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카카오 서비스 '먹통' 사태, 만일 이용약관 그대로 적용했다면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윤선훈 기자
입력 2022-11-08 17:30
    도구모음
  • 글자크기 설정

경기 성남시 판교역 인근 ‘알파돔시티’ 6-1 블록에 위치한 카카오 신사옥 '아지트'의 모습. [사진=카카오]

SK C&C 데이터센터 화재로 인한 카카오 서비스 장애 사태가 벌어지고 카카오와 그 계열사들의 이용약관이 주목받았다. 1차적으로 서비스 장애가 발생할 시 이용자에 대한 피해 보상은 약관을 따르기 때문이다. 취재를 위해 약관을 살펴보면서 약관 내 손해배상 면책 조항이 곳곳에 있다는 점을 파악했다.

이를테면 카카오 통합서비스 약관 제15조2항에는 '천재지변 또는 이에 준하는 불가항력 상태에서 발생한 손해'가 손해배상 면책 조항에 포함됐다. 광고서비스 운영정책 제14조1항에는 '인터넷데이터센터(IDC) 장애, 기간통신사업자의 회선 장애 또는 이에 준하는 회사의 귀책 없는 사유로 인해 광고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는 경우 광고 제공에 관한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명시됐다.

당초 카카오 유료서비스 이용약관 제12조1항2호에 '정전, 정보통신설비의 장애 또는 고장, 이용량 폭주나 통신두절 등으로 정상적인 서비스 제공에 지장이 있는 경우' 보상할 수 있다는 식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실제 해당 항목에는 보상 관련 명시적 표현은 없다. 유료서비스 제공이 불가능한 경우의 환불 관련 항목이 제17조에 있기는 하지만 이는 이번 서비스 장애 사태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다시 말해 카카오 약관 전반에 이 같은 사태에 대한 보상 정책 자체가 미진하다는 의미다.

네이버에도 유사한 면책 조항이 발견된다. 네이버 스마트스토어 이용약관 제33조에는 "컴퓨터 등 정보통신설비의 보수·점검·교체·고장, 통신두절 등의 사유가 발생한 경우 판매서비스의 제공을 일시적으로 중단할 수 있으며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없는 한 책임지지 않는다"라는 항목이 있다. 제32조에 "회사의 과실로 인한 결제 장애가 2시간(휴일 4시간) 이상 지속된 경우 판매회원의 손해를 배상한다"고 명시되기는 했지만, 이는 구매결제 단계의 장애에만 한정된다는 맹점이 있다.

네이버의 이용약관에도 "천재지변 또는 이에 준하는 불가항력으로 인해 네이버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어 발생한 손해에 대해서는 책임을 부담하지 않는다"라며 "네이버가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하더라도, 통상적으로 예견이 불가능하거나 특별한 사정으로 인한 특별손해나 간접손해, 기타 징벌적 손해에 대해서는 관련 법령에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 책임을 부담하지 않는다"라는 항목이 있다. 네이버의 귀책사유가 뚜렷할 경우에만 책임지고 손해배상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즉 만일 양사가 약관을 액면 그대로 적용했다면 이번 서비스 장애 사태로 인해 피해를 입은 여러 사업자·이용자에 대해 보상을 굳이 해 줄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서비스 장애가 근본적으로 SK C&C 데이터센터의 화재로 발생한 불가항력 사태라고 항변하면 된다. 플랫폼에 전적으로 영업을 의존하는 사업자들과 플랫폼을 일상 속에서 이용하는 이용자들이 광범위하게 피해를 봤음에도 약관을 이유로 합당한 보상을 받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었던 셈이다. 네이버와 카카오가 우리 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감안하면 놀랄 만큼 허술한 약관이다.

이는 결국 실제 부작용을 유발하고 있다. 이날 스마트스토어 등 일부 서비스가 수시간 동안 중단됐던 네이버 측에서는 스마트스토어 약관을 이유로 입점 상인들에게 별다른 보상을 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카카오모빌리티의 경우 약관에 따라 택시·대리운전 기사들에게 6일치 이용료 상당의 포인트를 지급했지만 택시기사에게는 7550원, 대리운전 기사에게는 4260원 상당만 지급하는 데 그치면서 보상안을 내놓고도 반발만 키웠다. 결국 양사의 이용약관이 이러한 재난 상황에 전혀 대비돼 있지 않음을 방증한다.

다행히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방송통신위원회에서 카카오의 이용자 피해 보상을 촉구하며 가이드라인 마련에 나섰고, 카카오 역시 비교적 빠르게 약관을 넘어선 수준의 보상안 마련을 약속했다. 구체적인 보상 규모가 완전히 다 나온 것은 아니지만 카카오가 보상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수차례 강조한 만큼 보상 총액은 상당할 전망이다. 다만 곳곳에서 보상안 수준과 보상 대상을 놓고 여전히 뒷말이 나오는 것을 보면 카카오의 보상이 마무리되기까지 가야 할 길은 먼 것처럼 보인다. 지금까지 카카오가 여러 유료서비스 이용자들을 대상으로 보상안을 발표했지만 아직 택시기사, 소상공인 등 보상안을 두고 머리를 맞대야 할 이해관계자들이 많이 남아 있다.

플랫폼의 역할은 서비스 제공자와 소비자 간의 원활한 연결이다. 특히 네이버와 카카오는 사실상 국내 대부분의 사람들이 활용하는 거대 플랫폼이기도 하다. 이들은 엄청난 숫자의 활성 이용자들과, 플랫폼을 활용해 다양한 사업을 펼치는 여러 사업자들을 통해 막대한 수익을 얻는다. 그렇다면 아무리 불가항력적인 상황이라도, 이번 사태를 계기로 서비스 중단 피해에 따른 도의적인 책임을 지는 내용을 약관상으로도 더 강화해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거대 플랫폼이 지닌 '왕관의 무게'일 테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실시간 인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