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윤 (사)남북물류포럼 대표]


 
북한 노동당 8기 제4차 전원회의 결정서를 통해 북·미 관계와 남북 관계를 전망해 보려고 했던 희망은 한낱 기우였다. 북한이 이에 대해 제대로 밝힌 것이 없기 때문이다. 속내를 드러내지 않으려는 의도로 해석할 수 있으나, 작금 북한이 직면해 있는 상황이 이를 언급할 만큼 녹록하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대신, 내부 정비 모습은 역력하다. 살길을 찾겠다는 의도가 그대로 노출되고 있다. 한마디로 북한은 현재 외적으로 가해지고 있는 제재에 스스로 만든 봉쇄가 겹쳐진 고립적 상황 속에 있다. 이런 점에서 2022년 북한은 그들만의 특별한 “자력갱생”의 길을 갈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올해 국정 방향을 결정하는 자리에서 “무겁고도 책임적인 고민을 마주하게 될 것”이라고 밝힌 것을 보면 북한이 당면한 내부 분위기가 어떤지 짐작이 간다. 지난해 벽두만 해도 김 위원장은 신년 맞이 친필 연하장을 돌리기까지 하지 않았던가 말이다.
 
역대 최장기간인 5일간(2021.12.27~31) 진행된 이번 전원회의에서 눈에 띄는 점은 단연 먹고사는 문제다. 김 위원장이 '우리식 사회주의 농촌 발전의 위대한 새 시대를 열어나가자'는 제목으로 별도 형식의 연설을 하고, 따로 결정서를 채택한 것을 보면 먹고사는 문제가 얼마나 절박한지 짐작이 간다. '새로운 사회주의 농촌 건설 강령'이자 '중장기 농촌 발전 전략'이 전원회의 결과 제시된 보도문의 거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것도 이를 증명하고도 남는다. 다른 분야의 결정서를 압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가 얼마나 지난했으면 농업 부문을 “당이 제일 중시한다"고까지 했을까. 먹고사는 문제에 깊은 그늘이 드리워져 있는 것이 2022년을 맞이한 오늘의 북한이다.
 
"농촌을 현대적 기술과 현대 문명을 겸비한 부유하고 문화적인 사회주의 농촌으로 전변시킬 데 대한 전략적 방침"은 북한이 습관적으로 반복하는 문장이다. '생산성 향상과 과학화'도 늘 되풀이되는 용어다. 그만큼 작동하지 않는 내부 경제의 표상을 그대로 전달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북한이 '모든 농촌 마을'을 ‘부유하고 문화적인 사회주의 이상촌’으로 만들겠다고 하는 것이나 ‘농촌 면모·환경의 결정적 개변’을 사회주의 농촌 건설의 최중대 사업이라고 선언하고 있는 것은 그런 모습을 원하는 절규라고 해야 할 것이다. 어느 한 가지라도 2021년 경제적 성과로 드러낸 것이 없다. 김 위원장은 오직 “인민의 세기의 숙망을 반드시 실현하려는 당의 결심과 의지”만을 강조하고 있을 뿐이다. ‘식량문제의 완전 해결’을 다짐하면서 벼와 밀 농사를 강하게 추진해 인민의 식생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을 보면 김일성 당시의 “이팝(흰쌀밥)에 고깃국”을 연상케 한다. 실현되지 않고 있는 염원을 웅변하고 있는 것이다. “그 어떤 가물과 큰물에도 끄떡없이 농사를 안전하게 지을 수 있게 나라의 관개 체계를 전반적으로 정비보강”해야 한다는 것도 아직 농사를 위한 그런 기본적인 체계가 만들어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질소비료와 린비료, 카리비료를 비롯한 농작물의 생육에 필요한 여러 가지 비료들과 효능 높은 농약들을 충분히 공급”하겠다는 것도 그런 비료와 농약이 부족하다는 현실적 고민을 말하는 것이다. 북한은 “현대적인 전력 설비와 전기기계들을 더 많이 보내주어 농촌의 생산활동과 문화생활 조건을 개선·향상”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자존심 때문인지 과장된 표현도 서슴지 않는다. “당이 제일 중시하는 농업 부문에서 평가할 수 있는 성과, 자신심을 가지게 하는 뚜렷한 진일보가 이룩되었다”고 하는가 하면, 5개년 계획 기간에 수도의 살림집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할 수 있는 전망을 보여주었다는 것만 가지고도 ”경이적인 기적“이라고 일컫고 있다. 하나라도 제대로 완성한 것이 없음을 자인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송신·송화지구의 1만가구 건설을 비롯해 검덕지구 5000가구 살림집 건설 등도 ‘완공’이 아닌 ‘성과적 진척’으로 표현하고 있지 않은가. 북한이 현재 필요한 것은 스스로 표현하듯이 ‘전 국가적으로 농사에 힘을 집중하고 농사일을 과학·기술적으로 진행하여 알곡 생산을 높이는 것’이다.
 
북한 상황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는 것은 정작 따로 있다. 다름 아닌 코로나19 감염에 대한 ‘국경 봉쇄’다. 코로나19 방역사업은 농업 문제 해결보다 더 시급하게 추진해야 할 제1순위의 국가사업으로 설정되어 있다. 북한은 스스로 봉쇄한 속에서 자력갱생의 기회를 강화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내심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하려는 의도를 강하게 비추고 있는 것이 특별하다. 방역의 새 방향인 ‘과학적·물질기술적 토대’를 갖추려고 하는 것이 그것이다. 이름하여 “선진적·인민적 방역”이다. 백신과 치료제를 도입해 ‘국경 봉쇄’식 방역에서 탈피하려는 의도로 읽힌다. 내부 상황과 국제적 여건이 맞으면 남한 또는 국제사회와도 협력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당면한 대내적 비상 상황은 대외적 차원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음이 분명하다. 이번 전원회의에서 북·미 관계와 남북 관계의 향방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언급이 없는 것이 이와 맥을 같이한다. 국제정치와 한반도 주변 환경에 대응하여 남북 관계와 대외 사업 부문에서 견지해야 할 기본 문제들과 전술적 방향에 대한 논의가 있었음을 밝히고 있으나, 기껏 언급하고 있는 것은 ‘전투기술기재를 개발·생산하여 국가 방위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정도다. 문제는 경제난에 처해 있는 북한이 과연 그런 무기를 원하는 만큼 생산해 낼 수 있는 역량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남한의 종전선언 제의에 대해 자신들에 대한 ‘이중 기준’ 철회 등이 선행돼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였음에도 이번 전원회의에서는 언급조차 없었다. 2월 베이징 동계올림픽에 관한 내용도 전무한 것을 보면 남한과의 대화에도 현재로서는 지극히 소극적임을 알 수 있다. 내부 자원 동원만으로는 한계에 부딪힌 북한. 당분간은 국경을 폐쇄한 채 최소한의 교역에 국한하는 현상 유지에 치중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대북 적대적 행위의 중단이나 경제 제재 완화 등 획기적인 제안이 있기 전까지는 능동적이며 협력적 자세를 취할 가능성은 상당히 낮다. 금년 3월이면 확정될 한국의 차기 대통령은 이와 같은 북한 상황을 감안해 어떤 정책을 통해 남북 관계 개선을 이루어나갈지 생각해야 할 것이다. 


김영윤 필자 주요 이력 

▷독일 브레멘대학 세계경제연구소 연구원 ▷통일연구원 북한경제연구센터 소장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상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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