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금 주기 싫어' 보험사의 선제 소송···대법 "적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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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다영 기자
입력 2021-06-17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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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법원 대법정에서 열린 상해사망 보험 가입 당시 직종 고지의무 위반 분쟁 사건과 관련한 전원합의체 판결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보험회사와 보험수익자 간 보험금 지급분쟁이 있을 때 보험회사가 먼저 소송을 제기해도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나왔다.

17일 오후 2시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이기택 대법관)는 DB손해보험이 보험수익자 이씨를 상대로 낸 '채무부존재확인' 소송에서 원고(보험사) 패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다만, 소비자 측이 '보험사가 먼저 채무부존재 소송을 낼 수 없다'고 주장한 부분을 배척하고 '보험사도 먼저 소송을 낼 수 있다'고 판결했다.


이씨의 동생은 2016년 9월 DB손해보험과 상해사고 사망시 2억여원을 지급받는 내용의 보험계약을 체결했고, 이후 2016년 10월 사고로 사망했다. 이씨는 보험사에 동생의 보험금 지급을 청구했으나 보험사는 "이씨의 동생이 보험계약 체결 당시 업종을 '사무'로 고지했으나 실제로는 플라스틱 도장업을 수행했다"며 고지의무 위반을 이유로 보험계약 해지를 통지하면서 동시에 보험금 지급을 거절했다. 이후 보험사는 이씨를 상대로 채무부존재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이씨도 보험금을 지급하라며 보험금 청구 맞소송을 냈다.

채무부존재확인 소송은 원고와 피고 사이에 채무나 의무가 있는지, 있다면 어느 범위까지인지를 법원의 판결로 가리는 것으로, 채무자(이 사건에선 보험사)가 원고가 된다. 지금까지 국내 보험사들은 소송을 내지 않은 채 집요하게 보험금을 요구하는 소비자들에 대해 보험금을 주지 않기 위해 선제적으로 '채무 부존재 소송'을 내왔다. 

하지만 소비자들이 거액의 소송가액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사실상 소비자가 일방적으로 불리한 입장에 놓이게 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1심과 2심은 "이씨의 동생이 업종을 사무라고 기재하기는 했으나 취급하는 업무란에는 회사 이름과 대표임을 적었고, 평소 대표자로서 직접 페인트 도장을 하기는 했지만 거래처 관리 등 사무업무도 담당했던 점, 보험설계사가 직접 공장을 방문하고 상담해 직업에 관해 파악하고 있었을 것으로 보이는 점에 비춰 고지의무 위반으로 볼 수 없다"며 2억여원을 지급하라면서 이씨의 손을 들어줬다. 

이 과정에서 이씨 측은 보험사가 먼저 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일방적으로 소비자를 불리한 위치에 놓이게 하는 것이라며 보험사의 청구 자체를 받아들여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법원은 보험회사가 보험계약자, 수익자를 상대로 선제적으로 제기한 채무부존재 확인 소송이 적법한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보고 사건을 전원합의체로 회부했다.

이날 대법원은 11명의 대법관 중 사건 합의 후 대법관으로 합류한 2인을 제외하고 6대 3 다수 의견으로 '보험사가 보험계약자 등을 상대로 먼저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확인의 소(현재의 권리관계나 법률관계에 관하여 법원의 판결에 의해 이를 공적으로 확인받고자 하는 소송)에서는 권리보호요건으로서 확인의 이익이 있어야 한다고 봤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보험계약의 당사자 사이에 계약상 채무의 존부나 범위에 관해 다툼이 있는 경우, 그로 인한 법적 불안을 제거하기 위해 보험회사는 먼저 보험수익자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확인의 이익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이어 "이 법리에 의하면 원고와 피고 사이에 보험금 지급책임의 존부에 관해 다툼이 있으므로 원고가 피고를 상대로 제기한 채무부존재확인의 소송은 적법하다"며 "이를 전제로 원심이 본안에 관해 판단한 것은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보험회사는 보험계약자 등과 사이에 보험금 지급책임의 존부나 범위에 관해 다툼이 있으면 먼저 보험계약자 등을 상대로 채무부존재확인의 소를 제기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그동안 재판실무는 이같은 채무부존재확인의 소를 적법한 것으로 봐 본안 판단을 해 왔는데, 이번 판결은 종래의 재판실무가 적법하다는 점을 재확인했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에 대해 반대 의견을 개진한 이기택·김선수·노정희 대법관은 "확인의 이익은 국가적·공익적 측면에서 남소(濫訴, 함부로 소송을 일으킴)를 억제하고 형평에 반하는 소송제도의 이용을 통제하는 원리다"라며 "다수의견은 확인 이익이 갖는 '공적 기능'을 고려하지 않아 타당하지 않다"고 밝혔다.

이 대법관 등 3인은 "보험의 공공성, 보험업에 대한 특별한 규제, 보험계약의 내용 및 그에 따른 당사자의 지위를 고려하면, 보험계약자나 보험수익자가 단순히 보험회사를 상대로 보험사고 여부나 보험금의 범위에 관하여 다툰다는 사정만으로는 확인의 이익을 인정하기 부족하다"며 "추가로 보험회사가 보험금 지급책임의 존부나 범위를 즉시 확정할 이익이 있다고 볼 만한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만 확인의 이익이 인정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어 반대 의견 대법관 3인은 보험회사가 보험금 채무의 존재 여부나 범위를 즉시 확정할 이익이 있다고 볼 만한 '특별한 이유'가 있을 때만 확인의 이익이 인정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가령 보험수익자가 보험계약이나 법령에서 정한 범위를 벗어나 사회적 상당성이 없는 방법으로 보험금의 지급을 요구할 때, 혹은 보험회사가 보험사기 등 범죄나 불법행위의 피해자가 될 경우가 있는 경우 등의 상황을 예시로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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