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식 칼럼] '얌전한 트럼프' 바이든에 제대로 대처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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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식 객원 논설위원
입력 2022-09-20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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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식 위원]

‘얌전한 트럼프.’ 미국 바이든 대통령을 대하는 국제사회 시선이다. 트럼프에 빗댄 이 말에는 바이든 정부 또한 본질적으로는 트럼프 정부와 다르지 않다는 뜻을 담고 있다. 트럼프는 ‘아메리카 퍼스트’를 외치며 집권기간 내내 국내는 물론 국제사회와 좌충우돌했다. 공화당 트럼프 정부에 넌덜머리 난 미국 국민들은 민주당 바이든 정부를 선택했다. 바이든 정부 출범 이후 주변국들은 공존을 통한 국제질서 회복을 기대했다. 그러나 희망사항에 불과했다. 바이든 정부 또한 ‘메이드 인 아메리카’를 외치며 자국 이기주의에 올인(all in)하는 모습이다.

바이든 정부는 최근 ‘반도체 과학법’과 ‘IRA(인플레이션 감축법)’을 잇따라 제정하면서 소프트 냉전을 촉발했다. 반도체 과학법은 중국 견제와 고립, 미국 경쟁 우위 확보를 목표로 한다. 이를 위해 반도체와 첨단기술 생태계 육성에 2800억 달러(약 365조원)를 투자한다. 또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건설할 경우 25% 세액 공제 혜택도 있다. 보조금을 받는 기업은 향후 10년간 중국에 반도체 시설을 신규 투자하거나 확충할 수 없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곤혹스런 처지에 놓였다. 미국에 투자할 때는 혜택을 받지만 가동 중인 중국 현지 공장에 대한 추가 투자는 안 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난감한 상황에 처했다.

IRA법 역시 넋 놓고 있다 뒤통수 맞은 격이다. IRA법은 미국을 포함 북미에서 생산되는 전기차에만 보조금을 지급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한국자동차 산업에는 큰 타격이다. 우리 정부는 부랴부랴 미국 정부를 상대로 관련 법 개정을 요구하고 나섰지만 낙관적이지 않다. 미 행정부 기류를 감안하면 현실적인 개정 가능성은 희박하다. 13일 백악관에서 열린 IRA법 통과 축하행사는 이 같은 우려를 반영한다. “역사를 한 단계 진전시킨 법”(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이름부터 너무 아름다운 삶을 바꿔놓을 법”(낸시 펠로시 하원의장). 우리 정부는 “미국 정부와 백악관도 문제 심각성을 알고 있다”는 말로 모면하려 하지만 ‘희망고문’에 그칠 수 있다.

세계는 반도체 패권전쟁에 돌입한 지 오래다. 세액 공제는 물론이고 현금 지원까지 파격적이다. 미국은 반도체 과학법, 대만은 인력 양성과 규제 개혁, 일본은 해외 반도체 기업 유치, 유럽은 반도체법 발의(430억 유로 지원), 독일은 인텔 마그데부르크 공장 투자에 8조9000억원 지원 등이다. 미국은 최근 텍사스에 반도체 공장을 짓는 대만 기업에 현금 보조금 5억4000만 달러(약 7500억원)를 포함 설비 투자금의 절반을 지원했다. 일본도 구마모토에 투자하는 대만 TSMC에 공장 건립비용 절반에 해당하는 보조금 4760억엔(약 4조5000억원)을 지원했다. 또 중국은 사업계획서만 있으면 정부가 부지를 제공하고 은행 대출도 알선하고 있다.

우리 정치권은 어떤가. 지나치게 한가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국민의힘이 8월 4일 발의한 ‘반도체산업경쟁력 강화법(K칩스법)’은 두 달 가까이 진전이 없다. 국민의힘은 당적을 초월해 양향자 의원(무소속)을 중심으로 관련 법안을 마련했지만 논의조차 안 되고 있다. ‘K칩스법’은 세액공제 확대와 반도체 인력 양성을 담고 있다. 양향자 반도체특위 위원장은 “미국은 반도체 기업에 대해 25% 세액공제와 68조원 규모 보조금을 지급한다. 또 중국은 반도체 기업 법인세를 10년 동안 면제하며, 대만은 반도체 학과 신입생을 연간 두 차례 모집하는 등 세계적으로 반도체 전쟁은 치열하다”며 K칩스법 처리를 당부했지만 50일 넘도록 잠자고 있다.

‘K칩스법’이 터덕대는 가장 큰 이유는 더불어민주당의 미온적 태도 때문이다. 민주당은 ‘K칩스법’이 대기업을 위한 법이라며 부정적이다. 반도체산업 경쟁력 강화는 정파적 시각에서 접근할 사안이 아니다. 세계적인 반도체 패권전쟁 파고를 어떻게 헤쳐 나가야할지 넓은 안목에서 봐야 한다. 그럼에도 최근 민주당 행보는 우선순위가 바뀌었다. 정작 필요한 법안 처리는 소홀한 반면 지지층에 기댄 법안 처리는 신속하다는 비등한 비판에 직면했다. 민주당이 추진 중인 ‘노란봉투법’과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이 같은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노란봉투법’은 노동조합이 불법 쟁의행위를 하더라도 사업주가 손해배상 청구를 못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경영계는 ‘노란봉투법’을 선의로 포장한 포퓰리즘 법안으로 판단하고 있다. 물론 사업주가 손해배상 소송을 남발할 경우 정당한 쟁의 활동을 위축시킬 우려가 없는 게 아니다. 그렇다고 불법행위까지 면책한다는 건 과잉 입법이다. 국민 공감대를 얻기 어려울뿐더러 극단적인 쟁의활동이 만연할 수 있다. 노조 불법행위에 기업이 손해배상 청구조차 할 수 없다면 노조 이기주의도 우려된다. 불법행위에 따른 책임을 묻지 않을 것이라면 노동 관련법도 필요가 없다. ‘노란봉투법’이 국회를 통과하면 노동조합 지지를 얻을 수 있고,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정권을 비판할 수 있다는 얄팍한 계산에서 의도했다면 책임 있는 야당은 아니다.

민주당이 ‘쌀값 정상화법’이라고 명명한 양곡관리법 또한 비슷한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양곡관리법은 초과 생산된 쌀을 정부가 의무적으로 시장가격에 매입하는 내용이다. 농민들 고충을 덜어주자는 취지를 모르는 바 아니다. 하지만 지금도 양곡관리 부담이 상당한 상황에서 재정 부담을 가중시키고 자칫 시장기능을 왜곡할 수 있다. 국민의힘이 ‘날치기’라고 반발하는 가운데 민주당은 다수의석을 앞세워 27일 본회의에서 처리할 계획이다. 두 법안이 민주당 의도대로 통과된다면 적지 않은 반발과 부작용이 예상된다. 반도체 전쟁에 대응하기 위한 ‘K칩스법’은 나몰라하면서 포퓰리즘 법안 처리에는 일사불란한 정당이라면 국민 지지를 얻기 어렵다.

미국 반도체 과학법과 IRA법안 처리에서 봤듯 국익은 동맹을 앞선다. 미국이 말하는 동맹은 미국에 투자하고 미국 국민에게 이익이 될 때만 유효하다. ‘K칩스법’은 정치 문제가 아니다. 민주당은 반도체 패권전쟁을 제대로 인식해야 한다. 여야가 합심해 ‘얌전한 바이든’ 뒤에 감춰진 얼굴에 대처해야 한다. 과학기술에는 여당도 야당도, 진보도 보수도 없다는 말은 진실에 가깝다.


임병식 필자 주요 이력

▷국회의장실 부대변인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 ▷한양대 갈등연구소 전문위원 ▷서울시립대 초빙교수 ▷전북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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