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이의 사람들] 라이브드로잉의 황제 김정기가 말하는 '여백의 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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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이 객원기자
입력 2021-06-29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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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를 가득 채우지 않고 빈공간이 많음으로서 생기는 여백의 미가 있다. 그리고 그 여백의 미 위에 인간의 손길이 닿으면 또 다른 아름다움이 탄생한다. 라이브드로잉의 황제, 김정기에게 백지란 마치 새로운 세계다. 흰 도화지 위에 아무런 밑그림 없이 오직 붓과 잉크만으로 거침없이 움직이며 흰 도화지를 채워나가는 그의 모습은 그 누구보다 자유로워 보였다. 수많은 라이브드로잉을 했지만 머릿속에 계뢱했던 대로 나온 적이 없다고 한다. 계획대로 되지 않고 틀리고 생각했던 대로 안 나오는 경우도 많지만 우리의 인생처럼 이 과정들이 모여 전혀 예상치 못한 새로운 예술이 탄생하기도 한다. 많이 보고 기록하며 여백 속에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가는 김정기 작가와 이야기를 나눴다.

 

[사진= 김호이 기자/ 백지에서 그림을 통해 자유롭게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 내는 김정기 작가]



Q. 처음 그림을 그리게 된 계기는 뭔가요?

A. 언제부터 그림을 그리게 됐는지는 저도 가물가물 한데, 지금 남아있는 가장 먼 기억은 유치원 때인 것 같아요. 6살 때 유치원 선생님한테 선물 받은 스케치북 표지가 너무 예뻤는데 나중에 보니까, ‘닥터슬럼프’ 그림이었어요. 그런 그림을 그리려면 어떤 직업을 가져야 되는지 선생님께 여쭤보니까, 선생님이 만화가를 하면 된다는 거예요. 그때 만화가라는 꿈을 갖게 됐어요. 흔히 어린 나이에 자주 그리게 되는 놀이터 풍경이나 자동차 따위를 도화지 위에 옮기는데, 친구들이 평평한 사각형 박스를 그릴 때 저는 입체를 그렸어요. 그들이 옆모습을 보고 있을 때 저는 이미 반 측면이라는 개념을 생각하고 있었으니까요. 지금은 당연히 그때보다 더욱 엄청난 발전을 이룩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항상 재미있게 그리고자 노력하는 것입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회상하는 장면인데, 햇살이 따듯하게 내리쬐는 방이나, 여름이 되어도 항상 시원했던 마루에서 연습장을 꺼내놓고 그림을 그리면서 어머니를 기다리던 기억이 있어요. 그곳에 앉아서 제 머릿속을 자유롭게 그렸던 그때의 기분을 잃지 않으려 노력해요. 그렇게 편안하게 그릴 때 좋은 결과물이 많이 나오는 것 같거든요. 비록 그림은 많이 변했지만, 어린시절의 그 느낌만은 계속해서 간직하며 그리려고 해요.

Q. 즐겁게 그리는 만큼, 그림의 소재도 관심에서 비롯된 부분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특히 초기작 중에서는 자동차나 오토바이를 그린 만화 형식의 작품들도 제작했는데요. 좋아하는 것, 소유하고 싶은 것을 그리게 된 이유는 뭔가요?

A. 어릴 때 모두가 그렇듯 자전거나 운동화를 정말 가지고 싶었어요. 이런 것들을 그림으로 갖자는 마음으로 그리게 됐어요. 갖고 싶은 운동화가 있으면 잡지에서 사진을 찢어서 모으고, 친구의 운동화를 유심히 살펴보고, 만져보기도 했거든요. 그리고 기억 속의 운동화를 그려보면서, 자연스럽게 어머니의 구두도 그려보고, 아버지의 워커도 그려 봤어요. 원하지만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일종의 대리만족에서 출발했으나, 반복적으로 그리면서 연상하는 과정은 제 작품에 큰 영향을 줬어요. 좋아하는 것을 그린다는 행위는 제게 있어서 마치 가지가 뻗어 나가듯이 그릴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던 것 같아요. 펜 하나만 있으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가질 수 있으니까요.

 

[사진= 김호이 기자/ 라이브드로잉 퍼포먼스를 하고 있는 김정기 작가. 그는 그림을 그리는 내내 관객들과의 소통을 멈추지 않았다.]



Q. 라이브 드로잉은 어쩌다가 하게 된 거죠?

A. 2011년에 부천국제만화축제에서 부스를 하나 얻게 됐는데, 보통 다른 작가님들은 3면에 자기 작품들을 액자에 넣어서 붙이더라고요. 근데 같이 있던 저희 대표님께서 “김정기 작가는 그런 거 하지 말고 3면에 종이 붙이고 행사 시작하는 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그림그리세요”라고 하는 거예요. 그것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3면에 종이를 붙이니까 9m 되더라고요. 그래서 3일 동안 첫날부터 마지막날까지 그렸고 그 과정을 캠코더로 찍어서 간이 편집해서 유튜브애 재미삼아 올렸는데 그게 그렇게 호응이 클 줄 몰랐어요.
그때부터 라이브드로잉퍼포먼스를 하는 작가로 활동하게 됐어요.

Q. 라이브 드로잉을 시작하신 이후 작업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A. 2011년도에 부천국제만화전에서 처음 시도하게 됐어요. 도합 9m 정도 되는 면이 있었는데, “액자를 걸지 말고 여기에 드로잉을 해 보자”고 제안을 받은 것이 계기였거든요. 그러다가 드로잉 하는 영상을 간단하게 편집해서 유튜브에 조금씩 올리게 되었는데, 그것이 오늘날까지 계속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사실 전 어린 시절부터 라이브드로잉을 계속해서 해 왔습니다. 제가 그리는 걸 친구들이 구경하고 있었으니 엄밀히 따지고 보면 제 라이브드로잉의 시초는 학창 시절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학생들을 가르칠 때에도 그렇고요. 제가 해 왔던 것들은 이미 모두 라이브드로잉이었고, 이제는 장소와 소재, 그리고 규모만 변했다는 것 외에 다른 점은 없어요. 어릴 때부터 남들 앞에서 그리는 것을 자연스럽게 훈련해서 전혀 긴장은 되지 않아요. 만약 부모님이 보고 계신다고 하면 조금 떨릴 수는 있겠지만, 그렇더라도 시작한 후 1분만 지나면 종이는 하나의 세계이고 저는 그 세계의 창조주로서 군림하게 되니까요.

 

[사진= 김호이 기자/ 그림을 그리면서 관객들과 소통하고 있는 김정기 작가]




Q, 라이브드로잉을 할 때 무엇을 그릴까를 어떻게 정하나요?

A. 라이브드로잉을 할 때는 행사에 오신 팬 분들한테 ‘오늘은 어떤 걸 그릴까요?’라고 물어봐서 시작할 때도 있고요. 제가 정해서 바로 할 때도 있고, 기업 광고 일을 할 때는 클라이언트들이 원하는 것들을 사전에 조율해서 머릿속에 담고 시작해요.

 

[사진= 김호이 기자]



Q. 그림을 얼마나 그렸기에 아무런 스케치 없이 머릿속에 생각나는 대로 그리는 건가요?

A. 제가 이번에 전시준비를 하면서 그림들을 다 꺼내봤어요. 7천 점 정도를 갖고 있더라고요. 작은 종이, 냅킨에 낙서한 것들까지 다해서 7천 점 정도 갖고 있는데 고등학교 2학년 때 그린 것부터 오늘 그린 것까지 이번 전시에 전시 되고 있거든요. 그 전에 그렸던 것들을 잃어버려서 공개를 못했는데, 어마어마하게 많이 그렸거든요. 특히 고등학교 때는 뒷자리에 앉아서 1~6교시 까지 그렸어요. 학교 끝나면 미술학원 가서 그렸고, 밤 10시에 학원 끝나면 집 와서 씻고 또 만화 그렸어요. 하루에도 엄청 많은 양을 그린 거죠.

 

[사진= 김호이 기자]

[사진= 김호이 기자]



Q. 거침없이 이어 그리는 드로잉을 보다 보면, 어디서 붓을 멈추어야 할 지 고민에 빠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끝맺음이나 완성을 결정하는 시점은 어딘가요?

A. 지금도 힘들어요. 붓을 어디에서 멈춰야 끝맺음을 할 수 있는지가 가장 힘들어요. 채우는 것보다 비워내는 게 더 힘들기 마련이니까요. 거의 제가 그리고 싶은 것들을 다 그렸다고 생각하면끝내기는 하는데 항상 직감 외에 명쾌한 답은 없는 것 같아요

Q. 그림이 안 그려질 때는 어떻게 하시나요?

A. 그림이 안 그려질 때는 가장 잘 그리는 걸 그리면서 자신감을 높여요. 근데 그래도 안 될 때는 그만두고 메모를 해놓고 다른 그림을 그리면서 자기 최면을 하고 있어요.

Q. 작가님의 작업실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

A. 책이 굉장히 많아요. 그림책도 있고, 만화작가라서 만화책이 많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잡다한 것들이 굉장히 많아요. 사진, 의상, 조소, 동양화, 서양화 등 다양하게 많이 모아요. 그리고 해외 나갈 때 책도 많이 사와요.

 

[사진= 김호이 기자/ 작업실을 재현한 공간. 입구에 김정기 외 출입금지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Q. 창작의 고통도 많을 것 같은데 그럴 때는 어떻게 하는 편인가요?

A. 저는 아직 슬럼프를 겪어본 적이 없어요. 그 이유가 뭔지 가만히 생각해봤는데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아서 인 것 같아요. 고흐나 다른 작가들처럼 고뇌하면서 작업하지 않아요. 저는 그냥 재밌게 해요. 지금 저의 최대 관심사는 재미예요. 제가 재미없으면 안할 거예요.

 

[사진= 김호이 기자]


Q. 라이브 드로잉을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같은 걸 그리고 있을 때도 있지 않나요?

A. 많아요. 습관적인 것도 많고, 머릿속에서 생각하는 것이 비슷비슷한 것들도 많아요.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의 수준이 그 정도일 수도 있어요. 그래서 표현되는 것들이 비슷한 것들도 많지만 새로 알게 되고 관찰하는 이미지들을 통해서 업데이트 될 때도 많고요.

Q. 자녀도 그림 쪽에 관심있다고 들었어요. 아버지의 영향이 큰 건가요?

A. 첫째 딸은 패션 쪽으로 가고 싶어하고, 둘째가 아들인데 그림 쪽으로 가려고 해요. 그리고 엄마도 그림을 그리고 저도 그림을 그리기 때문에 둘 다 또래들 보다 그림에 노출된 환경에서 자라서 그림을 잘 그려요. 근데 애들한테 그림을 가르쳐 준 적은 없어요. 그림 어떻게 그리냐고 물어볼 때 알려주고,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는 모습을 많이 보여줬었어요.

Q. 아버지로서 그림을 그리는 것에 대해 추천하세요?

A. 저는 추천해요. 재밌게 잘 살았거든요. 해보니까, 굉장히 재밌고 돈도 벌고 좋다 보니까, 저 같은 경우에는 아들이 그림을 한다고 하면 적극 지원해줄 거예요.

 

[사진= 김호이 기자]



Q. 어떤 일을 하던 재능이 있는 사람이 있고, 열심히 하더라도 재능이 발휘되지 않을 때가 있어요. 그럴 때는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A. 제가 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친 적이 있었는데 당시에 재능이 있다고 생각했던 학생들이 다른 길로 가는 경우도 있고 재능이 없다고 생각했던 학생들이 나중에는 극찬을 받는 경우도 있었어요. 재능은 대학교 입시까지는 커버가 될 수 있어요. 그렇지만 그 후에는 노력으로 채워나가야 돼요. 많은 사람들이 저를 천재라고 생각하는데 오랜 시간동안 엄청 많이 그렸어요. 갖고 싶고 원하던 걸 그리다 보니까 그 욕망이 큰 발전을 가져다 준 것 같아요.

Q. 발을 많이 쓰는 사람은 발에서 노력의 흔적이 보이고 손을 많이 쓰는 사람은 손에서 그 흔적이 보입니다. 작가님의 손목은 괜찮으세요?

A. 어릴 때부터 좋은 습관을 가지고 있어서 아직 손이나 손가락이나 목이나 팔은 아직 아픈데는 없어요. 연필 잡는 법도 정석으로 배워서 그 습관이 계속 유지되고 있어요.

 

[사진= 김호이 기자/ 그의 손 역시 굳은살이 많이 있었다.]



Q. 김정기 라이브 드로잉을 보면 “이 사람 뭐야 대체 어떻게 그리는 거야?”라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어떻게 그런 멋진 그림들을 그릴 수 있는 건가요?

A. 우선은 많이 그렸었고요. 그리고 많은 관찰을 통한 머릿속에 있는 배경지식들을 가지고 있어요. 어렸을 때부터 시각적인 기억능력이 좋았어요. 유치원 때 사물을 입체로 그렸거든요. 공간지각능력이 좋아서 길도 잘 찾아다녔어요. 거기에 많은 연습과 관찰력이 더 해지니까, 원동력이 된 것 같아요. 그리고 잘한다는 칭찬 덕분에 더 꾸준히 재밌게 즐기면서 했었던 것 같아요.

Q. 입시미술 학원에서 학생들도 가르쳤고, 입시미술도 했던 작가님께서는 입시미술이 그림을 그리는데 도움이 됐나요?

A. 입시미술도 했었고, 입시미술학원에서 일도 했었어요. 근데 제 그림의 바탕은 입시미술에서 배운 거예요. 만화적인 그림으로 저 혼자 그리다가 고등학교 2학년 때 미술학원을 처음 다녔어요. 그러면서 아카데미적인 수업 지식들이 더해지면서 제 그림체에 있어서 시너지 효과가 됐어요. 입시미술에서 배웠던 것들을 아직도 많이 쓰고 있거든요. 근데 우리나라 입시미술은 암기식으로 가르치는 경향이 있어요. 왜냐면 우리나라는 딱 한 장으로 평가하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외국처럼 포트폴리오를 보거나 시험을 며칠 동안 보지 않고 그림 한 장으로 이 사람의 모든 걸 평가하거든요, 그런 입시적인 것들이 바뀌어야 되긴 하지만 제 경험에서는 입시미술이 도움이 많이 됐어요.

 

[사진= 김호이 기자/ 싸인 중인 김정기 작가]

[사진= 김호이 기자]



Q. 경험들이 많으면 그릴 것도 많아지는 건가요? 상상과 경험의 이미지를 어떻게 조합하는 건가요?

A. 경험을 해보는 게 가장 좋아요. 말을 잘 그리고 싶으면 말을 타보고 만져보면 그 느낌과 크기가 어떤지 알 수 있잖아요. 근데 사진과 영상으로만 봤을 때는 단편적인 것이거든요. 저는 그림을 그릴 때 제기 그 공간에 있다고 생각하려고 해요. 만약에 식당을 그리려고 하면 이 공간이 일식집인지, 중식집인지 한식집인지 냄새로 알 수 있을 정도로 그 공간에 빠져들어서 그리면 공간을 잘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경험이 많으면 좋고, 경험이 없더라도 사진이나 영상이나 글로 경험을 대신 할 수 있는 자료를 통해서 지식을 쌓아서 구체화 시키는 과정을 거쳐요. 배경지식이 많으면 많을수록 제가 가지고 있는 형태는 더욱 구체화 시킬 수 있어요. 오리너구리를 그려달라고 하면 0.0001초 안에 오리너구리에 대한 지식들을 머릿속에서 뽑아내서 그걸 합치고 어느 각도로든 그릴 수 있어요.

Q. AI처럼 머릿속에 밑그림을 그려 놓으세요?

A. 그리면서 이미지를 만들어 낼 때도 있고 이미지를 생각해놓고 바로 그릴 수도 있어요. 머릿속에 이미지가 잡혀 있으면 손은 그냥 따라가기만 하면 돼요. 이 두가지를 병행하면서 그리고 있어요.

 

[사진= 김호이 기자/ 김정기 작가의 싸인. 그의 싸인은 일반적인 싸인들과 달리 자신의 생각이 담긴 그림을 직접 그려준다. 싸인을 하면서도 그림 연습이 된다고 한다.]

[사진= 김호이 기자]


Q. 영감은 주로 어디서 얻나요? 영감을 준 인물이나 소재가 있나요?

A. 초기에는 뮤직비디오나 영화, 화보, 만화책 등 시각적인 자료가 영감의 원천이 되었던 것 같아요. 어린 시절 만화가가 꿈이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일본 만화를 자주 접하게 됐고 많은 영향을 받았어요. 그 옛날에 한국에서 정식 발매되지 않은 자료까지 구해서 봤으니까요. 드래곤볼(ドラゴンボール)로 유명한 토리야마 아키라(Toriyama Akira)의 ‘닥터 슬럼프(Dr.スランプ)., 오토모 카츠히로(Otomo Katsuhiro)의 ’아키라(AKIRA)’, 그리고 시로 마사무네(Shiro Masamune)의 ‘애플시드(Appleseed)’까지 다양한 만화에 심취했습니다. 그다음에는 옆집 형에게 책을 빌려 보았던기억이 나는데, 계몽사에서 출판한 한국전래동화 12권을 접하게 됐고요. 그 책에서 ‘코주부’김용환(1912–1998) 작가의 그림을 좋아하게 되었는데요. 김용환 작가 또한 초창기에는 만화로 시작하였으나 일러스트레이션, 회화의 영역까지 폭넓은 활동을 보여 주목받은 작가예요. 특히 그가 그리는 ‘호랑이 아빠’라는 캐릭터가 너무나도 인상적이었고, 지금 제가 그리는 호랑이 등 다양한 동물과 전래동화는 그 영향과 기억을 기반으로 하고 있어요. 청소년기에는 일본 만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지만, 대학교 입학 이후에 유럽과 미국 만화를 처음 접하게 됐어요. 부산에서 대학 생활을 했기 때문에 보수동 책방골목에서 헤비메탈지를 보면서, ‘만화를 이렇게 예술적으로 꼼꼼히 그리는구나’ 하며 한 컷 한 컷에 감탄하곤 했거든요. 그 때 장 지로(Jean Henri Gaston Giraud), 리차드 코벤(Richard Corben) 등 흥미로운 작가를 많이 알게 됐고, 만화에 대한 전반적인 인식 또한 변하게 됐어요. 군 제대 이후에는 테라다 카츠야(Terada Katsuya, 1963)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오세영 작가도 우연히 보게 됐어요. 한국에도 이런 대단한 작가가 있고, 한국적인 것으로도 이렇게 멋지게 표현해낼 수 있다는 사실에 많은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나요. 그 외에도 정말 다양한 작가와 그림을 접했던 것 같아요. 노먼 록웰(Norman Perceval Rockwell) 등 미국 일러스트레이터의 그림도 좋아해요. 50~60년대는 골든에이지, 이른바 상업미술의 황금기였어요. 그림이 표지에 많이 등장하던 시기이기도 했고요. 사진을 대신했던 그 시대의 그림들이 가지는 테크닉의 극치를 보며 많은 영감을 받았어요. 지금은 일상적인 것에서 영향을 많이 받아요. 특히 여행을 즐기게 된 지 10년 정도 됐는데, 정말 많은 것들이 바뀌었어요. 영상이나 사진으로만 봤던 것들을 실제로 접하고 나니까, 그릴 수 있는 것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잘 그리지 않던 소재도 다루게 됐어요. 많은 발전이 있었다고 볼 수 있죠. 그리고 책으로만 보던 해외 작가들을 만나고, 그들의 작품과 작업 방식을 직접 본 것이 큰 도움이 됐어요. 뿐만 아니라 함께 서로의 작업에 대해 이야기하고, 제 작업을 인정받으면서 정서적으로도 많은 힘을 받았던 것 같아요.

 

[사진= 김호이 기자/ 인터뷰 장면]

[사진= 김호이 기자]



Q. 2018년에 여러 작가들과 이탈리아 베니스를 여행하셨다고 알고 있어요. 보통 사람들은 여행을 하면서 작든 크든 자신만의 터닝포인트를 마주하게 되는데요. 이후 달라진 것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또 그 외에도 여행에서 얻은 특별한 에피소드가 있다면 말씀부탁드립니다.

A. 베니스에 갔던 것은 정말 좋은 기회였어요. 유럽의 만화, 일러스트, 사진, 회화 등 다양한 장르에서 활동 중인 작가들과 함께 카사노바(Giacomo Girolamo Casanova)를 주제로 그의 주 무대라고 알려진 지역을 여행했거든요. 작가들과 함께 생활하며 친밀하게 지냈고, 그들의 작업을 보면서 열정과 역량을 느낄 수 있었어요. 사진과 영상으로는 느낄 수 없는 현실감이 제게 있어서는 가장 소중해요. 작가의 작품과 그의 생활 무대를 함께 살펴보면 그의 작품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어요. 항상 바라보는 공간과 색채가 담겨 있거든요. 사람은 환경에 지배되기 쉽다는 것을 느꼈어요. 여행의 기억을 더듬어 보자면, 저는 뉴욕을 특별히 좋아해요. 그 특유의 거대함과, 다양한 사람을 한 순간에 볼 수 있어서 좋아해요. 타임스 스퀘어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볼 것도 그릴 것도 정말 많은데요. 말레이시아 페낭은, 저에게는 좋으면서도 힘들었던 기억이 있어요. 거의 두 달 동안 스스로를 감금하다시피 하면서 그림만 그렸어요. 말레이시아 사람들의 친절함, 현지 음식들, 분위기를 피부로 모두 느끼고 왔기 때문에 지금도 말레이시아를 떠올리면 바로 종이 위에 옮겨 그릴 수 있어요. 해외에 나가면서 시야가 넓게 트이게 됐어요. 세상에는 아직 볼 것도 많고 그릴 것도 많다는 사실이 저를 가슴 뛰게 했던 것 같아요. 여러 가지 경험들도 많이 했고요. 차가 고장이 나는 바람에 공허한 도로에서 몇 시간 동안 기다렸던 기억처럼 힘들었던 경험들도 많지만 신기한 것은 많은 사람들이 저에게 도움이 필요한지 먼저 다가와서 물어봤던 거예요. 여행, 내가 살던 곳이 아닌 곳, 새로운 세상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은 모두가 가지고 있을 거예요. 하지만 직접 지내보니 모두 같은 걱정, 같은 일로 슬퍼하고 또 즐거워하고 있었더라고요. 그렇기 때문에 그림도 다 통하는 것 같아요. 내가 감동한 것은 타인도 감동을 느끼고, 아주 멋있는 것은 멋있다고 느낄 테니까요. 그림이 만국 공통의 언어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진= 김호이 기자/ 라이브드로잉을 통해 여백들이 채워지고 있다.]



Q. 떠올린 소재가 작업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궁금해요. 아마 머릿속에 거대한 데이터베이스를가지고 있을 것 같아요. 일전에 ‘기억의 라이브러리’라고 언급한 적이 있는데요. 이 라이브러리를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지도 말씀 부탁드립니다.

A. 저는 관찰을 통해 시각 자료를 축적해요. 제 눈은 영화나 책에서 보는 정보들, SNS에서 스쳐지나간 이미지들을 모두 허투루 흘려보내지 않아요. 각도부터 요소까지 모든 것을 기억하려고 해요. 무언가를 그리려고 할 때에는 머릿속에 완벽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어요. 예를 들어 오리너구리를 그린다고 하면, 동물의 왕국, 내셔널 지오그래픽 등에서 봤던 오리너구리들을 떠올려요. 이어서 비슷한 동물들, 비버, 오리, 너구리과 동물들을 라이브러리에서 찾아내는데 이 과정은 1초도 되지 않을 만큼 거의 순간적으로 이루어져요. 이 이미지를 3D로 만들고, 다른 등장인물과 스토리를 구성하기 시작해요. 이 과정에는 연관된 정보들을 항상 필요한 때 거침없이 연상해내는 능력이 중요해요. 필요한 이미지는 계속해서 기억 속에서 가져오고, 이것을 돌려보면서 마치 카메라 감독처럼 가장 멋진 앵글을 찾아내요. 어린 시절부터 시각적 기억력이 좋았는데, 습관 덕에 더 단련이 된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영화를 본 날에는 항상 집에 와서 인상 깊었던 장면이나 등장인물의 생김새를 기억에 의존해 그려 보곤 했거든요. 당연히 처음에는 잘 그리지 못했어요. 습관적으로 반복해서 그리다 보니 어느 순간 닮게 되고, 빠른 시간 내에 특징을 잡아내는 훈련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었어요. 하지만 한번 봤더라도 전화기나 자동차 엔진처럼 세월이 흐르면서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것도 많기 때문에, 이 기억의 라이브러리는 주기적으로 업데이트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사진= 김호이 기자/]라이브드로잉을 하고 있는 김정기 작가를 촬영하고 있는 모습]



Q. 작가님의 커리어를 놓고 봤을 때 현재의 김정기가 있을 수 있도록 만들어준 가장 큰 경험은 뭔가요?

A. 그림에서 떨어본 적이 없는 환경에서 지냈던 것 같아요. 여태까지 살아오면서 계속 그림을 그렸고, 다른 일을 해본 적이 없어요. 기껏해야 다른 일 해본 건 어머니 통닭집에서 알바해본 것 빼고는 없어요. 그때도 학원에서 아이들 가르치고 있었거든요. 지금까지 그림에서 안 떨어졌다는 게 운이 좋았던 것 같고,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났어요. 좋은 선생님들, 좋은 친구들, 좋은 조력자들을 많이 만났거든요. 저 혼자였다면 이렇게 크지 못했을 거예요. 성격상 내성적이지도 않지만 조급한 성격도 아니라서 누가 끄집어 내지 않았더라면 혼자 방 안에서 그림 그리고 있었을 거예요.

Q. 특히 최근 많은 화제가 되었던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라이브드로잉 작업 과정이 궁금합니다. 혹시 재미있는 에피소드나, 작업에 힘들었던 부분이 있습니까?

A. 봉준호 감독은 한국 영화감독 중 가장 좋아하는 분이에요. ‘플란다스의 개’도 봤었는데, 막상 작업을 하려고 보니 영화 본 지가 오래되어서 기억이 조금 희미해진 거예요. 그래서 그때부터 ‘살인의 추억’, ‘설국열차’, ‘마더’ 등 봉준호 감독 작품을 다시 봤어요. 정작 그리는 날까지 ‘기생충’의 내용은 전혀 몰랐어요. 주어진 자료가 한정적이라, 스틸 컷 몇 장만 보고 있었어요. 기생충이 어떤 영화일 것 같은지 물어보기에, 흔한 재난영화처럼 “기생충때문에 죽는 영화 아닌가요?”라고 했더니 가족영화이자 휴먼영화라고 하시기에, “기생하는 가족 이야기인가?”라고 했더니 피식 웃으시더라고요. 작업을 마칠 때쯤 예고편이 공개됐는데, 끝나고 봤어요. “이런 내용이구나” 했었습니다. 감독의 다른 영화들을 모두 보고 시작해서 표현하는 데에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마더’에서 특히 인상 깊은 장면이 있었는데요. 어머니가 한약을 먹이는 장면인데, 아이가 갑자기 길가에 소변을 보고 가버려요. 어머니가 그것을 거리낌 없이 발로 지우고 있는 장면이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장면이라고 생각했어요. 이렇게 영화의 주된 내용을 관통하는 상징적인 장면들을 선정해서 그려 넣으려고 노력했어요.

 

[사진= 김호이 기자]

[사진= 김호이 기자/ 김정기 작가의 기생충 작품]



Q. 그림을 제일 안 그렸던 적은 언제인가요?

A. 27살 때 부산에 있었는데 등단하기 위해서 포트폴리오를 가지고 서울에 있는 출판사에 갔어요. 그때 주변에서도 잘 그린다고 해서 바로 등단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넘쳤었는데, 11군데에서 퇴짜를 맞았었어요. 그 이유가 우리나라 실정에 맞지 않는 그림체 라는 이유였거든요. 그때 충격 받고 내가 그린 것들이 부정당했다는 생각에 2주 동안 그림을 안 그리고 무직비디오만 봤어요. 군대에 있을 때는 손으로 그림을 안 그렸지 머릿속으로는 그렸거든요. 근데 2주 동안은 머릿속으로도 그릴 수가 없었어요. 근데 주변 사람들이 “김정기, 너 그림체 좋으니까 끝까지 밀어 보라고 조언해주셔서 1년 뒤에 조금 더 포트폴리오를 추가해서 서울을 또 갔는데 1년 사이에 만화환경이 많이 바뀌었더라고요. 슬램덩크가 인기가 생기면서 사실적인 그림체가 대두되는 시기였거든요. 그때는 다 같이 하자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등단하게 됐어요.

 

[사진= 김호이 기자/ 김정기 작가 촬영 장면]

[사진= 김호이 기자]


Q. 작가님의 그림을 보면 김정기만의 스타일이 느껴집니다. 대중들이 본인의 스타일을 알아주지 않았을 때도 있었을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흔들림 없이 스타일을 지켜나갈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나요?

A. 모든 작가들은 자기 그림에 대해 ”내가 가장 잘 그린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그리고 지금 그리고 있는 내 그림 잘 되어 가고 있다는 자기 최면이 필요해요. 그게 없으면 안돼요. 주변에 칭찬들도 큰 힘이 되고요. 그런 것들이 원동력이 돼서 계속 그림을 그려왔던 것 같아요. 제가 어릴 때 다들 예쁘고 멋진 사람들을 그리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나 하나 정도는 평범하거나 못 생긴 사람들을 그려도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어요. 아웃사이더적인 걸로 출발을 해서 인정받고 안 받고는 크게 신경을 안 썼어요. 저는 저의 재미가 가장 우선이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시선이나 평가에 대해 의식하지 않았어요. 그러다 보니까 제 그림체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많은 작가들, 학생들이 나의 스타일은 언제쯤 잡힐 것인가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해요. 그러다 보니까, 조급함이 함께 오거든요. 근데 저는 그런 조급함이 없었던 것 같아요. 조급함이 없다 보니까, 슬럼프도 없었고요. 오늘 안 그려지면 내일 그리면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빨리 유명해지려고 하지도 않았어요. 10살 때 꿈이 정해져서 27살에 등단을 했으니까, 그렇게 빨리한 것도 아니죠. 그런 느긋함 덕분에 도움이 많이 됐던 것 같아요.

 

[사진= 김호이 기자/ 콜라보 작품들]



Q. 그림을 잘 그리고 못 그리고의 기준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A. 예전에는 확실하게 기준이 있었어요. 근데 지금은 그런 기준이 없어요. 특히 만화라는 장르 안에서는 더더욱 없는 것 같아요. 스포츠처럼 숫자로 나눠지는 게 아니잖아요. 그래서 누가 잘 그리고 못 그리고 보다는 누가 자기 생각을 잘 표현하고 있는가, 내가 그리고자 하는 것들이 뭔가 그리고 이걸 보고 누가 어떻게 느끼는가가 중요한 것 같아요.

Q. 그림을 그리면서 틀릴 때는 어떻게 하시나요?

A. 틀릴 때 많아요, 언제나 틀리고 젊었을 때는 그게 스트레스 였어요. 안 틀리려고 노력도 많이 했었고요. 근데 인생처럼 그림도 마찬가지로 언제나 계획대로 되지 않아요. 그래서 지금은 틀린 걸 수정하고 보완하는 과정에서 재미를 느끼는 것 같아요.

 

[사진= 김호이 기자]


Q. 라이브 드로잉을 할 때 어떤 순서로 그림을 그리세요?

A. 머릿속에서 소재나 주제가 정해지면 작으면 30~40%, 많으면 60~70% 정도 이미지를 갖고 그려요. 한번에 그리지 않고 띄엄띄엄 그리는 이유가 머릿속에서 떠올리는 이미지들을 배치하는 것이거든요. 그래서 그 사이사이를 연결하는 작은 이미지들로 자연스럽게 연결시켜나가고 있어요.

Q. 예술의 경계는 어디까지 일까요? 예술에도 경계가 존재할까요?

A. 저는 경계는 없다고 생각해요. 예전보다 경계가 많이 허물어졌고, 그런 경계가 있으면 있을수록 재미가 없어지는 것 같아요. 섞일 수 없는 것들이 섞이고 안 맞는 것들이 맞게 되면서 새로운 것들이 나오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한테는 그런 경계가 없으면 더 좋은 것 같아요.

Q. 많이 그리는 것보다 중요한 건 뭐하고 생각하세요?

A. 이해하면서 그리는 거요. 사물을 그리려면 그 사물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돼요.
관찰을 하고, 관찰을 하다 보면 남보다 모양새에 대해서 더 많이 알게 돼요. 그걸 그려보면서 ‘왜 이런 형태가 됐을까’에 대해서 이해하게 되면 이걸 가지고 다른 형태로 만들 수 있어요. 과장시킬 수도 있고 삭제할 수도 있고요. 그러기 위해서는 본연의 형태에 대해서 이해를 하는 것이 중요해요.

 

[사진= 김호이 기자/ 김정기 작가의 작품들을 보고 있는 모습]



Q. 김정기 작가의 그림에 군인이 많이 나오는데 이유가 뭔가요?

A. 원래부터 밀리터리에 관심이 많았고, 특수한 직종을 가지고 있는 분들을 좋아해요. 심해잠수사나 특수부대요원, 구조원, 우주인 같이 특별한 직업들을 좋아해요, 그들이 쓰는 물품들도 좋아하고요.

Q. 그림을 그린다는 건 김정기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이를 통해 가장 행복하고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A. 그림 그리는 건 제가 어렸을 때부터 가장 잘하고 저를 가장 돋이게 하는 것이었어요. 그리고 남들이 칭찬을 해주다 보니까 재밌었고 더 공부를 많이 하게 됐어요. 어느 순간부터는 숨 쉬듯 그림을 그리게 됐고 요즘에는 앉아있으면 계속 끄적끄적 그리는데 이게 습관화 됐어요. 그림은 제게 가장 재밌는 놀이이자 힐링도 돼요. 기분 나쁠 때 그림을 그리면 완화되기도 하고요.

 

[사진= 김호이 기자/ 촬영 모습]



Q, 만약 타이머신을 타고 역대 라이브 드로잉 현장을 갈 수 있다면 언제 어느 시점으로 가고 싶으세요?

A. 저는 제일 처음 라이브드로잉을 했던 부천국제만화축제를 가보고 싶어요. 다시 그리면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지금 보니까, 못 그린 부분들이 너무 많이 보여서 그때로 가서 다시 한번 해보고 싶어요.

Q. 김정기 그림을 통해 세상에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나요?

A. 그림에서 메시지를 생각해 본 적은 없고요. 그림을 재밌게 그리는 사람으로 남고 싶어요. 내가 재밌게 그린 그림이니까, 보는 사람도 그림이 재밌고 ”나도 이렇게 그림을 그려봤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으면 좋겠어요.

 

[사진= 김호이 기자]



Q. 김정기에게 백지란 어떤 의미인가요?

A. 저는 백지를 굉장히 좋아해요. 어떤 작가님들은 백지 공포증이 있다고 하는데, 저는 그런 건 없어요. 백지 안에서는 제가 대장이니까, 창조주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어요. 내 마음대로 그리면 되니까. 백지 앞에서 가장 자유로운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요.

Q. 드로잉 아티스트로서 요즘 어떤 큰 그림들을 그려나가고 있나요?

A. 저는 큰 계획은 못 짜요. 어렸을 때부터 계획은 잘 못 짰던 것 같고, 그냥 오늘 하루 끝내야 될 일들을 하나하나씩 처리해나가고 있어요.

Q, 드로잉 아티스트 라는 직업을 초등학생에게 20초 안에 설명해야 된다면 뭐라고 말해줄 건가요?

A. 머릿속에 있는 것들을 그려내는 사람, 머릿속에 있는 것들을 현실화 시켜나가는 사람이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사진= 김호이 기자]


Q. 직업 만족도는 5점 만점에 몇점 인가요?

A. 저는 5점 만점에 6점 이에요. 남들 보다 가장 잘할 수 있는 분야이고 재미도 있어요. 어떤 일들은 돈을 많이 벌어도 힘들면서 재미없는 일들이 있어요. 근데 저는 이게 재밌거든요. 그래서 저는 만족도가 되게 높아요.

Q. 사람으로서의 김정기, 드로잉 아티스트로서의 김정기는 어떤 사람인가요?

A. ‘사람으로서의 김정기는 좋은 사람인가?’ 굴곡 없이 그냥 평범하게 살았어요, 태어났을 때부터 중산층의 평범한 가정에서 살았고 힘들었던 적도 없고 그냥 이대로 와서 지금까지는 편하게 잘 살았던 것 같아요. 작가로서도 지금까지는 모난 것 없이 잘 그렸던 것 같아요.
 

[사진= 김호이 기자]


Q.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실력이 뛰어나지만 본인 스스로의 작품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 도전을 망설이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

A. 지금 안 풀린다고 해서 너무 조급해서 그걸로 인해 안 좋은 결정을 안 했으면 좋겠어요. 이 바닥에서는 꾸준하게 그리면서 오래 남아있으면 돼요. 그리고 큰 프로젝트들을 젊었을 때 많이 경험해봤으면 좋겠어요. 하다 보면 이 프로젝트에 참여 못할 정도의 수준인데도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면 주저 없이 참여했으면 좋겠어요. 깨지면서 배우는 것들이 굉장히 많거든요. 그러면서 자기 위치가 어딘지도 알 수 있거든요. 그러니까 많은 경험들을 했으면 좋겠어요.

Q. 어떻게 하면 이 바닥에서 오래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A. 이 바닥에서 오래 남으려면 우선 건강해야 돼요. 그리고 인간성이 좋아야 되고요. 사람이 좋아야 오래갈 수 있고, 많이 그리고 잘 그리는 건 기본이고요.

Q. 김정기처럼 자신의 세계를 능숙하게 구현하기를 꿈꾸는 아티스트에게 한 말씀 해주세요.

A. 창작을 고통스럽고 심각하게 하는 분들이 많아요. 하지만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 덫에 걸리면 빠져나오기가 힘든 것 같아요. 조금은 쉬고, 자신을 소모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고민하지 말고 생각을 풀어 놓듯이 그려 보세요. 어차피 하나의 결말로 달려가게 되어 있으니까요. 하지만 사실 저도 작업으로 제 자신을 많이 소모했어요. 정말 쉴 새 없이 많이 그렸으니까요. 재미에서 기인한 것이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을 일이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여러모로 에너지를 잃었다고 느끼고 있어요. 한 프랑스 만화 작가와 이야기를 하다가, 왜 아시아 작가들은 노년기에 작업을 하지 않는지를 화두로 던진 적이 있는데 함께 있던 편집자가 그들은 스스로를 너무 혹사시키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던 것이 기억이 나요. 그 때의 대화가 중요한 계기가 되었던 것 같아요. 이후 저의 작품활동에 대해서 길게 보려고 노력하고, 즐거움을 간직하면서 저만의 세계를 구축해나가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사진= 김호이 기자/ 김정기 작가가 아티스트들에게 전하는 메세지]


Q. 김정기의 작업은 만화와 예술의 사이에서 또 다른 장르를 개척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어떤 작가로 불리고 싶나요?

A. 제 작품은 현대미술, 만화, 상업미술 등 여러 군데에 발을 담그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넓은 활동영역을 가지고 여러 분야에서 활동할 수 있다는 점은 저의 큰 무기인 것 같아요. 라이브드로잉과 같이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거든요. 저는 미래의 새로운 수집품, 그리고 수집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드는 작가가 되고 싶어요. 저의 근간에 있는 것은, 그림을 재미있게 그리는 사람이 되자는 하나의 다짐이에요. 잘 그리는 것과는 별개로 창작을 즐기는 작가, 보는 이로 하여금 창작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작가가 되고 싶어요. 해외에서는 저를 마스터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런 거창한 것보다 단순히 작가로 불릴 수 있다면 좋겠어요.

Q. 앞으로 꿈이 있나요?

A. 특별히 미래에 무엇인가를 하겠다는 거창한 계획보다는, 꾸준히 지금처럼 그림을 계속 그리고 싶어요. 지금도 머릿속에 그릴 게 많은데, 평생 그려도 다 못 그릴 것 같아요(웃음). 지금처럼 그림 그리는 것을 즐기고, 언제나 백지 앞에서 즐거운 마음으로 있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모든 세계관을 창조해내는 백지의 왕으로 군림하면서요

Q. 마지막으로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 나가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한 말씀해주세요.

A. 많이 듣고, 읽고, 보고, 수집하세요. 이것만 꾸준히 해도 좋은 그림들을 많이 그릴 수 있고 자기가 있는 위치에서도 계속 올라갈 수 있을 거예요.

 

[사진= 김호이 기자/ 김정기 작가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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