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백순 칼럼] '선진국 한국', 이젠 이름값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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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백순 법무법인 율촌 고문(전 호주, 미얀마 대사)
입력 2021-07-18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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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백순 법무법인 율촌 고문]

필자는 세계 여러 나라에 근무하는 동안 우리나라와 다른 나라들을 비교해 보면서 한국이 이미 선진국에 들어섰다는 사실을 진작 체감했었다. 특히 한국의 사회 인프라와 시스템은 웬만한 선진국보다 못할 게 없거나 더 나은 상태이다. 예를 들면 우리나라는 전국 방방곡곡, 해안 낙도까지 잘 닦인 도로와 교량이 연결되어 있고 고속철이 잘 발달하여 전국이 일일생활권이 된 지 오래되었다. 그리고 이번 코로나 사태에서 증명되었듯이 우리의 의료시스템도 선진국보다 더 나은 상태이고 온라인 업무처리 시스템이나 IT 기반 인프라도 어느 국가보다 훌륭하다. 그리고 우리 지자체에도 재정 여력이 생겨 고을마다 독특한 관광자원을 개발하고 문화시설들을 갖춘 것을 보면 자랑스럽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10년 전에 이미 서울에 근무하는 외국 외교관들은 "한국인들이 한국이 선진국인 줄 모르는 것이 놀랍다"는 말을 하곤 했다.

이런 한국의 발전상이 반영되어 최근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에서 한국은 32번째로 선진국 대열에 공식적으로 합류하게 되었다. 한국이 선진국으로 공인된 것은 온 국민이 자부심을 느끼고 환영할 일임이 틀림없으나 선진국이 되고 나면 선진국다운 역할을 해야 한다는 책임도 동시에 발생한다. 한국은 여태까지 사실상 선진국이었으나 국제사회에서 선진국으로 역할을 하는 데 여러 면에서 주저함을 보여왔다. 이제 우리에게 맞는 새 옷을 입었으니 이에 걸맞은 새 역할을 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필자가 그간 외교무대에서 관찰한 우리나라의 행보는 여러 가지 국제 현안에 대해 우리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주변의 정세만 열심히 관찰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예를 들면 과거 개발원조 관련 국제회의에서 한국은 종종 선진국과 개도국 간 논쟁에서 양측으로부터 동시에 단골로 인용되는 나라 중 하나였는데, 정작 우리 대표단은 우리의 입장을 명쾌히 밝히지 못하고 토론을 듣고만 있는 경우가 많았다. 선진국들은 한국이 개발원조를 약 20년간 별로 많이 받지 않고도 자주적인 수출주도형 경제개발 모델로 성공한 나라로서 다른 개도국들이 모방해야 할 모델을 제시하였다고 주장했다. 반면 개도국들은 한국은 당시 냉전 상황에서 미국 등이 전략적 가치를 인정하여 특별히 지원을 해줘서 성장한 나라이기에 한국의 모델이 보편화될 수 없다는 주장을 했다. 이 두 다른 시각에 대해 우리 대표단이 우리만의 시각으로 설명을 해야 했으나 대부분 열띤 토론을 경청하기만 했다.

우리 자신의 경험이 걸린 문제에 대해서도 견해를 표명하지 못하니 다른 국제 현안들에 대해서는 더더욱 우리는 청취자세(listening mode)로 있는 경우가 많았다. 중동분쟁이나 여타 지역분쟁에 대해서 우리는 거의 입장을 내놓지 않았고 개발원조, 인권문제, 인도주의적 지원, 기후변화 등 시급한 국제 현안에 대해서도 논의 흐름에 별 기여를 하지 않고 지냈다. 사실 우리나라의 경제규모 대비 개발원조액 비율은 선진국 평균수준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0.14%에 불과하다. 그리고 우리의 외교·안보 역량은 북핵위기가 발생한 이후 지난 27년간 오로지 북핵문제에만 집중되었고, 이 북핵문제가 블랙홀처럼 우리의 외교역량이 다른 곳에 분산될 수 없도록 다 빨아들어버렸다. 그래서 우리는 인도·태평양 전략, 남중국해 문제, 미·중 갈등, 중국의 전랑외교 등에 대해 의미 있는 우리 입장을 대외적으로 천명한 경우가 거의 없다. 그리고 우리 외교뿐만 아니라 우리의 언론보도나 국민들 의식도 아직 선진국 수준에 못 미치고 있다. 우리 언론보도를 보면 국제문제에 대한 방송 시간이나 지면 분량이 아주 적은 편에 속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국제이슈는 큰 재난이 발생하거나 전쟁이 터져야 좀 다루어질 뿐 다른 나라들 사정에 대해서 별 관심이 없다. 터키·에티오피아·필리핀·콜롬비아, 이런 나라들은 한국전 참전국인데, 이들 나라의 내부사정을 우리는 알려고 하지 않는다. 70년 전 이들은 한국이란 잘 알지 못한 나라의 자유를 되찾기 위해 자국 젊은이들을 전쟁터까지 보낸 나라들인데도 말이다.

그러나 이제 세계 10대 경제대국 대접을 받고 G7 회의에 초청받는 나라인 한국이 국제 현안에 대해 자기 목소리를 내달라는 것이 국제사회의 기대이다. 이제는 한국이 세계가 공유하는 문제들에 대해 발언을 해나가야 할 때이다. 그리고 국제문제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우리의 기여를 더 확대해 나가야 한다. 그리고 우리의 외교지평을 한반도를 넘어 전 세계를 향해 펼쳐나가야 한다. 또한 우리의 외교와 국제업무 역량을 더 키워나가야 한다. 이제는 중견국을 넘어 선진국이란 명예에 걸맞은 자세로 그 이름값을 해야 할 때이다.
 
이백순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독문학과 △주미얀마대사 △국회의장 외교 특임대사 △주호주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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