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쉽고 바르게-2]⑧ 제주 '오름' 양평 '두물머리'…풍경만큼 아름다운 이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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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수정 문화팀 팀장
입력 2022-09-1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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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리산 노고단길 '무넹기' 물길 넘긴다는 뜻의 전라도 사투리

  • 남한강·북한강 물길 만나는 '두물머리'…한국관광 100선에

  • 출판인 모여 만든 '헤이리' 예술마을, 파주 전래 농요서 유래

  • 제주, 오름·올레 등 고유어 지명 240여개 '순우리말 보물창고'

정보통신기술 발달로 빠르게 변화하는 것 중 하나가 '언어'다. 언어는 세대 간을 비롯해 매체와 독자, TV와 시청자 간 각계각층 사이에 소통의 다리 역할을 한다. 하지만 문제는 '언어 파괴'다. 신조어가 넘쳐나고, 외국어 남용 또한 눈에 띈다. 심지어는 정부나 기관, 언론도 언어문화 파괴의 온상이 됐다. 

신조어와 줄임말, 외국어 등을 사용하면 언어가 새롭고 간결해질 수 있을지는 몰라도 서로 간의 이해를 돕진 못한다. 자칫 소통을 방해할 수도 있다. '쉬운 우리말 쓰기'가 필요한 이유다. 쉬운 우리말을 쓰면 단어와 문장은 길어질 수 있지만 아이부터 노인까지 더 쉽게 이해하고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사)국어문화원연합회는 국민 언어생활에 큰 영향력을 미치는 공공기관 보도자료와 신문·방송·인터넷에 게재되는 기사 등을 대상으로 어려운 외국어를 쉬운 우리말로 대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에 본지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우리 주변에 만연한 외국어와 비속어, 신조어 등 '언어 파괴 현상'을 진단하고, 이를 쉬운 우리말로 바꾸기 위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장기 연재하기로 한다. <편집자 주>


외국어가 넘쳐나는 세상이다. 지명도 예외는 아니다. 스마트시티, 센트럴파크, 테크노파크 등 외국어 이름이 붙은 지명은 셀 수 없을 정도다. 그뿐인가. 의미를 가늠할 수조차 없는 지명도 수두룩하다. 대한민국이 아닌 외국에 온 것은 아닌지 착각이 들 정도니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씁쓸함을 감출 길 없다. 
그래서일까. 순우리말로 이뤄진 국내 곳곳의 지명이 우리 정신을 흐트러뜨리는 외국어 지명 속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우리나라 골골샅샅에서 아름답게 빛나는 순우리말 여행지, 풍경만큼 이름도 아름다운 여행지를 소개한다. 
 

지리산 노고단으로 향하는 길에 설치된 표지판. 무넹기의 뜻과 유래에 대해 설명해 놓았다. [사진=기수정 기자]

◆산에 오르다 마주한 그 이름···무넹기를 아시나요? 

지리산 노고단으로 향하는 길에 표지판 하나가 눈길을 끈다. 그 표지판에는 '무넹기'에 대한 설명이 적혀 있다. 무넹기, 참 낯선 이름이다.

무넹기는 물길의 둑을 말하는 무넘기의 전라도 사투리란다. 물이 부족해 노고단 부근 계곡물 일부를 화엄사 계곡으로 돌렸다고 해서 '물을 넘긴다'는 뜻인 무넹기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름 유래를 자세히 살펴보면 이렇다.

1929년 일제강점기 때 전라남도 구례군 마산면에 큰 저수지를 건설했다. 농업용수 확보와 물관리를 위한 시설이었다. 그런데 이 저수지에 물이 차질 않았다. 원인을 알아보니 지리산 계곡에서 내려오는 물길 방향이 저수지를 채우기에 충분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가뭄이 들자 마을 주민들은 이듬해인 1930년에 해발 1300m 노고단에서 전북으로 내려가는 물줄기 중 일부를 저수지 방향으로 틀었고, 구례 화엄사 계곡으로 내려올 수 있도록 유도 수로 224m를 개설했다.

그렇게 저수량을 확보하면서 물 공급이 원활해졌다고 한다. 지금 무넹기는 저수지로 향하는 물길 기능은 없어져 일반 하수도로 사용되고 있다.
 

햇살과 물안개, 황포돛배, 느티나무가 한데 어우러진 두물머리 아침 풍경. [사진=한국관광공사 ]

◆남한강과 북한강 물줄기가 만나는 곳···두물머리 

가 보지 않은 이가 거의 없을 정도로 유명한 경기도 여행지로 손꼽히는 곳이 있다. 바로 '두물머리'다. '양수리'라고 불렀던 그곳 맞다. 

두물머리는 남한강과 북한강 두 물줄기가 만나는 지역이다. 환경정책기본법, 수도법, 하천법 등 각종 법으로 개발이 제한되었던 곳이라 자연환경이 잘 보전돼 있다. 

​두물머리는 예부터 아름답기로 명성이 자자했다. 한국관광 100선에 선정되기도 했다.

이른 아침 떠오르는 햇살과 피어나는 물안개, 황포돛배, 그리고 400년 넘은 느티나무가 어우러진 두물머리는 사계절 내내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한다.

두물머리의 때 묻지 않은 풍경을 볼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은 두물머리 물래길을 걷는 것이다.

두물머리 물래길은 두물머리 인근을 한 바퀴 도는 10㎞ 걷기 길 '두물머리 물래길'도 양수역에서 출발해 세미원, 두물머리, 다온광장(두물경), 양수리환경생태공원, 남한강 자전거길 등 주변 생태 여행지를 두루 들러볼 수 있다. 
 

파주 헤이리 예술마을 [사진=한국관광공사]

◆우리가 자주 찾던 헤이리도 순우리말?

경기 파주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 '헤이리 예술마을'의 '헤이리'도 순우리말이다. 헤이리는 파주 지역 노동요 받음구 후반에 나오는 '에 헤이 에 헤이리'에서 따왔다고 한다. 

통일동산 관광특구 내에 자리한 이곳 헤이리 마을은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을 꿈꾼다. 일정한 자격 조건을 갖추고 심사에 통과한 다양한 분야의 창작자와 예술가 300여 명이 공동체 마을을 이뤄 살아간다.

이곳 건축가들은 페인트를 쓰지 않고 지상 3층 높이 이상은 짓지 않는다는 기본 원칙에 따라 자연과 어울리는 건물들을 설계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안과 밖이 구분되지 않는 건물, 지형을 그대로 살려 비스듬히 세워진 건물, 사각형 건물이 아닌 비정형 건물 등 각양각색 건축물들이 개성을 뽐내며 서 있다. 헤이리 길은 반듯하지 않고, 자연이 만든 굴곡을 그대로 따라간다.

파주 헤이리 예술마을은 출판인 중심으로 통일동산 지구에 책마을을 만들자는 생각에서 출발한 곳이다. 출판인과 예술인이 모여 회원으로 가입하고 마을 조성을 추진할 당시 이 마을 명칭은 서화촌(書畵村)이었다. 

어려웠던 시기에 서화촌은 더 많은 회원이 필요했고 현대적이면서 국제적인 느낌을 주는 새 이름 찾기에 나섰다. 그렇게 1998년 마을 이름을 공모한 끝에 바로 '헤이리'가 탄생했다. 

얼핏 보면 외국어라는 착각이 드는 '헤이리'는 마을이 들어선 탄현면 지역 전래농요 '헤이리소리'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그 자체에 특별한 뜻이 있지는 않으나 '~리'로 끝나는 어감이 마을 이름에 퍽 잘 어울릴 뿐 아니라 현대적 감각에 지역성까지 품은 우리말이란 점이 더 가치 있게 느껴진다. 
 

제주에 있는 오름 중 한 곳인 '아끈다랑쉬오름' 전경. 여기서 '아끈'은 '작은'이라는 뜻의 제주말이다. [사진=한국관광공사 ]

◆순우리말의 보물창고, 제주에 있었네 

제주는 '순우리말' 지명이 넘쳐나는 섬이다. 제주 사투리가 대다수지만 외국어와 외래어, 신조어 등이 남용되는 이 시대에 우리말 이름이 붙은 곳곳을 제주에서 쉽게 마주할 수 있다는 것은 퍽 반가운 일이다. 

제주에는 순우리말로 이뤄진 고유어 지명이 240여 개에 달한다. 특히 제주 순우리말 고유어 지명 중 오름 이름이 157개로 가장 많다.

오름은 '오르다'의 명사형이다. 산이나 봉우리를 이르는 기생화산들을 일컫는 제주의 순우리말이다.

제주 360여 개 오름 중엔 뒤굽은이오름, 가메오름, 궤펜이오름, 불칸디오름, 세미소오름 등 독특한 순우리말 지명이 있다.

가메오름은 가마(솥)처럼 생긴 오름 모양새에서 유래했고, 불칸디오름 중 '불칸디'는 '불탄 데'의 제주 고유말이다. 제주에선 기슭에 동굴(궤)이 있는 오름을 '궤펜이오름'으로 불렀다.

이 밖에 제주의 독특한 순우리말 지명으로는 다라쿳, 새정드르, 어영, 웃무드내 등도 있다. 여기서 다라쿳은 '높은 곳 숲이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많은 이가 발도장을 찍은 제주 '올레길'의 '올레'도 우리말이다. 자세히 말하면 '골목'을 뜻하는 제주 사투리다. 
 

괴산 산막이옛길을 찾은 여행객들. [사진=기수정 기자]

◆산막이옛길·강릉 바우길···정겨운 우리말 산책길이 우리네 발길 이끄네  

힘들지 않게 편한 쪽 길로 돌아가는 에움길, 마을의 좁은 고샅길, 잡풀이 무성한 푸서리길, 오솔길, 휘어져 잘 안 보이는 후미길, 강가나 바닷가 벼랑의 험한 벼룻길, 하얀 눈이 소복이 내린 뒤 아직 아무도 지나가지 않은 숫눈길···. 우리가 걷는 모든 길에서도 순우리말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요즘 으뜸 여행지로 손꼽히는 '걷기길'도 예외는 아니다. 대부분 고유어나 그 지역 방언으로 이름을 지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둘레길'이다. '둘레'는 '사물의 테두리나 바깥 언저리'를 뜻하는 고유어다. 걷기 열풍이 지친 현대인들에게 하나의 흐름으로 자리 잡으면서 한반도 남단을 걸어서 모두 둘러볼 수 있는 둘레길 군단은 최근 완전체로 거듭났다. 

최근 떠오르는 충북 괴산 여행지 '산막이옛길'도 우리말이다. '산막이옛길'의 '산막이' 역시 '산(이) 막다'에서 파생된 말이므로 고유어로 볼 수 있다.

산막이옛길은 산막이 마을로 가는 옛길 총 10리를 이르는 말로, 괴산을 찾는 이들이 자연을 즐기며 천천히 걸을 수 있도록 괴산군에서 복원해 산책길로 만들었다. 

어디 그뿐이랴. '자드락길'도 있다. '자드락'은 '나지막한 산기슭의 비탈진 땅'을 뜻하는 고유어로, 제천 '자드락길'이 유명하다. 이 밖에 강원 강릉에 가면 '바우길'을 마주할 수 있다. '바위'의 강원도 사투리를 사용한 이름이다.

여행업계 관계자는 "외래어와 외국어가 판치는 세상이다. 새로 만들어지는 여행지(또는 지명)는 한자어나 영어가 즐비한데, 우리나라 걷기 길 곳곳은 물론 지역을 오가며 마주한 여행지 이름이 순우리말로 지어졌다는 것이 새삼 뿌듯함을 안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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