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업체가 불 지핀 속도 경쟁에 곡예 운전하는 배달 기사들
  • 오토바이 절반이 교통법규 어겨…배달 수단 다양화로 보행자 위험↑
  • "보행자 지켜라"…보행자 우선도로 확대로 통행 환경 개선 나선 관계 당국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이승기씨(31)는 인도를 걸을 때마다 이륜차(오토바이·전동 킥보드 등)와 눈치 싸움하기 일쑤다. 마주 오는 이륜차를 앞에 두고 잠시 한눈팔다가는 충돌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씨는 "이륜차들이 인도를 점령하면서 길을 걷기가 두려워졌다"고 토로했다.

코로나19로 배달 수요가 폭증하면서 이륜차 운전자들도 크게 늘고 있다. 문제는 이들 사이에 속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보행자 안전이 위협받고 있다는 것이다.

30일 배달업계에 따르면 최근 배달대행업체 바로고가 서울 강남구 일대를 중심으로 신선식품과 생필품을 10분 만에 배달해주는 '텐고'를 출시하면서 퀵커머스 전쟁에 불을 지폈다. 퀵커머스는 소비자가 상품을 주문하면 15분~1시간 내로 배송지에 상품을 배송해주는 즉시 배송 서비스다. 부릉(VROONG)을 운영 중인 메쉬코리아도 올해 신규 투자금을 퀵커머스를 위한 인프라 증설에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하지만 배달업체가 불을 지핀 '빨리빨리' 경쟁이 보행자들의 불편을 키울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배달 기사들의 수익이 건당 수수료에 따라 달라지는 만큼 짧은 시간 안에 더 많이 배달하기 위해 신호 위반과 중앙선 침범, 정지선 위반, 인도 주행 등이 빈번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오토바이 통행이 잦은 서울에서는 이륜차 절반가량이 교통법규를 준수하지 않는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교통안전공단이 서울지역 교차로 15곳을 지나는 이륜차 9633대를 관측한 결과 절반에 가까운 이륜차(46.5%)가 교통법규를 어긴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의 법규 위반 건수는 5045건이었으며, 이 중 정지선 위반이 2971건으로 가장 많았다. 조금이라도 빨리 앞서가기 위해 정지선을 넘어 신호를 기다린 것이다. 또 신호 위반과 중앙선 침범, 역주행 등 중대 교통법규 위반이 1388건(27.5%)을 기록했으며 보행자 안전을 위협하는 인도 침범은 410건(8.1%)에 달했다. 주거지역 주변의 법규위반율(50.5%)도 전체 평균보다 높아 보행자 안전성이 크게 위협받는 것으로 조사됐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특히 전동 킥보드를 이용하는 배달 기사도 많아지면서 보행자 교통사고 위험성은 배가 됐다. 전동 킥보드는 오토바이보다 크기가 작아 인도와 골목길에서 보행자와 섞여 통행하는 데다 최대 시속이 25㎞로 빨라 보행자와 부딪히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현행 도로교통법상 전동 킥보드는 인도로 다닐 수 없지만, 잘 지켜지지 않는 모양새다.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전동 킥보드 등 개인형 이동장치(PM·Personal Mobility)가 가해 운전자로 분류된 교통사고는 2018년 225건에서 작년 897건으로 2년 사이 4배 급증했다. 특히 보행자와 충돌한 사고는 2018년 61건이었으나 작년에는 304건으로 5배나 늘었다.
 

 

배달 종사자들은 아찔한 곡예운전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구조적 문제'에 있다고 꼬집었다. 배달업체 간 속도 경쟁이 이들의 위험 운전을 부추긴다는 뜻이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서비스일반노조는 최근 강남구 선릉역 인근의 한 도로에서 배달 기사가 화물 트럭에 치여 숨진 사고와 관련해 "언제나 손님에게 빠르게 음식을 갖다주고자 플랫폼 회사 간의 속도 경쟁에 내몰린 우리는 생존을 위해 도로 위를 달린다. 플랫폼 회사는 정차해 주문 콜을 받으라고 하지만 배달 도중 다음 주문 콜이 울린다. 이를 수락하지 않으면 한참을 기다려야 해 어쩔 수 없이 도로 위에서 휴대전화를 봐야 한다"고 했다.

노조는 "왜 자기 생명을 갉아먹으며 급하게 달리는지, 자동차 사이를 뚫고 횡단보도 앞에 서는지, 신호와 휴대폰을 번갈아 보는지 알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배달 기사가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울타리를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배달 기사 노동조합인 라이더유니온은 배달 기사가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근무조건 보장을 요구했다. 라이더유니온은 "신호를 지켜 배달하더라도 적정한 소득을 보장하는 안전 배달료 도입과 과도한 시간 압박에 대한 제한 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27일 오후 서울 강남구 선릉역 인근 도로에 전날 사망한 오토바이 배달원을 추모하는 국화꽃 등이 놓여져 있다. 오토바이 배달원은 전날 오전 신호를 기다리다 화물차에 치여 숨졌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서비스일반노조는 이날 추모 행사를 열고 이 사고를 산업재해로 인정해줄 것을 촉구했다. [사진=연합뉴스]


배달 속도 경쟁으로 사고 위험에 노출된 보행자들이 늘어나자 관계 당국도 보행자 통행 환경 개선에 나서고 있다. 행정안전부는 보도와 차도 구분이 없는 이면도로를 보행자 우선도로로 개선해 보행자에 통행우선권을 주고, 운전자에 보행자 보호 의무를 부과하기로 했다. 보행자 우선도로는 기존 아스팔트 포장을 제거하고 보도블록 문양을 찍어 인도처럼 보이게 하는 도로를 말한다. 다시 말해 운전자가 차도를 보행 공간으로 느끼게 해 속도를 낮추겠다는 취지다.
 

2019년 ‘보행자 우선도로’ 시범사업 대상지인 서울 영등포구 영중로4길의 사업 전후 모습. 보행자 우선도로(오른쪽)로 개선되면서 바닥 재질이 보도블록으로 재포장됐다. [사진=행정안전부 제공]


한국교통안전공단 관계자는 "이륜차 교통사고를 줄이기 위해서는 운전자 교통법규 준수 등 교통안전을 위한 의식개선이 필요하다. 또 배달 기사 안전을 위협하는 과도한 배송시간 제한 시스템을 개선하고 안전라이더 인센티브 도입을 병행한다면 사고 감소에 효과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아주경제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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