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식 칼럼] 국민을 위하는 정치인은 누구인가

임병식 객원논설위원· 서울시립대학 초빙교수입력 : 2021-06-08 08:36

[임병식 위원]


인쇄매체가 시들하다지만 출간은 시대 흐름을 확인하는 지표다. 코로나19 때문인지 요즘은 국내 여행서적과 자기계발 서적이 많다. 정치인들 책도 부쩍 늘었다. 4·7 재·보궐 선거를 즈음해 깔렸던 서울시장 후보들이 쓴 책은 자취를 감췄다. 이제는 그 자리를 여야 대권 주자들이 차지하고 있다. 대선이 머지않았다는 뜻이다. 정치인들이 쓴 책은 공통점이 있다. 누구도 선뜻 집지 않는다. 빤한 이야기일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여당 대권 주자 1순위 이재명을 비롯해 이낙연, 정세균, 이광재 책이 눈에 띈다. 여기에 출마 선언은커녕 정당조차 가입하지 않은 윤석열 전 검찰총장 책도 보인다. 이런 추세라면 나이가 안 돼 내년 대선에는 출마 자격이 없는 이준석 책도 나올 판이다. 이들이 직접 책을 썼는지 대필했는지는 알 길이 없다. 그런데도 감동과 울림은커녕 구성과 내용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그나마 정세균 ‘수상록’ 정도가 눈길을 끈다.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정치인에게 핵심 덕목은 ‘애민(愛民)’이다. 고전(古典)은 세월이 흘러도 고전인 것과 같은 이치다. 한 나라를 경영하겠다고 나선 대통령 후보라면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애민은 보편적이어야 한다. 진보와 보수, 서초동과 광화문을 가리지 않는 포용력을 요구한다. 편을 갈라 내편만 편애할 것이라면 절대 출마해서는 안 된다. 자신에게 공동체를 우선하는 애민정신이 있는지 스스로 물어야 한다.

세종에게 애민은 핵심 사상이었다. 그는 한글을 만든 이유로 애민을 들었다. “우리말이 중국과 달라 서로 통하지 않으니 이 때문에 말하지 못하는 백성을 위해 스물여덟 자를 만든다.” 또 사회적 약자를 돌보는 데 신분을 따지지 않았다. 세종은 집권 8년차, 모든 여자 노비에게 100일 출산휴가를 명했다. 이후 여자 노비 130일, 남편노비 30일로 확대 시행했다. 지금 근로기준법(임산부 90일, 배우자 10일)보다 진보적이다.

조세제도를 정비할 때는 여론을 물었다. 5개월 동안 여론조사에는 당시 인구 4분의1에 해당하는 17만2806명이 참여했다. 찬성 여론이 높았다. 하지만 시행을 유예한 채 반대한 백성들에게 주목했다. 왜 그러는지 헤아려 17년 만인 1444년 선포했다. 또 2000회에 달하는 경연을 갖고 관료들과 소통했다. 폭넓은 경청과 소통,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용은 애민이었다. 해리슨 주한 미국 대사는 세종을 “르네상스 인물”이라며 격찬했다.

대동법에 일생을 바친 영의정 김육. 그 또한 고단한 백성을 살피는 데 모든 걸 걸었다. 대동법은 조선 500년 동안 가장 개혁적인 법이다. 땅 가진 만큼 세금을 내도록 한 정책으로, 부자증세였다. 사대부들은 거세게 반대했다. 대동법이 전국적으로 시행되기까지 꼬박 100년 걸린 건 이 때문이다. 김육은 효종에게 자신을 쓰려거든 대동법을 시행하고 그러지 않으면 노망난 재상으로 여기라며 배수진을 쳤다. 오직 애민이었다.

내년 3월 9일 대선까지 꼬박 10개월 남았다. 어느 때보다 판세를 예측하는 게 쉽지 않다. 더불어민주당은 지지율 하락으로 전전긍긍하고 있다. 이미 4·7 재·보궐 선거에서 싸늘한 민심을 확인했다. 국민의힘 또한 마땅한 대권 주자가 보이지 않아 구심점이 없다. 그나마 ‘이준석 돌풍’에 힘입어 반전을 꾀하고 있다. 이준석으로 대표되는 세대교체 기운은 불확실성을 더한다. 기성 정치인은 안 된다는 것이니 여야 모두에게 위협이다.

불확실성 속에서도 확실한 한 가지는 애민이다. 누가 진심으로 국민을 사랑하는지가 판단 척도다. 화려한 언변도, 정치 이력도, 인기도 선택 기준은 아니다. 설령 목소리는 크지 않고, 정치 이력은 화려하지 않더라도 누가 국민을 위해 헌신할 자세가 되어 있는지가 중요하다. 겉으로 드러난 화려함이 아닌, 이면을 봐야 한다. 이제부터는 이런 정치인을 선별하는 데 세심한 관심을 쏟아야 한다. 대선은 인기투표가 아니다.

할 수만 있다면 모든 대선 주자를 대상으로 애민을 따져야 한다. 시민과 공동체를 사랑하지 않는 정치는 허황하기 때문이다. 그런 정치인에게 나라를 맡기는 건 파국을 예약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지난 4년 동안 우리사회는 진영으로 갈려 갈등과 증오를 쌓아왔다. 내년 대선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국민통합을 바탕으로 품격 있는 나라로 올라서느냐 갈림길에 있다. 자기 진영만 편애하는 정치는 끝내야 한다.

세종은 “오늘날 선비들은 말로만 경학을 한다고 한다. 너희들은 매일 경학을 한다고 하는데, 도대체 왜 진짜 선비가 없는 것이냐”며 기득권에 찌든 관료 사회를 질책했다. 600년이 흐른 지금 한국정치에도 유효하다. “오늘날 정치인들은 말로만 국민을 위한다고 한다. 너희들은 국민을 위한다고 하는데, 도대체 왜 국민을 위하는 정치인은 없는 것이냐.” 자신 있게 답할 대선 주자가 있는지 묻는다.



임병식 필자 주요 이력

▷국회의장실 부대변인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 ▷한양대학교 갈등연구소 전문위원

임병식 객원논설위원· 서울시립대학 초빙교수  montli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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