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장애 여성 간음한 70대 남성 무죄 확정...대법 "장애 인식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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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한지 기자
입력 2022-11-23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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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지적장애 3급 여성을 간음한 70대 남성에게 무죄가 확정됐다. 피해 여성이 정신적 장애로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상태에 있다는 것을 가해 남성이 인식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게 대법원 판시다.

대법원 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성폭력처벌법 위반(장애인 준강간) 등 혐의로 기소된 A(81)씨의 상고심에서 원심의 무죄 판결을 확정했다고 23일 밝혔다.

판결문에 따르면 지난 2018년 A씨(78)는 2018년 무료급식소에서 알게 된 피해자 B씨(48·지적장애 3급)를 이듬해 2월 한 달 동안 다섯 차례 성폭행한 혐의를 받았다.

그는 범행 때마다 "우리집에 가서 청소 좀 하자"는 말로 B씨를 집에 끌어들인 것으로 조사됐다. 또 A씨는 간음 이후 B씨에게 먹을 것이나 용돈으로 현금 1~3만원을 건넸다.

검찰은 A씨를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장애인 준강간), 간음유인 혐의로 기소했다. A씨 측은 “성관계를 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또 B씨에게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하지 못할 정도의 정신장애가 있었다고 한들, 자신은 인식하지 못했다고도 주장했다.

재판에서는 △'정신적인 장애'가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하지 못할 정도의 정신장애를 의미하는지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자라는 것을 가해 남성이 인지했는지가 쟁점이 됐다.

1심은 A씨에게 징역 4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1심 재판부는 "피해자의 정신적인 장애가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하지 못할 정도에 이르러야 하는 것은 아니"라며 "객관적으로 피해자의 성적 자기결정권의 행사를 비장애인보다 특별히 보호해야 할 필요가 있을 정도로 정신적인 장애가 있으면 족하다"고 봤다.

반면 2심은 무죄로 판단했다. 피해자가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하지 못할 정도의 지적장애로 항거불능·곤란 상태에 있었다는 점이 증명되지 않았다는 것이 2심 재판부 판단이다.

2심 재판부는 "'정신적인 장애'는 일상생활에서 상당한 제약을 받는 것을 넘어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하지 못할 정도의 정신장애를 의미한다"며 "피해자는 지적장애인 3급으로 등록됐지만 이는 지능지수가 50 이상 70 이하인 사람으로 교육을 통한 사회적 재활이 가능한 사람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또 △A씨가 일반 초등학교를 졸업한 점 △결혼과 임신 등 혼인생활을 통한 성생활을 해온 점 △진술상 정상적인 성관계와 성폭력을 명확히 구분하는 점 △싫어하는 것은 적극적으로 거부 표현을 하는 점 △두 사람이 여러 차례 함께 식사했다는 점도 고려됐다.

대법원은 2심의 무죄 판단은 유지하면서도, 2심의 해석이 잘못됐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대법원은 피해자의 장애가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하지 못할 정도인지가 절대적인 기준이 되는 것은 아니라며 2심 판단을 꼬집었다.

대법원은 성폭력처벌법상 '신체적·정신적인 장애로 항거불능·곤란 상태'는 항거불능·곤란 상태에 있는 경우뿐만 아니라 장애가 주 원인이 돼 심리적·물리적으로 반항이 곤란한 상태에 이른 경우를 포함한다고 판시했다. 

B씨가 세 번째 범행을 당한 뒤 인근 식당 주인을 찾아가 울면서 "또 가자고 하면 어떻게 하냐"고 말한 점, 식당 주인이 경찰에 신고했지만 이후에도 B씨는 A씨의 요구를 거부하지 못했다는 점에 대해 대법원은 이를 '정신적 장애로 인한 항거불능·곤란 상태'로 판단했다.

대법원은 또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계와 주변 상황·환경, 가해자의 행위 방식, 피해자의 인식·반응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는 기준도 재확인했다. '장애의 정도'만이 아니라 사건 당시의 조건 전반을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법원이 A씨가 무죄라는 결론은 뒤집지 않은 건, 평소 두 사람의 관계를 볼 때 A씨가 B씨의 상태를 인식하지 못했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대법원은 "피고인은 이 사건 발생 1년 전부터 B씨를 만나면 심부름을 시키고 용돈이나 먹을 것을 주는 등 알고 지냈고, 집을 청소해달라며 데려가 성폭행한 뒤 먹을 것이나 돈을 준 사실을 알 수 있다"며 "A씨로서는 B씨가 장애로 인해 항거불능·항거곤란 상태에 있었음을 인식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성폭력처벌법상 정신적인 장애가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하지 못할 정도의 장애'로 제한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해 하급심의 혼란을 해소했다"며 "향후 유사 사건의 판단에 지침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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