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신화=연합뉴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1월 11일 베이징에서 속개된 공산당 제19기 중앙위원회 6차 전체회의(19기 6중 전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중국공산당 제3의 역사결의와 시진핑의 앞날
 

시진핑(習近平)이 어떻게 자신의 당 총서기 3연임을 14억 중국 인민들과 1억에 가까운 중국공산당원들에 설명하고 합리화할 것인지는 의문에 싸여있었다. 그 의문은 3년 8개월 전인 2018년 3월 4일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이날 장예수이(張業遂)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대변인은 대회 하루 전날 으레 개최되는 사전 브리핑에 나왔다. 전인대 대변인의 사전 브리핑은 중국 국내 매체들에게는 꼭 다뤄야 하는 뉴스거리지만, 외국언론들에게는 관심사가 되지 못했다. 그러나 이날 장예수이 대변인은 엄청난 무게를 지닌 뉴스를 토해냈다.

“이번 전인대에서 이뤄질 국가주석 임기제에 관한 개헌은 국가의 영도(領導) 체제를 완성하기 위한 것이다. 현재 당 총서기와 당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의 임기에 관한 당규 규정과 국가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의 당규에 관한 규정에는 어디에도 ‘연속해서 두 번을 초과할 수 없다’라는 규정이 없다. 그러나 헌법의 국가주석에 관한 임기에는 그런 표현이 있어서 삭제하기로 한 것이다…”
유엔 대사를 지낸 장예수이는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렇게 하는 것이 시진핑 동지를 핵심으로 하는 당 중앙의 권위와 집중적이고, 통일적인 영도와 국가의 영도체제를 강화하고 완성하는 데 유리할 것이다.”

시진핑은 2012년 11월에 개최된 중국공산당 제18차 전국대표대회(당 대회)에서 당 총서기로 선출됐다. 당 총서기는 시진핑의 전 전임자인 장쩌민(江澤民) 시절부터 국가주석과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이라는 당정군(黨政軍)의 최고 권력을 독점하고 있었다. 해마다 가을에 열리는 당 대회에서 당 총서기로 선출되면 다음 해 3월에 열리는 전인대에서 국가주석으로 선출되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그 설계는 중국공산당 제1세대 지도자 세대의 핵심인 마오쩌둥(毛澤東)이 1976년 9월에 병으로 죽고, 1978년 12월에 열린 중국공산당 제11기 중앙위원회 3차 전체회의에서 권력을 장악한 제2세대 지도 핵심 덩샤오핑(鄧小平)이 해놓은 것이었다. 1989년에 벌어진 천안문 사태라는 민주화 시위가 중국공산당의 지도체제를 위협하고, 그 여파로 소련과 동유럽의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정치체제가 도미노처럼 무너지는 세계적 변화 속에서 중국공산당의 지도체제를 공고히 하기 위한 것이었다. 장쩌민 이전에는 당 총서기와 국가주석 자리는 각각 별개의 인물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권력은 당 총서기가 잡고, 국가주석은 국가원수의 기능을 행사하는 행정부의 최고 명예직이었다.

2018년 3월 개최된 전인대에서 국가주석의 3연임 금지 조항이 삭제된 이후 중국 안팎의 관심은 시진핑이 2022년으로 예정된 제20차 당 대회에서 3연임 당 총서기로 선출되려면 덩샤오핑이 개혁개방시대 정치 지도자 연경화(年輕化)를 위해 설계해놓은 ‘칠상팔하(七上八下)’라는 당내 합의를 어떻게 넘어서느냐는 것이 관건이었다. 당 최고지도부의 평균연령이 너무 높다는 점을 걱정한 덩샤오핑은 자신이 권력을 넘겨준 장쩌민을 통해 “당과 행정부의 최고위직에는 67세까지는 새로 취임할 수 있으나, 68세가 넘으면 새로 취임할 수 없도록” 칠상팔하라는 당내 합의를 만들어놓았던 것이다.

시진핑은 1953년생이므로 20차 당 대회가 열리는 내년 가을이면 만 69세가 되어 덩샤오핑이 설계해놓은 칠상팔하라는 당내 합의에 걸려 당 총서기 3연임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중국 안팎의 차이나 워처들에게는 2018년 3월의 국가주석 3연임 금지 조항 삭제로 시진핑이 2023년 세 번째의 국가주석에는 취임할 수 있겠지만, 2022년 가을의 20차 당 대회 때 당 총서기 3연임은 어떤 명분으로 칠상팔하를 무너뜨릴 수 있을 것인가 커다란 의문이었다. 그런 의문에 대한 대답은 지난달 18일 발표된 중국공산당 정치국의 결정이었다. 시진핑 당 총서기가 회의를 주재한 정치국의 결정은 “제19기 6차 중앙위 전체회의(6중전회)는 오는 11월 8일부터 11일까지 베이징(北京)에서 개최하며, 이 회의에서 우리 당의 지난 100년 분투 과정에서 이룩한 중대한 성취와 역사적 경험을 총체적으로 평가하는 문제를 연구한 결과, 이를 총괄하는 결의문을 만들어 6중전회에 넘겨 심의하기로 했다”라는 것이었다.

누가 그랬던가. “난세(亂世)의 해답은 역사에서 찾아낼 수 있다.” 1921년에 창당된 중국공산당은 지난해 100주년을 맞으면서, 1945년과 1981년 두 차례 ‘역사문제에 관한 결의’ 기록을 남겼다. 장제스(蔣介石)가 이끄는 국민당과의 내전에서 패퇴해서 이른바 장정(長征)을 통해 서북지방의 옌안(延安) 황토지대 토굴에서 연명하던 중국공산당은 외부에서 유입된 마르크스 레닌주의만으로는 당의 활로를 열어갈 수 없는 궁지에 몰려 있었다. 마오쩌둥이 이끄는 중국공산당은 1945년 4월에 개최한 제6기 중앙위원회 7차 전체회의(7중전회)에서 24년간 계속해온 마르크스 레닌주의에만 의존하는 좌경적 착오를 수정해서 마르크스 레닌주의를 중국에 맞게 운용하자는 마오쩌둥의 지도노선을 당의 노선으로 확립하고 마오를 당의 핵심지도자로 옹립한다는 제1차 ‘역사적 결의’를 하게 된다.

제1차 역사결의를 통해 당의 노선과 지도체제를 정비한 중국공산당은 미국의 지원을 받는 국민당 군대의 부패를 업고 내전에서 승리해서 1949년 10월 1일 마오쩌둥이 천안문 누대 위에서 전 세계를 향해 중화인민공화국 정부 수립을 선포하는 개가를 올렸다. 그러나 정부 수립 얼마 가지 않아 마오쩌둥은 대약진 운동이라는 경제적 무리수를 두어 수천만명이 아사하는 가운데 중국경제를 전 세계 최하위 수준으로 떨어뜨리는 실패에 빠진다. 마오는 다시 1966년부터 10년간 경제적 실패로 위기에 빠진 정치적 권위를 회복하기 위해 문화혁명이라는 거듭된 악수를 두어 중국경제와 국력은 더욱 나락으로 떨어진다.

마오는 1976년 9월 각종 성인병이 겹쳐 83세로 사망하고, 권력은 프랑스 유학파로 문혁 기간 주자파(走資派 · 자본주의 옹호주의자)로 몰려 실각했던 덩샤오핑(鄧小平)에게 넘어간다. 1978년 12월에 열린 제11기 3중전회에서 ‘실사구시(實事求是)’와 ‘사상해방(思想解放)’을 새로운 노선으로 채택하면서 권력을 장악한 덩샤오핑은 1981년 제11기 6중전회에서 ‘건국 이래 당의 역사문제에 관한 결의’를 통과시키면서 권력의 기반을 다지는 계기를 만들었다. 중국공산당의 제2차 결의라고 할 수 있는 이 결의를 통해 덩샤오핑은 1949~1976년 사이의 27년간의 마오 통치에 관해 “마르크스 레닌주의를 운용한 마오쩌둥 사상은 옳았지만, 문화혁명은 마오의 과오”라는 평가를 내린다. 제2차 결의를 통해 또한 덩샤오핑은 사회주의에 시장경제를 가미하는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와 사회주의 현대화’를 제시하면서 “가난이 사회주의는 아니며, 과학기술이 제1의 생산력”이라는 전략을 세워 빠른 경제성장의 이론적 근거를 마련했다.

덩샤오핑의 제2차 역사결의 이후 40년 만에 채택된 이번 중국공산당의 제3차 역사결의는 ‘당의 100년 분투 과정에서 이룩한 중대한 성취와 역사 경험에 관한 중국공산당 중앙의 결의’라는 긴 이름을 갖고 있다. 제3차 결의는 모두 3만6000자의 장문으로, 7개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⓵마오쩌둥 시기 신민주주의 혁명의 승리 ⓶마오쩌둥 시기 사회주의 혁명과 건설의 승리 ⓷덩샤오핑 시기 개혁개방과 사회주의 현대화 건설 ⓸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신시대의 개막 ⓹중국공산당 100년 분투의 역사적 의의 ⓺중국공산당 100년 분투의 역사적 경험 ⓻신시대의 중국공산당” 등이다. 시진핑 자신이 주도한 이 제3차 역사결의는 마오쩌둥과 덩샤오핑의 시대를 모두 긍정적으로 수용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으며, 중국공산당이 창당 100주년을 맞아 시진핑 자신이 이끄는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신시대’로 진입하는 시점에서 채택된 역사결의라는 구조를 갖고 있다.

아무래도 이번 제3차 역사결의의 핵심은 마지막 일곱 번째 부분 ‘신시대의 중국공산당’의 마지막 문장이다. “당 중앙은 전당과 전군, 전국의 각족 인민들에게 호소한다, 더욱 긴밀히 시진핑 동지를 핵심으로 하는 당 중앙 주위로 단결해서 신시대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사상을 전면적으로 관철하자”라는 미래 시제의 문장이다. 시진핑의 당 총서기 두 번째 임기가 내년 가을로 끝나는 시점에 채택된 역사결의의 미래 시제 문장에 따라 중국공산당은 내년 20차 당 대회에서 시진핑을 세 번째 연임 당 총서기로 선출하는 데 불필요한 장애물을 모두 제거할 수 있게 됐다. 중국공산당의 두 번째 100년이 시작되는 시점에 채택된 제3차 결의로, 칠상팔하라는 당 내부합의는 넘어설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시진핑은 건강만 허락한다면 내년 2022년 가을 세 번째의 당 총서기로 선출되고, 2023년 3월에는 세 번째로 국가주석에 선출될 것으로 전망된다. <논설고문>


*중국공산당의 제3차 역사결의에 대한 미 뉴욕타임스의 비판적 보도
 
미 뉴욕타임스는 중국공산당의 제3차 역사결의 전문(全文)이 공개된 지난 16일 ‘중국의 역사가 시진핑의 영광에 맞추기 위해 수정됐다(China’s History is Revised, to the Glory of Xi Jinping)’라는 제목을 달아 소개했다. 이날은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취임 후 처음으로 시진핑과 온라인 미·중 정상회담을 한 날이었으나, 중국 전역을 연결하는 네트워크 뉴스 신원리엔보(新聞連播)는 미·중 정상회담을 톱뉴스로 보도한 것이 아니라, 제3차 결의 전문을 39분간 방영한 후 바이든과 시진핑 정상 회담 내용을 17분간 전했다. 그나마도 시진핑의 언급을 15분 이상 내보내고 바이든의 언급은 대폭 축소해서 맨 뒤에 간단히 붙였다. 뉴욕타임스는 “중국공산당 3차 결의 내용의 3분의 2는 시진핑의 지난 9년간의 업적 설명으로 채워졌으며, 특히 이 결의에서 시진핑의 이름은 22차례 언급됐고, 마오쩌둥의 이름은 18차례, 덩샤오핑의 이름은 6차례 언급됐다”고 분석했다. 뉴욕타임스는 제3차 결의의 가장 중요한 핵심내용이 ‘두 개의 확립(兩個確立)’이라는 한자용어이며 이 용어의 뜻은 “시진핑이 중국공산당 전체의 핵심이며, 시진핑의 신시대 중국특색의 사회주의 사상을 핵심적인 당의 지도 이념으로 확립한다”는 것이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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