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잊힌 전쟁에서 잊을 수 없는 전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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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휘 기자
입력 2022-06-2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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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차 세계대전 공포로 의미 축소...미‧중 갈등에 재조명

윤석열 대통령이 6‧25전쟁 72주년을 하루 앞둔 6월 24일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열린 국군 및 유엔군 참전유공자 초청 오찬에 참석, 국기에 경례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금으로부터 72년 전인 1950년 6월 25일, 북한 공산군은 남북군사분계선이던 북위 38도선 전역에 걸쳐 불법 남침했다. 1953년 7월 27일 '휴전 협정'이 체결되기까지 3년 1개월간 남과 북, 유엔(UN)군과 중국 인민지원군 사이 치열한 교전이 이어졌으며, 전쟁의 종료를 의미하는 '평화협정(Peace treaty)'이 끝내 체결되지 않았기에 전쟁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우리에게 6·25 한국전쟁의 상처는 깊고 아프다. 전쟁기간 남북 합쳐 300만명에 가까운 이들이 사망하거나 실종됐다. 동족상잔의 비극은 한민족을 남북으로 가르고 반세기 넘게 서로를 향해 총부리를 겨누게 했다.
 
그런데 막상 국제사회, 특히 미국에서 6·25는 '잊힌 전쟁(The Forgotten War)' 혹은 '알려지지 않은 전쟁(The Unknown War)'으로 취급받았다.
 
6‧25는 왜 잊혔나...3차 세계대전의 공포
 
6‧25에는 우리나라와 미국을 주축으로 하는 유엔군 16개국(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그리스, 터키, 필리핀, 태국, 콜롬비아, 에티오피아,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캐나다, 남아프리카공화국)과 북한 및 중국 인민지원군, 소련(비공식) 등이 참전했다.
 
양 진영에서 각각 100만명을 전후한 병력을 투입한 거대한 국제전쟁으로, 미국의 전사자와 행방불명자는 4만5000여명, 중국도 10만여명에 달한다.
 
그런데 당시 미국 정부와 의회에서는 '한국사태(Korean Conflict)'로 6‧25를 의도적으로 축소 표현했다. 전쟁(War)으로 표현하는 순간 6‧25가 3차 세계대전으로 번질 수도 있다는 경계심 때문이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불과 5년이 지났기에 미국 국민들의 전쟁에 대한 거부감은 컸다. 여기에 소련이 1949년 핵무기 개발에 성공했기에 3차 세계대전이 발생한다면 미국과 소련의 핵전쟁으로 연결될 수 있었다.
 
공교롭게도 이는 공산진영 역시 마찬가지였다. 소련이 해체된 후 러시아가 공개한 극비 외교문서에 따르면 6‧25 당시 소련의 지도자 이오시프 스탈린은 김일성의 집요한 전쟁 지원 요청을 71차례에 걸쳐 거절했다. 미국이 개입해 전쟁이 확대될 상황을 극히 경계했기 때문이다. 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과의 총력전으로 입은 피해 복구도 끝나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러나 1950년 1월 미국의 국무장관이던 딘 애치슨이 선언한 미국의 극동 방위선 '애치슨 라인'에 한반도가 제외됐다. 김일성은 '남침하더라도 미국이 개입할 가능성은 없을 것'이라고 잘못 판단했고, 스탈린도 이에 동의해 비극은 발발했다.
 
즉 냉전시대 자유진영과 공산진영을 이끈 미국과 소련이 6‧25를 확대하지 않으려고 의도적으로 노력했고, 이후 베트남전 등에 국제적 관심이 몰려 자연스레 6‧25에 대한 주목도가 줄어든 측면이 있다.
 
최근 6‧25가 국제사회에 다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경제‧문화 선진국으로 발돋움한 우리나라에 대한 관심이 커진 것과 함께 미‧중 패권 경쟁이 본격화되면서다. 중국은 6‧25를 '항미원조전쟁(抗美援朝战争)'으로 부른다. 북한(조선)을 돕기 위해 미국에 대항한 전쟁이라는 뜻이다. 미국과의 갈등이 고조되면서 중국은 내부 결속을 위해 6‧25를 적극 이용하고 있다.
 
미국 역시 중국 견제와 '한‧미혈맹'을 강조하는 차원에서 6‧25를 재조명하고 있다. 지난 2021년 문재인 전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한‧미 정상회담에서는 두 정상이 6‧25에서 중공군에 맞서 싸웠던 랄프 퍼켓 주니어 예비역 대령에게 명예훈장을 수여하고 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하는 모습이 연출됐다. 

尹 대통령 "숭고한 정신 받들어 자유 지킬 것"
 
윤석열 대통령은 한국전쟁 72주년을 하루 앞둔 24일 서울 신라호텔 다이너스티홀에서 국군 및 유엔군 참전용사와 후손 200여명, 유엔 참전국 외교사절과 한·미 군 주요 지휘관 등을 초청해 오찬을 함께했다.
 
이 자리에는 우리나라를 다시 찾은 유엔 참전용사(9개국 12명)와 해외에 거주 중인 교포 참전용사(13명) 등 25명이 함께했으며, 70여년 만에 부친의 유해를 찾게 된 고(故) 김학수 일병의 딸, 50여년 만에 북한을 탈출해 귀환한 국군 참전용사 유재복‧김종수‧이대봉씨도 특별히 초청됐다.
 
행사는 국민의례, 유엔 참전용사에 대한 '평화의 사도' 메달 수여(5명), 대통령 인사말에 이어 건배 제의(김홍수 대한민국 6‧25참전유공자회 경기도지부장) 이후 오찬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오찬 중에는 유엔 참전용사의 후손이자 주한미군으로 6년여간 근무(1973~1979년)한 데이비드 페냐플로(David M. PENAFLOR)씨가 유엔 참전용사와 후손을 대표해 소감을 발표했다. 페냐플로씨의 부친과 두 명의 삼촌은 각각 미 해군과 육군, 해병대로 6‧25전쟁에 참전한 참전용사다. 

이날 윤 대통령이 직접 수여한 '평화의 사도' 메달은 대한민국을 지킨 유엔 참전용사의 희생과 공헌을 기억하고, 감사와 보은, 미래 협력, 평화와 우정의 징표로 1975년부터 우리 정부 차원에서 증정하고 있다. 미국 참전용사인 윌리엄 길버트 클라크(William Gilbert CLARK), 필리핀 참전용사 베니토 주니어 카마초(Benito Junio CAMACHO) 등 4개국에서 온 5명의 참전용사가 받았다. 
 
윤 대통령은 인사말을 통해 "오늘 우리가 누리고 있는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 번영은 국군과 유엔군 참전용사의 피와 땀, 희생과 헌신 위에 이룩된 것"이라며 유엔 참전용사에 대한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그러면서 "여러분들의 용기와 숭고한 정신을 받들어 대한민국도 국제사회에 책임 있는 일원으로서 자유를 지키는 데 역할과 책임을 다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윤 대통령은 특히 "지난 화요일에 자체 기술로 누리호 발사에 성공했고, 우주로 가는 길을 열었다"며 "여러분이 계시지 않았다면 그날의 영광은 없었을 것이다. 여러분이 바로 대한민국의 오늘을 있게 한 영웅"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유엔 참전용사의 후손과 주한미군 장병들에게도 "대한민국과 여러분의 우정이 앞으로도 이어져 영원한 친구로 남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6‧25전쟁 72주년을 하루 앞둔 24일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열린 국군 및 유엔군 참전유공자 초청 오찬에서 격려의 인사말을 마친 뒤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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