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품 관세를 0%로 낮추는 할당관세 확대 정책이 논란에 휩싸였다. 정부는 치솟는 물가를 잡을 회심의 카드로 제시했지만, 축산 업계는 국내 먹거리 죽이기 정책이라고 비판한다. 할당관세를 등에 업은 수입산 제품의 시장 확대로 업계가 고사할 것이란 주장이다.
여기에 정부가 할당관세 대상 품목으로 지정한 돼지고기 등은 이미 대부분 무관세여서 소비자가 체감하는 물가 인하 효과가 떨어질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Q. 할당관세 대상 또 늘리나
A. 그렇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정부는 이달부터 △미국·호주산 소고기 △닭고기 △분유류 △커피 원두(생두·볶은 원두) △주정 원료 △대파 등 6개 품목에 할당관세 0%를 적용한다. 할당관세는 특정 수입품 관세를 일정 기간 한시적으로 낮추는 제도다.
정부는 윤석열 대통령 주재로 지난 8일 열린 제1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이런 내용을 담은 '고물가 부담 경감을 위한 민생안정 방안'을 결정했다.
품목별로 보면 올 연말까지 미국·호주산 소고기 10만톤(t)에 할당관세 0%를 적용한다. 현재 미국과 호주산 소고기에 붙는 관세는 각각 10.6%, 16% 수준이다. 현재 20~30% 관세를 물리는 수입 닭고기도 무관세로 들여온다. 176% 관세가 붙는 분유도 올해 말까지 무관세로 수입한다.
가격이 많은 오른 생두(2%)와 볶은 원두(8%) 수입 전량도 무관세를 적용한다. 소주를 비롯해 식초·간장·빵 같은 식재료와 의약품·샴푸·화장품 등 생필품 원료로 쓰는 주정 원료에도 0% 관세를 적용한다. 재배면적 감소로 출하량이 줄어든 대파도 대량 출하 전인 오는 10월 말까지 할당관세를 적용할 계획이다.
여기에 지난달부터 할당관세 0%를 부과 중인 수입산 돼지고기는 적용 물량을 기존 5만t에서 7만t으로 2만t 더 늘려 잡았다. 할당관세를 추가 적용하는 대상은 삼겹살이다. 이에 따라 무관세로 들어오는 수입산 삼겹살 물량은 기존 1만t에서 3만t으로 늘어난다. 다른 부위 적용 물량은 4만t으로 기존과 같다.
Q. 2개월 만에 무관세 확대에 나선 이유는
A. 정부는 지난 5월 물가 안정 대책으로 돼지고기와 식용유, 밀·밀가루, 달걀 가공품 등 7개 품목에 할당관세를 적용했다. 이번에 할당관세 적용 품목과 물량을 늘린 건 물가 상승률이 심상치 않아서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지난 6월 소비자물가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0% 오르며 1998년 11월(6.8%) 이후 23년 7개월 만에 최대 상승 폭을 기록했다. 특히 서민이 느끼는 체감 물가는 7.4%까지 치솟았다. 오는 10월엔 물가 상승률이 7%대에 진입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정부는 식료품 중 물가 기여도가 높은 품목을 중심으로 관세를 내려 서민 물가 안정을 유도한다는 계획이다.
Q. 할당관세 확대 시기는 언제
A. 이달 20일께로 예상된다. 정부는 할당관세 확대 관련 법 개정에 속도를 내 조속히 실행에 들어간다는 방침이다. 할당관세 품목을 확대하려면 '관세법 제71조에 따른 할당관세 적용에 관한 규정' 등 대통령령 개정이 필요하다.
정부는 이르면 오는 19일 국무회의를 거쳐 20일부터 관세 인하가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Q. 국내 업계에 타격은 없나
A. 축산 업계는 할당관세 확대로 생존권이 위협받을 수 있다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축산관련단체협의회는 지난 11일 할당관세 반대 집회를 열고 "정부가 물가 안정을 빌미로 축산 농민 생존권은 철저하게 외면하고 있다"며 "자유무역협정(FTA)으로 무관세 물량이 들어오는 상황에서 무관세 수입을 확대하는 건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격"이라고 비판했다.
또한 "국민 먹거리에 대한 수입 의존도를 높여가는 정부 행태는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다"며 "이대로 가다 간 국민 밥상 위 고기·우유·달걀이 전부 수입산으로 채워질 것"이라고 꼬집었다.
정부도 업계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고 본다. 정황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같은 날 전국한우협회 회장단과 만난 자리에서 "사료 자금 지원, 추석 성수기 한우 암소 도축수수료 지원 등으로 한우 농가에 피해가 없게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Q. 할당관세의 물가 인하 효과가 크지 않았는데
A. 정부와 시장 전망이 엇갈린다.
정부는 지난 8일 내놓은 할당관세 확대에 따른 관세 인하 효과를 약 3290억원으로 추산한다. 미국·호주산 소고기의 경우 관세가 없어지면 소매가격이 최대 5~8% 내려갈 것으로 기대한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국제 축산물 가격이 오르고, 환율도 치솟고 있는 상황이라 할당관세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가 지난 9일 발표한 '2022년 6월 세계식량가격지수'를 보면 지난달 세계식량가격지수는 전달(157.9포인트)보다 2.3% 내려간 154.2포인트로 나타났다. 3개월 연속 하락이다. 하지만 육류는 5월(122.7포인트)보다 1.7% 상승한 124.7포인트를 기록했다. 소고기와 돼지고기, 가금육 가격이 모두 올랐다.
환율도 고공 행진 중이다. 지난 12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1312.1원에 장을 마감했다. 글로벌 금융위기였던 2009년 7월 13일(1315.0원) 이후 13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13일 들어 다소 내리긴 했지만 여전히 1300원대(1306.90원)를 유지 중이다.
여기에 FTA 체결로 수입 돼지고기 대부분은 이미 무관세로 들어오고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자료를 보면 돼지고기 수입 비중은 지난해 기준으로 미국이 36.4%로 가장 많다. 이어 스페인 20.1%, 네덜란드 8.9%, 오스트리아 7.2%, 칠레 7%, 캐나다 6.6%, 덴마크 5% 순이다. 이 가운데 캐나다를 제외한 나머지 국가는 FTA 체결로 이전부터 관세가 없었다.
이러다 보니 할당관세 확대가 물가 인하로 이어질지에 대한 의구심이 나온다. 축산관련단체협의회도 "물류비와 인건비가 지속 상승하는 가운데 나온 이번 조치가 최종 소비자물가 안정에 이바지할지 의문"이라고 쓴소리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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