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킹처벌법 시행 2개월] 스토킹 피해자들 왜 외면받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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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혜원 수습기자
입력 2021-12-06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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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해자 보호 없는 스토킹처벌법

  • ‘100m 이내 접근금지’ 위반에 과태료만

  • “반의사불벌죄 폐지 필요성”

경찰의 신변보호 대상 여성을 스토킹해 잔인하게 살해한 혐의를 받는 김병찬(35)이 29일 오전 검찰 송치를 위해 서울 중구 남대문경찰서를 나서고 있다. 김병찬은 지난 19일 옛 연인 A씨의 집에 찾아가 A씨를 흉기로 찔러 살해했다. 당시 A씨는 수개월간 "다시 만나 달라"며 자신을 괴롭혀온 김씨를 여러 차례 신고하고 경찰의 신변보호를 받고 있었다. 김씨는 범행 하루 전 서울로 상경해 모자와 흉기를 구입한 것으로 조사됐다. 김씨는 우발적 범행을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스토킹 처벌법 시행에도 피해자들이 보호받지 못하는 현실의 이면에는 이들을 사전에 구제할 법적·제도적 장치의 미비가 도사리고 있다. 

스토킹 처벌법이 가해자 처벌에만 초점을 맞춘 탓에 피해자 보호가 상대적으로 미흡한 것이다. 또 스토킹 처벌법에 ‘반의사불벌’ 조항이 남아 있어 피해자가 범죄에 적극 대응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피해자 보호 어디에···‘반쪽짜리’ 법의 한계

스토킹 처벌법에 따르면 피해자 보호를 위해 경찰은 △100m 이내 접근 금지 △전화 금지 등의 긴급 응급조치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조치를 위반했을 때 사용 가능한 제재는 1000만원 이하 과태료뿐이다. 스토킹 처벌법의 범죄 예방 효과가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런 스토킹 처벌법의 허점은 김병찬(35) 사건에서 고스란히 드러났다. 피해자는 전 남자친구인 김병찬의 스토킹에 시달리다 다섯 차례에 걸쳐 스토킹 피해 신고를 했다. 그 결과 지난달 7일부터 경찰의 신변보호를 받았고, 법원은 100m 이내 접근 금지와 정보통신 이용 접근 금지 등의 잠정 조치를 내렸다. 하지만 피해자는 김병찬에 의해 숨졌다.

스토킹 처벌법이 피해자 보호에 취약한 ‘태생적 결함’을 갖게 된 계기는 입법 과정에서 드러난다. 국회가 스토킹 처벌법을 먼저 통과시키고, 스토킹 피해자 보호를 후속 입법하기로 하면서다. 지난 3월 국회 속기록에 따르면 법무부는 스토킹 처벌법과 관련해 ‘스토킹 피해자 보호법은 여성가족부가 별도로 준비 중’이라고 했다.

이에 여가부는 지난달 11일 ‘스토킹 방지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스토킹 보호법)’을 입법예고했다. 여가부의 스토킹 보호법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스토킹 예방, 피해자 보호·지원을 위해 법적·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도록 하는 책무를 규정하고 있다. 

◆경찰, 가해자 유치·구속 우선 고려···스마트워치 개선
 
경찰 역시 피해자 보호를 위한 후속 조치를 마련 중이다. 남구준 국가수사본부장은 지난달 29일 “스토킹 가해자의 여러 신고 내역이나 범죄 경력을 종합 판단해 유치·구속을 우선 고려하도록 지침을 마련하는 중”이라고 밝혔다. 피해자와 가해자의 분리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경찰은 스토킹 범죄와 관련한 위치추적 시스템 개선책도 강구 중이다. 경찰은 지난달 경찰청 차장을 팀장으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신변보호 요청 피해자를 경찰이 지원하는 장치인 ‘스마트워치’의 위치값 오류에 대한 대책을 내놨다. 긴급호출을 접수하면 신고 위치에 더해 대상자 주거지와 직장에도 동시 출동하도록 매뉴얼을 개선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런 대응은 스마트워치의 한계점에 대한 지적이 이어지는 데 따른 제도적 개선으로 풀이된다. 김병찬 사건에서 경찰의 신변보호를 받고 있던 피해자는 범행 당일 스마트워치로 경찰에 두 차례 긴급호출했다. 하지만 위치값 오류로 경찰은 범행 현장이 아닌 다른 장소로 출동했다. 경찰은 첫 신고 이후 12분이 지나 범행 현장에 도착했다.
 
지난 2017년에도 스마트워치 위치값 오류로 비슷한 사례가 발생했다. 부산 강서구에서 헤어진 동거남에게 위협을 느껴 경찰의 신변보호를 받고 있었던 50대 여성이 살해된 사건이다. 당시 피해자는 살해되기 전 경찰이 지급한 스마트워치로 긴급호출했지만 경찰은 사건 현장에서 450m쯤 떨어진 곳으로 출동했다. 그사이 피해자는 전 동거남의 손에 숨졌다.

이 밖에도 경찰은 피해자 전담 경찰관 인력을 증원하고 관련 예산을 확충하는 방안, 보복 우려가 현저한 피해자에게 민간 경호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안, 스마트워치와 인공지능, CC(폐쇄회로)TV 등 신변보호장비 고도화와 확대 보급 방안, 스토킹 담당 경찰을 전 1급지 경찰서에 확대 배치하는 방안 등을 논의했다.
 

[표=한국여성정책연구원, <스토킹 피해자 보호와 지원 강화를 위한 입법과제>]


◆“보복 두려워 처벌 불원···피해자 책임 전가 반의사불벌죄 폐지”

스토킹 처벌법이 피해자가 가해자에 대해 처벌을 원하지 않으면 처벌할 수 없는 '반의사불벌죄'로 규정돼 있는 점도 개선해야 할 부분이다. 가해자가 합의를 빌미로 피해자에게 접근할 수 있고, 해당 조항으로 형사처벌되지 않으면 재범 차단 효과가 반감될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대목이다. 

전문가들은 스토킹 처벌법상 반의사불벌죄 폐지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김구슬 이화여대 젠더법학연구소 연구원은 “스토킹 사건의 상당수가 과거 연인 사이 등과 같은 친밀한 관계에서 행해지는 것으로 파악된다”며 “피해자는 자신에 대한 많은 정보를 갖고 있는 가해자와의 관계를 고려해야 하거나, 보복이 두려워 어쩔 수 없이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밝힐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스토킹 규제의 실효성을 확보하고, 스토킹의 재발 위험으로부터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반의사불벌 조항을 삭제하는 것이 타당하다”며 “독일과 일본의 경우도 초기에는 스토킹 범죄를 친고죄로 규정했으나 최근 개정을 통해 친고죄 조항을 삭제한 것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박보람 법률사무소 비움 변호사는 “피해자 의사는 사건 처리 전반에 걸쳐 존중돼야 한다”면서도 “공소의 제기·처벌과 관련해 피해자 의사를 묻는 것은 오히려 사건 처리 전반에 대한 책임을 피해자에게 전가하게 되는 셈이라 반의사불벌죄 조항은 삭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스토킹 처벌법 목적이 스토킹 행위의 제지와 피해자 보호를 위한 조기 개입이라는 점에서 피해자의 응급조치 등에 좀 더 세심한 주의를 기울일 수 있는 법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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