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브린의 For Another Perspective] 출산율 높이기 위해 '신방 엿보는' 한국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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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브린 인사이트 커뮤니케이션즈 회장
입력 2023-01-1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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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브린 인사이트 커뮤니케이션즈 회장]


부부들에게 아이를 더 낳으라고 독려하는 정부의 다출산 정책 뉴스를 접할 때면 필자 머리에 떠오르는 이미지로 한국의 전통적 풍습 '신방 엿보기'가 있다. 혼례를 치르는 첫날밤 일가친척들이 신방 주위를 어슬렁거리며 신랑·신부의 행위를 엿보는 모습을 그린 그림들은 내 머릿속에서 쉽게 잊히지 않는다. 

나경원 전 국민의힘 의원이나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한 정책을 제언하는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를 향해 공격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그들은 신방을 자세히 엿보기 위해 창호지 바른 방문에 침을 바른 손가락으로 구멍을 뚫고 신랑·신부가 첫날밤 일을 잘 치르도록 이래라저래라 독려하는 이모님들과 같은 모습으로 다가온다. 
 

[출처=한국민속대백과사전]



"옳지, 그렇게 계속 만져요. 물리진 않아요." "아니 이 바보야, 거긴 만지지 말고 저걸 만져야지."

첫날밤을 보내는 신랑·신부가 신방을 엿보며 간섭하는 이모들에게 느끼는 감정을 어땠을까? 마치 오늘날 한국 정부에 이렇게 말하는 것처럼 들릴 것이다. "당신들의 의도는 잘 알아요. 하지만 당신들 일이나 잘해요."

이런 식으로 내 글을 전개해 나가니 독자들은 아마도 필자가 부당한 편견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당신들의 생각이 옳을 수도 있다. 필자는 인구문제를 제대로 분석할 수 있는 한국 정부의 역량에 대해 회의적이다. 게다가 정치인이나 관료들은 자신들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보자. 기억할지 모르지만 수년 전 일이다. 모 부처가 앞장을 섰다. 저녁 6시면 건물에 불을 끄고 직원들이 남아서 업무를 볼 수 없도록 했다. 최대한 빨리 귀가해서 부부와 잠자리를 하라는 취지였다. 내가 확인해 보진 않았다. 하지만 이러한 특별한 정책 덕분에 이 세상에 존재하는 학생들이 한국에 얼마나 많이 있는지는 의문이다.
 

이제 비이성적인 것들에서부터 벗어나 보자. 물론 정부가 인구문제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당연하다. 정부 부처나 정당 모두 인구의 증감 또는 고령화 추세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 이런 것들은 장기적으로 경제나 복지 관련 정책과 계획 수립에 필수적이다. 실질적으로 문제는 정부가 인구문제를 '해결(fix)'하기 위해 다음 단계의 조치로 넘어가느냐 아니냐 여부다. 왜냐면 그것이 문제가 아닐 수도 있고 해결할 필요가 없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젊은이들에게 아기를 더 낳으라고 설득을 해야 하나?  

나는 두 가지 관점에서 이 질문을 하고 싶다. 첫 번째는 ‘도덕성’ 관점이다. 정부가 국민들을 이런 식으로 조종(manipulate)하는 것이 과연 도덕적으로 옳은 것일까. 두 번째는 ‘능력(capability)' 관점이다. 정부가 이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있는지, 아니면 민간단체나 가족 등 다른 주체가 더 나은 해결 능력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잘 따져봐야 한다. 이 두 가지 질문에 대한 답변을 위해선 정부가 존재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부터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축구가 인생이라면 심판은 민주적 정부라 할 수 있다. 심판은 축구 클럽이나 경기장을 소유하지 않는다. 또 공을 차거나 골을 넣지 않는다. 심판의 역할은 공정한 플레이를 보장하는 것이며 그가 가진 무기는 경기 규칙, 인스턴트 리플레이 시스템(instant replay system)과 휘슬이다. 

따라서 정부의 역할은 국민들이 자율적으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보장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부는 심판이 축구 경기에 임하듯이 경기장 안팎에서 일어날 수 있는 범죄적 위협 행위나 자연재해 등을 예방해 우리를 보호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정부는 우리의 자유를 지키고 사회 정의와 공정성을 보장하도록 최선을 다하면 된다. 이런 것들이면 정부가 할 일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라 할 수 있다. 분명 정부의 직무기술서(job description)는 제한적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믿음에서 필자는 1980년대처럼 국민들에게 출산 억제를 장려한다거나 지금처럼 아이를 더 낳으라고 장려할 권리가 정부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렇게 
개개인 가정사에 정부가 일일이 관여하는 것이 정부가 국민의 자유와 안전을 보호하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한국을 비롯한 다른 여러 민주주의 국가들에서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치는 필자가 기술한 내용보다 상당히 큰 듯하다. 국민들이 정부를 ‘심판’이 아니라 ‘구단주’로 바라보는 것 같다. 정부가 ‘심판’이 아닌 ‘구단주’라고 당신들이 생각한다면 아이들 출산을 조종할 권리를 정부에 부여할 뿐 아니라 정부가 당신들을 위해 조종에 나서길 기대할 것이다. 그렇다면 다음 질문으로 넘어간다. 정부가 잘할 수 있을까? 난 그렇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한 가지 간단한 이유 때문이다. 정부가 가진 수단이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아기를 낳지 않는 이유를 정부의 정책 입안자들은 세금 혜택, 인센티브 제공, 홍보 활동 등 범주에서 찾아 결론을 내곤 한다. 다시 말해 그들은 경제적인 이유로 이해하고 있다. 과연 이것이 진짜 이유일까?

현재 한국은 단군 이래 지금처럼 부유했던 적이 없다고 할 정도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커플들이 결혼과 출산을 꺼리는 것을 돈 문제처럼 이야기하는 것일까? 어쩌면 진짜 이유는 정부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 또는 정부의 책임이나 영향력 밖에 있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한다. 그 이유는 지금 이 시대 널리 퍼진 인생 가치관과 연관이 있다.

물론 필자는 많은 사람들이 결혼이나 출산을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꺼린다는 것은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경제적인 이유 이외에 다양한 원인들이 있다. 임신, 출산 자체를 원하지 않는 여성이 있을 수 있다. 자녀를 키우며 아이들을 학원에 데려다주는 일에 20년을 바쳐야 한다는 사실, 또는 결혼생활이 비참하게 결론 나는 것을 두려워할 수도 있다. 남자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러한 출산 저해 요소들은 항상 존재해 왔다. 인생은 리스크이자 역경이며 이를 받아들일 좋은 이유가 존재해야 한다. 인생에 의미를 부여하는 윤리적 가치관, 이게 없다면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인생의 가장 편한 길을 가고 싶어한다. 일은 적게 하고, 재미있게 놀고 마시는 삶을 선호할 것이다. 인간관계에서 단 한 번이라도 파열을 겪은 사람은 평생 동안 똑같은 고통의 위험을 감수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꼭 그럴 만한 이유가 없다면.  


그렇다면 어떤 이유에서 사람들은 힘든 인생의 역경을 딛고 일어설까? 과거 전통적인 한국 사회에서는 대부분 사람들이 인생의 목적이 남편의 대를 잇는 것이라고 믿었다. (어린 나이에 조혼하는 풍습도 있었지만 가문의 대가족들은 사사로운 일에 관여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이러한 전통적 가치가 완전히 사라졌다고 말할 수는 없어도 퇴색되었다고 말할 수는 있다. 이런 전통적 가치를 아직 지키고 있는 사람들도 있지만 반대로 의무보다는 사랑을 중요시하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사랑은 욕심이다. 짝을 만나게 되면 사랑을 하게 된다. 둘이 사랑의 영역을 확대시키고 싶어하고 이를 위해 아이를 낳는 것은 단지 자연스러울 뿐이다.

물론 인생의 가치관 형성에 ‘종교’의 역할도 존재한다. 그러나 당신의 가치관이 무엇이고 그 가치관이 어디에서 출발했는지는 사적인 문제다. 한국은 국교가 없기 때문에 정부가 이래라저래라 말할 수가 없다. 민주주의가 발전하기 이전의 민족주의적 한국 정부는 국민들이 국가 발전을 위해 희생하도록 교육하고 독려했다. 이런 국가 가치관은 이제 퇴색되었다. 필자는 인생을 살아가는 의미에 공백이 생길 정도까지 이런 가치관이 한국에서 퇴색했다고 말하고 싶다.

젊은이들이 자신들 가족을 포함해 다른 커플들 모습에서 사랑보다는 고통의 감정을 보게 되고, 부모나 조부모들의 방식으로 인생을 살아갈 절박할 이유를 찾지 못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정부가 이런 상황에서 아이를 더 낳으라고 말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아무도 귀담아듣지 않는 것은 이해할 만하다. 
 
[번역=임윤서 인턴기자]

[필자 약력]
마이클 브린은 현재 글로벌 PR 컨설팅 회사인 인사이트 커뮤니케이션스 CEO다. '가디언' '더 타임스' 한국 주재 특파원, 북한 기업에 자문을 제공하는 컨설턴트, 주한 외신기자클럽 대표를 역임했다. 가장 최근에 출간한 <한국인을 말한다>를 포함해 한국 관련 저서 네 권을 집필했다. 1982년 처음 한국에 왔으며 서울에서 40년 가까이 거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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