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준호 칼럼] 꾸밈없고 소탈했던 '카리스마 경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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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준호 금융부 부장
입력 2022-08-31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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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나모리 가즈오 공식 홈페이지]

 
일본 굴지의 기업 교세라와 다이니덴덴(KDDI), 일본항공(JAL)에서 막강한 리더십을 발휘했던 ‘카리스마 경영인’ 이나모리 가즈오(稲盛和夫) 명예회장이 24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0세. 교세라 측은 30일 이나모리 회장이 지난 24일 오전 8시 25분 교토시 자택에서 영면했다고 밝혔다. 이나모리 회장의 장례는 가족장으로 치러졌다.
 
1932년 일본열도 최남단 가고시마(鹿兒島)에서 태어난 고인은 일본 경제계에서 ‘경영의 신’, ‘카리스마 경영인’이라 불렸다. 파나소닉을 창업한 마쓰시타 고노스케(松下幸之助) 회장이 ‘쇼와(昭和)시대의 카리스마’였다면, 이나모리 회장은 ‘헤이세이(平成)시대의 카리스마’다.  
 
이나모리 회장은 교세라 회장 시절부터 취재기자들을 만나면 늘 “저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아저씨예요”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이나모리식 경영을 배우기 위해 찾아온 경영인 앞에서도 “저는 낙제만 반복했던 콤플렉스 덩어리”라고 자신을 낮춰 소개했다. 임직원들과는 회사의 미래를 얘기하면서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면 좋을지 열변하고 토론하기를 좋아했다. 그래서 이나모리 회장을 ‘카리스마가 넘쳐 흐르지만, 꾸미지 않는 소탈한 아저씨’로 기억하는 일본사람들이 많다. 

◆ 결혼으로 맺어진 한국과의 인연 

이나모리 회장은 생전에 한국과 깊은 인연을 맺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교세라를 창업하기 직전인 1958년 일본에서 태어나 한국에 귀국한 우장춘 박사의 넷째 딸 스나가 아사코(須永朝子)씨와 결혼했다. 아사코씨는 이나모리 회장이 대학 졸업 후 취업한 첫 직장의 동료였다. 아사코씨는 매일 야근하던 그를 안쓰럽게 여겨 몰래 도시락을 자리에 올려놓고 가곤 했는데, 그게 인연이 됐다.
 
이나모리 회장이 명예회장으로 운영에 참가한 일본 프로축구단 교토퍼플상가(교토상가FC)는 한일 월드컵이 열리기 직전인 2000년에 박지성을 영입했고, 2003년 고종수, 2004년 최용수 등 한국인 선수를 잇따라 데려갔다. 당시 박지성 선수가 이적을 고민하자 팀 잔류를 직접 요청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2012년 하나금융그룹의 초청을 받고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12가지 경영원칙’을 주제로 강연회도 열었다. 2016년 이나모리 회장의 경영철학을 배우기 위해 만든 ‘세이와주쿠(盛和塾)’를 한국에도 설립해 약 1만 명의 수강생을 배출하기도 했다. 

◆ 경영인 배출의 산실 '세이와주쿠' 세우다  

세이와주쿠는 이나모리 회장의 경영철학을 배우고 싶다는 젊은 경영인들의 요청으로 1983년에 설립된 경영 아카데미다. 1989년에 공식 명칭을 세이와주쿠로 변경한 뒤 일본 곳곳에 설립됐다. 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 회장도 세이와주쿠 수강생 출신이다. 

세이와주쿠는 중소기업 경영인을 위한 아카데미였다. 이나모리 회장은 중소기업 경영인의 고민을 듣고 해결책을 제시하기도 했는데, 그의 눈높이는 언제나 중소기업 경영인에게 맞춰져 있었다. 세이와주쿠에서 수강한 경영인들은 "무엇을 위해 경영을 해야하는지 그 원점(原点)을 배웠다"는 후기를 가장 많이 남겼다. 
 
하지만, 세이와주쿠는 2019년에 문을 닫았다. 이나모리 회장이 스스로 내린 결정이다. 수강생들에게 메시지를 보내  문을 닫기로 한 이유를 직접 설명했다.

그는 수강생들에게 보낸 메시지에 “2019년 1월에 87세가 됩니다. 지금까지 여러분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모두 전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힘이 닿는 데까지 세이와주쿠에 심혈을 기울여왔습니다. 그러나 최근 들어 몸이 말을 듣지 않기 시작했습니다. 세이와주쿠는 1대에서 끝내겠다고 공언해왔습니다. 조직을 남기고 떠나게 되면, 언젠가는 조직을 악용하거나 조직의 이름을 더럽힐 사람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를 대신해 누군가가 이나모리의 철학을 해설한다면, 그것은 이미 ‘이나모리 철학’이 아닙니다. 해설하는 사람의 생각이 투영되기 때문입니다”라고 적었다. 

◆ 부와 권력을 버리고 불교에 귀의

이나모리 회장은 어린 시절 할머니가 집에서 경을 읽는 모습을 보면서 불교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한다. 1997년 불교 선종의 일파인 임제종(臨済宗) 엔푸쿠지(円福寺)에서 대화(大和)라는 법명을 받고 귀의했다. 귀의 후 수행의 길로 들어서기도 했다. 부와 권력을 모두 버린 수행길에서 이타(利他)의 마음을 깨달았다고 한다.

이나모리 회장은 불교에 귀의한 후 경영에 불교 이념도 접목시켰다. 그는 생전에 “이기(利己), 자신을 이롭게 하기 위해 이익을 추구하는 일을 멀리하고, 이타(利他), 타인을 위해 이익을 추구하겠다는 마음으로 회사를 경영하면, 회사는 정말로 크게 성장할 수 있습니다”라고 자주 말했다. “이타의 정신이 없으면 기업은 몰락한다”는 경고도 서슴치 않았다.
 
2015년 이나모리 회장은 강연장에서 “이기적인 대응책을 구사하면 반드시 알력이 생기게 됩니다. 이기적인 욕망을 원동력 삼아 사업을 성공시키게 되면, 경영자는 겸허함을 잃고 교만한 태도로 사람을 대하게 됩니다. 그것은 회사 발전에 헌신한 직원에게까지 전달됩니다. 겸허함을 상실한 경영자의 모습은 서서히 회사 내부에 불협화음을 만들어 결국 회사의 몰락을 초래하는 원인이 됩니다”라고 했다. 

 

이나모리 가즈오 명예회장 (사진=이나모리 가즈오 홈페이지) 



◆ 인생 마지막 경영 봉사 '일본항공(JAL) 재건' 

2010년 2월. 파산 직전에 내몰린 일본항공의 재건을 위해 팔을 걷어붙인 것도 ‘이타의 마음’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이나모리 회장은 평소 일본항공을 이용하지 않았던 고객으로 유명했다. "일본항공 직원들은 매뉴얼 만능주의에 빠져 오히려 서비스의 질이 낮다"고 혹평했을 정도다.

그러나, 일본항공이 사라지고 전일본공수(ANA)가 항공시장을 독점하게 되면, 결국 일본 경제 전체에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판단했다. 일본항공과 ANA가 경쟁을 할 수 있는 체제를 만들어야 이용자들의 불편도 사라질 것이라 확신했다. 주변의 반대에도 법정관리 중이던 일본항공의 무보수 회장으로 취임해 2년 8개월 만에 일본항공의 경영을 정상궤도에 올려놨다.  

이나모리 회장은 일본항공 경영 재건 중 오사카 이타미공항을 시찰했는데, 공항 카운터에 근무하던 젊은 여직원이 월 2000엔(약 2만원)의 비용삭감 성과를 발표한 적이 있다. 비용절감 금액이 너무 적어 주변 임원들은 당황했는데, 그는 “이러한 노력이 가장 중요하다”고 극찬했다는 일화가 있다. 직원 한 사람 한 사람의 비용을 줄이기 위한 노력이 금액보다 중요하다는 게 이나모리의 경영철학이다.  

◆ "동기는 선한가? 사심은 없는가?" 평생을 되묻다 

이나모리 회장은 어떠한 결단을 내릴 때, 항상 “동기는 선한가?”, “사심은 없는가?”를 자신에게 되물었다고 한다.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얻고 나서야 움직였다. 그의 경영철학은 여기서 출발한다.
 
1984년 통신사업 자유화가 선언되자 가장 먼저 교세라가 시장진입을 위해 손을 들었다. 교세라는 자금을 투입해 첫 민간 통신사 다이니덴덴(DDI)을 창업했다. DDI는 설립 후 KDD와 일본이동통신과의 합병을 거쳐 지금의 KDDI가 됐다. KDDI는 일본통신기업 2위 업체로 성장했다. 이나모리 회장은 통신시장 진출이란 큰 결단을 내릴 때도 동기가 선한지, 사심이 없는지를 자문자답했다. 결국 민간이 진출해야 국유기업인 NTT의 독점을 막고, 요금인하 경쟁을 유도해 이용자들의 부담을 덜어줄 수 있다는 답을 내렸다.
 
도와달라는 부탁이 들어오면, 세상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는 신념도 이 질문에서 얻은 답이다. 경영난에 빠진 복사기업체 미타공업이 경영 회생을 요청하자 자신의 경영기법 ‘아메바경영’을 도입해 짧은 기간에 기업을 살려낸 것도, 일본항공의 경영재건을 요청받아 무보수로 일한 것도 모두 “동기는 선한가? 사심은 없는가?”라는 질문에서 얻은 해답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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