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춘 칼럼] '버티기 달인' 러시아에 대한 서방의 금융제재 효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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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춘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원장
입력 2022-03-04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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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춘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원장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서방의 경제제재가 본격화되고 있다. 서방의 경제제재는 수출통제와 금융제재를 두 개의 축으로 삼고 있다. 수출통제는 미·중 갈등 상황에서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사용한 견제수단 중 하나이며 우리는 이에 대해 이미 익숙해져 있다. 일본이 2019년에 우리나라를 상대로 뽑아든 칼도 바로 수출통제였다. 수출통제가 각종 전략물자나 첨단기술과 관련된 실물규제인 데 반해 금융제재는 자금의 흐름을 차단함으로써 실물거래에 타격을 주고 나아가 금융시스템 자체의 마비를 초래할 수 있는 것이다. 미국과 유럽 등 서방국가들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응한 조치로서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에서 러시아 금융기관을 차단하는 조치와 러시아 중앙은행이 보유한 외화자산을 동결하는 조치를 단행하였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초기에는 이러한 조치가 포함되어 있지 않았으나 미국 등 서방국가들은 급작스럽게 대응전략을 수정하여 금융 핵폭탄이라고 불리는 조치들을 취하기 시작했다. 지난 3월 1일 열린 G7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에서도 이러한 방침이 재차 확인되었고 러시아의 달러 접근능력 약화에 힘을 쏟고 있다. 그렇다면 러시아에 대한 서방의 금융제재는 과연 얼마나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까? 러시아와 같은 강대국에 대해 이러한 초강경조치가 취해진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이러한 실험의 결과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먼저 금융제재가 초래할 경제적 귀결의 메커니즘에 대해 논리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서방의 대러 금융제재는 러시아 정부, 중앙은행, 금융기관, 기업의 달러 접근성을 차단하는 것이 핵심이다. 러시아는 약 6300억 달러의 외환보유고를 가지고 있다고 알려져 있는데 그중 약 60%인 4000억 달러는 미국 등 서방국가 금융기관에 예치되어 있다. 해외에 예치된 러시아 중앙은행의 자산이 동결됨으로써 러시아가 가용한 달러자산 규모는 크게 줄어들게 되었다. 러시아의 가용 달러자산의 감소는 즉각적으로 채권시장과 외환시장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러시아 정부, 은행, 기업의 채무불이행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3월 1일 시점에서 2047년 만기 달러표시 러시아 국채가격은 반토막 났다. 국채금리는 8%에서 18%로 급등했다. 채권시장보다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외환시장이다. 달러 접근성 제약으로 달러가격의 폭등, 즉 루블화 가격의 폭락이 발생할 것이기 때문이다. 서방의 경제제재 이후 루블화 가치는 역대 최악으로 폭락했다. 달러 접근성 통제는 수입물자 부족과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것이다. 인플레이션과 루블화 가치 하락은 사람들을 금융기관으로 몰려들게 할 것이다. 가치가 하락하는 루블화를 금융기관에 예치하는 대신 이를 외화나 실물자산과 교환하려는 동기가 작동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예금의 유출과 금융시스템의 안정성을 저해하게 될 것이다. 결국 서방의 대러 금융제재는 이론적으로 볼 때 루블화 폭락, 인플레이션, 금융기관과 기업의 채무불이행, 예금인출과 국내 금융시스템의 교란을 초래하고 투자, 소비 등 실물부문에도 상당한 타격을 줄 것으로 해석된다. 그렇다면 실제로 그 효과는 얼마나 나타날 것인가?

러시아에 대한 금융제재 효과는 아직 단정할 수 없다. 다만 과거의 사례를 참고할 수는 있을 것이다. 러시아는 1998년 러시아 통화위기, 2014년 크림반도 합병 이후 서방의 대러제재를 경험했고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이번의 금융제재를 경험하고 있다. 1998년 통화위기로 인해 러시아 경제는 1999년에 GDP가 거의 반토막 나는 막대한 손실을 경험했다. 루블화는 ‘1997년 12월 대비 ’2001년 12월에 무려 80%나 폭락했고 1999년의 인플레이션율은 92.7%에 달하였다. 장기금리도 110%에 이르는 등 상식적으로는 납득하기 어려운 엄청난 시련을 겪었다. 그러나 유가 등 자원가격의 상승을 거치면서 러시아 경제는 2000년부터 2013년까지 장기에 걸친 호황을 구가하였다. 1990년대 중반 5000억 달러에도 미치지 못하던 GDP 수준은 2010년대 들어서는 2조 달러를 훌쩍 넘어섰다. 외환보유액도 증가하여 지금은 6000억 달러를 상회하기에 이르렀다. 크름반도(크림반도) 사태 이후 유럽의 대러 제재로 러시아는 또다시 시련을 겪게 되는데 이 시기 루블화는 48% 폭락(2014년 7월~2015년 1월)했고 2015년 인플레이션율은 15.6%, 장기금리는 16% 정도에 달하였다. 통화위기 시기와 비교해서는 상대적으로 그 영향이 미미한 것처럼 보이지만 GDP는 2013년 약 2조2000억 달러에서 2016년에 약 1조3000억 달러로 거의 1조 달러가 감소하였다. 그리고 이번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경제제재가 또다시 러시아를 기다리고 있다. 이번에는 과거에 비해 더 큰 영향이 발생할 것인가? 루블화는 지난 1주일 사이(2022년 2월 22~28일) 30% 하락했다. 인플레이션율은 금융제재 이전인 지난 1월에 8.7%였지만 수출통제와 금융제재로 얼마나 상승할 것인지 미지수다. 장기금리는 급등하여 18%대에 달하였다. 짧은 기간의 제재임에도 불구하고 그 영향이 크름반도 합병 이후 제재에 필적하는 효과를 보이고 있음이 확인된다. 더구나 이는 시작에 불과하기 때문에 제재가 장기화될 경우 얼마나 큰 영향이 나타날지 예단하기는 매우 어렵다.

현재 러시아 중앙은행은 은행에 무제한으로 자금을 공급하고 정책금리도 9.5%에서 20%로 인상하였다. 우리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조치들임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나 여타의 신흥국에서는 흔히 일어나고 있는 정책대응이다. 러시아 경제는 서방제재로 또다시 추운 겨울을 맞이하고 있다. 러시아 경제는 앞으로 몇 년이 될지 모르는 수축기, 동면기에 접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한 가지가 있다. 러시아는 ‘버티기 달인’이라는 점이다. 과거 여러 차례의 위기와 제재가 있었지만 러시아는 경제규모가 반토막 나는 한이 있더라도 이를 버티기로 대응해 왔다. 러시아는 자원이 풍부한 나라이며 경제의 대외의존도는 상대적으로 낮은 나라이다. 자동차, 기계 등은 수입에 의존하지만 기본적인 생활필수품은 자체 조달이 가능하며 설령 높은 인플레이션과 실질소득의 감소가 있더라도 이를 버텨내는 맷집을 보여 왔다. 좋고 나쁨에 대한 가치판단을 떠나서 러시아는 ‘버티기 달인’이라는 점을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금융 핵폭탄이라고 불리는 국제결제망 차단에 러시아는 중국과 협력하여 다른 결제망을 구축하는 방향으로 대응할 공산이 크다. 서방국가들의 수출통제 또한 글로벌 공급망의 디커플링을 촉진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금융제재에 따른 러시아 기업과 금융기관의 채무불이행 증가는 서방 기업들의 손실을 증폭시킬 것이기 때문에 금융제재는 양날의 칼이다. 상대에게 날카로울수록 나에게도 치명적일 수 있다. 날 선 양날의 칼이 무섭게 요동치고 있다.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라'라는 속담이 생각나는 때이다. 
 
정성춘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경제학과 ▷히토쓰바시대학(一橋大學) 경제학연구과 경제학 박사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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