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철강·조선업계의 후판 협상, 2016년 그 때나 지금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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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현 기자
입력 2021-08-13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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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코가 주요 조선사들과 올해 하반기 조선향 후판 가격 협상을 마무리했다. 한국조선해양과는 톤(t)당 110만원 수준에 협상을 끝냈으며 평균적으로는 115만원에 가격이 책정됐다. 상반기 70만원대와 비교하면 40만원 가까이 오른 것이다.

조선업계는 그야말로 충격에 빠졌다. 국내 최대 제강사와 최대 조선사의 후판 가격 협상은 업계 전반의 기준이 된다. 이는 해외 제강사와의 계약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이번 인상으로 국내 조선업계는 하반기에만 2조원이 넘는 추가 자재 비용을 부담할 것으로 전망된다.

'합리적인 가격 정상화'라는 철강업계의 입장과 달리 조선업계는 '감당하기 힘든 수준'이라는 입장이다. 이제야 회복세에 들어선 국내 조선업계가 철강업계의 수익성만을 위한 판단으로 다시 불황에 빠질 것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동반자였던 철강업계가 이제 조선업계를 등졌다는 하소연도 들을 수 있다.

그러나 철강업계는 다른 시각을 유지하고 있다. 가격 협상에 대한 조선사의 의견 대해 한 철강업계 관계자는 "그날 그들(조선사)이 어떻게 협상했는지 생각해보면 동반자라는 소리는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2010년들어 중국 제강사들의 저가 공세가 시작되면서 글로벌 철강 가격은 바닥을 향해 달려갔다. 이는 전세계 철강업계 불황으로 이어졌고, 2015년에 정점을 찍었다.

2016년 철강업계와 조선업계의 후판 가격 협상은 상처만 남은 날로 기억된다.  제강사들은 다소 손해를 보더라고 공급량만은 유지하길 원했다. 조선업계는 중국의 후판을 테이블에 들고 나왔다. 한 철강업계 관계자는 "너무도 값쌌던 그 후판을 앞에 두고 한숨만 나왔다"고 회상했다. 

당시 주요 제강사들은 후판 판매에서만 수천억원의 손실을 봐야했으며, 동국제강은 앞선 해인 2015년부터 포항 2후판 공장 매각을 진행하고 있었다.

상기 철강업계 관계자는 "공급 물량만이라도 지키려 했지만 헐값에 나온 중국산 후판의 영향으로 물량을 유지하자는 말을 꺼내기도 힘들었다"며 "지금은 동반자라고 말한 조선사는 당시 자신의 이익극대화에 노력하지 않았나"라고 반문했다.

당시 조선업계 측은 "도산을 막기 위해서는 1원이라도 저렴한 가격에 후판을 들여와야 했다"는 입장이다. 저렴한 후판값의 원인은 조선업계의 불황에 있다. 세계적인 선박 수주가 하락세라 후판이 남아돌았기 때문이다. 

지금은 양자의 입장이 바뀌었지만 그때와 상황이 달라지지 않았다. 자칫하면 불황을 겪는 두 업계가 협상을 진행한 결과 항상 첨예한 의견 대립이 반복돼 왔다. 곳간에서 인심이 난다는데 둘 모두 그러기가 어려운 상황인 탓이다.

올해 하반기 후판 협상은 마무리 단계고 가격은 정해졌다. 물론 내년이면 다시 입장이 바뀔 수도 있다. 코로나19 영향에도 불구하고 철광석 가격이 t당 200달러를 넘는 것처럼 중대한 변수가 발생할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

외부자 입장에서 지난달까지만 해도 두 업계의 협상에서 양보와 미덕이 피어나길 바랐다. 그러나 이 같은 관점을 뒤집어 보면 배임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동반자로서의 협력도 중요하지만, 서로의 상황에 맞는 최선의 선택을 되풀이 할 수밖에 없는 것이 기업의 현실이기도 하다. 다만 앞으로 두 업계의 협상에서는 전혀 인심을 찾아보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는 점은 안타깝다.
 

[사진=아주경제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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