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산업계가 섭섭해할 만했다. 엔비디아가 AI 시대의 핵심 파트너로 대만과 한국을 선택하고 일본은 건너뛴 것 아니냐는 반응이 나왔다. 일본이 생성형 AI와 첨단 반도체 경쟁에서 밀리고 있다는 우려와 맞물리면서 ‘일본 패싱’이라는 말까지 돌았다.
한국 방문이 끝난 지 한 달여 만인 7월 15일, 젠슨 황은 일본만 따로 찾았다. 2025년 10월 이후 약 9개월 만의 공식 방문이었다. 이번에는 일본 기업들과 준비한 협력안을 한꺼번에 공개했다. 그는 도쿄에서 “피지컬 AI는 일본에 큰 기회”라고 말했다. “일본 AI의 시작”이라는 표현도 썼다. 국가의 지능은 국내에서 육성하고 발전시켜야 한다며 소버린 AI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미즈호금융그룹은 자체 AI 계산 기반을 구축하기 위해 엔비디아와 손잡았다. 고객 정보와 기업 기밀을 외부로 내보내지 않고 은행 내부에서 AI를 활용하기 위해서다. 문서 작성과 정보 수집, 여신 판단 등 사람이 맡아온 업무의 상당 부분을 AI로 전환할 계획이다.
일본의 국책 피지컬 AI 기업 ‘노에트라’도 엔비디아의 최신 반도체를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노에트라는 소프트뱅크와 NEC, 혼다, 소니그룹이 중심이 돼 설립했다. 일본 기업 44곳이 출자했고, 정부도 최대 1조엔을 지원한다.
젠슨 황이 일본에서 본 것은 AI가 자동차를 운전하고, 로봇을 움직이며, 공장과 조선소의 생산 방식을 바꾸는 가능성이었다. 일본은 생성형 AI 경쟁에서 미국과 중국에 뒤처졌다. 세계를 대표하는 AI 모델도 아직 없다. 하지만 AI가 현실 세계의 기계와 결합하는 단계에서는 사정이 다르다.
일본에는 도요타와 혼다가 있다. 화낙과 야스카와전기, 가와사키중공업도 있다. 정밀 모터와 감속기, 센서, 산업용 로봇, 공장 자동화 기술에서 오랜 경쟁력을 갖고 있다. 수십 년 동안 제조 현장에서 쌓은 데이터도 중요한 자산이다. 피지컬 AI는 이런 일본의 강점을 다시 살려내고 있다. 생성형 AI가 글과 그림을 만드는 기술이라면 피지컬 AI는 현실의 기계를 움직인다. 공장에서 로봇이 일하고, 자동차가 스스로 달리며, 조선소의 생산 공정을 AI가 관리한다.
낮에는 피지컬 AI와 소버린 AI를 이야기하고 저녁에는 세가와의 오래된 인연을 확인했다. 밤에는 일본 기업인들과 술잔도 기울였다. 일본 방문이 단순한 계약 발표에 그치지 않았음을 보여줬다. 엔비디아에도 일본은 놓칠 수 없는 시장이다. AI 반도체가 데이터센터를 넘어 자동차와 로봇, 공장 설비에 들어가면 시장은 훨씬 커진다. 젠슨 황이 일본 제조업의 가능성을 강조한 데에는 냉정한 사업적 판단도 깔려 있다.
몇 주 전까지만 해도 일본은 젠슨 황의 아시아 순방에서 빠진 나라로 보였다. 그러나 이번 방문으로 상황은 달라졌다. 일본은 건너뛴 나라가 아니었다. 중국과 대만, 한국과 다른 역할을 맡은 별도의 무대였던 것이다.
가장 늦게 방문했지만 젠슨 황이 일본에서 풀어놓은 보따리는 작지 않았다. 도요타의 미래도시와 자동차, 가와사키중공업의 조선소, 일본 기업 44곳이 참여한 피지컬 AI 프로젝트가 포함됐다. 세가와의 오래된 인연도 다시 확인했다.
일본은 생성형 AI 경쟁에서는 뒤처졌지만, AI가 로봇과 공장, 자동차를 움직이는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 젠슨 황이 일본에서 풀어놓은 가장 큰 보따리의 핵심도 바로 여기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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