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투기의 역사]"'부동산=돈 버는 수단' 믿음 있는 한 투기 계속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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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람 기자
입력 2021-03-1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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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도 성숙화·이해충돌방지법 제정 등 필수

경기 광명 한국토지주택공사(LH) 광명시흥사업본부 모습. [연합뉴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이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3기 신도시에 부동산 불법 투기를 했다는 의혹이 불거진 이후, 부동산 투기 문제는 각 지자체·국회 등으로 광범위하게 확산하고 있다. 각계 전문가들은 부동산 투기는 역사적으로 이어져 왔기 때문에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근절이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16일 익명을 요청한 한 도시개발 전문가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역사적으로 이어져 온) 부동산 투기가 한번에 근절될 수 있다고 보느냐"고 되물었다. 그는 "몇 십년 동안 소유재산을 제어할 수 있는 강력한 제도가 있어야 하는데 우리 사회가 수용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제도적 변화가 있겠지만, 역사는 되풀이될 공산이 높다"고 전했다. 

김태섭 주택산업연구원 주택산업진흥실장 역시 "자본주의 자유시장경제 체제에서 부동산 투기는 쉽게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면서 "정권이 바뀌면 관련 규제가 다시 완화되거나 달라질 수 있다. 지금 같은 체제에서 완전한 부동산 투기 근절은 기대하기 힘들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LH와 한국부동산원, 각 지방 공공주택기관 등 토지 관련 기업들이 투기를 아예 못 하도록 제도적인 기반만 마련해서 공직사회를 정화해도 이번 사후 대처는 성공적이라고 볼 수 있다"며 "문재인 대통령의 남은 임기 1년 내에 이 정도만 이뤄도 국민들의 신뢰를 어느 정도 회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사태를 수습하고 부동산 공급 대책을 완수하는 일이 현 정권의 마지막 동아줄인 셈이다. 최근 리얼미터가 지난 8~12일 전국 유권자 2510명을 조사한 결과, 문 대통령의 국정수행 긍정평가는 전주 대비 2.4% 포인트 내린 37.7%로 나타났다. LH 사태 직격탄을 맞으며 국정 지지도는 '레임덕 징후'로 불리는 30%대로 내려앉은 모습이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시세차익= 불로소득' 인식 생겨야 투기 근절 가능해져

전문가들은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역사적으로 반복돼 온 부동산 투기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부동산으로 돈을 벌 수 있다는 믿음 자체를 없애야 투기를 근절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임재만 세종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부동산으로 돈을 벌 수 있으면 아무리 관련 법을 만들어도 시장에는 온갖 불법·탈법·편법이 판치게 된다. 근본적으로 '투기로는 돈을 못 버는 사회'를 만드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보유세·양도세를 강화하고 부동산에서 발생하는 불로소득을 법적으로 규정해서 '시세차익·과도한 임대소득은 불로소득'이라는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는 제언이다. 공직자뿐 아니라 일반 국민들도 대상으로 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자본시장법에 따르면 금융기관 종사자뿐 아니라 일반 주식투자자들도 부정한 자료와 정보를 이용해 수익을 얻으면 징역형이나 이익의 3~5배까지 추징하는 벌금형을 받는다. 자본시장법을 딴 '부동산시장법' 등 법 제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임 교수는 "공직자는 더더욱 투기를 못 하게 막아야 하지만, 일반인도 불법 투기를 할 수 없도록 막아야 한다. 공직자만 잡는다고 부동산 시장이 깨끗해지지 않는다"며 "사후 대책 말고 사전에 투기 자체가 불가능하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사회적으로 금융자산 불평등이 강조되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오히려 부동산 불평등 문제가 더 심화하고 있다. 부동산에서 오는 이득 대부분은 지대 추구(地代追求, Rent Seeking)"라면서 "누군가는 부동산 투기도 노력하고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노동행위라고 주장하는데, 그렇게 따지면 마약거래도 정당화될 수 있다"고 꼬집었다. 

기업의 경우, 기술·경영 혁신을 통해 이익을 추구해야지, 불공정거래나 노동 착취를 통해서 이익을 얻으려고 하면 안 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설명이다. 지대추구는 공급량이 제한된 재화나 서비스를 독과점하는 방식으로 쉽게 이익을 얻으려고 하는 것을 뜻한다. 이 현상이 이어질 경우, 기업 간 비생산적인 경쟁이 초래된다.

박 교수는 "부동산으로 인한 이익은 생산적인 활동의 결과물이 아니다. 요즘 회사에서는 시간만 보내고 주식·부동산으로 돈을 벌려고 하는 노동자가 많아졌다. 사회가 비생산적으로 변하는 과정"이라고 우려했다. 
 

참여연대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등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16일 국회 앞에서 '제2의 LH를 막아라!! 이해충돌방지법 제정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기존 제도 성숙화해야··· 이해충돌방지법 제정은 필수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기존의 부동산 제도를 성숙화하고, 공무원·공직자·국회의원에 대한 법률과 제도를 강화해야 한다는 데에 한목소리를 냈다. 현재 법적으로도 농지법 등 토지 소유에 대한 법적 제도는 있으나, 사실상 허울만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최근 의혹을 빚은 LH 임직원들이 사들인 광명·시흥 신도시 예정 부지는 대부분 농지였다. 농지가 투기꾼의 놀이터가 된 배경에는 사전 자격 취득이 필요한 농지를 쉽게 취득할 수 있도록 한 허술한 농지법 때문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농지법에 따르면 농지는 원칙적으로 농사를 짓는 사람만 살 수 있으며, 농지를 사려면 관할 지자체에 농업경영계획서를 제출해 농지 취득 자격 증명을 발급받아야만 한다. 또 그 후에도 농사를 짓지 않으면 처분명령이 내려진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처분명령을 유예하는 조항이 폭넓게 적용되는 점을 악용, 투기에 활용하는 정황이 포착되고 있다. 처분 의무가 부과된 후 1년 이내에 농사를 다시 짓는 시늉을 하면 우선 처분명령이 유예되는 식이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모든 일탈 행위는 비용 패닉모델을 보면 된다. 적발 가능성과 처벌 수위, 두 가지"라면서 "예를 들어 무단횡단을 줄이려고 한다면 무단횡단 적발 가능성을 높이고, 처벌 수위를 높여야 한다"고 밝혔다.

특히 전문가들은 정치권에서 책임감을 느끼고 이해충돌방지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재만 교수는 "이해충돌방지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당위성은 충분히 마련됐다. 정치권의 의지가 무엇보다도 중요한 때"라고 말했다. 

박상인 교수는 "세제 개혁과 더불어 이해충돌방지법의 제정도 필요불가결하다. 이해충돌방지법이 제정된다면 LH 직원 등 공직자, 국회의원 등은 자신의 주식이나 부동산 관련 정보 등을 정기적으로 신고해야 하며, 직무와 관련된 이해충돌이 있으면 관련 업무에서 사전적으로 배제된다"고 제언했다.

또한 신고하지 않은 차명 등의 자산이 사후적으로 밝혀지면, 그 자체가 징계·벌금·징역형의 근거로 이용될 수 있다. 따라서 부패방지법상 업무상 비밀이용죄의 적용보다 훨씬 입증이 쉬워지고, 그만큼 부패를 사전적으로 방지하게 된다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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