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철 칼럼] 21세기는 아시아의 시대? 아직은 공허한 외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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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철 동서울대 교수, 전 KOTRA 베이징·상하이 관장
입력 2022-06-14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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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철 전 KOTRA 베이징·상하이 관장·동서울대 교수]


 
21세기는 아시아의 시대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 지도 20여 년이나 훌쩍 지났다. 글로벌 경제의 중심축이 대서양에서 태평양으로 옮겨갈 것이라는 예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19세기는 유럽의 세기, 20세기는 미국의 세기, 21세기는 아시아의 세기가 될 것이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시중에 회자될 정도였다. 미국의 턱밑까지 추격하고 있는 중국의 부상과 더불어 일본과 한국, 그리고 ASEAN과 인도 등 아시아가 세계 경제를 견인하는 성장 엔진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의식이라도 한 듯 대서양과 태평양에 걸쳐 있는 미국도 상대적으로 태평양 중시 정책으로 회귀하고 있기도 하다. ‘아시아의 세기’라는 그 이면에는 글로벌 규범이나 기준을 정하는 데 있어 아시아적 가치가 우선할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이 내재한다.

이를 두고 문명의 이동이라고 정의하기도 한다. 산업혁명 이후 몇백 년에 걸쳐 세계를 지배하던 서구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마침내 아시아가 주도하는 시대가 도래했다는 예측이 현실화하면서 상당한 설득력을 얻었다. 아시아 대륙이 세계 인구의 60%, GDP의 50%를 넘어서면서 아시아가 세계의 중심이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서구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 아시아인을 흥분시키기도 했다. 이에는 미국이나 유럽 등 서구 경제의 성장동력이 멈추고 있지만 중국의 경제력이 급부상하면서 상당한 현실성과 근거를 가진 주장으로 받아들여졌다. 이에 더해 동남아와 인도 등이 중국에 이은 세계의 공장으로 부상하면서 경제력의 크기가 아시아 쪽으로 계속 기울고 있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4차 산업혁명과 코로나 팬데믹이 서구가 아닌 아시아에 반전의 기회가 될 수 있다는 흐름도 나타났다. 확실한 1등이 없는 미래 기술에서 모방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우월적 지위를 확보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겨나기도 했다. 그리고 팬데믹을 극복하는 과정에서도 서구의 개인주의보다 국가 주도의 집단적 대응을 우선시하는 아시아 국가들이 더 효율적이면서 성공적 결과를 만들어내는 현상이 일시적으로 보였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아시아가 뉴노멀을 주도하고, 이제 서구가 아시아에서 배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되었다. 시장에 지나치게 의존해 금융위기·경제 불평등·환경문제 등을 해결하지 못한 서구 자본주의 모순을 시장과 정부가 협력하는 아시아가 도로 한 수 가르쳐야 한다는 기개까지 나왔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 내부에서도 이에 대한 믿음이 강했다. 이를 부인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실제로 중국이 승승장구하고 있고, 중국에 대한 경제 의존도가 지나치게 크다 보니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금세기도 벌써 20년을 훌쩍 넘어선 지금 그 많던 예언들이 과연 현실화하고 있다고 할 수 있나. 경제의 성장 축이 서구에서 아시아로 와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아시아는 계속 분열되고 서구의 가치나 영향력에서 아직도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 아시아의 리더십은 실종되고 위기를 재촉한다. 중국과 일본의 불협화음은 계속되고 있고, 한국은 중국이나 일본의 어느 쪽에서도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 신흥 세력으로 부상하고 있는 인도나 동남아도 중심을 잡지 못하고 표류한다.

일본은 정점 지나···한국과 중국 경제는 조로(早老) 
 
특히 팬데믹은 아시아적 가치의 후퇴를 가져왔다. 국가의 지나친 개입이 오히려 부메랑이 되어 서구에 발목을 잡히는 꼴이 되고 말았다. 권위주의가 기승을 부리고 상식과 합리보다는 비상식과 불합리가 판을 주도하면서 모처럼 찾아온 기회를 무산시키고 말았다. 위선과 명분에 집착하면서 실용과 실리를 놓쳤다. 글로벌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서방에 주도권을 뺏기면서 눈치를 살피는 신세로 전락했다. 공급망 재편이 급물살을 타면서 편 가르기가 가시화하고, 미국 등 서방이 방향키를 잡음으로써 아시아 국가들은 이에 줄을 서야 하는 형태로 전개 중이다. 이 와중에 터진 러시아·우크라니아 전쟁은 서구 진영을 더 결속시키고 있지만 아시아를 비롯한 기타 진영은 분열을 거듭하는 기형적 현상까지 보인다.
 
아시아 내부를 들여다보면 국가마다 다소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소득 불평등, 저출산·고령화, 산업구조 재편 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일본은 정점을 지나 활력이 실종되고 회복에 대한 기대감을 상실하고 있다. 중국과 한국은 경제의 조로(早老)가 눈에 띄게 증가하면서 지속 가능한 성장에 대한 회의감이 증가한다. 부모 세대보다 잘살지 못하는 자식 세대라는 부정적 경제 대물림이라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기도 하다. 동남아와 인도 등 서남아 국가들의 정치적 후진성은 진행형이고, 미국과 중국의 줄 세우기에 중심을 잡지 못하고 줄타기만을 반복하고 있다. 중국의 파워 증가가 아시아 역내 화합과 번영보다는 분리를 조장하고 위협만 가중시키고 있는 것이 작금의 장기판이다.
 
중국은 시진핑 3기 체제 출범을 앞두고 이에 올인한다. 이러한 선택이 중국의 미래에 약(藥)이 될지, 아니면 독(毒)이 될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사회주의 체제에 시장경제를 접목한 중국특색사회주의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을지 중요한 시험대에 오르고 있다. 일본은 과거의 일본이 아니고 자의적으로 아시아 패권을 거머쥐기에는 힘의 부족이 역력하다. 결국 미국 등 서구를 편으로 끌어들이면서 영향력을 유지하려고 할 것이다. 공은 대서양에서 태평양으로 넘어와 있지만, 현재 중국과 일본의 리더십으로는 아시아의 세기를 끌고 가기에는 역부족이다. 새로운 리더십이 필요하지만, 섣불리 머리를 들다가는 한 방에 갈 수도 있는 상황이다. 판세를 읽으면서 전면에 나서지 말고 유연한 자세로 한국의 위치를 찾아갈 때다.

 
김상철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경제대학원 국제경제학 석사 △Business School Netherlands 경영학 박사 △KOTRA(1983~2014) 베이징·도쿄·LA 무역관장 △동서울대 중국비즈니스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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