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준호 칼럼] 대전환 시대, 우리 교육이 가야할 3가지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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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호 경인교육대학교 윤리교육과 교수
입력 2022-03-2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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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호 교수] 



 
우리 교육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교육의 모든 단계에서 사교육은 여전하고, 대학을 나와도 취업하기는 어렵다. 자율성, 창의성, 사회성의 철학을 입힌 교육과정은 2015에서 2020으로 진화하고 있지만 허울 좋은 빈껍데기와 같다. 평가 방식과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학습 내용을 잘 외우고 객관식 문제를 신속하게 푸는 아이가 수도권 대학에 진학한다. 인성이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속으로는 학력을 따진다. 학력사회에 내재된 표리부동(表裏不同)의 단면이다. 하지만 대학에 가서도 인간 삶의 기본인 예(禮)와 인(仁)을 알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직장에서도 인간관계는 어렵고, 평생 학습 역량은 빠르게 소진된다. 무한 경쟁에서 생존의 무기인 개인주의를 넘어서는 시민성은 찾아보기 어렵다.
 
지난 20대 대선에서 교육의 본질적 문제는 다루어지지 않았다. 고3 학생(11만2932명)을 포함해서 생애 처음으로 선거권을 행사한 18∼19세 유권자 100만명은 TV토론과 매체에서 교육의 현실과 문제에 대한 진실한 대화가 아니라 네거티브, 마타도어, 갈라치기를 보며 무엇을 느꼈을까? 부끄러운 마음에 6개월 전 2021년 9월 말 독일 총선을 떠올려 보았다. 사민당(SPD)의 숄츠(Olaf Scholtz), 기민·기사련(CDU·CSU)의 라셰트(Armin Lasschet), 녹색당(Die Grüne)의 바에르보크(Annalena Baerbock)의 총리후보자 삼자토론은 정책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다. 탄소중립, 코로나, 디지털화, 외교, 복지, 교육, 재정, 노동에 대해 각자의 철학과 대안을 치열하게 펼쳐보였다. 에토스, 로고스, 파토스가 어우러진 정치인의 품격이 돋보였다.
 
사실 주변의 모든 것은 아이에게 교육적 효과를 지닌다. 부모의 삶을 보고 배우고, 학교의 학습 및 평가를 통해 배우며, 또래 집단에서 친구와 교제하며 배우고, 매체를 통해 어른의 말과 행동을 보고 배운다. 2021년 독일 총선에서 독일 아이들은 공적 문제과 미래를 고민하는 정치인의 논리적 언어와 진실한 태도를 배웠을 것이고, 2022년 대선에서 우리 아이들은 정치인의 네거티브와 뇌피셜, 나아가 그들이 표출하는 공격적이고 분열적인 언어를 배웠을 것이다. 대선은 아이들에게 또 다른 오징어 게임으로 비치지 않았을까? 한쪽은 선순환이고, 다른 한쪽은 악순환이다. 어떻게 해야 이러한 악순환의 비극을 끊고 선순환으로 다가갈 수 있을까?
 
우리는 대전환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디지털화가 주도하는 제4차 산업혁명의 파고가 높다. 기후변화와 감염병이 인류의 삶을 위협하고 있고, 미국, 중국, 유럽, 러시아의 힘겨루기로 세계 질서가 재편되고 있다.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인구 소멸과 노령화가 진행되고 있고 젠더 갈등, 세대 갈등, 정치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이러한 복합적 문제는 결국 교육이 길러내는 인간의 직업적·시민적 역량에 의해서만 해결되기 때문에 우리의 교육은 전면적으로 개혁되어야 한다. 선진 국가인 독일 사례에 비추어 우리나라 교육은 세 가지를 혁신해야 한다. 첫째는 수능을 객관식에서 서술형(논술형)으로 바꾸어야 하고, 둘째는 학교에서 정치교육(시민교육)을 강화해야 하며, 셋째는 대학교육(고등교육)에 과감하게 투자해야 한다.
 
첫째, 미래를 위해 기존 수능체계를 버려야 한다. 국어 45문항에는 난이도를 위해 양자역학 지문이 등장하기도 한다. 영어 45문항의 지문은 원어민도 이해하기 어렵다. 수학 30문항은 교육과정을 넘나든다. 국·영·수 세 과목을 각각 80분, 70분, 100분에 풀어야 한다. 이러한 시험으로 비교육적 줄세우기와 폭력적인 서열화가 재생산되고, 아이들은 공정이라는 허명(虛名)하에 학력(점수)의 늪에 빠져들며 기계적 반복 학습으로 생각, 토론, 성찰의 역량을 길러내지 못한다. 미래가 요청하는 창의적 혁신을 위해서, 나아가 인간적인 삶을 보존하기 위해서 모든 아이에게 질문하고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답이 아닌 생각의 표현을 평가해야 하지 않을까? 독일의 수능 격인 아비투어(Abitur)는 논술과 말하기로 구성된다. 예컨대, 2017년 독일어 아비투어는 괴테(Johan Wolfgang Goethe)의 '새로운 사랑, 새로운 삶'이라는 시 24줄, 야콥스(Steffen Jacobs)의 '만남'이라는 시 12줄이 제시되고 두 개의 시를 180분 동안 비교하고 분석하는 논술형 문제였다. 80분 내에 8개의 긴 지문을 읽으며 45문항의 객관식 정답을 찾는 시험과 두 개의 시를 180분 동안 비교·분석해 서술하는 시험 중에 어떤 것이 아이들의 사고력과 창의성을 길러줄 수 있을까? 수능이 아니라 아비투어다.
 
둘째, 성숙한 시민성과 정치적 판단력을 길러주는 정치교육(시민교육)을 학교에서 제공해야 한다. 소통을 통해 자기 의견을 정립하고 공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참여하는 역량을 길러주는 것이 정치교육이다. 시민이 정치적 판단력과 시민적 성숙함을 갖추고 있어야 사회에서 좋은 정치가 실현된다. 독일은 1976년 이후 '보이텔스바흐 합의(Beutelsbacher Konsens)'에 기초하여 학교에서 정치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2021년 9월 독일 총선에서 정치인이 정책토론을 성숙하게 하는 것도 정치교육의 효과이다. 제4차 산업혁명 시대에도 정치교육은 필요하다. 제4차 산업혁명은 기존의 산업혁명과 다르다. 철학자 프레히트(Richard David Precht)는 <사냥꾼, 목동, 비평가>(2020)에서 “제4차 산업혁명은 최적화에 대한 요구를 생산 과정에만 적용하지 않는다. 인간 자체를 최적화가 필요한 존재로 여긴다”고 말했다. 뇌에 칩을 심어 호모 사피엔스를 최적화하고 인간 삶에서 비효율적인 것을 제거한다고 치자. 그렇다고 우리가 행복해질까? 민주주의와 같은 비효율적인 제도도 제거할 것인가? 정치교육에 의해 확보된 성숙하고 숙의적 정치만이 이윤 추구를 위해 작동하는 최적화의 요구를 관리하고 통제할 수 있다.
 
셋째, 대학교육에 과감하게 투자해야 한다. 독일과 우리나라의 고등교육 예산을 비교해보자. 2015년 기준으로 독일은 500억 유로(약 75조원)였고, 우리나라는 9조원이었다. 약 8배 차이가 난다. 독일 인구는 우리나라보다 약 1.6배 많은데 대학생 수는 280만명으로 우리나라의 360만명보다 80만명 적다. 대학 진학률이 독일은 35%고 우리나라는 약 70%다. 독일의 경우 대학생 280만명은 무상교육과 생활비 지원 혜택까지 받고, 대학의 연구는 주정부의 과감한 재정 지원을 받고 있는데, 이것이 바로 독일을 지속 가능하게 성장하는 국가로 만드는 비결이다. GDP의 1%도 투자하지 않고 지속 가능한 성장을 바라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국립대는 정부의 부족한 경상비 지원으로 살림살이를 줄이고 사립대는 등록금 동결로 경영이 어려운 상황에서 국립대와 사립대의 연구활동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2021년 7조6000억원)에만 목매달고 있다. 더구나 학령인구 감소로 수도권을 벗어난 대학은 사실상 존폐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이 와중에 서울대만 견고하게 자신의 특권적 지위를 누리고 있다.
 
독일 고등교육 모델이 우리나라에 시사하는 점은 ‘분산투자’다. 독일 16개 주에는 대표적인 국립대학들이 있다. 평준화된 국립대학들이다. 분산투 자에 관한 한 가지 사례를 들어보겠다. 예컨대 독일 남부의 바이에른주는 제4차 산업혁명에 필요한 인력을 양성하고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해 '바이에른 디지털화 센터(ZD.B)'를 뮌헨 공과대학(TU München) 내에 설치하고 바이에른 내 20개 국립대학에 각각 새로운 교수 1명씩을 분산 배치했다. ZD.B는 주의 20개 대학이 모두 각 지역의 강소기업과 함께 디지털화 관련 산학협력을 하며 인력을 양성하고 신기술을 만들어내도록 지원하는 플랫폼 역할을 했다. 이러한 분산형 산학협력을 통한 인력 양성 및 기술 개발 프로젝트에 2015년부터 2018년까지 주 예산 약 3조3000억원이 투입되었다. 이는 바이에른주의 균형 발전은 물론 다양한 기술생태계 확보의 토대가 되었다.
 
이러한 독일식 분산 투자 모델은 경기도와 같은 광역단체에 적용될 수 있다. 현재 신산업 관련 고등교육에 대한 투자는 미흡한 수준이다. 예컨대 반도체학과 졸업생이 연간 650여 명이지만 연간 1500명 이상은 필요하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미래형 자동차와 IoT 가전 등 신산업 분야 전문가도 1만명 이상 부족하다. 경기도와 같은 광역단체가 주도하며 분산형 산학협력 시스템을 구축하여 대학을 지원해야 할 것이다. 경기도 남부에는 K-반도체 벨트와 신산업이 구축되어 있다. 이를 활용하고 지원하는 플랫폼으로서 ‘도립반도체전문대학’을 설립하고, 그 플랫폼을 중심으로 경기도 내 52개 대학(4년제 대학과 전문대) 중에서 미래 신산업과 관련 있는 학과를 지원하여 인력 양성과 신기술 개발의 다양한 생태계를 확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필진 주요 이력

 ▲독일 뮌헨대학교(LMU) 정치학 박사 ▲미국 UC SanDiego Visiting Scholar ▲경인교육대학교 윤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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