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백수들의 유튜브 좀비로 살아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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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우 전 건국대 교수·전 동아일보 사회부장
입력 2021-07-19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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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우 前 교수


고등학교 동창 단톡방에 어떤 친구가 펌글을 하나 올렸다. 은퇴 후에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관한 글이었다. 그 글에 나오는 대한민국 은퇴 백수들의 보편적인 노는 법은 ①끼리끼리 모여 막걸리 한 병 배낭에 넣고 등산 다니기 ②카톡 프로필 사진까지 손자녀 사진으로 도배해 놓고 손자녀 돌보며 살기 ③허구한 날 골프장에서 놀기 ④뒤늦게 외국어 공부한다고 방통대 등록하기 ⑤맨날 친구들과 모여 당구 치고 막걸리 마시기 ⑥악기 배운답시고 한밤중에 섹스폰 빽빽 거리기 ⑦박물관 미술관 다니며 고상한 척하기 ⑧전원주택 지어놓고 주말마다 친구 불러 삼겹살 구어먹기 ⑨한물간 DSLR 카메라 사서 사진작가 놀이하기 ⑩공짜로 국비 지원 바리스타 교육받고 집에서 커피콩 볶다가 프라이팬 태워 먹기 ⑪신의 물방울 44권 마스터 하고 맨날 5천원짜리 와인 마시기 ⑫하느님 부처님 모시고 살아가기 ⑬카톡방에서 남의 글 읽다가 남들도 좋아할 거라는 착각 속에 퍼나르기 등등.

"너는 어느 쪽인데···?"

그 글을 읽다가 나도 두 가지를 덧붙였다. 위에서 언급한 것보다 더 보편적인데도 빠져 있는 것 같았다. ⓐ주야장창 유튜브 보다가 손님 끌려는 주장들에 매몰돼 유튜브 좀비로 살아가기 ⓑ세상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모르고 시대착오적인, 골통보수와 골통진보로 살아가면서 툭하면 주변 사람들과 입에 거품 물고 싸우기…
그랬더니 다른 친구들의 반응이 적지 않게 올라왔다. 1번으로 올라온 반응은 ‘너는 어느 쪽인데?’였다. 글쎄 나는 어느 편일까 하고 생각해보니 애매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위의 ⓐ와 ⓑ에는 속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평소 술자리에서 친구들의 형태가 너무 싫어 일종의 이죽거림의 의도를 가지고 덧붙인 말이기 때문이다.
실제 은퇴 생활에서 친구는 중요한 요소다. 이중 고등학교 동창들이 만만하고 수준이 비슷해서 자주 만나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이 친구들과의 술자리 대화가 점점 재미 없어져 간다는 점이다. 경상도 출신으로(마산고) 70살을 바라보는 나이다 보니 아무래도 보수적인 견해를 가진 친구들이 많다. 단순한 보수가 아니라 아예 태극기 부대원들도 적지 않다. 필자에게 광화문 태극기 집회에 나오라고, 계속 안 나오면 제명한다고 협박을 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그래서 재작년 가을 조국 사태 와중에서 광화문에서 대규모 집회가 열렸을 때 호기심 반, 강권 반에 의해 참석한 적도 있다.
그 중 친한 몇사람과 술자리에서 늘 부딪치는 주제가 태극기부대의 효용이었다. 그들은 문재인 정권의 실정을 응징하고 나라가 올바로 가도록 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거리로 나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필자는 태극기 부대야말로 중간 지점에 있는 젊은 사람들을 문재인 정권 쪽으로 확실히 떠밀어 결국 정권을 도와주는 길이라는 논지를 펼치곤 했다.

정치 예측 '7전 6패' 노년의 술친구들

이들은 늘 사안을 자기들 희망대로 진단하고 예측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때에는 탄핵이 국회에서 부결될 것이라고 확신했고, 헌재에서는 기각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지난 대선에서는 홍준표가 이길 가능성이 많다고 봤고, 지방선거에서는 야당이 압승할 것이라고 예측했고 총선에서는 야당이 이긴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번 야당 대표 선거에서는 이준석이가 질 것이라고, 져야 한다고 우겼다. 이들의 예측이 맞은 것은 지난 4월의 재보궐선거뿐. 필자는 이들과 예측 결과 맞추기에서 7전 전승을 했다.
이렇게 엉터리같은 예측을 반복하는 이들이 무지렁이들이 아니라 나름대로 일류대학을 나온 엘리트 회사원 출신이라는게 신기할 정도다.
이야기를 처음으로 되돌리자면 골통보수 유튜버가 유튜브 좀비로 살아가는 보수 은퇴자들에게 미치는 악영향은 상상을 초월할 듯하다. 이들과의 술자리 대화가 재미없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안 만날 수는 없는 형편이다. 그래도 편하고 격의 없이 어울릴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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