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수정의 여행 in] 우두산 절경보며 '눈호강' 오도산 솔숲따라 '몸호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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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경남)거창.합천 기수정 문화팀 팀장
입력 2021-03-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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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록물결 신비로운 거창 수승대 거북바위…퇴계이황 시구 비롯 옛 풍류詩가득

  • 해발 1046m 우두산 자락 항노화 힐링랜드…기기묘묘 암봉 이은 'Y자 출렁다리' 명물

  • 합천 오도산 힐링로드·숲속의 집 치유센터…전국유일 소나무 산림욕·시원한 계곡 '가득'

수승대 입구[사진=기수정 기자]

참 생경하다. 늘 맛봤던 숲의 내음도, 바람 소리도······. 모든 것이 새로운 요즘이다. 무서운 역병에 지인과 마주 앉아 마음을 터놓을 기회도 빼앗겨버렸다.

집 안에 갇힌 채 1년 넘는 세월을 보내며 얻은 마음의 병. 어쩌면 이를 낫게 하는 것은 산해진미도, 훌륭한 약제도 아닌, 소박한 나들이나 여행일 것만 같다. 

최근 '치유여행'이 주목받는 것도, 타인과 접촉을 최대한 피하면서 오롯이 즐기는 '치유의 숲'이 대세 여행지가 된 것도 그 이유이리라.
 

수승대 거북바위 전경[사진=기수정 기자]

◆시 한 수 읊어볼까···거창 명소 수승대

경남 거창은 산 높고 물 맑은 고장이다. 해발 1000m가 넘는 고산을 무려 26개나 품었을 뿐 아니라, 남덕유산의 남쪽 자락에 펼쳐진 계곡 명승지 '수승대(搜勝臺)'가 자리한 곳이다.

수승대는 계곡 풍경이 수려해 오래전부터 많은 이가 찾던 거창 제일의 명소다.

날이 흐렸지만, 수승대를 둘러보지 않고 거창을 여행했다고 하기엔 무척 아쉬울 것 같았다. 하여 가장 먼저 이곳을 찾았다.

과연 훌륭했다. 우중충한 날씨도 수려한 경관을 해치지는 못했다. 

수승대는 삼국시대 때 백제와 신라가 대립할 무렵 백제에서 신라로 가는 사신을 전별하던 곳이다. 애초 돌아오지 못할 것을 걱정, 근심 수(愁), 보낼 송(送)자를 써 수송대(愁送臺)라 불렀다. 말 그대로 수심을 실어 보낸다는 뜻이다. 신라의 국력은 강해지고 백제는 힘을 잃어갈 때니, 신라로 들어서는 사신의 생사를 그 누가 장담할 수 있었겠는가. 살아 돌아올 수 있을지, 수심 가득한 마음이 이름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하지만 1543년, 거창을 찾았던 퇴계 이황 선생이 이름에 얽힌 내력을 듣고 음이 같은 수승대(搜勝臺)라 고치고 오언율시를 남긴 후 지금까지 '수승대'로 불리고 있다. 수승대는 2008년 국가지정 명승 제53호로 지정·보존되고 있다.

입구를 지나 길을 따라 걸을수록 수승대의 진가는 빛을 발했다. 조금 걸으니 명물 거북바위와 저 멀리 요수정, 초록 물빛이 뒤엉켜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수승대 거북바위는 과연 명물이었다. 자태도 훌륭했지만, 신라로 들어가는 사신들, 그리고 사신을 눈물로 떠나보낸 많은 이의 모습을 지켜보고, 숱한 이야기를 간직한 채 오랜 세월 묵묵히 자리를 지켜왔을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려왔다. 

바위에는 ​퇴계 선생의 시와 갈천 임훈, 요수 신권의 화답시, 전국 각지 학자들의 시와 이름 등이 새겨져 독특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수백 년이 지났지만, 글씨는 꽤 또렷했다. 신권 선생이 심은 것으로 알려진 소나무도 거북바위 등에서 씩씩하게 자생하고 있었다. 

"시 한 수가 절로 나오네." 무심코 뱉은 이 말을 놓칠세라, 일행은 "한 수 지어보라"고 채근했다. 결국 그럴듯한 시를 지어내진 못했지만, 당시 풍류를 즐기던 선비들의 생활을 간접경험했다는 것에 만족하며 발길을 옮겼다. 

신권 선생이 세운 정자 '요수정'은 현재 오르지 못하는 상황이라, 정자 옆에 서서 가만히 눈을 감고 물소리를 들었다. 과연 그간의 근심 걱정도 물줄기를 따라 내려가는 듯, 어지러운 마음은 이내 평온해졌다. 
 

우두산 출렁다리[사진=기수정 기자]

◆거창 항노화 힐링랜드(우두산 출렁다리)

이어 해발 1046m 우두산 자락에 자리한 거창 항노화 힐링랜드를 찾았다. 천혜의 산림환경을 활용한 힐링랜드는 이름대로 '치유'가 목적이다.

기기묘묘한 암봉이 늘어서 있고 물 좋기로 소문난 가조 온천에 자생식물원, 숙박시설을 두루 갖춘 이곳에서는 치유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운영한다. 몸 상태를 측정한 후 숲속 명상과 숯가마 찜질 등을 즐기고 난 후 스트레스 지수와 심신 안정도 등의 변화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바로 위에는 신상 여행스폿도 있다. Y자 출렁다리로 불리는 '우두산 출렁다리'다.

본격적으로 출렁다리 탐방에 나서기로 했다. 사실 주차장에서 우두산 출렁다리 입구까지 차로 이동할 수 있고, 이곳에서 출렁다리까지 높이는 약 70m에 불과하지만 500m 정도를 걸어야 한다. 이 얘기를 들으니, 갑자기 무릎이 아파오는 느낌이었다.

'괜히 가겠다고 한 건 아닐까' 후회하는 것을 눈치챘는지, 힐링랜드 관계자는 "가는 길은 대체로 가파르지 않고, 턱 낮은 나무계단도 있어 걷기에 부담이 없다"고 속삭였고, 결국 그의 꾀임에 넘어갔다. 

우두산의 해발 600m 지점 계곡 위 세 곳을 연결한 Y자형 출렁다리는 국내 최초로 특수공법인 와이어를 연결해 제작됐단다. 

10분여를 오르니, 드디어 붉은 출렁다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평소 고소공포증이 없다고 자신한 터라 성큼성큼 발을 내디뎠지만, 막상 출렁다리를 마주하니 뛰는 가슴을 주체할 길이 없었다. 

"왜 이렇게 흔들림이 심해요?" 두려움에 가득찬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다. 길을 안내한 힐링랜드 관계자는 당연하다는 듯 답했다. "이름이 출렁다리인데 하나도 안 흔들리면 그게 이상한 거죠." 생각해보니 참으로 미련한 질문을 한 것 같아 얼굴이 달아올랐다. 

무사히 다리를 건넌 후 길을 따라 천천히 내려왔다. 마시는 공기 한 모금은 탄산수처럼 청량했다. 그래, 언제까지 이 힘든 상황이 지속하겠는가. 조금만 더 인내하면 광활한 대자연 속에서 지친 심신을 달랠 그날이 오겠지.
 

오도산 치유의 숲 힐링로드[사진=기수정 기자]

◆숲속 공기 한모금에 황홀···오도산 자연휴양림 치유의 숲

거창에 우두산이 있다면 합천엔 오도산이 있었다. 이곳 역시 '치유센터'가 들어섰다. 해발 1134m 오도산 북쪽자락 기슭에 터를 잡은 이곳은 합천의 명품 유원지로 명성이 자자하다.

휴양림은 2002년에, 치유의 숲은 2018년에 각각 개장했다. 이곳은 해발 700m 고산지대, 주 수종 소나무로 이뤄진 힐링로드를 따라 산림욕을 할 수 있는 곳이다. 전국 '유일'이다.  

오도산 자연휴양림에 도착한 순간, 감탄이 절로 나왔다. 수많은 자연휴양림을 다녀봤지만, 가히 최고라 자부할 만큼 훌륭한 풍광과 고즈넉한 분위기를 품었다.

'아, 이곳이야말로 천국이구나.' 힐링로드를 따라 천천히 걸으며 산림욕을 하는 이 시간이 얼마나 소중하던지, 몸을 감싸는 공기와 풀내음, 새소리까지 작은 것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숲속의집 24동과 청소년수련관 1동 등 깔끔한 숙박시설이 있을 뿐 아니라, 여름에는 시원한 계곡물을 안전하게 즐길 수 있는 물놀이장과 야영데크까지 갖춰  가족 단위 여행객이 즐기기에도 좋다. 여름에 다시 찾아야 겠다. 

기세등등한 산세는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찼고, 푸른 숲이 내뿜는 공기 한 모금은 꿀보다도 더 달콤했다. 자연의 감동을 선물로 얻고, 그간의 시름은 바람에 실어 저 멀리 날려 보냈다.

언제나 여행은 그랬다. 지친 심신을 달래고, 앞으로 열심히 살아낼 힘을 주는 '최고의 처방'이었다. 여행을 다녀온 지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그날의 추억이 여전히 짙은 지친 일상을 치유해주고 있으니까. 
 

오랜 세월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수승대 거북바위[사진=기수정 기자]

거북바위에 빼곡히 새겨진 시구(詩句)와 명사들의 이름이 여전히 뚜렷하다. [사진=기수정 기자]

우두산 출렁다리 전경[사진=기수정 기자]

오도산 치유의 숲 힐링로드 곳곳에는 누워서 명상할 수 있는 의자가 마련돼 있다. [사진=기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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