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완의 월드비전] 베이비부머가 바라본 아이를 안 낳는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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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완 논설위원
입력 2023-03-05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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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구 한 어린이 집에서 컵쌓기 놀이를 하고 있는 아이들 모습, 사진=어린이집 제공] 

 

필자와 같이 한국전쟁 직후 태어나고 자란 베이비붐 세대에겐 콩나물 시루 같은 비좁은 교실에서 수업을 받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할 것이다. 내가 유년시절을 보낸 전북 전주시 구도심의 학교는 언제부터인지 입학 인원이 계속해서 늘어나자 오전과 오후 2부제 수업을 진행해야 했다. 학교 종이 울리고 수업이 끝나면 운동장엔 답답한 교실에서 쏟아져 나온 아이들로 가득했다. 공놀이, 구슬치기, 술래잡기에 몰두하다 보면 금방 해가 붉은빛으로 변해 서쪽 하늘로 넘어가고 있었고, 흙 묻은 손으로 서둘러 책가방을 챙겨 집으로 향하곤 했다. 지난해 추석 명절 때 고향의 부모님을 찾아뵙고 어릴 적 추억을 더듬어 학교 교정을 둘러볼 때 느꼈던 적막감인지 허탈감인지 딱 표현하기 힘든 묘한 감정은 지금도 내 뇌리에 박혀 있다. 

본 칼럼을 쓰기 시작하면서 모교 홈페이지를 보니 교원 10명에 전체 학생 수는 고작 77명이었다. 내가 이곳 학생일 때 한 학년에 10개 반 정도였고 한 반에 60여 명으로 그때와 지금의 전체 학생 수를 비교해 본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할 것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 이 학교 건물엔 2005년 중학교도 들어섰다. 지금 그 중학교는 교원 16명에 학생은 67명에 불과했다. 이번 달부터는 두 학교를 묶어 통합 운영된다는 소식이다. 동일 부지 내에서 초등학교·중학교를 교장 1명이 운영하고 행정실, 급식실, 체육관, 운동장 등 인적·물적 자원을 공유하는 시스템이다. 내가 어릴 때 꿈을 키웠던 모교가 인구 감소가 불러온 '폐교의 쓰나미'에 휩쓸려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으로 변했다.    

빗나간 인구 폭발론     

영국 고전 경제학자 토머스 맬서스(1766~1834)는 18세기 중엽 산업혁명의 부작용으로 나타난 빈부 격차, 물가 상승, 실업 등 각종 경제와 사회적 문제에 대한 해법을 인구 증가 억제에서 찾으려 했다. 그는 1798년 처음 펴낸 <인구론·An Essay on the Principle of Population>과 1826년까지 이어진 6차례 개정판을 통해 인구가 식량 생산보다 빨리 증가하기 때문에 출산을 강력하게 억제하지 못하면 인류가 영원히 빈곤에서 벗어나기 힘들다고 경고했다. 그는 결혼은 되도록이면 뒤로 미루고, 하류층 임금을 최저 생계비 수준으로 억제하고, 심지어는 창궐하는 질병에 대한 맞춤형 치료약까지 배척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쳐 논란이 끊이지 않았지만 그의 책은 영향력이 대단했다. 1800년엔 영국에서 10년마다 인구 센서스를 실시하는 법이 제정됐고, 인류학자인 찰스 다윈과 앨프리드 러셀 윌리스가 펼친 진화론에서도 언급되었다.     

기술 혁신과 농업 혁명으로 생산성이 크게 개선된 오늘날 맬서스의 이론은 신빙성이 없는 구시대 유물로 취급받는다. 하지만 내가 지방 도시에서 초·중·고교를 다니던 1960~1970년대,  또 서울로 올라와 직장을 잡고 두 자녀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198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인구 폭발 종말론은 유행했다. 당시 우리 정부가 내놓은 각종 산아제한 정책 중에서 가장 효과를 본 것은 남성 정관 수술이었다. 믿기 힘들겠지만 1980년대 정관 수술을 받고 예비군 동원훈련을 면제받은 남성이 매년 수만 명에 달했다. 

나에겐 올해 다섯 살 된 잘생기고 애교도 넘치는 (외)손주가 있는데 2년 후엔 초등학교에 입학한다. 요즘 내 일상에서 가장 큰 기쁨은 저출산 시대 귀하게 얻은 손주를 돌보며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손주가 태어난 2018년은 우리나라의 결혼과 출산 기피 현상이 이미 심각한 상황으로 치닫던 때다. 그해 합계출산율이 0.98로 마침내 1선이 무너졌던 사실을 최근에야 알았다. 이미 우리나라는 학령인구 급감에 따라 입학생이 '0'인 초·중·고교가 이제 농어촌 읍.면지역 뿐 아니라 대도시에서 크게 늘고 있다. 올해 내 고향 전북 지역에선 27개 초·중·고가 올해 신입생을 단 한 명도 받지 못했다. 폐교나 학교 통폐합은 서울도 예외가 아니다. 최근 인구 전문가인 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유튜브 강연을 통해 현재 65세 인구가 전체의 30%에 육박하고 있는 일본의 지방 마을 모습을 생생하게 전해주었다. 그곳의 폐교된 초등학교는 이미 요양시설로 바뀌었고, 70대 딸이 90대 노모와 함께 옛날의 교실에서 생활하고 있었고, 그 옆방에는 동창생이 거주하고 있다는 전 교수의 설명은 '노인 대국'의 모습을 더욱 실감나게 느끼게 했다.
 

 

지방의 소멸, 그리고 텅빈 교실···. '인구절벽'은  이미 우리 귀에 익숙한 단어가 된 지 오래다.  특단의 대책이 없다면 우리 경제는 물론 국방·교육·조세 등 모든 분야에서 거대한 후폭풍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생산가능인구 감소는 물론 당장 국방을 담당할 병력 부족 문제까지 대두되면서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야 하는 '모병제' 논의도 현실화할 조짐이다. 그렇다고 정부가 강압적으로  결혼과 출산을 독려하는 것은 인권과 민주주의에 배치된다. 출산과 육아 지원금이 매년 늘고는 있다지만 효과는 '글쎄요'다. 지금의 청년들이 자발적으로 자녀를 낳고 가족을 구성해 나름대로 희망찬 미래를 가꾸어 나간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현실은 비정상적이다. 그동안 우리 정부와 정치권 그리고 기성세대가 청년과 미래 세대의 고충에 귀를 기울이며 소통하려고 노력을 다했는지 묻고 싶다.  


성년이 된 우리 젊은이들이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는 이유는 첫 번째로 경제가 저성장의 침체기에 진입하면서 청년들의 안정된 일자리와 미래에 대한 불안이다. 우리 베이비붐 세대들은 고성장 시대를 살았다. 열심히 노력해서 몇 년 저축을 하면 집도 마련하고 훗날 자식들이 대학을 나와 취업하면 팔자도 펼 것이라는 희망의 끈으로 버티며 삶을 지탱했다. 반면 지금 많은 젊은이들의 현실은 그런 희망의 끈이 없는 상황이다. 과도한 경쟁 속에서 생활고와 불안의 늪에 빠진 수많은 청년들에게 우리 세대의 '헝그리 정신' 또는 '애국심' 타령이 귀에 들릴 리는 만무하다. 시대는 이제 크게 변했다. 효(孝)라는 개념을 통하여 남성과 가장에 대한 복종이 요구되던 가부장제 사회는 오래전 이야기다. 일과 삶의 균형을 중시하는 '워라밸(work-life-balance)' 사회에서 이제 결혼과 출산은 필수라고 생각하는 젊은 여성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요즘 젊은이들이 왜 이리 이기적으로 변했냐고 원망을 하는 분들이 있다면 세상 바뀐 것도 모르는 우물 안 개구리라 할 수 있다.  
     
1970년대 우리나라 여성은 평균적으로 4명의 아이를 낳았다. 내 아들과 딸이 태어난 1980년대 2명 안팎이던 합계출산율은 1990년대 중반에는 1.5명으로 내려갔다. 2016년(1.16명)을 기점으로 합계출산율은 7년째 하염없이 내리막길을 걷더니 작년에는 0.7명대로 '불명예' 세계 신기록을 다시 갈아 치웠다. 고성장 시대가 막을 내리면서 세계적으로 출산율 하락은 전반적인 추세다. 하지만 한국보다 훨씬 일찍 저출산 문제를 경험했던 선진국들은 출산율 감소가 완만하게 진행되거나 다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의 감소 속도는 '인구 쇼크' 수준으로 세계 인구 전문가들의 연구 대상까지 된 상황이다. 이는 그동안 정부의 대처가 너무 무책임할 정도로 비효과적이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특단 대책 변곡점에 선 한국·일본

우리나라 고령인구는 급속히 늘어나면서 미래 세대의 부담은 커지고 있다. 현 정부가 추진 중인 연금 개혁, 노동 개혁, 교육 개혁 등 국정의 3대 개혁 모두 그 실마리를 찾으려면 출산율이 다시 반등을 해야 한다.  그렇다고 국가의 소멸까지 우려하는 지나친 비관론도 문제 해결에 도움은 되지 않는다. 저출산·고령화 문제를 우리보다 훨씬 일찍 경험한 다수의 유럽 국가들은 이민 정책을 대폭 완화해 외국인 노동자를 유입하거나 육아 휴직 의무화와 제도적 변혁을 통해 저출산 위기를 극복하고 있는 사례도 많이 있다. 또 인구 감소가 인구 팽창 이후 나타나는 필연적인 현상으로 시간이 지나면 출산율 증가를 위한 사회적인 환경이 자연스럽게 형성되어 인구가 다시 늘어날 것이라며 낙관론을 펼치는 학자도 많이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나라는 일본과 더불어 지금 당장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 매우 중차대한 변곡점에 도달했다는 점이다.    

현재 세계 최고령 국가인 일본은 지난해 출생아 수가 40년 전의 거의 절반인 80만명 아래로 내려갔다. 또 앞으로 30년 정도 지나면 인구 10명 중 4명은 노인이고 어린이와 청소년은 1명뿐이라는 전망이다. 위기감을 느낀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지난달 의회 연설에서 일본이 저출산으로 사회적 기능을 유지하지 못할 위기에 처해 있다고 경고했다. 또 오는 4월 1일 아동가정청 출범과 함께 과거와는 차원이 다른 출산율 제고 대책을 논의 중이다.

일본의 합계출산율(2021년 기준 1.3)은 우리나라와 비교하면 그래도 양호한 편이다. 지난해 우리나라 출생아 수는 10년 전에 비해 절반 수준인 25만명 아래로 내려갔다. 통계 당국의 예측이 맞는다면 2050년쯤 대한민국 인구 10명 중 4명 이상이 65세 이상인 노령층으로 OECD 국가 중 일본을 제치고 최고령 국가로 등극한다. 그동안 우리의 백화점식 저출산 대책이 과연 효과가 있었는지 정부와 여야 정치권은 함께 진지하게 종합적으로 점검할 때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지난달 16일 국정현안관계장관회의에서 기존 저출산 대책에 대해 "근본적인 반성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날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은 "아이돌봄 서비스 고도화 방안"을 내놓았다. 긴급 및 단시간 돌봄 등 맞춤형 서비스로 질적 개선을 도모하고, 국가자격제도를 통해 돌봄 인력의 전문성을 높이고, 민간 서비스 제공기관 등록제를 내년부터 도입한다는 내용이다. 



 

[성북구 한 아파트 단지 옆 어린이 집 풍경 = 믿고 맡길 아이돌봄 서비스의 부족이 우리나라 저출산의 가장 큰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사진/ 필자 제공]  

아이돌봄 서비스

현재 직장을 가진 젊은 부부들의 최대 고민거리는 매일 같이 어린 자녀를 누군가에게 안심하고 맡기는 일이다. 맞벌이 부부가  증가하는 상황에서 남녀 직장인들이 일과 양육을 병행하며 어린아이를 키우기 힘든 상황은 우리나라 출산율 급락의 최대 이유다. OECD 국가 중 우리나라 여성은 높은 교육 수준에도 불구하고 취업률(50%대)은 70%대를 넘는 독일, 스웨덴, 노르웨이 등 다른 회원국에 비해 현저히 낮다. 또 육아 휴직 제도를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분위기도 아니다. 유럽 국가들을 보면 육아에 대한 부담을 크게 줄이자 여성 취업률이 높아지고 출산율도 차츰 회복되는 모습을 보인 사례가 많다.
 
재원 마련 문제 때문에 저출산 관련 예산을 정부가 큰 폭으로 한번에 늘리기는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모든 정책과 예산은 선택과 집중이 중요하다. 정부의 지원책을 최대한 돌봄 서비스 등 육아 친화적 인프라 구축에 우선을 두어야 할 때다. 필요하다면 지난해 민주당이 제안한 '국가 돌봄 책임제' 도입도 진지하게 검토할 때다. 여성들이 일과 가정을 양립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정치권은 물론 민간과 사회단체에서 진지한 토론을 활발하게 전개할 때다. 저출산·고령화 문제는 기후변화처럼 단번에 해결책이 나올 수는 없다. 그러나 인내심을 가지고 미래 세대와 교감하며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출산율도 상승곡선을 탈 것으로 기대한다.   

1990년대 초·중반 '서태지와 아이들'에 열광하던 X세대인 내 아들과 딸은 20년 정도 지나면 은퇴를 하고 노후 생활로 접어들게 된다. 살다 보니 20년이라는 세월은 금방이다. 20대 중반을 넘긴 우리 손주와 그 또래들은 결혼과 출산을 어떻게 생각할까? 이 칼럼을 마무리하면서 나의 모교(완산초등학교) 교훈을 소개하겠다. '큰 꿈을 품고 즐겁게 배우며 씩씩하게 자라는 어린이'. 언젠가 학교 운동장에 어린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소리가 다시 가득차길 희망하면서..

이수완 필자 주요 이력 

▷코리아타임스 기자 ▷로이터통신 선임특파원 ▷로이터통신 편집장 ▷서울외신기자클럽 회장 ▷아주경제 글로벌본부장 ▷아주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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