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스페셜] "핵산검사 대신 자유를" 중국 '백지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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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중국)=배인선 특파원
입력 2022-11-28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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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로코로나 반대" 백지 들고 뛰쳐나온 시민들

  • "봉쇄, 시설격리 거부" 라오바이싱 공권력 대항

  • "우리만 딴 세상" 월드컵 보며 '제로코로나' 회의감

  • 당혹스러운 中 공산당···시위 진압 나설까

지난 27일 밤 중국 수도 베이징 차오양구 량마차오 지역에 시민들이 몰려나와 중국 방역정책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시민들 손에는 '항의'의 뜻으로 흰 종이가 들려 있다. 외신들은 이를 '백지혁명'이라 불렀다. [사진=트위터]

지난 27일 밤 중국 수도 베이징 차오양구의 대사관 밀집지역인 량마차오 거리 인근. 이곳에 몰려든 시민들은 백지를 높이 치켜들고  "핵산검사(유전자증폭검사) 대신 자유를 달라(不要核酸要自由)"는 등의 구호를 외치며 '둥타이칭링(動態淸零)'으로 불리는 중국의 제로코로나 정책에 반대하는 거리 시위를 벌였다.

자정이 넘은 시각까지 경찰은 시위대를 에워싸고 대치했으며, 이따금씩 도로를 지나가는 자동차는 경적을 울려 시위대에 응원을 보냈다. 

이 영상은 트위터, 유튜브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퍼지며 전 세계인들의 응원을 받았다. 외신들은 중국 '제로코로나' 정책에 대한 민심의 불만이 터져나오며 '백지혁명(白纸革命)'이 일고 있다고 보도했다. 
 
"제로코로나 반대" 백지 들고 뛰쳐나온 시민들

27일 저녁 상하이 시내에서 흰종이를 들고 당국의 코로나 방역정책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던 주민이 경찰에 연행되고 있다. [사진=로이터·연합뉴스]  

백지는 최근 중국의 코로나19 방역정책에 항의하는 상징물로 떠올랐다.

프랑스 국제라디오방송(RFI)은 28일 백지는 '다바이(大白)'라 불리는 흰색 방역복을 입은 방역요원을 풍자함과 동시에, 제로코로나 방역에 희생된 주민을 애도하고, 중국의 강력한 검열에 맞서 아무 글자도 그림도 없는 백지로 대응하겠다는 의미를 담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누리꾼들의 '백지혁명' 동참을 요구하며 △SNS 프로필 사진 배경을 흰색으로 바꾸기 △'백지혁명' 문구를 SNS에 올리기 △공공장소에 '백지' 붙이기 등과 같은 구체적인 행동 지침도 올라왔다. 

백지혁명은 지난 24일 신장위구르자치구 우루무치의 한 아파트에서 발생한 화재 참사가 촉발점이 됐다. 당시 화재로 최소 10명이 사망했는데, 그 원인이 아파트 봉쇄용 설치물이 신속한 화재 진압의 걸림돌이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가뜩이나 제로코로나 방역에 대한 인내심이 한계에 달한 서민들의 불만이 결국 폭발한 것이다. 

25일 금요일 밤부터 주말까지 상하이, 베이징, 우한, 난징, 청두, 다리 등 전국 약 10개 도시에서 시민들이 우루무치 희생자를 애도하는 거리 시위를 벌였다고 홍콩 명보는 28일 보도했다.

특히 26일 상하이 시내 '우루무치 중루' 도로에 시민 수천 명이 몰려나와 우루무치 참사를 애도하고 중국 방역 정책에 항의했다고 로이터 등 외신은 보도했다. 이 자리에서는 중국 공산당과 시진핑을 향해 '샤타이(下台, 퇴진)'를 공개적으로 요구하는 구호도 터져나왔다. 경찰과 시위대 간 충돌이 벌어지며 일부 시위대는 연행됐다. 이 과정에서 영국 BBC 기자가 수갑이 채워져 함께 연행됐으며, 경찰에 구타를 당한 후 몇 시간 만에 풀려났다고 BBC는 보도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시진핑 주석의 치적인 제로코로나 정책에 항의하는 시위가 전국적으로 번지고 있다"며 "이는 공산당에 대한 직접적인 도전이라는 측면에서 1989년 톈안먼 시위 이후 전례 없는 일"이라고 보도했다.  
 
"봉쇄·시설격리 거부" 공권력 대항하는 라오바이싱

27일 중국 명문 칭화대 캠퍼스에서 학생들이 손에 백지를 들고 중국 코로나 방역정책에 항의하고 있다. [사진=트위터]

시진핑 주석의 모교인 칭화대를 비롯해 베이징대, 푸단대 등 전국 각지 100여개 대학 캠퍼스에서도 학생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정부의 제로코로나 방역 정책에 대한 분노를 표출했다.

명보는 지난 26일 베이징대 캠퍼스 내 한 담벼락에 붉은 글씨로 "봉쇄 대신 자유를", "핵산검사 대신 밥을", "실용(務實)은 탕핑(躺平, 자포자기)이 아니다, 눈을 뜨고 세상을 봐라", "제로코로나는 결국 거짓말, 조속히 바꾸면 그나마 충격을 완화할 수 있다" 등과 같은 문구가 적혀있었다고 보도했다. 

명문 칭화대에서도 27일 학생들은 백지를 흔들며 "민주법치, 자유를 외쳐라" 등의 구호와 함께 '인터내셔널가(국제 공산당가)'를 불렀다. 이 밖에 중국 사회과학원 대학 캠퍼스에 세워진 중국 대문호 루쉰(魯迅) 동상에는 마스크가 씌워지고 손에는 백지가 들려졌다. 

최근엔 라오바이싱(서민)들도 아파트 단지를 봉쇄하려는 경찰에 공개적으로 항의하는 등 공권력에 대항하는 사태가 빈번하게 발생했다.

단지 내 확진자의 시설격리 이송을 거부하고 자택격리를 시키자는 내용을 담은 청원서에 서명하는 운동도 일었다. 중국 관변논객으로 잘 알려진 후시진 전 환구시보 편집장이 27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시설격리 대신 재택치료하는 옵션에 대해 사회적으로 공개적 논의가 시급하다"고 주장했을 정도다. 
 
"우리만 딴 세상" 월드컵 보며 '제로코로나' 회의감
지난 3년간 당국의 제로코로나 통제에 순응해왔던 중국인들은 격리·봉쇄와 유전자증폭(PCR) 검사라면 지긋지긋할 정도로 인내심은 한계에 도달했다. 2∼3일마다 PCR 검사를 받기 위해 1시간 이상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은 물론, 아파트와 오피스 빌딩이 수시로 봉쇄돼 사실상 정상적인 일상생활이 불가능하고 일부는 생계마저 막막해졌다. 

중국 지도부가 나서서 과학적·정밀 방역을 외치며 방역 완화를 시도하곤 있지만, 일선 방역 현장에선 코로나 확진자 급증세에 따른 책임 회피를 위해 여전히 봉쇄 중심의 강도 높은 방역을 강행하면서 경제에 충격이 가해지고 있다. 

일본 투자은행(IB) 노무라증권은 최근 보고서에서 현재 중국 전체 국내총생산(GDP)의 21.1%에 해당되는 지역이 봉쇄 상태로, 이대로라면 4분기 성장률은 마이너스를 기록할 것이라고 관측했다. 

특히 카타르 월드컵 중계를 통해 마스크를 벗고 환호하는 전 세계인의 모습을 보면서 중국인들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은 커졌다. 중국 공산당이 3년간 시진핑 주석의 치적으로 선전해 온 제로코로나 정책에 대한 회의가 일기 시작한 것. 

제로코로나 정책으로도 전파력이 강한 오미크론 확진자 급증세를 막을 수 없다는 데에도 공감대가 형성됐다. 28일 중국 국가위생건강위원회(위건위)에 따르면 전날 중국 본토에서 유·무증상자 통틀어 3만8808명의 신규 지역사회 감염자가 보고되는 등 확진자 수는 연일 최고치를 경신 중이다. 

과거 중국 방역정책에 대한 항의가 일부 지식인이나 반체제 인사 중심으로 부분적으로 이뤄졌다면, 이제 일반 중국인들도 단결해서 위법 행위도 불사하고 정부의 부당한 방역정책에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게 예전과 다른 점이다. 

드류 톰슨 싱가포르국립대 리콴유 공공정책대학원 선임연구원은 블룸버그에 "지방정부의 부실한 행정관리 능력과 미흡한 방역관리, 지방 관료의 강압적인 행위에 대한 좌절의 표현"이라며 "이는 당에 실존적 위협을 가하진 않겠지만, 시진핑 주석으로선 확실히 당혹스러운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중국 수도 베이징에서 시민들이 유전자증폭(PCR) 검사를 받기 위해 길게 줄지어 서있는 모습. [사진=EPA연합뉴스]

 
당혹스러운 中 공산당···시위 진압 나설까
실제 중국 공산당 지도부는 난처한 상황에 빠졌다. 

​아무리 중국 지도부가 제로코로나를 외치며 과학적이고 정밀한 방역을 강조해도, 정작 현장에선 그걸 어떻게 하는 것인지 구체적인 방법도 모르고, 행정인력·물자도 부족한 상황이다. 방역을 어설프게 완화하려다가 확진자만 폭증하니 혹시라도 방역에 소홀했다는 책임을 물을까봐 다시 예전의 봉쇄 방식으로 되돌아가고 있는 것. 

게다가 중국은 백신 접종률, 특히 노년층 접종률이 비교적 낮은 데다가, 효력이 입증된 외국산 백신을 거부하고 자국산 백신만 고집해왔다. 중국보다 백신 접종률이 높은 국가도 위드코로나로 전환할 때 사망자·중증환자가 급증하는 등 진통을 겪었는데, 중국이 제로코로나를 완화하면 더 심각한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자국 사망자가 서방국보다 훨씬 적다는 점을 내세워 제로코로나 정책 우월성을 선전해 온 중국 공산당으로선 체면이 서질 않는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지난 27일에도 1면에 "중국의 과학적이고 정밀한 방역정책은 가장 경제적이고 효율적"이라며 제로코로나 선전을 이어가는 기사를 게재했다. 

일각에선 중국 지도부가 시위가 더 번지는 걸 막기 위해 진압할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스티브 창 런던대 중국 연구소장은 FT에 "(제로코로나) 정책과 지도부에 대한 추가 항의를 막기 위해 시진핑 주석이 어떤 형태로든 억압으로 돌아설 것으로 여긴다"고 전했다. 

페리 링크 캘리포니아대학 교수는 블룸버그에 "진압은 예측 가능하다"며 "시진핑 같은 사람의 반격에 대한 결심은 아주 단호하다. 그는 맞서 싸울 것"이라고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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