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새로운 총리를 맞으면서, 향후 일본 경제의 향방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특히 전세계적으로 인플레이션이 문제가 되는 가운데도 디플레이션 우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일본 경제를 어떻게 변화시키느냐가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기시다 총리는 지난 1일 중의원 선거 결과가 나온 이후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기시다 총리는 현금 지급을 비롯한 경제 대책을 이달 중순에 내놓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니혼게이자이는 "(기시다 정권은) 일단 수십조엔에 달하는 경제 정책을 통해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을 이뤄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면서도 "부양책의 효과는 일시적이며, 구조적인 저성장을 극복하는 실질적 정책이 나와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래픽=김효곤 기자 ]


◆자신감 높아진 기시다, 일단 대규모 코로나19 구제책 제안 

기시다 총리는 기자회견에서 속도감 있는 정책 실행을 약속하면서, 올해 안 추경예산안을 통과시키겠다고 밝혔다. 일단 코로나19 이후 더욱 심화하고 있는 빈부격차를 줄이기 위한 대대적 지원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는 특히 취약계층에게 큰 타격을 주었다. 이에 일본 정부는 비정규직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지원금을 신속하게 지급할 예정이다. 아이가 있는 취약계층과 학생 등에 대한 지원책도 포함이 된다. 앞서 공명당은 지난 총선에서 0세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일률적으로 10만엔의 지원금을 주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중소기업과 자영업자 등도 지원 대상이 된다. 기시다 총리는 1일 회견을 통해 "지역과 업종을 가리지 않는" 지원을 약속했다. 일본 정부는 이미 지난해에도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피해를 지원하기 위해 영업이 어려워진 법인과 개인을 대상으로 각각 최대 200만엔(2100만원), 100만엔(1050만원) 지원금을 지급했다. 

기시다 총리는 '새로운 자본주의 실현 회의'를 통해 임금인상을 강력히 촉구할 예정이다. '새로운 자본주의 실현 회의'는 중장기적 성장과 분배 정책을 모색하기 위해 정부, 노사관계자 전문가들이 참여해 구성한 것이다. 간호사와 보육교사를 비롯해 노인 간병이나 요양 분야에서 일하는 이들의 임금을 크게 올리기 위해 다음주에 '공적가치평가검토위원회' 설치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민간기업이 결정하는 임금을 인상시킬지에 대해서는 아직 마땅한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고 니혼게이자이는 전했다.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을 이루기 위해서는 기업들의 지속적인 성장이 우선돼야 하기 때문이다. 

일단 기시다 총리는 과감하게 재정을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재원 마련을 위해 국채 추가 발행도 이어질 수 있다. 기시다 총리는 "지금과 같은 긴급 상황에서는 국채로 확실히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면서 "경제 성장 없이는 재정 건전성은 없기 때문에 경제 회생을 확실히 이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재정은 (경제 회복) 다음에 생각해보도록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일본 정부는 가을 임시국회에 대표적 정책과 관련한 예산안과 법안을 제출해왔다. 그러나 기시다 정권은 10월 출범 후 중의원을 해산해 선거 뒤로 예산안 제출이 이뤄졌을 뿐만 아니라, 내년도 예산안도 편성해야 해 시간은 많지 않은 상황이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사진=AFP·연합뉴스 ]


◆아베 때도 강조했던 분배주의

기시다 정권이 내세운 분배와 성장의 선순환이 순항할지는 불투명하다. 아사히신문이 도쿄대학과 함께 이번 중의원 선거 당선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분배'를 위한 과세에 대해 적극적인 태도를 나타내는 이들은 자민당과 공명당 각각 43%, 44%에 불과했다. 입헌민주당(90%)과 공산당(100%) 등 야권의 당선자들이 사실상 거의 모두 찬성하는 것에 비해 크게 줄어든 것이다. 법인세와 금융소득 과세에 있어서도 자민당은 소극적인 편이다.

기시다 총리는 이미 지난달 총리로 선출된 뒤 소신 표명 연설을 진행하면서 분배에 방점을 찍었다. 당시 그는 디플레이션 탈피를 위한 대담한 금융정책, 기동적 재정정책, 성장 전략 추진을 노력하고, 경제살리기를 중심으로 하되 재정 건전화를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새로운 자본주의 실현을 내세우면서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과 ‘코로나 후 새로운 사회를 개척’하겠다고 약속했다.

일단 기시다 총리는 성장 전략으로는 △과학기술 입국 실현 △지방활성화 및 디지털 전원(위성) 도시 국가 △튼튼한 공급망 구축을 통한 경제안보 △100세 시대 불안 해소를 위한 사회적 안전망 확보 등을 내세웠다.

분배 전략으로는 △일하는 사람에게 분배 △중산층 확대, 저출산 대책 △공공서비스 가격 전면적 재검토 △ 재정의 단년도주의 폐해 시정 등을 내세웠다. 일본이 장기간 디플레이션 시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좀처럼 오르지 않는 임금이다. 아베 전 총리 역시 기업들의 임금 인상을 위해 다양한 당근과 채찍을 써보았지만 좀처럼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여기에 코로나19까지 겹치면서 일본의 임금 정체는 탈출구를 찾지 못한 상황이다.

기시다 총리는 이런 상황을 타개하고자 정보공개 강화, 하도급 감시강화, 노동분배율 향상을 위해 임금 인상 실시 기업에 세제 지원 등 구체적 정책을 내놓았다. 세금으로 기업들 대신 임금을 올려서라도 디플레를 막아보겠다는 것이다. 이 밖에도 교육비 및 주거비 지원 강화, 보육제도 확충 및 환경 정비를 통해 중산층을 늘려나가겠다는 게 일본 새 정부의 계획이다. 또한 간호, 간병, 보육 현장을 개선하면서 공공서비스 가격을 재검토하겠다는 제안도 내놓았다. 여기에 단기적인 예산 지원이 아니라 장기적인 국가 과제 계획(과학기술 진흥, 경제안보, 인프라 정비 등)을 중심으로 한 재정을 운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기시다 총리의 제안은 1960년대 총리였던 이케다 하야토 총리의 ‘소득배증 정책’과도 맥락을 같이하고 있다. 기시다 총리가 속한 고치카이 파벌 출신인 이케다 총리는 '월급을 두배로'라는 캐치프레이즈로 유명하다. 그는 장기 경제 계획을 내세워 10년간 국민총생산 2배를 목표로 감세, 복지, 공공투자를 통한 경제 성장을 추진했다. 실제로 1960년대 소득배증 정책은 크게 성공을 거두면서 일본의 실질 경제 성장률은 평균 두 자리를 넘어섰다. 

그러나 1960년대와 시대적 상황이 다른 2020년대 이케다 전 총리의 정책이 효과를 볼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당시 일본은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을 따라잡는 처지였다. 첨단 기술 및 기계 장치 등 도입으로 산업 구조도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었다. 이에 따라 생산성이 가파르게 높아진 것이 경제성장률에도 크게 영향을 미쳤다. 한마디로 빠른 변화로 큰 폭의 경제성장이 이뤄지기 쉬운 환경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일본의 상황은 당시와는 전혀 다르다. 일본의 인구감소는 가속화되며 고령화 문제도 큰 난제다.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이 마땅히 존재하는 상황도 아니며 일본 자체의 혁신성도 글로벌 기준에서 못 미치는 상황이기도 하다. 성장 동력이 뚜렷하지 않아 분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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