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완의 월드비전] 핑크빛 짙어지는 美 '텃밭' 중남미... 중국 탓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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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완 논설위원
입력 2022-07-20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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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 정상회의 참석한 바이든 대통령 부부 (로스앤젤레스 로이터=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79·왼쪽)과 부인 질 여사(71)가 6월 8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미주 정상회의에 참석해 손을 흔들고 있다.





지난달 8∼10일 로스앤젤레스(LA)에서 미주 정상회의(the Summit of Americas)가 열렸다. 아메리카 대륙 35개국 대표들이 모여 경제 협력, 무역, 이민, 기후변화 등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회의로 약 3년마다 개최된다. 이 회의를 미국이 본토에서 개최한 건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 1994년 1차 회의 이후 처음이다. 조 바이든 대통령에게는 미국과 감정의 골이 깊어진 중남미 국가들을 달래고 미국의 '텃밭'으로 불리는 이 지역을 숨가쁘게 잠식하고 있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절호의 기회였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번 회의는 최근 중남미의 복잡한 지정학적 변화에 따른 미국의 리더십 공백, 그리고 바이든 행정부의 중남미 외교에 대한 심각한 난맥상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지난해 아프가니스탄에서 성급한 미군 철수와 더불어 바이든 행정부의 외교적 낭패 사례로 꼽힐 정도이다.       

미국이 1차 미주 정상회담을 개최한 28년 전으로 돌아가 보자. 당시 베를린 장벽과 소련의 붕괴 이후 지구상에 사실상 미국의 패권경쟁자가 존재하지 않았다. 중남미도 정치적 대전환기를 겪으며, 거의 모든 국가에서 군사독재자가 사라졌고 각국의 민주 정부는 미국에 우호적인 손짓을 보내고 있었다. 당시 1차 회의에 참석했던 각국의 정상들은 클린턴 대통령과 같은 테이블에 자리하려는 경쟁이 치열했다. 당시 미 행정부는 거의 1년 동안 멕시코와 브라질 등 주요 중남미 국가들과 긴밀한 협의를 통해 회의 준비에 완벽을 기했다. 그러나 올해 회의는 바이든 행정부의 준비 부족으로 개막식 전부터 파열음이 요란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독재국가인 쿠바·베네수엘라·니카라과 정상들의 초청을 저울질하다 민주당 내 강경파를 의식해 회의 개최 수 일을 앞두고서야 공식적으로 초청 대상에서 제외했다. 이에 멕시코의 좌파 정권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AMLO) 대통령은 미국이 아메리카 대륙 국가들의 연대와 결속이라는 원칙을 위반했다고 비난하며 회의를 보이콧 했다. 미국이 여러 차례 그의 입장을 바꾸려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불참 대열에 과테말라·온두라스·엘살바도르·볼리비아 정상도 동조했다. 

현재 브라질은 멕시코와 달리 극우파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이 집권하고 있다. 그는 정상회담 개최 직전 바이든 후보가 2020년 대선에서 트럼프에 승리한 것에 대해 공정성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가 이번 정상회의를 보이콧 할 것이라는 보도에 미국이 당황해 황급히 보좌관을 급파하는 등 우여곡절 끝에 사태를 겨우 마무리했다. 미국이 중미 최대 교역국인 멕시코에 이어 남미 최대 국가인 브라질 정상까지 이번 회의에 불참한다면 주최국 미국의 체면은 더욱 망가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미국은 브라질에 애걸복걸하는 모습을 연출해야만 했다. 바이든과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양자 회담을 개최했지만 서로 불편한 듯 멀리 떨어져서 악수도 하지 않는 등 분위기는 냉랭했다. 지난해 12월 보수우파 정권을 몰아내고 집권한 칠레의 좌파 대통령 가브리엘 보리치 대통령은 LA에 도착하면서 "미국이 특정국가를 배제한다면, 긍극적으로 해당 국가 지도자들의 행동만 강화시킬 뿐"이라고 쓴소리를 했다. 이번 회의는 1994년과 비교해 중남미에서 미국의 패권이 크게 쇠퇴했음을 여실히 보여 주었다. 

브라질은 오는 10월 대선이 예정되어 있다. 이번 대선에서 '중남미 좌파'의 아이콘으로 불리는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76) 전 대통령이 각종 여론 조사에서 보우소나루 대통령을 크게 앞서고 있다. 룰라 전 대통령이 당선된다면 '세계의 허파'로 불리는 아마존 우림의 산림 파괴 문제에 대해서는 바이든 행정부와 협력을 강화시켜 나갈 전망이지만 전반적으로 미국에 비우호적인 정권이 탄생될 전망이다. 룰라 전 대통령은 2004년 7명의 각료와 450여 명의 비즈니스맨을 대거 동원, 중국을 방문해 양국간 무역과 경제협력의 틀을 마련한 인물이다. 친미파인 보우소나르 대통령은 집권 전에는 "브라질이 중국의 손아귀에 있다"며 중국을 경계했지만 2019년 10월 중국을 방문, 시진핑 주석을 만나 양국간 우호협력을 다지는 등 양국간 관계가 최근 실용적 접근방식으로 크게 개선된 모습이다.  현실적으로 중국은 브라질의 원자재와 농산물 최대 수입국이자 최대 투자자로 브라질은 중국과 전략적 동반자의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2차 핑크 타이드(Pink Tide)  

미국이라는 초강대국 이웃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중남미 국가들은 원자재나 농축산물 수출에 의존하는 불안한 경제 탓에 극단적 좌파·우파 정치 실험을 반복해왔다. 지난 1999년 베네수엘라에 반미(反美) 차베스 정권이 들어선 이후 남미 12국 중 10국에 좌파정권이 등장하는 소위 '1차 핑크 타이드(pink tide)'가 나타났다. ​그러나 원자재 가격 하락으로 인한 재정파탄으로 신자유주의 물결이 거세지며 2015년쯤부터 아르헨티나·브라질·칠레 등에 우파정권이 속속 들어섰다. 최근에는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민생난과 경제적 불평등 심화 등으로 중남미에 다시 좌파정권이 득세하고 있다. 더군다나 트럼프 행정부의 반이민 정책과 자국우선주의를 앞세운 남미 홀대 정책으로 미국과의 중남미 관계는 균열이 커졌다. 멕시코 (2018), 아르헨티나(2019), 볼리비아(2020). 페루(2021) 칠레(2021), 콜롬비아(2022)에 이어 올해 10월 브라질에서 정권이 바뀐다면 '2차 핑크타이드'의 위력은 더욱 커진다. 과거 미국의 든든한 우방으로 핑크 타이드 물결에서 비켜 서 있던 콜롬비아에서 최초로 좌파 후보인 구스타보 페트로(62)가 승리한 것은 의미 심장하다. 

 

[2차 핑크 타이드] 


이번 미주 정상회의에서 미국은 2023~2024년 회계연도에 중남미 난민 2만명을 자국에 정착 시킬 것이라는 '과감한 액션'을 제시했다지만 매달 미국 남부 국경을 넘어오는 20만명을 감안하면 조족지혈에 불과하다. 바이든 대통령은 최근 공식 출범시킨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와 성격이 유사한 ‘경제적 번영을 위한 미주 파트너십’(APEP) 구상을 내놨다. 그러나 이번 정상회의에서 관세인하·시장접근 확대 등 실효성 있는 조치는 논의가 안돼 중남미 국가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결국 미국의 '텃밭' 외교는 체면만 구긴 셈이다. 

미국에 대한 중남미 국가들의 불만이 노골화 되면서 중국은 그 틈새를 잘 공략했다. 2015~2021년 유엔 무역데이터를 분석한 로이터 통신은 중국이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집권한 이후 미국의 '텃밭'인 남미를 더욱 효과적으로 공략하면서 미국을 제치고 남미의 최대 무역파트너가 됐다고 보도했다. 2021년 멕시코를 제외한 중남미지역과의 무역규모는 2470억 달러에 달해 미국(1740억 달러)을 크게 앞섰다. 특히 중국은 중남미 20여 개국에서 글로벌 경제영토 확장구상인 ‘일대일로’ 사업을 벌이며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는 상황이다. 중국의 경제적 지원과 인센티브에 '하나의 중국'을 지지한다며 대만과의 관계를 단절하는 중남미 국가도 늘어나고 있다. 중국의 국영 기업들은 남미 지역에서 에너지, 인프라 건설, 우주 산업 분야에서 주요 투자자로 나서면서 외교와 문화 군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중국은 이 지역에서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백신과 의료장비 지원에도 적극적이었다. 

세계는 미국이 아태지역과 중동에 초점을 맞추는 사이에 라틴 아메리카와 아프리카 등 여타 지역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급속히 커지는 것을 목도하고 있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 시절 미국은 중남미에서 베네수엘라 등 반미 독재 국가에 제재를 가하거나 자금지원을 축소하면서 이들 정부가 중국에 더욱 밀착하게 만든 결과를 초래했다. 미국은 중국이 쿠바나 니카라과, 베네수엘라 등 중남미의 독재국가에서 "포퓰리즘의 인큐베이터' 역할을 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특히 중국의 일대일로가 중국식 권위주의를 세계 각국에 퍼뜨리는 결과를 가져오고 있다며 우려를 표명한다. 바이든 행정부가 민주주의, 기후변화 대응 등의 어젠다를 내세워 중남미국가들과 관계강화를 시도하지만 향후 중남미에서 급부상하는 중국을 효과적으로 견제하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먼로 독트린

미국이 중남미 국가들을 자신의 영향력 안에 있다고 여기고 중국의 서반구(Western  Hemisphere) 대진격을 심각한 위협으로 여기는 것은 미국의 전통적 외교정책인 '먼로 독트린'과 맥이 닿아있다. 미국의 5대 대통령 제임스 먼로(1758~1831)는 독립전쟁 시대의 마지막 대통령으로 1823년 연두교서에서 "미국은 남북미주 대륙의 주인이니, 유럽이나 다른 나라는 간섭하지 말아라. 우리도 역시 다른 대륙의 일에는 참견하지 않는다"는 미국의 고립주의 외교 원칙, 소위 '먼로 독트린'을 천명했다. 먼로 독트린은 오랫동안 중남미 국가에 대한 미국의 배타적인 영향력 행사와 각종 내정 간섭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활용됐다.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운 트럼프 전 대통령은 미국이 더 이상 세계의 경찰국가 역할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면서도 라틴 아메리카 이슈만큼은 '이웃집' 논리를 들이대며 사사건건 협박하며 자기 일처럼 간섭한 것은 이러한 '먼로 독트린' 전통 때문이다.

2차 대전 이후 수십년 동안 미국은 마르크스주의에 경도된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의 영토에서 소련과 냉전을 치렀다. 이제는 '차이나 머니'가 몰려오는 그곳에서 소련 대신 중국과 한판 승부를 벌이고 있다.  이런 가운데, 바이든 대통령이 라틴 아메리카의 중국 쏠림을 견제하기 위해 지난달 준비 없이 성급하게 개최한 미주정상회담은 미국 외교의 '자책골'이 되었다. 미국이 이직도 버리지 못하고 있는 '먼로 독트린' 논리대로라면, 동아시아는 중국의 '텃밭'이다. 그리하여 미국이 동북아에서 군사력과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을 중국도 가만히 보고 있을 수만은 없을 것이다. 


이수완 필자 주요 이력 

△코리아타임스 기자 △로이터통신 선임특파원 △로이터통신 편집장 △서울외신기자클럽 회장 △아주경제 글로벌본부장 △아주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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