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반환 25주년] "메뚜기떼, 우산혁명, 어묵혁명…" 중국과 홍콩 '갈등의 25년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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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배인선 특파원
입력 2022-06-3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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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권 반환 25주년을 앞두고 홍콩 거리에 중국 오성홍기와 홍콩특구 깃발이 대거 걸려 있다. [사진=신화통신]

내달 1일은 홍콩의 중국 주권 반환 25주년이 되는 날이다. 156년간 영국의 식민 통치를 받던 홍콩은 1997년 7월 1일 중국으로 반환됐다.

중국은 홍콩을 영국으로부터 돌려받을 때 향후 50년간 홍콩의 체제를 존속시키기로 약속하면서, 중국은 주권을 갖고 외교·국방을 책임지는 대신, 행정·입법·사법·교육 등을 홍콩에 맡기는 등 고도의 자치권을 부여하기로 약속했다.

이후 홍콩은 중국 대륙 경제 성장의 후광을 등에 업고 눈부신 발전을 이뤄냈다. 동시에 중국의 입김도 세지며 중국의 ‘약속’은 차츰 빛이 바랬고, 홍콩인의 중국에 대한 불신도 커졌다.

중국 본토와 홍콩 간 갈등으로 점철된 ‘25년 역사’를 돌아본다.
 
"중국의 홍콩 사법권 훼손"-1999년 거주권 분쟁
1999년 본토에서 출생한 홍콩 주민 자녀의 홍콩 영주권을 인정한 홍콩 종심법원(대법원)의 판결을 중국의 의회 격인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가 뒤집은 사건이다. 홍콩 반환 후 중국이 홍콩 사법권에 직접 개입한 시초가 됐다. 

홍콩 기본법에는 홍콩 법률의 최종 해석권이 중국 전인대에 있다고 명시했는데, 사실상 전인대가 해석권을 발동해 사후 홍콩 대법원의 판결을 번복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홍콩의 입법권이 사실상 '반쪽'짜리임을 보여준 사례다. 그 후로 전인대가 해석권을 발동해 홍콩 법원의 판결을 무효화시키는 사례는 줄줄이 이어졌다. 
 
"중국인 혐오"-2012년 메뚜기떼 논란

중국 본토 관광객을 메뚜기떼에 비유한 홍콩 현지 반중매체 광고. [사진=핑궈르바오]

2012년 2월 1일, 홍콩 현지 반중 매체인 '핑궈르바오(蘋果日報, 2021년 폐간)'에는 거대한 메뚜기가 홍콩 랜드마크인 사자산 정상 위에서 홍콩을 내려다보는 전면 광고가 실렸다. 광고엔 "홍콩이 18분마다 100만 달러를 써서 '솽페이(雙非)' 아동을 키우길 바랍니까", "홍콩인은 참을 만큼 참았다", "본토의 솽페이 임산부의 홍콩 침입을 제한하라"는 등 중국 본토인을 향한 혐오감이 묻어있는 문구로 도배됐다. '솽페이 아동'은 둘 다 홍콩 주민이 아닌 중국 본토 부부가 홍콩 원정출산으로 낳은 아이를 뜻한다. 

당시 중국 본토인의 원정출산, 분유 싹쓸이, 부동산 투기, 일자리 빼앗기 등에 뿔난 홍콩 주민들은 이들이 홍콩의 자원을 싹쓸이하고 있다며 추수철 곡식을 쓸어가는 ‘메뚜기떼’라고 비하하고 반중 감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특히 과거엔 가난했던 본토인들이 이제는 홍콩에 몰려와 돈을 뿌리며 현지 집값과 물가, 임대료를 천정부지로 올리고 취업난을 가중시킨다며 홍콩 주민들의 불만이 커졌다. 메뚜기 광고는 중국 본토인과 홍콩인 간의 깊어가는 감정의 골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사건이었다.
 
"행정장관 직선제 요구"-2014년 우산혁명

2014년 홍콩 우산혁명 당시 모습. [사진=AP·연합뉴스]

우산혁명은 2014년 8월 31일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가 홍콩 행정장관 선거안을 발표해 친중 인사만 홍콩 행정장관에 입후보할 수 있도록 선거제를 손질하려 하면서 촉발됐다.

당시 홍콩 행정장관 선거의 완전직선제를 요구하며 24개 대학교 학생들과 시민들이 주축이 돼 거리로 몰려 나와 79일간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경찰이 쏘는 최루탄에 맞서 시위대가 우산을 펴 들었다 해서 '우산혁명'이라 이름 붙여졌다.

홍콩 정부의 강경 진압으로 우산혁명은 실패로 막을 내렸고, 시민 1000여명이 체포됐으며, 홍콩 행정장관 직선제 요구도 묵살됐다. 
 
"노점상 단속이 발단"-2016년 어묵혁명
어묵혁명은 지난 2016년 2월 8일 춘제 기간, 홍콩 경찰이 몽콕 지역에서 음식 노점상을 단속하자 이에 항의하는 과정에서 격화된 반중 시위다. 당시 몽콕 지구의 노점상 대부분이 어묵을 팔았고, 어묵이 홍콩 서민을 상징하는 음식이었기에 어묵혁명이라 이름 붙여졌다. 

항의하는 노점상들에 행인까지 합세하면서 주변 도로는 금세 시위대로 꽉 찼다. 이 소식을 인터넷으로 접한 일반 시민들도 시위에 참여하면서 우산혁명 이후 가장 격렬했던 시위로 평가됐다. 하지만 우산혁명과 마찬가지로 결국 '미완의 혁명'으로 끝났다. 
 
"자취 감춘 시위대"-2020년 홍콩 국가보안법 시행

5월 8일 치러진 홍콩 행정장관 선거에서 존리 홍콩 정무사장이 99% 득표율로 차기 홍콩 행정장관으로 선출됐다. [사진=로이터·연합뉴스]

2020년 6월 30일 시행된 홍콩 국가보안법(이하 보안법)으로 이제 홍콩에서는 모든 시위가 자취를 감췄다.

홍콩 보안법은 국가 분열, 정권 전복, 테러 행위, 외국과 결탁한 안보 위협 범죄 등 네 가지 죄목에 대해 최고 무기징역의 중형을 내리도록 했다. 지금껏 홍콩보안법 위반 혐의로 민주 진영인사 약 170명이 체포됐다.

홍콩 보안법은 2003년에도 홍콩 정부 주도로 제정하려다가 시민 50만명이 뛰쳐나와 항의하면서 철회된 바 있다. 하지만 2019년 홍콩 정부의 범죄인 인도법 추진에 맞서 민주 진영에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촉발되자, 중국 정부가 직접 압력을 넣어 2003년보다 더 강한 버전으로 홍콩 보안법을 만들어 도입했다. 

내달 1일 취임하는 존 리 신임 행정장관은 홍콩 반정부 시위 진압과 보안법 강행을 주도한 인물이다. 그가 이미 최우선 공약으로 '홍콩 보안법' 강화를 내건 만큼, 홍콩 내 민주 진영이 사실상 붕괴 위기에 처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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