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형의 몽타주] 5·18이 유신헌법 수호? 윤석열의 견강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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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형 기자
입력 2021-07-19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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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예비후보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17일 오전 광주 북구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열사 묘역을 참배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1. 
대선 출마를 선언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연일 ‘자유민주주의’를 강조하고 있다. 윤 전 총장은 지난달 29일 출마 선언에서 “민주주의는 자유를 지키기 위한 것이고 자유는 정부의 권력 한계를 그어주는 것이다”며 “그렇기 때문에 자유가 빠진 민주주의는 진짜 민주주의가 아니고 독재요, 전제다”고 밝혔다.

2.
보수 정치권이 강조해 온 ‘자유민주주의’는 오랜 이념 논쟁의 대상이었다. 보수정당은 진보정당이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빼내려고 한다고 주장한다. ‘자유’를 빼내 전체주의적인 독재국가로 만들려고 한다는 것이다. 윤 전 총장도 앞서 이런 인식을 드러낸 바 있다. 그는 지난 5월 17일 한 언론 인터뷰에서 “자유민주주의의 반대는 독재와 전체주의”라며 “현 정부는 헌법의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빼려 하지 않았느냐”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가 개헌안을 내놓을 당시 헌법 전문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표현을 ‘민주적 기본질서’로 고치려고 했던 것을 지적한 것으로 보인다.

반면 다른 측에선 ‘자유민주주의(liberal democracy)’란 표현이 별다른 의미를 갖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가 자유라는 것을 누가 반박할 수 있겠냐는 것이다. 이미 ‘민주주의’라는 표현에 ‘자유’라는 가치가 수렴됐다는 설명이다. 국민이 권력을 갖고 행사하는 것 자체가 이미 독재의 반대 개념이기 때문에, 딱히 ‘자유’라는 표현을 강조하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다. 미국 등 서구에서도 자유민주주의라는 표현은 거의 쓰이지 않는다고 한다.

3.
윤 전 총장은 제헌절인 지난 17일 광주를 방문, 5·18 민주묘지를 참배했다. 방명록엔 “자유민주주의 정신을 피로써 지킨 5·18정신을 이어받아 국민과 함께 통합과 번영을 이뤄내겠습니다”라고 적었다. 방문에 앞서 “5·18은 자유민주주의 헌법정신을 피로써 지켜낸 헌법 수호 항거”라며 “5·18의 정신을 이어받아 자유민주주의 헌법 가치로 국민 통합과 미래의 번영을 이뤄내야 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다”고 했다.

4.
5·18광주민주화운동이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밑거름이 됐다는 데는 재론의 여지가 없다. 다만 그 시대의 맥락에서 ‘자유민주주의 헌법정신’을 지키려 했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 1980년 5월 18일 한국의 헌법은 악명 높은 유신헌법이다. 입법·사법·행정의 3권을 모두 거머쥔 대통령이 종신토록 집권할 수 있게 하는, 그야말로 위헌적인 헌법이다. 윤 전 총장이 그렇게 강조하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표현이 헌법 전문에 삽입된 것도 유신헌법이 처음이다.

윤 전 총장의 표현처럼 ‘5·18이 자유민주주의 헌법정신을 피로써 지켜낸 헌법 수호 항거’라면, 논리적으로 5·18은 유신헌법을 수호하기 위한 항거가 된다. 그 시대의 헌법이 유신헌법이었고, 유신헌법이 가장 먼저 규정한 게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이기 때문이다.

5.
‘5·18이 자유민주주의 헌법정신을 피로써 지켜낸 헌법 수호 항거’라는 것은 윤 전 총장이 처음으로 시도하는 개념 정의다. 윤 전 총장 측은 관련된 기자의 물음에 “당시의 유신헌법이 아니라 대한민국 헌법, 지금 우리가 지키는 헌법이란 의미로 봐달라”고 했다.

아마 윤 전 총장 본인이 5·18을 유신헌법 수호 항거라고 생각하진 않을 것이다. 그의 얘기에 따르면, ‘자유민주주의의 반대가 독재와 전체주의’고 이에 맞섰던 게 5·18이니 ‘자유민주주의 헌법정신을 피로써 지켜낸 헌법 수호 항거’가 되는 셈이다. 대선을 앞두고 자신의 상징을 만들려다보니 ‘자유민주주의’를 강조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벌어진 촌극이랄까. 대통령이 되겠다는 인사의 언어로는 정교하지 못하단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6.
5월 광주의 역사적 정의는 간단하다. 1983년 5월 18일부터 23일간의 단식 투쟁으로 전두환 정부에 맞섰던 김영삼 전 대통령이 1993년 5월 5·18 관련 담화에서 한 얘기다. “1980년 5월 광주의 유혈은 이 나라 민주주의에 밑거름이 됐다. 그 희생은 바로 이 나라 민주주의를 위한 것이었다. 광주 문제는 더 이상 앙금으로 남아 있어서는 안 된다. 결코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되거나 경쟁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광주 민주화 운동은 정당하게 평가되고 올바르게 역사에 기록되어야 한다.”

윤 전 총장은 여태 별다른 ‘비전’을 보여준 적이 없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문재인 정부에 대한 비판을 내어놨지만, 윤석열이 만들 대한민국이 어떤 모습일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자유민주주의와 민주주의 사이의 개념 다툼까지 신경쓰기엔 국민들의 삶이 너무 팍팍하다. 범야권 1위 주자의, 건설적인 비전 경쟁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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