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화폐와는 격이 다른 돈' 정부 보증 CBDC가 다가왔다

백준무 기자입력 : 2021-02-22 19:30
정부가 독점 발행…거래 내역 등 데이터 통제 자금흐름 추적 쉬워 조세회피 등 사전 차단 운신 폭 넓어져 마이너스 금리 실현 가능성 63개 중앙은행 연구개발…中이 가장 적극적 한국은행 올 시범 발행…현금없는 사회 성큼

[그래픽=아주경제 미술팀]

화폐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최근 가상화폐의 대표주자 비트코인이 연일 최고가 기록을 경신하고 있는 가운데,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각국 중앙은행은 CBDC 도입을 시범적으로 실시했거나 적극적으로 검토하는 상황이다. CBDC가 본격 도입될 경우, 기존의 가상화폐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CBDC는 디지털 형태로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화폐를 뜻한다. 지폐나 동전과 같은 물리적 형태 없이 네트워크 상에서만 존재하기 때문에 흔히 가상화폐와 혼용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CBDC는 기존 가상화폐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게 대다수 전문가들의 견해다. 대표적인 가상화폐 회의론자인 누리엘 루비니 미국 뉴욕대 교수 또한 지난해 12월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CBDC는 가상화폐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지적한 바 있다.

◆중앙은행 발행 CBDC vs 민간 발행 가상화폐

CBDC와 가상화폐의 가장 큰 차이점은 발행 주체다. CBDC의 경우 중앙은행이 독점적으로 발권한다. 법정화폐와의 교환 또한 중앙은행이 보증한다. 형태의 차이만 있을 뿐 사실상 현금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반면 가상화폐는 민간이 자유롭게 발행할 수 있다. 비트코인의 경우 발행 총량이 2100만개로 정해져 있고, 컴퓨터 알고리즘을 통해 정해진 연산 작업을 거칠 경우 누구나 일정량의 비트코인을 채굴할 수 있다. 다만 기존 화폐나 자산과는 연결돼 있지 않기 때문에 가치 변동성이 매우 심하다.

발행 방식에서 차이가 있듯 지향하는 바도 양쪽이 다르다. 가상화폐는 기본적으로 탈중앙화를 추구한다. 중앙조직 없이 참가자들이 공동으로 모든 데이터를 관리한다. 익명성이 보장되기 때문에 자금 흐름의 추적도 어렵다. '검은돈'에 이용된다는 논란이 가상화폐에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이유다.

반면 CBDC는 중앙은행이라는 강력한 권한을 가진 중앙조직이 거래 내역 등 데이터를 통제한다. 네트워크 상에 흔적이 남기 때문에 현금보다도 자금 흐름을 추적하기 쉽다. 조세 회피나 불법자금 세탁을 사전에 막을 수 있는 것이다.

이자 지급, 보유한도 설정, 이용시간 조절도 가능하기 때문에 통화정책의 운신 폭이 확대된다는 것도 장점이다. 일각에서는 이론적으로만 가능했던 마이너스 금리 또한 CBDC를 도입할 경우 실현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의 'CBDC 굴기'··· 주요국 정부도 앞다퉈 도입 검토

이러한 이유로 주요국 중앙은행은 CBDC를 주목하고 있다. 국제결제은행(BIS)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66개국 중 53개 중앙은행이 CBDC 연구개발에 참여하고 있다. BIS는 2026년까지 전 세계 중앙은행의 20%가 CBDC 발행에 나설 것이라고 전망한다.

가장 적극적인 곳은 중국이다. 중국 인민은행은 2014년부터 관련 연구를 시작했고, 2019년부터는 본격적인 연구개발에 나섰다. 지난해부터는 대규모 공개 시험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10월에는 선전(深圳), 12월에는 쑤저우(蘇州)에서 각각 1·2차 시험이 진행됐다. 올해 초에는 인민은행과 선전시가 시민 10만명을 대상으로 1인당 200위안씩을 CBDC로 지급하기도 했다. 이달 들어서도 지난 10~17일 춘제 연휴에 베이징(北京)에서 3차 시험을 진행하는 등 속도전을 벌이는 양상이다.

인민은행의 공식적인 CBDC 발행 목적은 △화폐 발행 및 유통 비용 절감 △통화정책의 정확성과 실효성 제고 △'현금 없는 사회'로의 이행 △경제 거래 활동의 투명성 제고 등이다. 하지만 중국 정부가 발빠르게 CBDC 도입에 나서는 것은 디지털화폐 시장에서 주도권을 확보해 미국의 달러 패권에 도전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는 의견도 많다.

유럽 역시 관련 연구를 본격적으로 추진 중이다. 특히 현금 사용량이 줄고 있는 북유럽 국가의 경우 소액결제용 CBDC에 대한 연구에 중점을 두고 있다. 스웨덴 중앙은행은 CBDC의 일종인 'e-크로나'를 지난해부터 올해 2월까지 시범적으로 발행할 예정이다.

지난해 1월에는 유럽중앙은행(ECB)과 스위스, 스웨덴, 영국, 캐나다, 일본의 중앙은행이 각국에서 진행하는 CBDC 연구 결과를 공유하기 위한 그룹을 결성하기도 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또한 기존의 입장과 달리 최근 들어 연구와 정책 개발 차원에서 실험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은행도 CBDC 시범 발행··· "비트코인과 구분해야"

한국은행도 올해 CBDC를 시험적으로 발행한다. CBDC의 필요성 자체는 아직 실질적으로 크지 않다는 입장이지만, 이와는 별도로 CBDC 도입에 따른 기술적·법률적 필요 사항을 사전적으로 검토하기 위한 취지라는 게 한은 측 설명이다.

앞서 지난해 7월 한은은 설계와 요건 정의, 구현기술 검토 등 CBDC 연구 추진 1단계 사업 과정을 마친 데 이어 현재 2단계 사업인 업무 프로세스 분석 및 외부 컨설팅을 진행하고 있다. CBDC 업무 과정 및 양식을 설계하고, 올해 추진할 CBDC 시험 체계 구축 사업의 세부 실행 계획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한은이 추진할 CBDC 파일럿 체계의 경우 발행과 환수 관련 업무는 한은이 담당하되, 유통 업무는 민간기관이 맡는 민·관 협업 방식으로 운영될 예정이다. 한은이 금융기관을 거치지 않고 일반 개인이나 기업을 상대로 CBDC를 직접 발행·유통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에 현금처럼 금융기관을 통해 간접 유통하는 방식이다.

이를 위해 한은은 최근 CBDC 발행과 관련된 법률과 제도의 정비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이달 8일 한은이 발간한 'CBDC 관련 법적 이슈 및 법령 제·개정 방향' 보고서는 "CBDC가 가상자산에 포함되지 않도록 특금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현행 특정금융거래법이 '가상자산'을 폭넓게 정의하고 있어 CBDC가 비트코인 등의 가상화폐와 구분되도록 관련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또 보고서는 한은이 CBDC를 발행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근거 규정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CBDC 발행 자체는 한은의 목적과 업무범위에 부합하지만, 현행 한은법은 지폐와 주화 등 유체물만을 발행 화폐로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유체물의 형태가 아닌 CBDC의 발행 근거 규정을 신설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CBDC와 가상화폐 관계는··· 대체재 혹은 보완재, 전망 엇갈려 

CBDC가 전면적으로 보급될 경우 기존 가상화폐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는 다양한 전망이 제기된다. 루비니 교수는 "CBDC가 발행되기 시작하면 비트코인 등 민간에서 발행되는 가상화폐는 설 자리를 잃을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가상화폐의 지급결제 기능을 완전히 흡수할 것이란 의견이다.

이에 대한 반박도 있다. CBDC의 도입은 가상화폐가 제도권에 안착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란 기대다. CBDC가 도입될 경우 금융기관들이 이를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하는데, 가상화폐 역시 이러한 인프라를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CBDC와 가상화폐가 보완재가 될 것이란 의견도 나온다. 현재 가상화폐의 경우 지급결제 수단보다는 가치를 저장하는 '자산'으로서의 성격이 부각되고 있는 만큼, CBDC가 이를 대체하긴 어렵다는 시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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