를 보장하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가 터졌다. 그러던 중 이스라엘과 이란의 갈등 고조는 사우디의 전략 변화에 쐐기를 박았다.
 
더구나 비전 2030 추진에 집중하기 위해서라도 사우디는 ‘십자포화’에 휘말리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안보를 미국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대신 이란과 관계 회복, 시리아와 화해 등 지역 동맹을 재건하는 데 돌입한 이유다.
 
케임브리지대 거턴컬리지의 중동 전문가 엘리자베스 켄달은 "사우디는 이란과의 관계를 완화함으로써 지역 분쟁에 휘말리는 것을 피하고 2019년 아람코에 대한 공격 등 이란의 직접적인 공격 위험을 제거하기를 희망할 것"이라고 말했다.
 
로이터는 세 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사우디가 5월 아랍연맹에 바샤르 알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을 초청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또한 사우디는 최근 중국이 주도하는 상하이협력기구에 가입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전문가들은 사우디의 중국 밀착 행보는 분산 투자를 통해 위험을 줄이는 양면 작전과도 같다고 평했다.

익명을 요구한 사우디 정부 관리는 미국과 중국 모두가 사우디의 중요한 파트너라고 로이터에 말했다. 그는 “우리는 두 초강대국 사이의 경쟁이나 분쟁에 휩쓸리지 않기를 희망한다”며 “우리는 초강대국은 아니지만 지역과 글로벌 경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빌랄 사브 미국 중동연구소 국방 및 안보 프로그램 책임자는 “사우디는 이란과 미국 간의 총격전 사이에 서 있길 원하지 않는다”며 “그들은 미국이 그들을 보호할 것으로 믿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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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굥정부는 더이상 나라를 말아먹지 말고 사우디를 벤치마킹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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