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원금 감면' 법안에 은행들 "말도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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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준무 기자
입력 2021-02-03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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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자 납입·원금 상환한 사람 바보 만들어

  • 고의적 악용 사례 발생 등 모럴해저드 우려

  • 배당 규제·이익공유제 동참 압박에도 불만

"상환 유예 조치 때문에 은행 입장에선 이자도 거의 없는 수준이다. 원금까지 깎으라면 수익을 어떻게 내라는 말인가."

연초부터 금융권에 '관치금융' 그림자가 짙게 드리우고 있다. 정부여당이 나서 은행을 상대로 배당을 규제하고, 이익공유제에 동참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여기에 정치권에서 대출원금의 감면을 법제화하려는 시도까지 나오면서, 은행권에서는 불만이 터져 나오는 중이다.

3일 민형배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11명이 발의한 은행법과 금융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금소법) 개정안에 대해 은행권에서는 "말이 안 된다"며 반발하는 의견이 쏟아지고 있다.

이날 민 의원이 대표 발의한 해당 법안은 영업 제한이나 폐쇄 명령으로 인해 소득이 현저히 감소한 자영업자들이 은행에 대출원금의 감면이나 상환기간 연장, 이자 상환유예 등을 신청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이에 대해 은행 관계자들은 입을 모아 "형평성에 어긋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A은행 관계자는 "정상적으로 이자를 납입하고 원금을 상환하는 고객들 입장에서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원금 감면으로 인해 은행 건전성에 문제가 생긴다면, 이자 수익이 더 내려가고 대출 금리가 올라가는 만큼 다른 고객들에게 피해가 가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다. 은행법 개정안 등이 규정하는 원금 감면의 신청 기준이 구체적으로 공개되진 않았다. 다만 일각에선 소상공인뿐 아니라 모든 금융 소비자가 수혜 대상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B은행 관계자는 "휴직이나 실직 중에 제도를 악용해 원금 감면을 신청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고의적인 악용 사례가 발생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간회사인 은행에 지나치게 많은 의무를 지운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C은행 관계자는 "소상공인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고, 은행권이 일정한 역할을 해야 한다는 데에는 동의한다"면서도 "시중은행들이 각자 출연금을 내서 이자 연체가 발생했을 때 손실을 일정 부분 짊어지는 사후적 방식으로 가는 게 맞는다"고 말했다.

은행권의 공분이 커지고 있는 이유는 올해 들어 정부여당의 '은행 때리기' 강도가 부쩍 높아졌기 때문이다. 앞서 지난달 28일 금융위원회는 은행과 은행지주를 대상으로 오는 6월 말까지 순이익의 20% 이내로 배당할 것을 권고했다.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경제 불확실성이 커진 만큼, 각 은행이 예년보다 배당을 줄이고 손실흡수 능력을 확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중장기적으로 배당을 확대하려던 은행권의 움직임에도 제동이 걸렸다. 주주들의 문의와 항의가 잇따르면서, 각 은행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일부 금융지주는 주주들이 경영진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에 대비해 법률 검토 또한 하고 있다.

이익공유제에 동참하라는 정치권의 압박도 은행 입장에선 곤혹스러운 상황이다. 더불어민주당을 중심으로 은행이 이자 부담을 경감하거나 불가피한 경우 이자 수취를 중단하는 등의 방식으로 이익공유제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라는 주문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정부가 해야 할 일을 민간에 떠넘기고 공과는 자신들이 가져가고 있다"며 "자본을 확충하라면서 동시에 수익을 나누라는 둥 최소한의 일관성조차 없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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