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용진의 '이의있습니다']검사가 말했다. “원래 권력층 수사는 은밀하게 하는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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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용진 논설위원
입력 2021-04-27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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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치가 목적이 아니라면 '밀행성'을 지켜야 한다던 그 검사... 지금은 뭐라 말할까?

2013년 불교방송 前노조위원장 자격으로 불교계 실력자인 모 스님을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할 당시 [사진=장용진 기자]


“원래 권력층에 대한 수사는 조용하게 은밀하게 하는 겁니다. 조용히 파나가다가 결정적인 게 나왔을 때 탁 치고 나갔어야죠.”

언제던가? 필자는 불교계에서 힘깨나 쓴다던 어떤 스님을 공개 고발했을 때 어떤 검사로부터 들은 말이다. 당시 필자는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고발장을 들고 들어가는 퍼포먼스를 한데 이어 기자실에서 기자회견까지 했는데, 때마침 그 직전에 무슨 중요한 발표가 있었던건지 주요 방송사의 카메라들까지 와 있었다.

오랫동안 검찰 출입기자로 중앙지검을 드나들었던 필자가 기자회견을 하겠다고 기자실을 들어섰을 때 어색했던 분위기는 잊을 수 없다. 하지만 옛 동료(혹은 선배)에 대한 배려였는지 한 언론사도 빠지지 않고 기사가 나갔다.

기자회견을 마치고 돌아가는데 평소 잘 알고 지내던 어떤 고위직 검사로부터 연락이 욌다. 당시 검찰 수뇌부에 가까이 있던 그는 아쉽다는 듯 연신 고개를 살짝 흔들어가며 “조용히 고발장을 내지 그랬느냐”고 갑갑해 했다. 조용히 고발장만 내거나 ‘범정(대검찰청 범죄정보과)에 자료를 넘겼으면 작품 하나 나왔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며 입맛을 쩝쩝 다셨다.

그는 ‘이제부터 피고발인인 스님은 지금부터 전관 변호사를 써서 증거를 없애거나 반박할 근거를 만들어 나갈 것’이라며 ‘(피고발인인 스님에게)망신은 줬겠지만 수사는 더 어려워졌다’고 혀를 찼다. 언론보도로 충격을 준 만큼 증거를 인멸하거나 없는 증거(특히 증인)을 만들어 낼 수도 가능성이 커질 수 있다고 걱정하기도 했다.

들리는 바에 따르면 그날 필자에게 고발을 당한 그 스님은 대노했다고 한다. 24시간 뉴스체제가 막 시작된 시점이라 TV를 틀던, 포털을 보던 자신이 고발됐다는 소식을 들어야 했으니 시쳇말로 ‘꼭지’가 돌 수밖에 없었을 것 같기도 하다.

그러니까 그 스님을 망신을 주는데는 성공한 셈이다. 언론플레이가 목적이었다면 가히 성공작이라고 할 수 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그 스님은 당시 나온 기사를 삭제하기 위해 무진장 많은 노력과 돈을 썼다는 후문까지 돌았던 모양이다.

하지만 서전을 장식했던 ‘언론플레이’과 달리 달리 실제 수사와 재판은 쉬지 않았다. 중앙지검은 주소지를 핑계로 사건을 지방의 한 자청으로 사건을 보내버렸고, 지청은 수사단계부터 시간을 끌었다.

모든 송사가 마찬가지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고소‧고발인 쪽은 힘이 빠지고 전투의지도 줄어드릭 마련이다. 송사를 시작한 사람부터 맥이 빠지기 시작했으니 당연히 사건진행도 흐지부지되기 십상이다. 나중에는 눈 앞에서 주범들이 요리조리 빠져나가는데도 막아설 의욕이 생기지 않았다.

2년여의 수사가 이어진 끝에 결국 그 스님은 법망을 빠져나갔다. 다른 공범도 주요한 범인은 다 빠져 나갔고 실무자 한명만 불구속 기소됐는데 그 마저도 무죄로 풀려나고 말았다.

분명 증거가 차고 넘친다고 생각했지만 상대방은 별 희안한 자료를 반박증거라고 냈고, 나중에는 조작된 증거를 내는 것도 서슴치 않았다. 불려나온 증인들은 한결같이 그 스님에게 유리한 증언만 하고 돌아갔다. 개 중에는 나에게 그 스님의 비리를 성토하며 울분을 감추지 못했던 사람도 있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서 그랬는지, 아님 다른 보답을 약속받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폭로 기자회견을 할 때까지 차곡차곡 준비해뒀던 증거들은 막상 법정에서 별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증거가 조작됐고 증인들이 위증을 한다며 목소리를 높혔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결국 재판부는 ‘부당해 보이는 측면도 있지만 범죄로 볼 증거가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거 봐요. 조용히 쳤어야 했다니깐...”
판결문을 받아들고 황당해 하고 있는데, 앞서 ‘조용히 범정에 자료를 넘기지 왜 기자회견을 했느냐’고 핀잔을 줬던 그 검사가 옆에서 부아를 돋구었다.

“그래서 수사에 왜 밀행성이 중요하다는 거예요. 결정적인 것을 잡기 전에 알려지면 빠져 나갈 구멍을 만들어 주는 거야. 특히 권력층 수사일수록 그래요. 우리 형님(필자)이 고발한 건을 보니까 수사가 조금만 잘 됐으면 작품이 됐겠더만... ”

거악을 척결한 기회를 잃어 아쉽다는 건지, 기자회견을 자청하며 판을 벌였다가 빈손으로 돌아선 필자를 놀리는 건지 알 수 없었지만 그의 말이 맞는 것은 분명했다.

“밀행성은 수사를 하는 쪽에도 필요하죠. ‘이놈이다’하고 들어갔는데 만약에 아니면 어쩔거예요? 빠져 나와야죠. 그럴 때 뒷말 없이 조용히 나오려면 들어갈 때도 조용히 들어가야죠. 형님도 봐요. 잘못하면 역공 당할 수도 있을걸요”

남의 속이야 끓던 말던 한번 시작된 그의 ‘수사학 개론’ 강의는 거침이 없었다. 그는 “사실 정치권 수사가 다 그렇다”며 “잘되면 명예를 얻지만 잘못되면 당사자한테 욕먹는 건 물론이고, 그 반대편으로부터도 ‘봐주기식 수사했다’는 시빗거리를 제공하게 된다”는 말까지 하고 나서야 말을 마쳤다.

약이 올랐지만 그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춘천지검장 시절 임채진 前검찰총장은 총선 후보로 출마한 청와대 비서관 A씨를 소리 소문도 없이 구속했었다. 기자들은 그가 유치장에 수감이 된 이후에야 알았고, 뒤늦게 문의가 빗발치자 구속사실을 인정했다.

나중에야 이유를 묻는 기자들에게 임 前총장(당시 춘천지검장)은 “혹여 외풍 때문에 수사를 망칠까봐 그랬다”면서 “외풍이라는게 청와대처럼 높은 곳에서만 부는게 아니고 옆에서도 불고 아래서도 분다”고 뜻모를 설명을 했다.

‘높은 데서 부는 바람’이야 다 짐작하는 것이겠지만, 옆에서 혹은 아래에서 부는 외풍이란 정치적 오해나 선거에 미칠 영향, 그로 인한 후폭풍 등 수사 외적인 영향을 뜻하는게 아닐까 싶었다.

그런데 요즘 검찰의 수사를 보면 외풍을 걱정하기는커녕 어떻게든 외풍을 일으키려는 것 같다. 당사자에게 소환통보를 하기도 전에 언론에 소환조사 사실을 공개하는 건 기본이고, 수사 초기단계에서 결과를 내다보는 발언까지 새 나온다.

수사를 하는 것인지 정치를 하겠다는 것인지, 아니면 일년도 채 남지 않은 대선의 선거운동을 하는 것인지 구분이 어려울 정도다. 사상 유래를 찾아보기 어려운 이런 행태는 윤석열 前검찰총장이 남긴 유산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맘에 안드는 법무부 장관이라고 200여곳이 넘는 곳을 압수수색을 한 그는 지난 해 총선 직전에는 압수수색을 하겠다며 청와대를 두 번이나 쳐들어가기도 했다. 마지막에는 재보궐 선거를 한달여 앞두고 사퇴를 하면서 정치적 자산을 챙기는데 활용하기도 했다.

수사는 사법작용이어야지 정치여서는 안된다. 하지만 이 나라의 검찰수사는 이미 정치의 한 복판에 섰다. '검찰당'이라는 말이 아무렇지도 않게 회자될 정도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과 독립을 목청껏 외쳐대는 전·현직 검사들을 요즘 흔히 볼수 있다. 하지만 그건 이미 검사들이 자기 스스로의 손으로 들개에게 줘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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