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준의 지피지기] 실권없던 '2인자'의 퇴장 ... 막오른 시진핑.리창 新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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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준 논설고문
입력 2023-03-0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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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진핑 집권 3기 첫 전국인민대표대회 감상법

[박승준 논설고문]


중국 남쪽 지방은 요즘 꽃 천지다. 딱딱한 뉴스를 주로 전하는 관영 중국중앙TV 신원롄보(新聞連播·Network News)도 남쪽 지방에 핀 붉은 홍매화, 노란 산수유, 하얀 모란을 보여준다. ‘봄이 돌아온 대지(春回大地)’라는 제목을 달아서.

베이징(北京)은 잿빛 도시다. 도시 한가운데 황제가 사는 쯔진청(紫禁城)만 황금빛으로 보이게 색깔 설계를 해 놓았다고 베이징 사람들은 말한다. 그래서 겨울의 베이징은 칙칙하고 답답하다. 그런 베이징에 매년 3월 5일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가 열리면 대륙 곳곳에서 모여든 56개 민족의 컬러풀한 옷차림으로 갑자기 화려해진다. 그때쯤이면 중국 남부 장강(長江) 유역 장쑤(江蘇)성, 저장(浙江)성과 주강(珠江) 유역 광둥(廣東)성에서 올라오는 꽃 소식이 베이징 사람들 마음을 풀어주곤 한다. 마르크스 레닌이즘을 바탕 이론으로 하는 중국공산당이 정치를 주도하는 베이징에서도 봄날 경칩 무렵에 열리는 전인대는 시민들에게 활기를 불어넣어 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5일 개막한 제14기 1차 전인대는 지난해 10월 개최된 중국공산당 전국대표대회(당대회)에서 시진핑(習近平) 당 총서기가 3연임에 성공한 이후 처음 열리는 것이다. 시진핑과 함께 시·리(習·李) 체제를 구축했던 리커창(李克强) 총리로서는 마지막으로 정부공작보고를 하는 전인대다. 오는 11일 전인대는 리창(李强) 신임 총리를 선출해서 중국 경제 지휘권을 맡길 예정이다. 상하이(上海) 당 위원회 서기 출신인 리창은 작년 가을 20차 당대회에서 시진핑 다음인 서열 2위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선출됐다. 70세인 시진핑보다 여섯 살 아래인 리창은 시진핑이 2003~2007년 저장성 당 위원회 서기를 하던 시절 비서장을 지냈다. 당시 인연은 리창을 상하이 당 위원회 서기를 거쳐 서열 2위인 정치국 상무위원 겸 총리 내정자로 올려놓았다.

물러가는 리커창 총리는 5일 마지막 정부공작보고를 통해 “국무원은 올해 경제성장률은 5% 좌우, 실업률은 5.5% 좌우,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 좌우로 억제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물론 실제 업무 수행은 후임자인 리창 신임 총리 몫이다. 한마디로 “온(穩·안정)을 목표로 하고, 안정 속에 성장을 모색하는 ‘온중구진(穩中求進)’을 견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물론 리커창 총리의 이 같은 경제 목표는 지난가을 중국공산당 정치국 전원회의에서 통과시킨 내용이다. 중국 경제의 흐름은 사실상 가을의 당 정치국 회의에서 확정해 놓고 다음 해 봄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추인을 받는 형식으로 진행하는 것이 보통이다. 리커창 총리는 후임 리창 총리가 이끄는 국무원의 경제활동 목표가 첫째 소비 회복과 확대, 둘째 현대화 산업체계 건설 가속화, 셋째 국영기업 경쟁력 강화, 넷째 외자 도입 확대, 다섯째 금융 리스크 완화, 여섯째 식량 생산 안정화 등이 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리커창 총리는 그러나 중국 정부가 코로나 팬데믹 이후 중국 경제의 리오프닝(reopenig·復蘇)을 추진하면서도 “시진핑 동지의 강군(强軍) 사상과 시진핑 신시대의 군사전략 방침을 관철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건군(建軍) 100년을 맞아 분투 목표로 경제성장과 전쟁 준비를 동시에 추구하겠다는 상호 모순적인 국가전략을 밝혔다. 과거 마오쩌둥(毛澤東) 시대에 19세기 세계 최강 영국, 20세기 세계 최강 미국과 한판 싸워보겠다는 ‘초영간미(超英赶美)’를 국가전략으로 내세웠다가 1인당 국민소득 세계 100위 부근인 빈국(貧國)으로 전락한 과거를 되풀이하는 어리석음을 범하려는 시진핑의 전략을 수정할 힘이 리커창 총리에게는 없다는 현실적 한계를 드러냈다. 1980년 덩샤오핑(鄧小平)의 개혁·개방과 빠른 경제 발전은 “강대국과 전쟁을 불사한다”는 마오쩌둥의 전략을 버리고 “평화를 추구하고 경제 발전에 전념하겠다”는 덩샤오핑의 ‘화평발전(Peaceful Development)' 전략 때문에 가능했다는 점을 시진핑이 간과하고 있으나 리커창으로서는 이렇다 할 수정 방법이 없는 것이다. 리커창 총리는 정부공작보고 끝머리에 짤막하게 밝힌 외교정책 설명에서 “화평발전의 길을 굳건하게 걸어가야 할 것이며, 평화공존 5원칙을 바탕으로 각국과 우호 협력을 강화할 것”이라고 밝히기는 했다. 그러나 이런 표현은 최근 시진핑이 추구하는 미국을 넘어서겠다는 ‘대국(大國) 외교’나 우리에 대한 내정간섭적 대외 군사정책에 비추어보면 구두선(口頭禪)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다.

5일 전인대 개막과 리커창의 정부공작보고 행사에는 인민 대표 2948명(재적 2977명 중 29명 결석)이 참석했다. 3000명에 가까운 인민 대표들은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사전에 PCR 검사를 받은 뒤 마스크를 쓰고 개막식에 참석했다. 그러나 눈에 띄는 것은 시진핑 당 총서기와 리커창·리창 신구 총리를 포함해 대회장 전면 주석대(主席臺)에 앉은 정치국 상무위원과 정치국원 30여 명은 마스크를 쓰지 않아 눈길을 끌었다. 전 세계가 주목하는 가운데 시진핑 주석 지휘로 ‘제로 방역(淸零)’을 한다고 환자 한 명만 발생해도 몇만 명이 거주하는 지역이나 도시를 완전 봉쇄하던 것이 불과 5개월 전인 지난해 10월 16일에 폐막한 20차 당대회 당시 상황이었다. 중국 전역에서 코로나19는 갑자기 자취를 감춘 것일까. 중국 관영 신화(新華)통신이 지난해 12월 24일 돌연 “우리 중국의 백신 접종률이 90%를 초과했으며 전국 백신 접종 횟수는 연인원 34억6000만명에 이르렀고, 각각 86.6%와 66.4%인 60대와 80대 이상 노인들만 접종률을 올리면 된다”는 보도를 한 이후 중국 정부는 돌연 제로 코로나 정책을 내려놓았다. 그러나 5일 전인대 개막 행사에 참석한 3000명에 가까운 인민 대표들이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는 것은 과연 중국 내 코로나 확산이 어느 정도인지에 대한 판단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리커창 총리는 이날 자신으로서는 마지막 정부공작보고를 하면서 특별한 감회를 표하지 않고 담담히 준비된 보고서를 읽어 내려 갔다. “금년은 시진핑 동지를 핵심으로 하는 당 중앙의 강력한 영도 아래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사상을 지도 방침으로 해서 20차 당대회 정신을 관철하고 ‘중국식 현대화’를 착실히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시진핑 주도로 만들어진 당의 방침에 특별한 이의를 표하지 않았다. 보고 끝머리에도 “우리는 시진핑 동지를 핵심으로 하는 당 중앙 주위로 단결해서 경제사회의 건강한 발전과 사회주의 현대화 국가 건설과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전면적으로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하는 것으로 정부공작보고를 끝맺었다.

시진핑 당 총서기는 이번 전인대를 통해 오는 11일 세 번째 국가주석으로 선출돼 세 번째 임기를 시작할 예정이다. 시진핑은 지난해 10월 16일 폐막한 20차 당대회를 통해 당 총서기 3연임을 확정한 이후 11월 16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화상 정상회담을 통해 갈수록 거칠어지는 미·중 갈등 국면을 유화적으로 풀어보려 했으나 화상 회담은 공동성명을 못 내고 끝났다. 지난 40년간 중국의 개혁·개방과 빠른 경제성장을 지켜본 대만의 중국 경제 전문 언론인 셰진허(謝金河)는 지난해 10월 27일 ‘변조된 중국의 꿈(變調的中國夢)’이라는 책을 아마존에 올려 미국과 대만 독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변조된 중국의 꿈’이란 중국이 현재의 미·중 갈등을 풀지 않고 계속해서 미국에 기술과 금융 봉쇄를 당하면 당초 시진핑이 제시한 “2050년 미국 GDP를 넘어 세계 1위의 강국이 되겠다”는 꿈은 변질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셰진허가 ‘변조된 중국의 꿈’에서 전망한 내용이 맞아떨어지면 1980년에 시작해서 43년간 지속돼온 중국의 빠른 경제 발전은 ‘화양연화(花樣年華·꽃 같은 날들)’의 추억이 될지도 모른다. 화양연화는 2000년에 처음 상영된 홍콩 영화로, 홍콩이 가장 번영하던 1960년대를 배경으로 홍콩 유명배우 량차오웨이(梁朝偉)와 장만위(張曼玉)가 남녀 주연을 맡아 열연한 슬픈 사랑 이야기다. 홍콩의 화려하던 한때를 그린 화양연화라는 영화가 제작됐듯이 미국과 충돌하는 중국의 잘못된 국가전략 선택으로 중국의 꿈 대신 중국을 배경으로 한 화양연화가 또 한 편 만들어질지 모른다는 것이 대만 사람들의 이야기다.
 

[작은 박스]
퇴장하는 리커창과 3연임 성공한 시진핑의 운명

리커창은 1955년생으로 베이징(北京)대학 경제학 박사 출신이고, 시진핑은 두 살 위인 1953년생으로 칭화(淸華)대학 법학 박사 출신이다. 리커창은 5일 개막한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마지막으로 정부공작보고를 하고 10년간 앉아 있던 총리직에서 떠나게 된다. 리커창은 전인대 개막 일주일 전 베이징대 경제학과 박사지도 교수였던 스승 리이닝(勵以寧) 교수가 93세로 별세하는 슬픔을 겪었다. 리이닝은 덩샤오핑의 개혁·개방에 이론적 근거를 제공한 경제이론가였다. 리커창은 당 총서기직을 놓고 시진핑과 경합을 벌이다 총리라는 2인자로 밀리고 마르크스 레닌주의자인 시진핑이 3연임에 성공하는 바람에 중국 개혁·개방 정책이 찬 바람을 맞는 역사의 아이러니를 낳게 됐다. 
리커창과 시진핑은 2012년 당서기와 총리를 놓고 경합을 벌이다 장쩌민(江澤民)의 선택으로 운명이 결정됐다. 장쩌민은 시진핑이 푸젠(福建)성, 저장(浙江)성과 상하이(上海) 등 동부 연안의 개혁·개방 지역에서 행정 경험을 쌓은 점이, 효율 낮은 국영기업이 몰려 있는 허난(河南)성과 랴오닝(遼寧)성에서 행정 경험을 쌓은 리커창보다 개혁·개방 정책 견지에 더 도움이 될 것으로 오판했다는 것이 중국공산당 내부의 전언이다.  





필진 주요 약력

▷서울대 중문과 졸 ▷고려대 국제정치학 박사 ▷조선일보 초대 베이징 특파원 ▷인천대 중어중국학과 초빙교수▷현 최종현학술원 자문위원 ▷아주경제신문 논설고문 ▷호서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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