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발적 ‘수술실 CCTV’ 설치 병원…“그들이 용기 낸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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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훈 기자
입력 2021-07-1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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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년째 '수술실 CCTV 설치법' 국회 문턱 못 넘어

  • 7월 국회, 환자 vs 의료인 누구 손 들어줄까

  • 자발적 설치 병원 "환자·의료인 신뢰 위해 반드시 필요"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대표와 윤호중 원내대표, 박주민 의원이 지난달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수술실 CCTV설치 의무화를 위한 의료피해 당사자 간담회에서 참석자들의 발언을 듣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수술실 CC(폐쇄회로)TV’ 설치를 두고 의사 단체와 병원, 환자단체 및 국민들이 대립하면서 사회적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일선 병원 수술실에 CCTV 설치를 의무화하는 법안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면서 환자 단체들과 국민들의 피로감이 커지고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 소속 위원과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가 수술실 CCTV 설치를 밀어붙이지 못하는 것을 두고 의료계의 반대여론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반면 이 같은 상황에서도 수술실 CCTV를 자발적으로 설치해 운영하는 병원들이 곳곳에서 늘고 있다.

경기도와 전북도 공공의료원을 시작으로 민간병원 중에서도 일부가 자발적으로 CCTV를 설치해 운영하고 있다.

이들 병원이 의료계 반발에도 수술실 CCTV 설치라는 용기를 낸 것에 관심이 쏠린다.

16일 의료계에 따르면 지난해 경기도 민간병원 수술실 CCTV 지원 공모 1호로 남양주에 있는 국민병원이 수술실에 CCTV를 설치했다.

국민병원은 지난 2016년 200병상 규모 중대형 병원으로 개원했고, 현재 60여명의 의료인력이 수술실 3곳에서 연간 1000여건의 수술을 진행하고 있다.

올 7월로 어느덧 수술실 CCTV 운영 9개월 차에 접어들었다. 수백건에 이르는 전체 수술 중 80%가 환자 동의를 받아 촬영이 이뤄졌으며, 현재까지 운영상 민원이나 의료사고로 인한 정보제공 요청은 1건도 없다.

최상욱 국민병원 원장은 “수술실CCTV 설치는 대단한 일이 아니다”라며 “의사를 보호하고, 국민 의사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방법이 수술실 CCTV라고 판단했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이 병원은 입원 생활 규칙, 서류 신청, 비급여 동의서 등을 안내할 때 수술 예정인 환자에게 촬영 동의 여부도 일괄적으로 안내한다.

일선 병원 수술실에 CCTV를 달고 환자가 원하는 경우 확인할 수 있도록 하는 이른바 ‘수술실 CCTV 설치법’은 국회 보건복지위 제1소위에 계류 중이다. 수차례 여론조사에서 국민의 90% 이상이 찬성할 만큼 지지가 높지만 통과가 만만치 않다.
                   

인천과 광주에서 대리 수술 의혹이 불거진 가운데 지난달 11일 인천 부평구 관절 전문병원인 부평힘찬병원에서 한 보호자가 환자의 수술 상황을 수술실 내 폐쇄회로(CC)TV 영상을 통해 실시간으로 시청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민간 병원 가운데 힘찬병원도 인천 부평과 서울 목동 지점에 의료계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선제적으로 수술실 CCTV를 설치했다.

부평힘찬병원 6개, 목동힘찬병원 8개 수술방에 CCTV를 설치했으며, 희망 환자에게 사전 동의서를 받은 뒤 환자 신체의 민감한 부분을 제외한 모든 관절·척추 수술 영상을 녹화하도록 했다. 환자 보호자도 대기실에서 실시간으로 수술 장면을 시청한다.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보호자 1인만 지정된 장소에서 시청할 수 있도록 했고, 개인 휴대전화를 이용한 수술 장면 녹화는 금지하고 있다. 병원에서 녹화한 영상은 30일간만 보관한 뒤 폐기한다.

이수찬 대표원장은 “실제 CCTV 도입 이후 환자들의 반응이 대체로 긍정적이었다”며 “병원 신뢰도가 높아지고 경영 문제도 더 좋아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 원장은 “강제적으로 전체 병원에 수술실 CCTV를 의무화하는 것은 찬성하지 않지만 일부 의료진의 잘못으로 전체가 매도 당하는 현실이 안타까웠다”며 “병원과 의료진이 신뢰를 회복하고, 믿고 맡길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고심 끝에 CCTV 설치를 결정했다”고 강조했다.

힘찬병원은 수술실 CCTV 설치를 시작으로, 의사·환자·보호자 의견을 청취해 순차적으로 다른 병원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할 예정이다.

일산21세기병원도 환자 안전과 정직하고 투명한 치료를 위해 수술 장면을 확인할 수 있는 CCTV를 자발적으로 설치했다.

권기영 병원장은 “대리수술 사건으로 인해 다른 병원들까지 매도되는 현실이 애석했다”며 “환자와 보호자들이 안심 수술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고 의료진과 환자 간 신뢰 구축을 위해 시행하게 됐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권 원장은 “수술실 영상은 외부로 유출되지 않게 철저하게 관리해 환자들의 인권과 안전을 모두 보호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환자가 안심하고 치료받을 수 있는 의료환경을 만들기 위해 고민하고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일산21세기병원 CCTV 녹화 역시 희망하는 환자와 보호자에 한해 진행되며, 환자 동의하에 녹화된 영상은 30일간 보관 후 폐기한다.
 

지난 4월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수술실 CCTV 설치법' 국회 통과를 촉구하는 환자단체의 공동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남은 공은 국회로···“국민 요구 부응할까, 의료인 눈치보기에 주저할까”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는 찬성과 반대 의견이 정면으로 맞서고 있다. 이달 국회에서 관련 법안 통과 여부를 두고 막판 진통이 예상된다.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에 대해 국민 98%가 찬성하고 있지만 의사들은 ‘부작용이 크다’며 반대하고 있다. 국회에는 관련 내용을 담은 ‘의료법 개정안’ 3건이 발의됐다.

무자격자 불법 수술에 대해 환자단체나 의료계 모두 강력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의사들은 수술실 CCTV 설치를 의무화하면 전공의들의 수련교육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환자 보건의료 데이터 등이 해킹 등으로 유출돼 더 큰 사회적 파장이 우려된다며 반대하고 있다.

또한 의료계는 수술실 CCTV 설치 반대 명분으로 ▲의료사고 비율이 극히 낮다 ▲수술실 특성상 환자 인권침해가 우려된다 등의 문제를 꼽고 있다.

이와 달리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국회를 향해 수술실 내부에 CCTV 설치를 의무화하는 법안을 처리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불법의료, 중대범죄가 끊이지 않는 수술실에서 환자의 안전과 인권 보호를 위해 수술실 내 CCTV 입법이 필수라는 판단에서다.

경실련은 수술실 내부 CCTV 설치가 의료진에 비해 환자가 사회적 약자이기 때문에, 환자의 ‘알권리 보장’이라는 기본권을 의료진의 사생활 보호보다 우월하게 다뤄야 한다는 취지다.

대다수 국민도 수술실 CCTV 설치에 힘을 싣고 있다. 지난달 국민권익위원회가 ‘병원 수술실 CCTV 설치를 의무화하는 법이 필요한가’라는 주제로 국민 의견조사를 벌인 결과 ‘찬성’ 의견이 압도적이었다.

조사 참여자 1만3959명 가운데 97.9%인 1만3667명이 찬성 의견을, 2.1%인 292명이 반대했다.

한국리서치 등 4개 여론조사 기관도 별도로 같은 주제의 설문조사를 했는데, 전국 성인 1006명 가운데 법제화 찬성 답변이 82%, 반대 의견이 13%, 모름·무응답이 5% 등으로 집계됐다.

수술실 CCTV 설치는 누구보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연합회)가 절대적으로 지지한다.

연합회 측은 “수술실 내부에 CCTV를 설치하고 환자 동의를 요건으로 촬영하는 대원칙은 양보할 수 없다”며 “이 원칙이 수용되는 것을 전제로 수술실 내부에 CCTV를 설치하고 촬영함으로써 발생이 예상되는 모든 의료인과 환자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안을 만드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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