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렬의 제왕학] 한반도 통일은 '시간 전쟁' - 北, 돌파구는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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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렬 논설고문
입력 2022-04-2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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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렬 논설고문]



사양정권(斜陽政權), 서산에 지는 해가 지고 싶어 지나

동양사학자 고(故) 민두기 교수는 근현대 동아시아 전체를 관통하는 특징으로 ‘시간과의 경쟁’(연세대학교 출판부·2001년) 즉 20세기 동아시아의 혁명과 ‘팽창’에서 정치적 경제적 대국화로 국가전략을 채택한 중국과 일본은 “몹시 조급하여 역사의 시간과 숨가쁜 경쟁을 했다”고 지적했다. 시간에 쫓겨 서두른 조급증이 역사 전개의 비정상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핵보유국을 선언한 북한 역시 자칭 ‘전략 국가’의 오류에 빠져 ‘시간과의 경쟁’에 지쳐가고 있는 형국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2019년 2월 28일 하노이 회담에서 “우리한테 시간이 제일 중요한데...”라고 말끝을 흐리자 트럼프 대통령은 “속도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습니다. 저희는 속도에 연연하지 않겠습니다.... 옳은 방향으로 바른 일을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김 위원장은 “속도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연연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말을 바꿨다. 1년 뒤 2020년 10월 당 창건 75주년 열병식 때 그는 “우리는 (5년 전보다) 강해졌으며 시련 속에서 더더욱 강해지고 있다”라며 “시간은 우리 편에 있다”고 말했다. 임기가 끝나가는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해 1월 종전협상 등 거듭되는 제안을 북한이 냉담하게 거절하자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고 했다. ‘서산에 지는 해가 지고 싶어 지나’라는 진도아리랑 가사처럼 사양정권(斜陽政權)을 상대하지 않겠다는 북한에 대해 ‘짝사랑’으로 끝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잔영들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2018년 4월 당 중앙위 7기 3차 전원회의를 통해 ‘핵·경제 병진 노선’ 포기를 사실상 선언하고 ‘경제건설 총력 집중’이란 기치를 내걸었지만,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로 2017년부터 북한 경제성장률은 계속 마이너스 기록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이처럼 심각한 경제난 속에서도 북한은 올해 들어 1월만 7차례, 3개월 동안 12회나 미사일을 쏘아 올렸다. 2018년 평화 국면 이후 중거리급 미사일 발사를 4년여 만에 재개하고 ‘ICBM 모라토리엄 파기 행동단계’라는 최대 수위의 도발로 레드라인에 ‘바짝’ 다가서는 형국이다. 김정은 체제의 미래가 어떻게 전개될지 현시점에서 예측할 수는 없지만, 파탄 조짐을 보이는 북한의 ‘핵·경제 병진 노선’은 머잖아 붕괴할 개연성을 높여주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국경폐쇄와 함께 '제2의 고난의 행군‘을 위해 새로운 길로 제시한 '자력갱생 버티기'를 지속하고 있다. 언제까지나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을 것이다.
 
1천10만 명이 식량 부족으로 굶주리고 있다
 
지난해 연말 일본 NHK는 북한이 건국 이래 최악의 시련을 맞고 있다고 보도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후, 2011년 12월 19일 집권한 김정은 체제는 10년 동안 핵·미사일 폭주로 경제성장률은 반의반 토막, 무역액은 20분의 1로 줄었다. 김정은 통치 10년의 최대 치적으로 꼽는 핵 무력 완성을 제외한 나머지 부문은 처참한 수준이다. 북한은 그동안 네 차례 핵실험과 130여 회 미사일 발사 도발 등을 통해 핵 무력 보유를 선언하고 자칭 ‘세계적인 전략 국가 지위 확보’를 선전하고, 핵보유국을 선언했다. 하지만 식량난으로 현재 2500여 만명의 북한 주민들이 기아선상(飢餓線上)에서 허덕이고 있다.

FAO가 추산한 식량 부족분만 85만8000톤 규모다. 수입이나 해외 원조가 병행되지 않으면 ‘먹을거리’를 확보할 방도가 없다는 얘기다. FAO는 2019년에도 ‘북한 코로나19 인도적 대응 개정 보고서’에서 북한 인구의 40%에 해당하는 1010만명이 식량 부족으로 굶주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오헤아 킨타나 유엔 북한 인권 특별보고관도 대북제재와 코로나19가 동시에 겹치면서 "현재 북한 주민 40%가량이 기근(飢饉)에 시달려 추가로 필요한 식량은 160만 톤에 달한다”며 인도주의적 차원의 대북제재 완화 필요성을 강조했다(JTBC, 2022.2.23).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겸 노동당 총비서도 작년 6월 15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3차 전원회의에서 ‘식량난’을 공개적으로 언급했다. 김정은은 “살얼음 걷는 심정이고, 낱알 한 톨까지 확보하라”고 지시했다고 국가정보원이 밝혔다( SBS, 2021.10.28). 최고지도자가 식량난을, 그것도 공식 석상에서 언급한 자체가 이례적인 일로 이대로 방치하다간 체제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절박함의 반증이다. 유엔 제재에 따라 현재 북한이 겪고 있는 경제난은 1948년 정권 수립 후 최악의 상황이다. 1990년대 중반 이른바 ‘고난의 행군’ 시기에도 평양을 지켰던 외국 대사관들 대부분이 철수한 것도 극심한 경제난의 방증이다. 북한 비핵화 논의도 2019년 2차 북·미 정상회담의 파행 이후 답보 상태다. 바이든 행정부는 2021년 1월 23일 취임 직후, ‘북핵 폐기’가 아닌 ‘억지 전략’으로 북한 핵에 강경한 입장을 천명했다. 동시에 ‘인도 태평양 역내 국가들과의 억지 전략 연대’도 강조하는 등, 북핵 문제를 둘러싼 상황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삼국지 첫 대목은 “오래 나뉘어 있으면 반드시 합쳐지고(分久必合), 오래 합쳐져 있으면 반드시 갈라진다(合久必分).”로 천하 대세의 큰 흐름을 압축해 설명했다. 30여 년 전인 1989년 10월 31일, 당시 서독 총리로 독일 통일의 초석을 깐 빌리 브란트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였다. “독일 통일은 언제쯤 이뤄질 것으로 보느냐?”는 기자의 물음에 그는 “불가능하다”고 답했다. 그러나 불과 10일 뒤 동독은 국경 전면 개방 조치를 발표했고, 이듬해 1990년 10월 3일, 동독의 다섯 개 주가 서독으로 편입되면서 독일 통일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졌다. ‘한반도 통일도 도둑처럼 올 것’이란 말이 실감 나는 대목이다.

통일은 어떻게 올 것인가. 한반도 통일 시나리오에는 여러 변수가 있지만, 북한이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방식의 ‘연착륙 후 통일’ 전략이 가장 바람직하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막대한 통일 비용 때문이다. 1990년 당시 동서독의 경제 격차는 약 8배였다. 독일 정부는 통일 후 20년 동안 약 1조5000억 유로를 통일 비용으로 투입했다. 매년 1300억 유로(약 150조원)를 옛 동독지역 지원에 사용한 셈이다. 하지만 지속적인 재원투입에도 불구하고 동독지역 경제지표는 서독의 80%를 밑돌고 있다. 2022년 현재 남북한 경제 규모 격차는 약 50배 정도다. 따라서 독일보다 막대한 통일 비용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이 주도하는 대(對)북한 UN 제재는 갈수록 강력해지고, 2년 넘게 세계를 휩쓸고 있는 코로나19 등으로 인한 국경폐쇄 등, 외부 세계와 담을 쌓고 있는 북한은 아시아 대륙의 외딴 섬 ‘갈라파고스’ 처지다. 이 같은 고립 상태가 지속된다면 북한은 결국 자멸의 길로 갈 수밖에 없다. 아포리아에 빠진 현실을 직시(直視)하고 담대한 비상대책으로 위기돌파를 시도해야 할 것이다.
 
권불십년(權不十年)이 무색한 절대권력자 김정은
 
체제 붕괴냐 기사회생이냐, 북한은 이제 사활(死活)의 갈림길에 직면해 있다. 집권 10년 차인 김정은은 권불십년(權不十年)을 무색하게 김정일과 쏙 닮은 제왕적 근성을 가지고 공포통치로 북한 정권을 확실하게 장악, 안정적으로 권력을 유지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사소한 정을 버리고 방해가 된다면 죽여라’는 제왕학의 교훈대로 자신을 후계자로 올리는 데 역할을 했지만, 정치적으로 내부의 정적이 될 수 있는 고모부 장성택(2013.12.12)을 처형했다. ‘핏줄이라도 장차 화근이 된다면 완전히 근절하라’는 원칙대로 이복형인 김정남(2017.2.13)을 제거하고 권력을 탄탄하게 장악한 것이다. 철저하게 짓밟고 잔혹해야 생존하는 비정한 권력투쟁을 적나라하게 시현하고 있다. 김정은 정권의 미래는 남북관계와 우리 민족 전체에 대단히 큰 영향을 미칠 변수로 작동된다. 김 위원장이 '체제위협'이라는 자기중심적 사고를 탈각(脫殼)해 현려(賢慮) 리더십을 발휘, 북한이 자립경제의 기틀을 마련하고 난국을 돌파할 비전으로 세 가지 전략을 제안한다.

첫째, 북한판 아우토반을 건설하는 일이다. 히틀러는 1930년대 마이카시대를 연다면서 폭스바겐사를 설립했고, 군사적 위험이 있다는 군부 반대에도 속도 제한 없이 달릴 수 있는 고속도로 아우토반을 건설했다. 아우토반은 히틀러에게 세기적 독재자라는 악명과 함께 독일을 세계 최대 경제공업 국가로 만든 정치인이라는 두 가지 상반된 이미지를 갖게 하는 계기였다. 아우토반은 1970년대 대한민국 경제성장의 촉발제였다. 1964년 박정희 대통령은 서독을 방문해 아우토반을 시속 160㎞로 달려본 후 자극을 받아 경부고속도로 건설에 나섰다. 현재 한국에는 20여 개가 넘는 고속도로가 연결되어 경제 물류의 핏줄 역할을 하고 있다. 유일 영도체제인 북한의 경우, 히틀러 숭배자인 절대권력자 김 위원장이 결단하면 10차선 광폭의 21세기형 아우토반 건설을 추진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대일(對日) 수교를 통해 경제협력자금으로 배상금을 청구하는 일이다. 대한민국은 1965년 한·일국교 정상화 당시 무상 3억 달러, 유상 2억 달러 등 총 5억 달러 배상금을 받았다. 당시 한국 정부 예산의 1.5배 수준으로 지금 화폐 가치로 대략 100억 달러에 해당한다. 2002년 9월,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郎) 총리와 김정일 위원장 시절 북한과 일본 두 정상이 북·일수교 직전까지 진행, 과거사 보상과 국교정상화회담을 약속했지만, 납치자 문제 등으로 지금까지 표류 중이다. 당시 북·일 수교와 함께 청구권 협상이 진행되었다는 점에서 ‘시간이 없는’ 김정은 위원장으로서는 국가전략으로 수교회담을 재개할 필요가 있다. 2016년 북한의 제4차 핵실험 이후 공식적인 대화 및 접촉이 없는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일본의 북한과의 수교는 아베 전 총리가 주장하는 ‘전후 체제로부터의 탈각(脫殼)’을 의미하므로 일본으로서는 지금도 현안 가운데 하나다.

셋째, 남북 철도를 연결하는 일이다. 지난 세기 초, 일본은 만주국 건설과 중국 침략을 위해 한반도에 남북으로 철도를 깔았다. 부산에서 북경까지 갈 수 있도록 철도망을 구축했다. 북한이 남북 철도를 연결한다면, 그 자체만으로 지속적인 경제적 수익을 창출할 수 있을 것이다. 아시아, 더 나아가 시베리아 철도로 이어지는 육상운송이 가능해지면 수출량이 많은 대한민국과 일본이 해상운송을 통해 지출해야 하는 물류비의 상당 부분을 흡수하게 될 것이다. 특히 남북 철도연결 문제는 유엔 안보리에서도 제재 면제 결정을 내린 사안이다.

북한 김정은 위원장의 핵심 정책인 ‘핵·경제 병진 노선’은 실패로 드러나 자멸의 길로 가고 있다. 북한은 핵보유국 환상에서 벗어나 획기적 전환으로 오늘의 위기를 돌파해야 할 것이다. 일찍이 중국의 덩샤오핑이 개혁 개방 정책으로 오늘의 경제 대국 중국을 이룩한 것처럼 김 위원장이 핵을 포기하고, 이 세 가지 가운데 하나만 달성해도, 잔인한 독재자 이미지보다 파탄에 빠진 북한의 중흥과 경제부흥을 일으킨 ‘개명 군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박종렬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철학과 ▷중앙대 정치학 박사 ▷동아방송·신동아 기자 ▷EBS/연합통신 이사 ▷가천대 신방과 명예교수 ▷가천대 CEO아카데미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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