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축수산물 선물가액] 예외두기에서 법 개정 목소리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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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경조 기자
입력 2021-09-1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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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가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명절을 맞이해 고마운 마음을 담은 선물이 오간다. 코로나 상생 국민지원금 지급과 맞물려 모처럼 시장이 활기를 띠는 듯하다. 택배기사들은 소화해야 할 물량이 넘쳐 이미 분주하다.

하지만 농축수산 업계에서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지난해 추석과 올해 설에 농축수산물 선물가액 한도가 20만원까지 임시 상향됐으나, 이번에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 제정 취지 훼손'을 이유로 허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업계는 코로나19 여파로 어려운 현장 민심을 정부가 헤아리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이에 정부는 명절 때마다 논의를 거쳐 한시적으로 상향 여부를 결정하는 것보다 법을 개정하는 게 낫다는 입장이다. 개정안은 이미 국회에 발의돼 있다. 내년 설 전에 관련 논의가 속도감 있게 이뤄질지 귀추가 주목된다.

◇정부 "농축수산물 선물가액 한도, 법 개정으로 해결"
 

서울 마포농수산물시장 모습. [사진=전성민 기자]


전현희 국민권익위원장은 최근 추석 농축수산물 선물가액 한도를 10만원으로 유지한다고 밝혔다. 청탁금지법에 반(反)하지 않겠다는 것.

청탁금지법은 음식물·선물·경조사비 상한액을 각각 3만·5만·5만원으로 제한하고 있는데, 선물 중 농축수산물만 10만원까지 허용한다. 업계와 정치권은 코로나19 상황에 이 금액 기준을 20만원까지 올려 달라고 요청했다.

이 같은 요청은 처음이 아니고, 실제 20만원까지 상한액이 한시적으로 허용되기도 했다.

한도 상향을 위해선 관련 내용을 담은 청탁금지법 시행령 개정안을 권익위원회 전원위원회에서 의결해야 한다. 전원위는 지난해 추석과 올해 설에 개정안을 의결했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어려움을 겪는 농축수산 업계를 돕고, 침체된 내수 경기를 진작하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

하지만 이번엔 청탁금지법 제정 취지가 훼손된다는 우려와 반대에 부딪혔다. 전 위원장은 "공직자 선물 상한선을 올리는 것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다"라며 "국회에서 입법으로 여론을 고려해 상한선을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 전원위원 대부분의 의견"이라고 전했다.

실제 최근 열린 전원위 정례회의에서 해당 사안에 대한 논의는 끝을 맺지 못했다. 외부 위원들의 반대가 특히 거셌다는 후문이다. 청탁금지법을 경제와 연결 짓기보다 재난지원금 지급과 같은 구매력을 높이는 정책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김부겸 국무총리도 같은 의견을 피력했다. 김 총리는 지난 6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종합정책질의에서 "법을 바꿔야지 계속 이렇게 예외로 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현재 국회에는 관련 내용을 담은 청탁금지법 개정안이 발의돼 있다. 지난달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장 이개호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같은 당 송재호 의원은 청탁금지법 관련 명절 농축수산물 선물가액 한도 상향을 골자로 한 개정안을 발의했다.

◇하반기 개정안 논의 미지수···일반 국민 혼선도
 

전국한우협회 등 농축산 업계 단체 회원들이 지난달 23일 정부세종청사 국민권익위원회 앞에서 청탁금지법상 농축수산물 선물가액 한도 상향을 촉구하는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전국한우협회 제공]


이번 정부 방침에 농축수산 업계는 반발하고 있다. 한국수산업경영인중앙연합회는 성명에서 "자연적인 소비 증가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명절 대목 시장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며 "수산물 특성상 현물로 거래되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선물가액 한도를 올려도 청탁금지법 제정 취지가 훼손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는 법 개정으로 마음을 굳힌 듯하다. 문제는 내년 설 연휴 전까지 개정이 이뤄질지 여부다. 적어도 연휴 시작 3~4주 전에는 확정지어야 시장 혼선을 줄일 수 있다. 지난 설에는 연휴 시작 약 한 달 전에 시행령 개정안이 의결됐다.

민생 현안으로 분류되는 이 사안이 대선 정국에서 얼마나 중요하게 다뤄질지 지켜볼 일이다. 내년 설은 2월 1일이다. 따라서 법 개정을 통한 한도 상향은 1월 초까지 완료돼야 한다. 당장 이달 추석 연휴가 지나면 10월 1일부터 국정감사가 시작된다. 국감이 끝나면 정기국회 회기 종료까지 한 달가량 남는다. 시간이 결코 넉넉하지 않다.

전국한우협회는 성명을 통해 "코로나 시대 농축산물 판로의 어려움을 호소하며 청탁금지법상 농축수산물 선물가액 상향을 요구한 농업인들은 망연자실한 상황"이라며 "애초 청탁금지법에 선물가액을 한정하고, 선물 기준에 농축수산물을 포함한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김 총리 발언은) 농축수산인들이 그토록 요구했던 농축수산물 선물가액 상향 정례화 법안을 지금까지 미적거리다가 또다시 공을 국회로 넘긴 것"이라며 "현장 민심을 헤아리고, 국회에 발의된 답보 상태의 관련 법안을 조속히 통과해줄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덧붙였다.

이런 가운데 권익위는 국민들이 선물 관련 규정을 쉽게 알 수 있도록 청탁금지법 바로 알리기에 나섰다.

유동인구가 많은 대형마트와 KTX 역사 등에서 홍보 포스터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공공기관 5000부, 주요 대형마트 4000부, KTX 역사·휴게소, 공항 등 대중교통 1000부 등 총 1만부가 배포됐다.

청탁금지법은 공직자 등에게 적용되는 법으로, 일반 국민들이 주고받는 선물은 금액에 상관없이 선물할 수 있다고 권익위는 강조했다. 직무 관련성이 없는 공직자에게는 100만원 이하 선물이 가능하다.

또 직무 관련 공직자라 하더라도 원활한 직무 수행, 사교, 의례 목적에서 일반 선물은 5만원, 농축수산물은 10만원까지 허용된다. 따라서 추석 명절에 많이 선물하는 한우, 생선, 과일 등 농수산물과 홍삼 등 농수산 가공품을 10만원까지 선물할 수 있다.

전 위원장은 "이번 추석에는 국민 모두가 청탁금지법을 바로 알고 친지와 고마운 분들께 방문하지 못하는 아쉬운 마음을 우리 농·수산물 선물로 대신 전했으면 좋겠다"며 "코로나19로 힘든 상황이지만, 함께 나누는 정을 통해 풍성한 한가위를 맞이할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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