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종 칼럼] 대(大)퇴직(the Great Resignation) 사태 한국도 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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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종 숙명여대 국제관계대학원 교수
입력 2022-01-04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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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종 숙명여대 국제관계대학원 교수 ]



 
2022년 한국 사회에 닥쳐올 큰 변화 중 하나가 현재 미국에서 유행인 '대(大)퇴직(The Great Resignation)'이 아닌가 한다. 대퇴직이란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며 자발적으로 회사를 사직하는 노동자의 숫자가 급격히 증가하는 현상을 말한다. 미국에서는 지난해 1월부터 10월까지 3900만명의 노동자가 자진 퇴사했는데 이는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2000년 이후 최고치에 달한다. 주로 소매업, 식당, 호텔 등 저임금 서비스직에서 팬더믹 상황에 악화된 근무 환경으로 인해 발생한 번아웃, 즉 심신이 고달파진 이유 때문에 시작된 이 현상은 이제 일반 사무직종까지도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다. 이로 인해 기업은 직원 구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어 이에 대처하기 위한 방안에 고심하고 있다. 상황이 조금 다르지만 유럽에서도 이 현상은 심화되어 독일에서는 기업의 3분의 1이 숙련 노동자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대퇴직이라는 용어를 처음 고안한 텍사스 A&M 대학의 앤서니 클로츠(Anthony Klotz) 교수는 팬더믹으로 인해 직장인들이 번아웃을 겪는 과정에서 일과 생활에 대한 새로운 가치관을 갖게 되면서 사직 후 워라밸(일과 생활의 균형)이 좀 더 보장되는 창업이나 프리랜서로 전업하거나 아니면 아예 조기 퇴직을 단행한다고 설명한다. 물론 이런 현상은 팬더믹 이전에도 있었다. 특히 인생의 행복을 금전적 성취보다 중요시하는 젊은 MZ세대에게 두드러진 현상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추세는 직장인들이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디지털 업무를 통한 유연한 재택 근무 환경을 경험한 이후 더욱 가속화되었다.

이렇게 직장을 사직한 근로자들은 시간과 장소에 크게 얽매이지 않고 업무가 가능한 디지털 경제 활동으로 전환하게 되는데 핀테크나 인터넷 뱅킹, 가상자산 분야에서 이러한 기회를 찾게 된다. 이는 한국에서도 발생하는 현상이다. 프리랜서와 일자리를 연결하는 서비스가 증가하고 있고 전통적 금융 기업에 근무하던 직장인들이 사직하고 인터넷 금융 관련 업무를 창업하기도 한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작년 3분기 자발적 이직 노동자 수가 87만명에 달해 전년 동기 대비 12% 상승했다. 2분기에는 85만6000명으로 1년 전 보다 17.7% 증가한 바 있다.

단순한 수치뿐 아니라 실제로 이런 현상을 생생하게 목격할 수 있는 곳이 제주도가 아닌가 한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한국의 많은 MZ세대들이 현재 이곳에서 단기·장기 체류하고 있다. 이들 중 일부는 칼 같은 출퇴근이 요구되는 빡빡한 직장 생활을 일시 사직하고 여기서 몇 달 혹은 몇 년 동안 여유 있는 충전 기간을 갖는다. 직장 생활 중 저축한 돈이나 실업 급여에 의존하면 충분히 생활이 가능하다. 자금력이 있고 장기 체류를 원하는 사람 중에는 아예 게스트하우스나 셰어하우스를 차려 사업을 하는 경우도 있다. 일부는 직장을 갖고 있는 경우도 있는데 육지를 끊임없이 왕래하며 재택 근무, 월차 휴가 등을 이용해 회사 업무를 처리한다. 제주도에서 만난 한 30대 여성 직장인은 벌써 1년째 이런 생활을 하고 있는데, “코로나19로 인해 일과 인생에 대해 새로운 생각을 갖게 되었다”고 말했다.

이러한 대퇴직 시대를 맞아 기업들은 여기에 대응하기 위해 고심할 수 밖에 없다. 아직 한국에서는 일어나지 않은 상황이지만 미국에서는 기업들이 심각한 인력난을 겪고 있고 이로 인해 임금은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저임금 근로자 임금은 1920년 이후 가장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이는 공급망 차질과 맞물려 인플레이션 등 심각한 경제난까지 유발하고 있다. 미국 기업들은 사직한 직장인들을 다시 불러들이기 위해 여러 가지 유인책을 강구한다. 골드만삭스는 무급 안식년제를 도입했고 크라우드 펀딩 회사 킥스타터는 주4일 근무제를 채택했다. 그 밖에도 일정 시간 회의나 통화를 금지하는 블랙아웃제를 통해 직장인의 업무 스트레스를 줄이려는 회사도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런 정도의 조치로는 대퇴직 현상을 막기엔 역부족이라고 진단한다. 선진국의 경우 고령화 및 저출산과 맞물려 인력 부족 현상은 단기에 끝나지 않고 장기화할 것으로 전망한다. 오랫동안 정체된 임금과 날로 가중되는 업무 부담에 염증을 느끼는 직장인들은 팬더믹을 통해 직장 생활에 대한 본질적인 회의를 느끼고 있고 이는 팬더믹이 끝나도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것으로 판단한다. 일부 학자는 현재의 대퇴직이 일종의 “자발적·비공식적 파업”으로 규정하며 대폭적인 임금 인상과 근로 조건 개선을 요구하는 집단적 행동으로 여긴다.

이와 관련해 애비게일 수식( Abigail Susik)이라는 저명한 역사학자는 뉴욕타임스 기고문을 통해 작금의 대퇴직 사태가 기업 문화 및 고용주와 고용인 관계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패러다임의 변화로 이어질 것으로 예측한다. 20세기 초 프랑스 등 선진국에서 비슷하게 일어났던 대규모 퇴직 및 노동운동의 결과로 근로시간 단축, 노동 환경 개선, 노동법 강화 등 획기적인 변화가 이루어진 점을 상기시키며 이와 유사한 변화를 예상한다. 팬더믹으로 더욱 심화된 양극화 때문에 이러한 현상이 생각보다 빨리 도래할 것으로 단언한다. 우리 기업들이 깊이 귀담아들어야 할 듯하다. 미국 같은 대규모 퇴직 사태가 아직 한국에는 상륙하지 않았다고 안일하게 생각한다면 한번 제주도를 방문해 보기를 권한다. 

이병종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언론정보학 박사 ▷AP통신 특파원 ▷뉴스위크 한국지국장 ▷서울외신기자클럽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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