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이의 사람들] 라미 현효제 작가가 말하는 우리가 참전용사들을 잊으면 안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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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이 객원기자
입력 2021-06-09 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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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잊지 말아야 될 것들이 많다. 하지만 익숙함으로 인해 소중한 것들을 잊어버리곤 한다. 젊은 시절 자신의 목숨을 바쳐 누군가를 위해 전쟁에 참전한 참전용사들이 대표적이다.

누군가의 희생과 헌신을 잊지 않기 위해 참전용사들을 사진으로 기록하는 사람이 있다. 바로 라미(Rami) 현효제 작가다.

그는 국내와 해외 참전용사들을 직접 찾아가 무료로 사진을 찍주고 있다. 참전용사를 기억하며,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하고자 카메라 셔터를 누른 것이다.

왜 그는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많은 것 중에 참전용사들을 기록하는 이유는 무엇이고, 세상에 남기고자 하는 가치는 뭘까?
라미 현효제 작가와 우리가 참전용사를 잊지 말아야 할 이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사진= 김호이 기자/ 라미 현효제 작가]



Q. 창전용사 분들을 어떻게 찾아다니세요?

A. SNS에 검색하면서 찾기도 하고, 이분들의 가족이나 여러 단체를 통해서 찾기도 하는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어요.

Q. 그분들이 참전용사라는 걸 어떻게 아는 거죠?

A. 그분들 자체가 유공자복을 입고 있거나 가족들이 유공자라고 써놓기도 해요.
그걸 통해서 아는 거죠.

Q. 라미 현효제 작가를 모르는 경우도 많을텐데, 사진을 찍는다고 했을 때 그분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A. 그냥 소개만 하는 게 아니라 어떤식으로 하는지 영상과 소개자료를 전달해드리고 답변을 기다려요. 답변이 올 때도 있고 안올 때도 있어요. 이걸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분들도 있고요.

Q. 비행기표를 비롯해 경비는 어떻게 마련했나요?

A. 대부분은 사비였는데 힘들 때 도와주시는 분들도 계세요. 돈이 없으면 카메라나 삼각대를 팔기도 하고요. 장비는 어차피 바꾸면 되는 거잖아요.

Q. 사진은 돈이 안된다는 인식이 있어요. 라미 작가는 사진을 통해 돈을 많이 벌었나요?

A. 아니요. 근데 돈과는 비교할 수 없는 거죠. 재밌으니까 하는 거지, 돈을 생각하면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사진= 김호이 기자]



Q. 사람들이 참전용사에 대해 어떤 생각들을 갖고 있던가요?

A. 제가 많이 들었던 얘기는 이미 70년이 지난 일인데 아직도 얘기를 하냐, 평화를 얘기할 타이밍에 전쟁을 얘기하냐는 말을 많이 들었죠. 근데 이건 우리가 힘들었을 때 도와줬던 분들에게 감사를 표하는 건데, 이런 걸 정치적으로 보는 걸 싫기도 하고 말이 안된다고 생각해요. 이분들이 어린나이에 한국이라는 땅에서 전쟁을 경험하고, 고국으로 돌아가신 분이잖아요. 그들 덕분에 자유라는 민주주의가 생긴 거고, 이 분들이 돌아가시기 전까지는 고마움을 표현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Q. 참전용사 분들도 라미 작가에게 많이 고마움을 표시할 것 같아요.

A. 이분들은 본인들이 잊혀진 참전용사라는 생각을 많이해요. 근데 70년 전에 싸웠던 나라에서 누군가가 고맙다는 인사 한마디를 하는 게 이분들 입장에서는 진짜 고마우신 것 같아요.

Q. 만약 라미 작가가 전쟁에 나갔는데, 몇 십년 후에 그 나라의 청년이 고마움을 표시하러 온다면 어떤 말을 해주고 싶은가요?

A. 일단 전쟁이 이겼는지, 안 이겼는지가 중요한 거고, 그분들은 특수한 상황인 거예요. 한국 전쟁이라는 건 이긴 전쟁이고, 북한의 위협에서 대한민국을 지켰잖아요. 그걸 토대로 자유민주주의의 바탕으로 쌓았기 때문에 경제발전으로 이룬 거예요. 근데 모든 전쟁이 그렇지는 않거든요. 여러 형태의 전쟁이 있지만 어떤 전쟁을 겪었느냐에 따라 다르겠죠. 세계2차대전 이후로 한국전쟁 참전용사 분들만 고마움을 받고 있어요. 베트남 사람들은 베트남 전쟁에 대해 미군들한테 고마워 하지 않을 것이거든요.

 

[사진= 라미 현효제 작가 제공]



Q. 잊혀진 전쟁, 잊혀진 참전용사는 어떤 의미인가요?

A. 말 그대로 잊혀진 거죠. 이제는 기억하지 않고, 미국과 터키를 제외하고는 한국전쟁에 대해 가르치는 나라가 거의 없어요.

Q. 참전용사의 사진을 찍는다고 했을 때 주변의 반응은 어땠나요?

A. 좋지는 않았어요. 돈 얘기부터 시작했어요. “돈이 되냐”, “한명당 얼마씩 받냐”하면서 다 돈돈돈 거렸어요.

Q. 돈은 많이 벌었나요?

A. 이분들을 통해서 버는 게 아니라 원래 제가 했던 광고, 패션사진을 찍거나 장비를 팔거나 작품사진을 팔아서 버는 거지, 이걸 통해서 돈을 버는 건 없어요.

Q. 가장 기억에 남는 참전용사들의 스토리가 있나요?

A. 많죠. 이 분들 입장에서는 한국에 1년 정도 계셨는데 90살이면 1%도 안되는 시간이지만 대부분이 자기 인생에서 가장 값어치 있는 일을 했다고 하세요. 그런 것들이 공통적인 것들이에요. 한분한분 역사이고, 가치있는 것이고요.

 

[사진= 라미 현효제 작가 제공]



Q. 라미 작가가 지금까지 한 일 중에서 가장 가치 있었던 일은 뭔가요?

A. 이분들이 돌아가시기 전에 그 모습을 기록하는 게 다음세대에 전달하는 하나의 유산이자 아카이빙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그 일이 가장 가치 있다고 생각해요.

Q. 여러 기록의 수단 중에 사진을 택한 이유는 뭔가요?

A. 제가 사진작가이고, 가장 잘하는 일이니까요. 사진이라는 게 겉모습만 찍지만 그 속에는 내면의 모습이 담겨있거든요. 영상과 글과 다른 사진이 주는 매력이 있어요. 우리가 흔하게 쓰고 접하는 매체이지만 시간의 어느 한 부분을 압축해서 담는 부분이기 때문에 재밌는 작업이에요. 그리고 가장 쉬운 형태로 이 분들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이고요.

Q. 참전용사 분들이 라미 작가에게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은 뭔가요?

A. 어디서 왔냐고 많이 물어봐요. 근처에서 온 줄 알아요.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안 믿어요. 당신 만나러 왔다고 하면 “왜?”라고 많이해요.


 

[사진= 라미 현효제 작가 제공]


Q. 그러면 작가님께서는 뭐라고 하세요?

A. 제가 했던 프로젝트를 설명하면서 이런 이유로 찾아다니고 있다고 해요. 그래도 안믿어요. 국가나 보훈처에서 행사를 열지, 개인이 하는 일은 거의 없거든요.

Q. 참전용사 분들을 위해 일상에서 할 수 있는 건 뭐가 있을까요?

A. 국가유공자라고 써진 모자를 쓰고 다니시는 분들이 많아요. 그냥 지나가지 말고 감사하다고 한마디 하는 게 그 분들한테 가장 큰 선물이에요.

Q. 참전용사를 찍기 전과 후 참전용사를 바라보는 마음에 있어서 달라진 게 있나요?

A.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시작했는데 지금은 굉장히 존경스러워요. 아무것도 모를 때 가치를 지키기 위해 싸웠던 분들이었고 본인이 알던 모르던 싹이 틔어서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거예요.

Q. 주위에 친적이나 가족 중에 참전용사 분들이 있나요?

A. 외할아버지랑 아버지가 참전용사이세요.

Q. 부모님께서 이 일을 자랑스러워하실 것 같아요.

A. 아버지께서는 49년생으로 전쟁을 겪으셨고, 어머니는 54년생으로 전쟁 후에 태어나셨는데 전쟁을 겪은 세대와는 달라요. 그들이 생각하는 유엔군 참전용사랑 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가 생각하는 것과는 너무 달라요. 일단은 이분들은 바라보는 시선 자체가 다르고요. 이분들이 어떻게 도와줬고, 왜 왔는지를 아는 반면에 지금은 교육 그리고 감정적인 것들이 단절됐거든요. 지금은 이 사람들을 통해서 돈 벌러 왔겠지 라는 시선들이 많아지는 거예요.

Q. 학교에서 참전용사, 전쟁에 대해 가장 알려줬으면 하는 건 뭔가요?

A. 한국이라는 나라는 부대나 전투 같은 것들이 중요하거든요. 저한테는 사람이 중요해요. 그래서 사람 냄새가 나는 스토리들이 알려졌으면 좋겠어요. 이 사람들이 왜 싸웠는지에 대해 알려줬으면 좋겠고요. 근데 우리는 대부분 “어디서 싸우셨어요”. “어떤 전쟁에 참여하셨어요“를 물어봐요. 사람냄새가 나려면 이 사람이 살아왔던 이야기를 들어봐야 돼요. 근데 우리는 그럴 시간이 없다는 거죠. 바쁘다 보니까, 필요한 것들만 물어보고 그러다보면 토막토막 끊긴 스토리가 만들어지는 거죠.

Q. 원래는 패션 광고사진작가였다고 들었어요. 근데 참전용사 분들의 사진을 찍게 된 계기가 뭔가요?

A. 원래 광고를 만들었는데 육군1사단에서 연락 와서 홍보영상을 만들면서 군대와 인연을 맺게 됐어요. 그러면서 군인사진을 찍기 시작하다가 참전용사 분들을 찍게 된 거예요.

Q. 참전용사 분들을 찍으면서 어떤 생각들을 하게 되나요?

A. 고마운 분들이고, 되게 재밌어요.

 

[사진= 김호이 기자/ 인터뷰 장면]



Q. 사진을 찍기 전과 찍고나서 작업물을 본 후 참전용사 분들의 반응은 어떻게 다른가요?

A. 찍기 전에는 잘 모르세요. 남의 사진을 본 것과 자기 사진을 보는 건 다르거든요. 사진이라는 것이 겉모습만 찍는 게 아니라 내면까지 담겨 있기 때문에 그들이 그 안에 들어왔을 때는 참전용사로서 사진을 찍는 것이거든요. 자기가 어떤 모습인지 보이는데, 그러면서 자부심을 느끼는 거예요.

Q. 전쟁을 경험한 사람들은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과 어떤 게 다른가요?

A. 자세가 달라요. 수박을 먹어 본 사람과 수박을 한번도 먹어보지 않은 사람의 자세랑 비슷해요.

Q. 이 일이 본인에게 어떤 의미를 주나요?

A. 의미보다는 호기심으로 시작해서 재밌다 보니까, 이렇게 된거지 처음부터 의미를 생각한 건 아니었어요. 사람 만나는 게 재밌어요. 이 분들의 표정과 얘기를 나누는 과정이 재밌는 거지, 과정은 힘들어도 이 사람들이 의심을 해도 나중에는 변해요. 그런 것들을 보면서 힘들게 찾아갔지만 재밌다는 걸 느껴요.

Q. 어떤 게 가장 변했다고 생각하세요?

A. 누군가가 기억을 하지 않고 잊혀졌다고 생각하는데 그래도 한명은 기억하는구나. 이 한명을 통해서 대한민국 국민들이 기억하구나 라는 피드백을 받다 보니까, 그 분들이 좋아하세요.

Q. 참전용사의 가족 분들은 라미 작가에게 어떤 말들을 하나요?

A. 힘들어도 이분들은 기록할 이유가 있다는 말들을 많이해요. 아무래도 아버지도 전쟁을 겪으셨고, 어머니도 전후 세대이니까요.

Q. 작업과정은 어떻게 이뤄지나요?

A. 찾아가고, 설명하고, 촬영하고 가능하면 바로 드리거나 안 되면 액자를 제작해서 가져다 드리고요.

Q. 사진 프린터는 가지고 다니세요?

A. 제가 가진 프린터의 무게가 85KG에요. 못가지고 다니죠. 한국에 다시 와서 액자에 넣어서 가져다 드리는 거예요. ‘한번 더 가보자’라는 생각으로 가는 거예요.

Q. 그런 열정은 어디서 나오는 건가요?

A. 저한테 언제 올 수 있냐고 연락이 와요. ”네가 돈이 없다면 우리들이 너 비행기표 모금해줄게“라고 말해요. 그러면 어떻게 안가요.

Q. 사진을 찍으러 갔다가 연결이 돼서 또 다른 프로젝트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나요?

A. 연결할 수 있는 일이 드물어요. 있다면 좋겠지만 그러면 집중이 안돼요. 이분들을 찍는데 집중을 해야 돼요. 근데 참전용사 분들이 연결해서 또 다른 분들을 찍게 되는 경우도 있고요.

Q. 스트레스도 많이 받을텐데, 그런 스트레스들은 어디서 푸세요?

A. 예전에는 놀기도 하고, 술도 많이 마셨어요. 근데 이런 분들을 만나다 보면 풀려요.

 

[사진= 김호이 기자]



Q. 라미 작가의 프로젝트를 통해서 달라진 건 뭔가요?

A. 예전에는 참전용사 분들을 삐딱하게 바라보는 경우가 많았어요. 이분들도 군인인데 돈 받으러 온 거 아니냐는 말도 많이 들었고요. 근데 역사를 다시 바라보게 이분들을 바르게 바라보는 계기가 생기는 거니까, 좋은 거예요.

Q. 사진을 찍은 것 외에 참전용사 분들께 해드리는 것들이 있나요?

A. 집을 찾아가면 꽃이나 먹을 걸 사가지고 가요. 대부분 혼자사시거나 노인 분들이기 때문에 사모님이 계시면 괜찮지만 그렇지 않으면 집안 청소도 해드리고요.

Q. 가장 기억에 남는 참전용사가 있나요?

A. 하워드 존슨이라는 분이 원래 포병이었는데 오일을 관리하셨어요. 자기 밑에서 한국인 노동자가 30명 정도 있었대요. 추운데 장갑이나 양말이 없으니까, 떨고 있는데 너무 안타까웠대요. 근데 장갑을 주면 오해 받거나 문제 생길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부대에 들어가서 장갑과 양말을 훔치셨어요. 근데 그냥 주면 안 되니까, 가다가 발걸어서 넘어트리거나 길 가다가 떨어트려서 몰래몰래 주셨어요. 그분이 기억에 남아요.

그리고 존보이어 라는 분이 있었는데 영국이 전쟁에 참전했을 때 쓰던 국기 중 하나인데 당시 중대장이라서 가지고 있는데 하나는 분실했고, 가슴에 피를 흘리고 있는데 간직하시던 국기를
가지고 사진을 찍은 경우도 있었어요.

전쟁에 나가서 다리를 다치셨는데 후회하지 않는다는 분도 계셨고요.
우리가 생각하면 이해하지 못할텐데, 자기는 괜찮대요. 왜냐면 내 다리 하나 때문에 한국이라는 나라가 조금이라도 잘됐다는 생각을 하면서 위로를 받고, 어린아이들이 뛰어노는 모습을 보면서 내 다리 하나만큼은 충분히 했다고 생각한대요.

Q. 사명감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 걸까요?

A. 이분들은 사명감이 있어요. 우리 때랑은 달라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이해하기는 힘들죠. 그때의 정서와 지금의 정서는 많이 다르기 때문에. 이 사람들한테 자유와 민주주의는 목숨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었어요. 근데 우리는 이 사람들의 목숨을 통해 얻은 자유와 민주주의인데 당연하게 느끼잖아요.

 

[사진= 김호이 기자]



Q. 참전용사 외에 찍고 싶은 사진은 뭔가요?

A. 참전용사 뿐만 아니라 그때 당시 있었던 민간인 분들을 비롯해서 한국전쟁과 관련된 분들을 사진을 통해 담고 싶어요. 한국전쟁이 일어날 당시에는 우리가 기록하지 않았어요. 도망가고, 살기에 바빴잖아요. 그러니까 그때 상황들을 더 많이 담고 싶은 거예요. 그리고 나무 사진작업들을 하고 있어요. 나무라는 존재가 뿌리를 내리고 기둥을 세우고 올라가면 불평하지 않고 자라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에너지를 얻고 저도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는 중이죠.

Q. 사진이 주는 의미는 뭔가요?

A. 기록하는 거고, 그 기록이 모여서 역사가 되는 거고. 역사가 곧 민족의 자부심이 될 수 있는 거고요.

Q. 라미 작가의 군 생활은 어땠나요?

A. 열심히 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적당히 하면서 적당히 놀고, 일반 군인들과 다르지 않았어요(웃음).

 

[사진= 김호이 기자]



Q. 현재 스스로에게 가치를 두고 있는 건 뭔가요?

A. 더 열심히 하자, 뭐든지 잘하자. 더 찾아갈 분도 많은데, 코로나 때문에, 비용 때문에 못가는 곳이 많아요.

Q. 다음 세대를 위해하고 싶은 건 뭔가요?

A. 이걸 더 열심히 하는 거예요. 그게 다음 세대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Q. 마지막으로 여러 분야에서 선한영향력을 주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한 말씀해주세요.

A. 더 많이 해야 더 많은 선한영향력을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더 많이 해주세요.

 

[사진= 김호이 기자/ 라미 현효제 작가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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