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4년 유치원, 초등학생, 중고등학생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끈 만화가 있다.
바로 달빛천사다. 그 만화는 전국적인 풀문 열풍을 불러 일으켰고 시간이 지난 지금도 어른이 된 달천이들의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다.
그래서인지 노래방에서 그의 노래가 들리는 건 물론이고, 대학축제 공연에서 떼창을 할 정도다.
이용신 성우와 이제는 어른이 된 달천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사진= 이용신 성우 제공]



Q. 20년 가까이 성우로서 일을 한다는 건 어린시절 누군가의 추억을 함께 한다는 것과 마찬가지 같아요. 성우를 하게 된 이유가 뭔가요?
 
A. 학창시절 국어시간에 선생님들이 책읽기를 많이 시키셨어요. 잘 읽는다는 칭찬이 저를 더 잘 읽게 만들었죠.
10살 무렵부터 ‘목소리’ 로 ‘말’하는 직업을 갖고 싶다는 생각을 어렴풋이 했었어요. 방송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 신문방송학과를 갔고, 졸업과 동시에 CM송 가수를 시작했죠. 여러 녹음실을 다니다 보니 광고카피나 짧은 내레이션을 녹음할 기회가 주어졌어요. 자연스럽게 노래도 멘트도 하는 가수 겸 성우로 활동하게 되었고, 이후 쇼핑호스트, 전문MC 등을 거쳐 2003년에 투니버스 공채 5기 성우로 입사했습니다.
 
 
Q. 성우들의 목소리나 이름은 알아도 얼굴은 잘 알려지지 않은 경우가 많은데요. 성우님께서는 수많은 최초라는 타이틀을 갖고, 큰 인기를 얻은 성우로서 좋았던 점과 부담스러웠던 적이 있나요?
 
A. 너무 빨리 유명해졌죠. 이례적으로 전속 2년차 때 ‘달빛천사’ 의 주연을 맡게 되었으니까요. 주인공이 가수이다 보니 성우에게 ‘가창력’ 이 대단히 중요한 조건이었죠. 이러한 특수성 때문에 CM송 가수로서의 경력이 캐스팅에 유리하게 작용했다고 봐요. 대학생 때 MBC 강변가요제에 나가서 인기상을 수상하기도 했고, 성우가 되기 전부터 애니메이션 주제가를 여러 곡 불렀기에 아직 전속 성우임에도 불구하고 장편 애니메이션의 주인공 역할을 하게 된거죠. 더빙에 대한 부담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어요. NG를 내지 않기 위해 시사를 정말 열심히 했어요. 풀문이 부르는 ‘NEW FUTURE’ 후렴구에 나오는 가사처럼 REPEAT & REPEAT 대사를 연습하고 또 연습했죠.
 
 

[사진= 이용신 성우 제공]



Q. 20년 가까이 성우를 하면서 직업의 한계를 느꼈다고 들었는데요. 어느 부분에서 그런 느낌이 들었고, 한계를 깨기 위해 도전하고 싶은 게 있다면 뭔가요?
 
A. 성우는 말 그대로 목소리 ‘연기자’ 입니다. 캐스팅이 돼야 연기를 할 수 있어요. 어떻게 보면 대단히 수동적인 직업이죠. 더빙이 없거나 녹음이 없을 때는 백수와 다름 없죠. 일반적인 연기자들은 캐릭터를 위해 몸도 만들고 액션 훈련도 하며 작품을 준비하지만, 성우들은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거든요. 들쭉날쭉 잉여시간이 주어져요. 그러다 보니 마냥 캐스팅을 기다리는 시간에 무언가 생산적인 일을 하고 싶어졌어요. 그래서 나 스스로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크리에이터가 되기로 했죠. 유튜브 이용신TV는 그런 이유로 시작했습니다. 2019년부터 본격적으로 콘텐츠를 업로드했는데 어느덧 구독자 18만의 채널로 성장했네요. 용용이들 고마워요
 
Q. 직업병이 있나요? 그 직업병이 일상생활에 있어서 어떤 영향을 주나요?

A. 동물이건 사물이건 의인화해서 말풍선을 띄우고 싶은 병이 있죠. 애니메이션이나 게임 녹음을 많이 해서 그런가 봐요. 세상 만물이 다 살아있는 생명체로 보이니 심심할 겨를이 없어요.
 
Q. 직업만족도는 어떻게 되나요?

A. 직업만족도와 관련된 어떤 기사에서 성우가 2위에 랭크된 걸 본 적이 있어요. 어느 정도 공감은 하지만 성우라는 타이틀을 가진 모든 분들이 여기에 공감하진 않을 거예요. 어느 직업군에나 양극화는 존재하니까요. 성우들의 경우 개인별로 연봉이 천차만별인데 아무래도 상위권에 있는 성우들은 만족도가 높지 않을까요?
 
Q. 이용신이 경험한 성우라는 직업은 어떤 직업인지 궁금해요.

A. 저는 내가 하고 싶은 일, 잘할 수 있는 일, 재밌는 일을 하면서 살아가는 것 만큼 행복한 삶이 없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런 면에서 저는 정말 행복한 사람이죠. 아무리 생각해도 감사한 직업입니다. 전 마이크 앞에서 녹음하는 게 정말 재밌거든요. 반복도 없고 매번 새로운 대본을 녹음하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Q. 스스로 최초라는 타이틀을 만들어냈다는 데 자부심도 있었을 것 같아요. 그런 이용신에게도 애매한 재능을 원망하기도 했다고 들었어요.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도 있었을 텐데 다시 일어나게 해준 건 뭔가요?

A. 성우의 삶은 끝없는 오디션의 연속입니다. 과거에는 배역이 그냥 주어졌던 반면 지금은 배역을 따내야 하거든요. 경쟁도 치열하고요. 열심히 준비했지만 결과는 ‘NO’ 인 경우도 많죠. 처음에는 많이 힘들더라고요. 하지만 그걸로 성우 인생이 끝나는 건 아니잖아요. 긴 여정의 구름 낀 하루 정도로 생각하기로 했죠. NO 는 곧 NEXT 라는 걸 깨닫게 되고 나서는 결과에 크게 흔들리지 않게 됐어요.
 
Q. 자녀도 있으신 걸로 알고 있어요. 많은 부모님들께서 비교육적이라는 이유로 자녀들이 만화를 보는 걸 안 좋아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엄마 이용신은 자녀들에게 만화를 많이 보여주는 편인가요?

A. 36개월 이전까지는 최대한 영상매체에 대한 노출을 막고 오감을 발달시켜 주려고 했어요. 그림책을 많이 읽어줬죠. 스토리가 있는 책뿐만 아니라 과학책, 공룡책도 캐릭터마다 목소리를 다르게 연기하며 읽는 거예요. 아이들이 캐릭터가 돼서 연기할 수 있게 기회를 주면서 함께 책을 더빙하는 거죠. 지금도 매일밤 자기 전 이렇게 책 읽는 시간을 갖습니다. 아이들이 무척 좋아해요. 애니메이션은 7살 이후 주말에만 보는 규칙을 정했는데 아이들이 주말만 기다리네요(웃음). 제가 시사하고 있으면 쪼르르 달려와서 신기하게 쳐다봐요. 따라하기도 하고요.
 
Q. 달빛천사를 비롯해 짱구는 못말려의 채성아 선생님, 유리 등 많은 캐릭터들의 목소리를 연기하면서 정체성에 대해 고민이 됐던 순간들이 있나요? 그리고 지금의 정체성을 찾을 수 있었던 방법이 궁금해요.
 
A. 연기할 때의 나와 자연인으로서의 나는 완전히 구분됩니다. 캐릭터를 연기할 때 나 자신은 사라져야 해요. 캐릭터의 정체성은 나의 정체성이 사라져야 완성된다는 게 성우라는 직업의 매력이죠.
 
Q. 어른이 된 달천이들이 이용신 성우님의 목소리를 들으면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 <달빛천사>를 봤던 시절로 돌아간 것만 같다는 반응들이 많았어요. 성우님께서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가고 싶은 시절이 있나요?
 
A. 돌아가고 싶은 시절은 딱히 없어요. 저는 지금의 제가 가장 좋거든요. 완벽하진 않지만 아직도 완성을 향해 진행형인 삶이죠. 과거의 나를 돌아보면 부족한 점 투성이에요. 실수도 실패도 있었고요. 어차피 되돌아갈 수 없다면 후회하지 말고 빨리 잊어버리는 게 낫다고 생각해요.
 
Q. 살면서 만화 같은 삶을 살았던 경험이 있나요?
 
A. 애니 속 세상처럼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는 걸 의미한다면 달빛천사가 다시금 주목 받게 된 일이겠죠. 방영된 지 15년이나 지난 만화가 다시 대대적인 인기를 얻고, 팬들의 요청으로 펀딩을 시작하고, 음원을 정식 발매하고, 콘서트까지 하게 된 것. 이 모든 과정이 저에겐 꿈 같은 경험이에요.
 
Q. 알바를 비롯해서 많은 경험을 하셨던 걸로 알고 있어요. 그 경험들이 지금의 이용신이 있기까지 어떤 도움들이 됐나요?
 
A. 대학 다닐 때 등록금을 다 제가 해결해야 했어요. 어쩔 수 없이 닥치는 대로 알바를 했었는데, 그 때의 다양한 경험들이 성우가 돼서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하는 데 도움을 주더라고요. 누군가의 인생 속으로 신속하게 몰입해 그 인물을 목소리로 표현해 내는 게 성우의 일이기에, 인생의 모든 경험이 연기의 자양분이 되는 거죠.
 

[사진=이용신 성우 제공 ]

 

Q. 말 한마디가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는 것처럼 말과 목소리에는 큰 힘이 있는 것 같아요. 성우님께서 누군가의 목소리와 말 한마디를 통해 삶이 바뀌었던 경험이 있나요?
 
A. 엄마요. 엄마의 말 한마디. “떨어지면 어때? 우리 딸 잘하는 것도 많은 데 무슨 걱정이야”
제가 투니버스 성우 시험을 볼까 말까 고민하고 있을 때 저에게 해주셨던 말이에요. 도전하기도 전에 떨어질 이후를 걱정하는 저에게 엄마가 툭 던지신 말에 용기를 냈죠. 나를 전적으로 믿어주는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는 엄청난 힘이 있더라고요.
살면서 무언가를 반드시 선택해야만 할 때 나 스스로에게 묻고 대답을 기다리죠. 내 안에서 목소리가 들리면 그걸 믿고 행동으로 옮기는 편이에요. 내 마음이 편해지는 쪽을 선택하는 것. 저는 그게 양심의 목소리라고 생각해요.
 
Q. 어떤 성우로 기억에 남고 싶나요?
 
A. 귓가를 울려 마음을 움직이는 목소리를 가진 성우로 기억되고 싶어요. 때로는 마음 먹기에 따라 인생이 달라지죠. 마음속의 작은 요동이 큰 불씨를 일으키기도 하고요. 그게 노래든 대사든 제 목소리에 누군가의 마음이 움직인다면 그것처럼 멋진 마법은 없을 거예요.

Q. 최근 싱어게인2를 통해서 노래하는 성우가 아닌 가수로서의 모습을 보여줬는데 가수로서 어떤 활동을 이어나가고 싶나요?
 
A. 애니 주제가를 넘어서 오리지널 음원을 주기적으로 발표하려구요. 캐릭터로 노래하는 것도 물론 재밌는 작업이지만 제 나이에 맞게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목소리로도 노래하고 싶어요. 가사에 따라 마음껏 표현하고 마음껏 절제하면서 자유롭게요.
 
Q. 어느덧 시간이 흘러 달천이들이 어른이 됐어요. 마지막으로 힘들고 지친 하루하루를 살아가면서 애매한 재능으로 인해 고민을 하고 있는 어른이 된 수많은 달천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
 
A. 그러게요. 제가 성우 20년차니까 달천이들도 어른이 된 건 맞는데, 아직까지도 제 눈에는 귀엽게 보여요. 사인이나 셀카 요청을 하는 것도 다 사랑스러워요. 달천이라고 수줍게 고백하는 모습도 너무 예쁘고요. 미리 걱정하지 말아요. 오늘에 최선을 다하세요. 달천이들에게는 더 멋진 뉴 퓨쳐가 기다리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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