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열국지] 한·중·일에 美·대만 모두 총력전…속도·실행력서 판가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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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은영·장문기 기자
입력 2021-06-03 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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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탄탄한 국내 반도체산업에 견제, 공공의적 된 한국

  • 설계에 강한 美, 파운드리 공장 유치 제조분야 자립

  • 자급률 낮은 中, 기업·인재 유치해 기술 개발 속도전

  • 소재·부품·장비 갖춘 日, 뒤처진 첨단제품 양산 계획

  • 대만, 2030 생산액 5조 대만 달러 목표 국산화 지원

반도체 패권을 차지하기 위한 글로벌 경쟁이 심화되고 있다. 기존에 각국은 ‘잘하는 것을 잘하자’는 기조였다면, 코로나19 사태 이후로는 반도체의 모든 것을 다루겠다는 욕심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반도체 강국인 미국을 비롯해 한국, 중국은 물론 일본과 대만까지 가세해 반도체 자립을 추진한다.

2일 시장조사업체 IC인사이츠에 따르면 지난해 반도체 매출 상위 15개 기업에 미국, 한국, 대만, 일본 회사가 이름을 올렸다. 1위는 미국의 인텔, 2위는 한국의 삼성전자, 3위는 대만의 TSMC였으며, 일본의 키옥시아는 12위를 차지했다.
 

[아주경제 그래픽팀]


이처럼 미국은 반도체 강국임에도 최근 반도체 공급망 재편을 주도하고 있다. 코로나19로 반도체 수급에 어려움을 겪으며 자국 내 생산의 중요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미국은 반도체 설계 분야는 강하지만 제조 분야는 그렇지 못하다.

이에 미국 정부는 자국 내 생산을 중심으로 하는 반도체 자립을 추진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4월 18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반도체 화상회의’를 열고, 반도체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에게 투자를 촉구하는 러브콜을 보내기도 했다. 

정부는 지난해 제정한 ‘칩스 포 아메리카 액트’ 법에 따라 미국 내 반도체 공장에 보조금 100억 달러를 지급하고, 반도체 시설을 유치하면 최대 40%의 세액공제 혜택을 준다. 

또 상무부와 국방부는 반도체 설비 확충과 핵심 생산기술 연구개발(R&D)에 약 28조원을 투자한다. 주정부 차원에서도 TSMC와 삼성전자 등 해외 기업의 파운드리 공장을 유치하기 위해 인센티브 등을 협상하고 있다.

미국이 반도체 자립에 속도를 내는 것은 중국을 견제하려는 의도도 깔려 있다. 세계 최대 반도체 수요국이지만 자급률이 15%에 불과한 중국은 2025년까지 반도체 자급률 70%를 목표로 반도체 기술을 공격적으로 육성하고 있다.

중국 국무원은 지난해 8월 28나노 이상 공정을 도입하면 영업 기간 15년 이상인 기업에 대해 최대 10년간 법인세를 면제해 주기로 했다. 미국‧한국에 비해 선단 공정에서 뒤처져 있는 만큼 기술 개발을 앞당기기 위한 지원책이다.

또 지난해 중국 난징에 ‘난징반도체대학’을 설립하고, 올해 초 명문대인 칭화대에 반도체 단과대학을 설립하는 등 인재 육성에 주력하고 있다. 반도체 인재를 통해 근본적인 경쟁력을 갖추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중국 지방정부도 첨단 반도체 기술 육성을 지원한다. 상하이 정부는 집적회로 장비, 재료 기업에 연간 판매 수익에 따라 장려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광저우 정부는 12인치 집적회로 제조 생산라인을 적극 유치하고 있다.

일본 역시 자국 내 반도체 생산을 강화하며 패권 경쟁에 동참하고 있다. 일본은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분야와 설계에 강점이 있지만 첨단 반도체 분야에서는 뒤처져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에 일본 경제산업성은 지난 3월 첨단 반도체 역량 강화를 위해 ‘반도체·디지털 산업전략 검토 회의’를 운영하기로 했다. 민·관 협력을 기반으로 첨단 반도체 개발 체제를 구축해 2025년까지 국내에서 첨단 반도체를 양산하는 것이 목표다.

그 일환으로 일본 경제산업성은 지난달 31일 이바라키현 쓰쿠바에 TSMC의 반도체 R&D 거점을 조성한다고 밝혔다. 총 사업비 370억엔(약 3750억원)의 약 절반을 보조금으로 지급하며 후공정 기술 개발을 위해 협력할 계획이다.

대만 정부는 R&D 투자비의 최대 15%를 세액 공제해 주고, 패키지 공정 테스트 비용의 40%를 지원한다. 900만 달러의 기금으로 반도체 인력 육성에 따른 보조금도 지급한다.

아울러 2030년 반도체 생산액 5조 대만달러 돌파를 목표로 소재·장비의 국산화를 지원해 나갈 방침이다. 이를 위해 반도체 소재·장비 분야 외국기업에 대한 투자유치 확대, 국내외 기업 간 교류·협력 기회 주선, 해외 우수인재 유치 및 R&D 인센티브 지원 등을 추진한다.

구체적으로, 반도체 장비 업체가 주요 반도체 업체로부터 신뢰성 시험 진행 동의를 받은 경우 기술개발 난이도에 따라 일부 비용을 지원하며 반도체 장비 개발을 뒷받침하고 있다.

 

반도체 이미지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제공]


◆한국, 글로벌 패권 경쟁서 소외··· 'K-반도체 전략'으로 승부

이처럼 글로벌 반도체 패권 경쟁이 심화되고 있지만 한국은 고립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안진호 한양대 교수는 “일본이 TSMC에 2000억원을 투자한다는 것은 반도체 양산보다는 설계 등에 특화된 쪽으로 방향을 선회하는 것”이라며 “반도체 산업 구조가 변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미국과 일본, 대만과 미국, 대만과 일본이 협력하고 있는데 한국은 그 협력에서 빠져 있다. 한국이 ‘공공의 적’이 된 것”이라며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모든 국가가 경계할 정도로 국내 반도체 산업이 탄탄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한국 정부도 ‘K-반도체’ 전략으로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을 주도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정부는 기업 대상 세액공제 중 ‘핵심전략기술’ 트랙을 신설해 반도체 R&D에 최대 40∼50%, 반도체 시설투자에는 최대 10~20% 공제해 주기로 했다.

또 1조원 이상의 반도체 등 설비투자 특별자금을 신설해 우대금리로 설비투자를 지원한다. 화학물질, 고압가스, 전파응용설비 등 반도체 제조시설 관련 규제 합리화와 용수 확보 및 전력 인프라 지원 등도 제공할 예정이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K-반도체 전략이 실행력을 가지려면 디테일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전반적인 반도체 산업 부흥을 위한 디테일을 보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종호 서울대 반도체공동연구소장은 “인력 양성과 관련한 디테일을 잘 챙겨서 미국, 중국, 대만과는 다른 방법이 있을까 하는 고민을 담아야 한다”며 “글로벌 경쟁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탁월한 인재’를 양성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소장은 “인력 양성과 더불어 기업에서는 세금 감면, 관련 법령 등에 관한 의견이 많은 것으로 보인다”며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화평법), 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 등 관련 법령이 합리적으로 개선되길 바라는 목소리가 많이 들린다”고 전했다.

안 교수는 “미국도 제조업 유치를 위해 대규모 세제 혜택을 주는데, 한국은 지금까지 공개된 세금 감면 등이 기업이 체감할 정도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며 “반도체 산업이 진정으로 중요한 산업이라고 인정한다면 진정성과 실효성 있는 정책을 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철강 산업이 없으면 모든 산업이 돌아갈 수 없듯이, 반도체도 그런 산업이 됐다”며 “반도체라는 ‘인프라’ 없이 국가산업이 성장할 수 없으므로 반도체 정책을 펼 때 국내 전반적인 산업 생태계를 안정화한다는 의미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업계에서도 K-반도체 전략이 발표된 만큼 차질 없이 이행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를 위해서는 국회가 반도체산업지원특별법을 제정해 뒷받침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창한 한국반도체산업협회 부회장은 “업계에서도 정부 전략이 이행되는 과정을 잘 지켜보고, 문제점이 보이면 정부에 계속 건의하고 요청해야 한다”며 “정부 전략을 안정적으로 가져가기 위해서 반도체특별법이 필요한데 법 제정 역시 차질 없이 추진될 수 있도록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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