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형남 칼럼] '비전'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대한민국 행정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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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형남 숙명여대 경영전문대학원 교수
입력 2021-08-27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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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재부, 교육부, 외교부, 통일부, 행안부, 농축산식품부, 검찰청, 해양경찰청

 

[문형남숙명여대 경영전문대학원 교수]

 

 


모든 조직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비전이라고 할 수 있다. 행정기관(중앙행정기관·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민간기업 등 조직뿐만 아니라 개인에게도 비전은 매우 중요하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중앙행정기관인 부·처·청에 비전이 있는지, 있으면 무엇인지를 웹발전연구소와 함께 각 기관의 홈페이지를 통해 전수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결과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였다. 18개 부(部) 중에 무려 3분의1(33.3%)인 6개 기관( 기획재정부, 교육부, 외교부, 통일부, 행정안전부, 농림축산식품부)에는 '비전’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법무부, 국방부, 문화체육관광부, 산업통상자원부, 보건복지부, 환경부, 고용노동부, 여성가족부, 국토교통부, 해양수산부, 중소벤처기업부 등 12개(66.7%) 부에는 비전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으나, 비전이 있어도 미션과 핵심가치가 없는 것은 큰 문제였다. 

비전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과학기술 ICT 혁신으로 열어가는 더불어 잘사는 미래’, 국방부는 ‘유능한 안보, 튼튼한 국방’, 문화체육관광부는 ‘문화강국 대한민국’, 법무부는 ‘국민의 나라, 정의로운 대한민국’, 산업통상자원부는 ‘글로벌 경제를 선도하는 산업강국’, 여성가족부는 ‘평등을 일상으로’, 중소벤처기업부는 ‘중소벤처기업 및 소상공인 중심의 스마트 대한민국 구현’ 등이다.

국가보훈처, 대통령경호처, 법제처, 식품의약품안전처, 인사혁신처 등 5개 처(處)에는 모두 비전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5개 처의 비전을 살펴 보면, 국가보훈처는 ‘국가를 위한 헌신을 잊지 않고 보답하는 나라’, 대통령경호처는 ‘대통령과 국민으로부터 신뢰받는 경호전문기관’, 법제처는 ‘법제로 만들어 가는 국민의 나라’,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안전한 식의약 + 건강한 국민’, 인사혁신처는 ‘국민을 위한 혁신, 미래를 여는 공무원’ 등이다.

18개 청(廳) 중에는 16곳(88.9%)이 비전이 있는데, 검찰청·해양경찰청 등 2곳(11.1%)에는 비전이 없다. 검찰청 홈페이지 첫 화면에는 ‘국민중심 검찰, 신뢰받는 검찰, 공정한 검찰’이라고 적혀 있는데, 이것이 비전인지 슬로건인지 알 수가 없다. 비전이라면 기관 소개 부분에 무엇이 비전인지를 명시해야 한다. 청와대와 국무조정실이 각 행정기관에 비전이 제대로 있는지를 확인하고 관리했어야 하는데, 직무 태만이라고 생각한다. 각 공공기관에 대해서는 기획재정부가 관리를 잘못한 책임이 크다.

국세청, 관세청, 조달청, 통계청, 병무청, 방위사업청, 경찰청, 소방청, 문화재청, 농촌진흥청, 산림청, 특허청, 질병관리청, 기상청,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 새만금개발청 등 16개 청에는 비전이 있다. 주요 청의 비전을 살펴보면, 국세청은 ‘국민이 편안한, 보다 나은 국세행정’, 산림청은 ‘일자리가 나오는 경제산림, 모두가 누리는 복지산림, 사람과 자연의 생태산림’, 조달청은 ‘혁신·상생·국민안전을 지향하는 공공조달’, 질병관리청은 ‘건강한 국민, 안전한 사회’ 등이다.

필자는 오랜 기간 대학(대학원)에서 경영전략을 강의해왔다. 국내외 경영전략 교과서를 보면 거의 공통적으로 비전> 미션> 핵심가치의 순으로 비전·미션·핵심가치의 체계를 잘 정립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 정부의 부·처·청 등 중앙행정기관들은 대부분 비전만 있고(일부 기관은 비전도 없고), 미션과 핵심가치가 있는 기관은 찾아보기가 어렵다. 질병관리청은 비전·미션·가치를 잘 갖추고 있다.

필자는 최근 여러 공공기관에 가서 ESG경영에 대해 강의할 기회가 있었다. 강의를 가기 전에 해당 기관의 비전·미션·핵심가치를 살펴보고 강의자료에 포함해서 강의를 한다. 그런데 거의 모든 공공기관이 비전> 미션> 핵심가치의 순서가 아닌 미션> 비전> 핵심가치의 순서로 표기를 하고 있다. 그래서 가는 곳마다 수정할 것을 권유했다. 그랬더니 일부 기관에서 “기획재정부에서 주관하는 공공기관 경영평가단이 평가를 와서는 ‘비전> 미션’이라고 바르게 만들어 놓은 것을 위아래 순서가 질못됐다면서 감점을 줘 평가단의 권고대로 ‘미션> 비전’으로 틀리게 수정했다”고 하소연한다.

정부에서는 매년 공공기관을 지정한다. 2021년에 지정된 공공기관은 공기업 36개, 준정부기관 96개, 기타공공기관 218개 등 모두 350개이다. 공공기관은 매년 평가를 받는데, 기획재정부가 평가를 주도하고 있다. 지난 6월 기획재정부는 131개 공기업·준정부기관에 대한 공공기관 경영평가 결과를 발표하고, '계산 실수'로 일주일 만에 평가 결과를 대거 뒤엎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빚었다. 이로 인해 10개 기관은 종합등급이 수정됐고, 13개 기관은 성과급 산정 기준이 되는 범주별 등급이 바뀌었다. 공공기관 경영평가가 도입된 1984년(공기업 기준, 정부 산하기관은 2004년부터) 이래 계산 오류로 평가 등급을 번복하는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경영평가 오류뿐 아니라 공공기관의 비전과 미션 순서에 대한 오류도 시정되어야 한다. 공공기관의 경영 전반을 바르게 지도하는 것은 기재부의 역할이다. 모든 조직의 가장 기본인 비전이 없거나 비전과 미션의 위치가 뒤바뀐 심각한 오류는 조속히 바로잡아야 한다.
 
 
문형남 필자 주요 이력

△성균관대 경영학 박사 △매일경제 기자 △대한경영학회 차기회장 △K-헬스케어학회 회장 △한국AI교육협회 회장 △웹발전연구소 대표이사 △국가ESG연구원 원장 △(사)지속가능과학회 공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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